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5예수님에게서 해답을 찾아봅시다(25)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아는가?[요15장 1-4절]26.6.21 주일 1부-3부설교
[예화]
우리는 세상에 살아갈 때 여러 가지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50대 부인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들었습니다. 대학교 교수 부부인데 두 자녀들이 고등학교 다니는 때 남편이 바람이 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해어지게 되었습니다. 두 자녀를 자신이 맡고 작은 전세를 얻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일단은 바람을 핀 남편을 안보면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뜻한 수입에 늘어만 나는 지출은 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친정에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50대 중반에 들어선 것입니다.
많은 흰머리가 보이고 확 늙어버린 전혀 생소한 얼굴이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어지 남편은 새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되나? 그러던 차에 친구로부터 새로운 만남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자신보다 5세 연하남이었습니다. 사춘기 딸을 하나둔 돌싱이었습니다. 몇 번의 만남속에 호감을 갖게 되었는데 그가 문득 자신의 현재모습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집은 자가냐? 전세다. 년봉은 얼마나? 시간강사라 얼마안된다. 노후에 탈 연금은 얼마냐? 없다. 사실대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뒤로 자연스럽게 만남이 끊어졌습니다. 또 동갑인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활달하고 호탈하게 끌어가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말끝마다 무시하는 말투를 반복합니다. 돈도 없이 지금까지 뭐했느냐? 그 나이면 이정도는 준비했어야지! 그도 역시 더이상 만남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결혼해야 할 두 자녀가 있다는 말을 하지 표정이 굳어지면서 나는 아이들 때문에 미래에 브레이크 걸리는 것을 감당할 수 었다고 했습니다. 그도 역시 좋은 인연이 될수 없어서 해어졌습니다.
그날은 창문밖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되뇌어 보았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혼자라도 잘 지내왔어!” “그래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어!”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은 늘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늘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은 절대로 상처와 후회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말씀합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포도나무요 우리는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넘쳐나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것을 통해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 나는 주님이 친히 택하신 가지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교회 권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구역 식구 중 성도 한 사람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심방을 가는데 도중에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길거리에서 힘없이 축 늘어졌습니다. 그때 마귀가 ‘야 너는 지금 피곤하고 힘들지? 너는 당뇨병도 앓고 고혈압도 있는데 저혈당이 되고 고혈압이 되어서 너는 이 길거리에서 죽는다. 그런 처지에 누구를 심방하는 것인가?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는데 누구를 추스르는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마귀는 언제나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협박과 공갈로 겁을 주는 것입니다.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숨이 탁탁 막히고 앞이 캄캄해지는 것입니다. 권사님은 그 말을 듣고 귀를 기울이다가 마음에 두려움이 와서 ‘나부터 먼저 병원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셨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성령께서 마음속에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라.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생각하면 그 결과는 언제나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입니다. 성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하면 용기와 힘과 꿈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권사님은 즉시 깨닫고 부정적인 생각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심방을 은혜 가운데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마귀가 있다는 생각을 안합니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말하는 거라고 치부합니다. 실제로 마귀는 언제나 우리에게 기회만 있으면 부정적인 말을 하고 불안과 공포와 절망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일 수 있도록 위로를 해주셔서 우리를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너는 주님의 포도나무 가지가 될만한 자격이 없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택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기에 마귀 앞에 당당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감각’을 이야기합니다. “너 아무 느낌도 없지 않느냐. 몸에 진동 있느냐. 몸에 열이 있느냐. 땀이 나느냐. 몸이 후끈하냐. 마음이 떨리느냐. 무슨 감각이 있고 무슨 체험이 있느냐. 아무 감각도 없고 체험도 없으면서 무슨 주님 성령이 같이 계시고 너 주님의 포도나무 가지라고 큰소리할 수 있느냐”라고 속삭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우리 삶의 근본인 것입니다. 믿음에는 그러한 체험이 따르기도 하고 전혀 따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믿는 것은 성경에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에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어떠한 변화가 환경에 와도 하나님의 약속 말씀은 그대로 영원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와서 속삭여도 우리를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고 예수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열 번 넘어지면 열 한 번 하나님이 붙잡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로 버림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붙잡고 계시고 아버지가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2. 나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께 의지해서 기도하고 부르짖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요, 부르짖으면 실제로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역사는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북캘리포니아 주 한 공원에 ‘레드 우드’라는 나무가 있는데 키가 무려 100미터 이상이나 됩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땅 밑으로 100미터 이상 뿌리가 뻗어 나가 있어서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뿌리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뿌리는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나는 그 가지로 붙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신 그곳이 우리의 뿌리인 것입니다.
