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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원고

26-24예수님에게서 해답을 찾아봅시다(24)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마12:34-37]

작성자담임목사|작성시간26.06.07|조회수42 목록 댓글 0

26-24예수님에게서 해답을 찾아봅시다(24)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12:34-37]26.6.14 주일1-3부설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말에 있어서도 새로워져야 될 것입니다. 우리 입술의 말에는 놀라운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말에 조심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은연 중에 내 뱉는 그 말이 내 인생을 규정짓고, 또 영원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말을 함부로 하거나 부정이거나 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반면에 말을 할 때 항상 긍정적으로 말하고 좋게 말하고, 덕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유심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말하는 것이 곧 내 운명을 가른다는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1.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실 때, 입에서 나가는 그 말씀으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13~5)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그 선포대로 만물이 지어지는 것을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대화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뱀이 다가와 하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하와는 마귀가 뱀의 형상을 하고 오자 뱀과 대화를 했습니다.

사탄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뱀의 형상을 하고 와서 하와를 꾀었던 것입니다. ‘죽지 않는다’ ‘먹으면 네 눈이 밝아진다’‘선악을 분별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석악과를 먹은 이후에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고 더이상 하나님과 대화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죄를 짓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어도 변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312에 보십시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어가 살리는 언어가 아니라 정죄하고 비난하고 죽이는 언어가 되고 만 것입니다.

 

2.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다른데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우리 죄를 대속해주는 길밖에는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두 번째 아담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아담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정죄, 저주를 짊어지고 대신 건져주신 두 번째 아담인 것입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이 주님에 의해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우리는 철저히 죽었는데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언어의 권세도 살아나고 모든 것이 다 살아났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셨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주님이 폐해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옛날 것은 다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새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속사람이 새롭게 되고 만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1234-37에도 말씀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3.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라

 

육체의 언어가 영적인 새로운 언어로 바뀌었습니다.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희망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패배적인 언어가 아니라 성공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질병의 언어가 아니라 치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언어에 대해서 무지하고, 또 모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영적 차원의 삶과 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원합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3:4~7).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만 영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차원은 직선이고, 2차원은 평면이고, 3차원은 입체고, 4차원은 안보입니다.

우리가 지적 체험으로는 3차원까지 밖에는 모릅니다.

점으로 된 것과, 평면과 입체는 보고 말하고 만져볼 수 있지만 영적 차원은 전혀 안 보이는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안 보입니다. 꿈꾸는 것, 안 보입니다. 믿는 것, 안 보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음성은 들리지 안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차원은 안 보이는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차원의 세계를 성령을 시켜서 보내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세계의 언어인 성경과 성령님의 계시의 은혜 등 구속 받은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이제 발전되고 향상된 삶을 살려면 영적차원의 말씀을 집대성한 성경의 말씀을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안 보이지만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이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쫓아서 살면 분명히 변화가 기적이 나타납니다.

디모데후서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미국의 위대한 복음전도자였던 D. L. 무디는 성경은 정보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렵고 불안할 때 말씀을 읽으면 용기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예화]

남에 대한 험담은 반드시 비수가 돼 내게 날아온다”- 장용진 저,

일 잘하는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중에서

개에게 물린 사람은 반나절 만에 치료받고 돌아갔다. 뱀에게 물린 사람은 3일 만에 치료받고 돌아갔다.

하지만 사람의 말에 물린 사람은 아직도 입원 중이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귀처럼 거친 말에 물려 고통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특히 청소년들의 언어폭력의 상황은 정말 심각합니다. 특히 윤리의식이 희박한 초··고 학생들은 큰 자각 없이 악플 달기에 동참해 악성 댓글의 65~70%를 청소년이 작성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안타까운 건 사이버폭력 가해 학생 중 59.1%가 피해 경험이 있고, 피해 학생의 43.7%는 가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사이버상에서의 피해자가 돌변해 남을 욕하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는 가해자가 되는 사이버폭력의 악순환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 “남을 헐뜯는 험담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퍼뜨린 사람과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험담의 주인공이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세계와 창조를 위해서는 새로운 말씀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015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금이나 진주와 같은 보배보다 지혜롭게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씨를 심으면 열매를 맺듯이,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은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결과를 반드시 낳아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중 언어를 사용하는 피조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도 언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것은 언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입술의 말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넓은 연병장에 군인들이 수백 명 모여서 있는데 지휘관이 열중 쉬어! 차렷! 앉아! 일어서!” 이렇게 명령하면 수많은 군인들이 그 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말을 하는 사람의 신분 때문입니다.

지휘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 말에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한다면, 우리 입의 말에 얼마나 큰 권세가 있겠습니까?

 

말의 권세를 잘 아는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데 바로 자기 하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입니다.

그는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지휘관으로서 자기가 부하를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늘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하인을 고치러 집으로 간다고 하셨을 때 집으로 오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도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칭찬하셨던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태복음 88~9).

 

그는 예수님 말씀이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말에 권세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꼬? 하는 염려의 말을 하면 반드시 그 염려로 가득하고 한숨이 떠나지 않고, 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의 말을 하면 그 말에 권세가 따르고 그 말이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입술의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시편 949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민수기 1428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늘 듣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3장은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사람의 혀를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작은 키에 비유합니다. 야고보서 34절로 5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고 했습니다.

 

우리 입술의 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잠언 18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의 말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긍정적이고 믿음의 말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은연중에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자신이 말실수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

베드로전서 39-10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베드로전서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하라

 

결론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었으면 우리의 말이 새로운 말이 되고, 우리가 새로운 말을 할 때,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은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는 말로서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에 권세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말로 자녀들을 축복하면 귀한 자녀들이 되고, 자녀들을 비평하면 나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입술의 말이 이제는 얼마나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새사람이 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권세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 이제는 창조적이고 말하는 것에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말로써 칭찬하고 창조적인 축복을 하고 그렇게 나가면 일도 안 될 것이 되고, 모든 것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예화]

인도선교사 스텐리죤스는 69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제로 보스턴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죤스 선교사님은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가 들어올 때마다

닥터, 나에게 굿모닝! 굿나잇! 이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 주세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 걸으라’. 이렇게 좀 말해 주세요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도 부탁을 하니까 의사가 그분에게 올 때면

스탠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걸으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스탠리 선교사는 아멘하고 대답했습니다.

 간호사가 들어오면 그 간호사에게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간호사가 치료를 하다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 걸으라

하고 말하면 또다시 아멘하고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약간 노망이 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6개월 만에 병상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도로 돌아가 20년 동안 선교에 헌신하였으며,

1973125, 인도 바레일리에서 별세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변화가 다가옵니다. 결과가 바뀝니다. 운명이 바뀝니다.

 

다같이 찬양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강점남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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