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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펠렐리우 모래사장의 용기

작성자잇빨중사|작성시간24.12.01|조회수481 목록 댓글 3

 

 

펠렐리우 모래사장의 용기

 

 

 찰스 오웬

 

 

 

 

1944915일 아침,

16세 일병.

해병 1사단 7연대 1대대 A중대.

 

사단은 과달카날 이후 글로스터 곶/뉴브리튼 전투를 치렀고,

나 개인적인 첫 임무 펠렐리우다. 우리 사단 몽땅 투입됐다.

 

펠렐리우는 그 자체가 방어선인 섬이다.

상륙 1파는 제3기갑상륙대대 상륙용 탱크 75대가 선봉.

부대대장이 선도 탱크 전차장으로 탔다.

 

우리 중대 상륙점은 Orange Beach 3, 7연대 오른쪽 끝이다. 내가 탄 암트랙이 해안으로 향해 달리고, 글자 그대로 난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분대급 수륙양용 상륙정) 암트랙이 달리는 수상에 일본군 포탄이 날아와 터지고, 해안이 가까울수록 더욱더 날아와 터진다. 그러는 와중, 내 암트랙이 해안 모서리에 정지했다.

 

뭐해!!!”

 

옆으로 뛰어내리고, 다 뛰어내리자 암트랙은 후진하더니 사라진다. 난 달렸고, 어느 순간 정신 차리니 우리 중대원과 박격포반 사이에 엎드려 있다. 모두 엎드려 모래를 끌어안고 있다.

 

날아오는 사격 소음 때문에 말소리를 못 알아듣는다. 응응응응 소리밖에 안 들린다. 사람들이 입은 벌리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전장에 날 소리가 모두 합쳐졌다. 야포, 기관총, 모든 일본군의 소총이 쏘고, 우린 꼼짝도 못 하고 엎드려 있다.

 

7연대 1대대 A중대 고참들은 수도 없이 떠들었다.해안에 있으면 끝이야. 일본군은 해안에 영점 잡아놓고 있어. 상륙정에서 나오면 무조건 빨리 해안을 벗어나야 돼!’

 

그러나 앞이건 옆이건 전면의 일본군 사격에 꼼짝도 못 한다. 해안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그런 건 살다 처음이다. 나도 그렇고 아무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모른 척한다. 나가는 순간 죽는 것 같다. 얼마나 지났는가 모르지만, 해 봤자 고작 몇 분이었을 거지만, 영원 같았다.

 

무섭다.

몸에서 분리된 팔과 다리가 내 옆에 떨어져 있다.

맙소사, 사람 다리가 잘려져 내 옆에 있다.

 

 

본 기고 글의 모든 사진은 펠렐리우 전투 사진입니다.

 

 

엎드려 모래를 껴안고 있으며 무수한 생각이 지나간다. 2년 전, 내가 열네 살일 때 뭐 하자고 해병대에 지원했나. 왜 지원서에 생년월일을 가짜로 적었냐! 마지막으로 훈련소 수료 직전에 왜 내가 전투 보직 하겠다고 했지?

 

내 상태는 완전한 공포 자체. 누가 흔들어서 정신이 돌아온다. 목소리가 들린다. 아주 큰 목소리. 사람 말이 무슨 ~ ~ ~ 소리로 들린다. 그런 고함이 온 사방에 가득 찼다. 이건 진짜 combat noise.

 

주변을 살피니, 여전히 아무도 안 움직인다. 다시 둘러보니 내 뒤에서 누가 물에서 올라온다. 발바닥을 디디고 선 유일한 사람이다.

 

그 순간 적 야포탄, 기관총알, 소총탄이 우리 위로 통과한다. 치명적인 박격포탄은 사람들 속으로 사방 떨어진다. 적들은 다 쏘고 우린 다 엎드려 있다.

 

한 사람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맴돈다.

 

“Get the hell off this beach or I’ll shoot you!”

 

그 사람이 고함을 지르며 나에게 가까워졌고, 소령이다.

난 놀랐다. 여기 어떻게 소령 같은 고급장교가 있지?

 

처음 보는 사람이다. 소령은 토미건(톰슨)을 들었고, 피와 진흙이 얼룩진 일본놈 야전삽을 어깨에 걸었다. 소령이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발로 차고 고함친다.! 앞으로 안 나가면 쏜다!”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는데 난, 저 미친 사람이 날 죽일라고 작정했나,난 못 움직여.’ 생각했다. 해안을 벗어나고 싶지만 뭐든 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해안으로 벗어나서 한 친구가 그런다. 아까 그 소령, 갑자기 박격포탄이 떨어졌는데, 터지고 나서 보니 쓰러져 있었어. 정통으로 떨어졌다고.”