천국 포도나무의 지상 가지가 되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정의로운 의의 열매를 맺고 성결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거룩함의 열매를 맺고 건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저주가 물러가고 축복이 열립니다. 영생천국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땅에서 죽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 천국에 들어간다는 믿음과 확신과 영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장 3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사과밭을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수확을 기대했는데 3년 연속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만 낙심해서 교회도 나오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동안 일이 바쁘다고 성수주일도 안하고, 영농자금이 모자란다고 십일조도 떼먹고, 주님 앞에 바로 서지도 않고 사과 농사가 잘 될 턱이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집사님은 크게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신앙생활한 결과, 사과 농사의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포도나무요 우리는 이 지상의 가지입니다. 가지인 우리가 나무인 예수님께 잘 붙어 있어야 예수님으로부터 귀한 양분을 공급받아 탐스러운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일을 놀랍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우리 스스로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속에 잠재력을 개발해 내면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이 역사하기 위하여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1)무엇보다도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지켜서 내 마음이 주님 마음을 따라서 생각하면 생명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과 주님의 생각은 높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주님의 생각과 뜻을 내 마음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눈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주님이 할 수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2)입을 넓게 열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채우는 것은 주님이 채우는데 우리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편 81:10)
현실이 아무리 괴로워도 현실을 초월해서 주님 뜻대로 우리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3)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꿈 같은 소리하네”라고 하거든 “나는 그 꿈같은 사람이 된다”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된다고 하셨으니 ‘믿음’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바다에 던지울 수 있다 하셨는데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진실한 믿음을 가지면 오늘날도 믿음은 큰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로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은 이루어집니다.
내가 주님 뜻을 받들어 주님 꿈을 받아서 꿈꾸고 있으면 그 꿈꾼대로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믿으면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입으로 말하면 말한대로 되는 것입니다.
생각한대로 되고, 꿈꾼대로 되고, 말하고 믿은대로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실망할 때가 올 것이다. 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보라 어느 때는 그 명성이 뒤집어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믿지 말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위해 우리는 주님처럼 믿을 수 있어야 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처럼 꿈꾸고 믿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잠언 18장 21절에도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는데, 바로 우리의 혀가 그런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4)언제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도 말씀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말로써 주님을 부인할 때인 것입니다.
말로써 주님을 부인하면 우리는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누가복음 12장 8-9절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탈무드에는 <인간의 혀>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하루는 광대 시몬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 오라하고, 요한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이 돌아와 임금님께 자신들이 찾은 것을 상자에 담아 바쳤습니다. 임금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열어보니 혀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나쁜 것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라고 하니까 열어보니 혀가 들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도 혀요, 가장 나쁜 것도 혀입니다.
혀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 혀의 신경이 온 우리 신경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새 암에 걸리면 암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절망적인 말을 하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암에 걸렸다. 나는 죽는다. 나는 절망이다”는 고백이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암 전문의가 똑같은 병에 걸린 환자들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어 약을 투여 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A그룹에게는 약과 함께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을 들려주었고 B그룹에게는 약만 투여했습니다.
결과는 A그룹의 완치율이 74%에 달했으나, B그룹은 22%에 머물렀습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나폴레옹 힐은 8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후,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이하였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친척들을 새어머니에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개하는데, 그의 차례가 가까이 오자 그는 그만 긴장하여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팔짱을 꽉 끼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새어머니에게 “내 아들 나폴레옹이오. 우리 마을의 최고 장난꾸러기 악동입니다. 지금도 무슨 일을 벌일까 궁리하는 중일 거예요”라고 소개했습니다.
순간 나폴레옹 힐은 정말 악동이 되리라고 마음속에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새어머니가 다가오더니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고 들여다보면서 “여보 당신 잘못 봤어요. 나폴레옹 힐은 마을의 최고의 악동이 아니에요. 아직 어려서 지혜를 제대로 발휘할 줄 모를 뿐이지 내가 보니까 아주 영리한 소년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새어머니가 북도두워준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세계 여러 나라 대통령과 왕의 자문 역할을 하며 성공학에 관련된 책들을 통해 수백만 독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위대한 저술가가 된 것입니다.
말이란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악동으로 만들 수도 있고, 위대한 인물로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가지를 치시고 벌레를 잡으시고 비료도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를 통하여 열매 맺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우리의 주님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시행해 주십니다.
언제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이름으로 명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이루고 승리합ㅅ니다.
다같이 찬양 –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강정남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