 

드디어 박격포반과 보병 가리지 않고 해안을 떠나 움직이기 시작할 때, 난 단언코 말할 수 있다. 그 소령이 아니었다면 난 거기 엎드려 밤까지 그러고 있었을 거다. 나 열여섯이다.

 

 

그날 밤 자정 직후, 우리 부대에 엄청난 박격포가 떨어지고, 난 다쳐서 해안으로 후송된다. 며칠간 치료하고 해군 군의관과 면담한다. 군의관이 말을 빙빙 돌리는데, 골자는 섬으로 다시 가지 말라는 거다. 그러나 그러긴 싫었다.

 

그 시절 해병대에서, 특히 중대에선, 그게 가족 비슷하다. 다 아는 사람이고 같이 있으면 안전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었다. 내 부대를 찾아서 같이 하고 싶었다. 우리 중대가 큰 피해를 본 것이 확실하다.

 

7연대 1대대 A중대로 19454월부터 6월까지 펠렐리우에서 싸웠다. 오키나와 전투도 세 달간 참가했다. 그 뒤로는 중국 북부 해병 분견대로 가서 주둔했다.

 

한국전쟁 때는 7연대 3대대 H중대였다. 많은 시간 소총소대장 역할을 했다. 소위 중위가 많이 다치고 전사했다. 195210월부터 195311월까지 거기 있었다. gunnery sergeant로 진급했다.

 

20년 근무하고 1962년 해병대에서 제대했다. 그러나 1966년 베트남에 가기 위해 해병대로 돌아왔다. 동 하(Dong Ha) 지역, 3탱크대대.

 

수륙양용 탱크는 이거 같다. 상륙정 위를 장갑과 포탑으로 덮은 암트랙 경전차.

 

 

나는 전투 상황에서 많은 용기와 영웅을 보았다. 그러나 22년 반 동안의 해병대 현역 생활 동안 한 명이 유독 떠오른다. 펠렐리우 해변의 그 영웅적인 소령이 마음에 가장 남았다.

 

그것은 내게 영향을 주어, 내가 부사관으로 해병대 모병관 할 때, 그리고 DI로 젊은 해병들을 지도할 때 항상 염두에 두었다.

 

소령은 겁먹은 병사들을 훌륭한 병사로 바꾸는 걸 나에게 증명했다. 만약 소령이 펠렐리우 해변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상황을 지속하다가 다 죽었을 거다.

 

“Get your asses off this beach or I’ll kill you. Move.”

 

샌디에이고에서 DI를 할 때, 해변에 서 있던 소령을 생각하고 훈련병들을 가르쳤다. 어떻게든 생존하라. 무엇을 하던 살아라. 살려면 무엇이든 해라.

 

 

1991[Peleliu: Tragic Triumph] 책이 나와서 잃어버린 기억을 많이 되살렸다. 가장 궁금했던 건 그 소령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소령을 찾았다.

 

Arthur M. Parker, Jr. (은퇴 계급) 대령.

 

그렇게 난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고, 1944915일 이후 48년 만에 대화, 통화를 했다. 연로하긴 했지만 분명히 그 벼락같았던 그 목소리였다. 이후 감격스럽게 만나게 되어 직접 들었다.

 

“LST 수문이 열릴 때 정말 기뻤지. 대양의 공기가 좋았고. 해안까지 4km. 상륙정이 줄을 지어 출발해. 우리 제3기갑상륙대대가 상륙탱크 75대를 앞세워 가장 앞이야.

 

함포는 물론 전투기들이 펠렐리우섬에 쏟아부었어. 무장 상륙함(LCI)들까지 로켓을 쐈어.

 

해안에서 500m, 탱크가 먹통이 됐어. 내가 전차장인데 내 탱크가 맛이 간 거야. 갑자기 멈춘 거야. 사방에 포탄이 떨어져. 그러자 D중대 부중대장인 브리스톨 중위가 참 좋은 장교였지 대신 명령했어. 다른 탱크가 문제가 생겨도 돕지 마라. 일단 가라. 일단 빨리 가서 우리 탱크가 교두보를 뚫어야 한다!

 

그러더니 브리스톨 중위가 내 탱크로 와서 옆에 대. 우린 tow cable을 연결했고, 브리스톨 중위 탱크가 내 탱크 1m 앞에서 달리고 나는 끌려가고, 만약 포탄이 때려서 케이블이 끊어질까 안절부절했지.

 

다시 해안으로 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격 장난 아니었지. 우린 두 번 맞았어. 불도 나고 승무원 한 명이 전사했어. 나처럼 out of action된 탱크가 많아. 탱크가 정말 많이 맞았어. 맞아서 먹통이 된 탱크들은 어떻게든 힘을 합쳐 해안까지 가려고 발버둥 쳤지. 해안에 도착하면 탱크 잃은 탱크병은 그때부터 보병 되는 거야.

 

해안에 박격포 야포가 때리는데, 보병들이 엎드려 그냥 아무것도 못 해. 해안을 벗어나거나 모두 죽거나 둘 중 하나인데 공포로 마비된 거야. 내가 소리를 질렀지만 움직이려 하질 않아.

 

내가 원래 온갖 욕을 달고 살던 사람이야. 팔에는 톰슨 기관단총, 그걸 왜 주었는지 모르지만 일본놈 야전삽을 걸고 있었어. 진흙과 피가 내 사방에 퍼져 묻었고. 정말 그 장면 보고만 있기 너무 끔찍해.

 

젊은 해병들! 내가 그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하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 내 생각엔, 이게 정말, 내 전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것 같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게 날아와. 박격포탄도 날아오고 대전차포도 쏴. 야포는 말할 것도 없고, 기관총들이 미쳐 날뛰어. 이보다 최악은 없어.

 

사방에 시신과 사람 살 조각들이 널리고, 이 보병들은 전투가 처음이거나, 아니면 그 정도 사격 포격을 처음 받아 본 거야. 넋이 나간 거야. 그냥 다 나간 거야. 누가 뭐랄 수도 없어. 그런 총체적 사격 포격은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나도 비현실 같았어.

 

소령 계급장? 난 과달카날에서 7연대 1대대 B중대장이었어. 그때도 계급장 달고 다녔어. two bar(대위)를 대놓고 다녔지.

 

(주 : 이때는 저인식성 계급장이 없었다. 장교 금속 계급장을 말한다.)

 

펠렐리우 때는 소령 계급장 달고 있었지. ? 황금색 계급장.

 

그렇게 소리치다가 내가 앞장서 달렸지. 그러자 다섯? 그게 시작이야. 듣고 보니 자네는 몇 분간 바라만 봤군. 내가 뛰니까 날 보고 다섯 정도가 앞으로 뛰었어. 그렇게 시작한 거야. 그때 무시무시한 박격포 탄막이 떨어졌어. 그 탄막이 조금 전, 뛰기 전 그 자리들에 떨어졌어.”

 

난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아마, 내 기억이 완전하진 않을 거고, 하여간 모두 엎드려서 모래를 끌어안고 있었어. 내가 나선 이유는, 내 탱크가 포에 맞아서 할 게 아무것이 없었어. 나도 토치카를 박살내던지 뭐라도 했어야 맞는 거지. 내 탱크 고장났다고 뒤에 가만히 있으라고? 그날 이유가 있다면 하나, 내 탱크가 불타버려서야. 탱크 버렸지. 그게 대단하게 보였다니 고맙네. 48년 전 펠렐리우 해안에 같이 있던 열여섯 살 해병을 다시 만나다니. 그걸 기억하다니. 나 같은 장교가 한둘이야? 난 적당한 일을 한 거야.”

 

1992년 파커 대령을 만났을 때 충격받았다. 대령은 그 전투로 아무 훈장도 안 받았다. Navy Cross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그게 내 첫 실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해병대 장교를 본 것은 이후에 더 없다.

 

파커 대령은 199510월 폐암으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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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써전트김 | 작성시간 24.12.02 장진호전투를 다룬 브레이크 아웃같은 책에서 오웬 중위가 나오는 내용이 있는데 글쓴 이가 그 분인지 궁금해집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잇빨!!!
  • 작성자한군 | 작성시간 24.12.03 리더쉽의 전형!
  • 작성자롤랜드 | 작성시간 24.12.04 펠릴류...콜옵 월드엣워 에서
    게임으로나마 경험한.
    저기서 살아남은 병사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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