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라는 사람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그 당시 죄수에게 사용된 못은 길이 12.7~17.8㎝, 지름 1㎝ 정도의 끝이 날카로운 녹이 슨 철대못으로 예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뼈 끝 부분과 손목뼈 사이를 관통했다.
(예수와 동시대 사람인 요한난 벤하콜의 십자가 처형 당시의 못을 발굴하였다.)
만약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손바닥이 찢어져버려 십자가에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손목에 못을 박은 것이다.
당시의 언어는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다. 손목도 손바닥에 포함된 언어였다. 손목에 못이 박히는 곳은 중추신경이 지나가는 위치로 그 신경은 손으로 나가는 가장 큰 신경인데 못이 그곳을 내리칠 경우 그 신경이 완전히 파괴된다.
못이 손목에 박힐 경우의 고통은 펜치로 그 신경을 잡고 비틀어서 뭉개는 그런 고통과 비슷하다고 한다.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해서 기절하기도 하였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 단어가 바로 'excruciating(고문하다)' 이라는 말이다.
문자적으로 excruciating은 '십자가로부터' 라는 뜻이다.
십자가에 달려 있을 동안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했을까?
또 예수님의 발은 겹쳐진 채 손목과 동일하게 십자가의 수직 기둥 정면에 못 박아 고정되었고, 녹슨 쇠 못은 발 중앙의 둘째 뼈와 셋째 뼈 사이에 꽂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수는 발의 주 신경들이 끊기는 고통,
양손과 같은 발이 잘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더욱이 십자가 형을 받기 전에 채찍질로 인한 출혈과 쇼크,
혈압저하 현상, 못을 박기 위해 땅에 눕혔을 때 채찍질 당한 등이 다시 찢겨지는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가 채찍에 맞은 이유는 이스라엘의 역사책인 성경 이사야 말씀에 기록되어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와 함꼐 못박혔던 살인자들은 죄값을 치루어야 했지만, 예수라는 사람은 죄가 없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가 십자가 형으로 죽어야 할 만큼의 죄가 없기에 죄목을 찾지 못해 채찍질만 하고 놓아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군중들은 사납게 예수를 못박아 죽이라고 하였고, 그렇게 예수는 죄 없이 십자가에 못박혔다. 십자가 위에서 매 순간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시달렸다.
예수는 이미 채찍에 맞은 상태여서 십자가 위에서 호흡 곤란 상태로 더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리면 팔이 15cm 정도 늘어나게 되고, 양쪽 어깨가 탈골이 된다.
못에 박혀 쭉 뻗은 팔과 어깨를 끌어내리는 몸무게는 근육에 충격을 주며 횡경막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숨을 들이쉬기보다 내쉬기를 훨씬 어렵게 만들고,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발을 밀어올려서 발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잠시동안이라도 숨을 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못박힌 발에 몸무게 전체를 싣게 되므로
발에 박혀있는 못이 발을 점점 깊게 찌르게 된다.
결국에는 못이 발근육에 붙어있는 뼈를 직접 고정시키게 되는 것이다. 아픔으로 몸부림치며 팔꿈치를 구부려서 몸을 올리는 동작은 못에 박힌 손목을 돌리게 하고 팔의 신경을 손상시키게 되므로 고통이 가중된다.
간신히 숨을 내쉰 후에는, 세웠던 발을 내리고서 잠시 쉴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숨을 들이 마시게 되었다.
그러면 또 다시 숨을 내쉬기 위해 발을 세워야 하고 동시에 십자가의 거친 나무결에 피 묻은 등이 긁히게 되고....
완전히 지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되다가 결국
발을 세울 수 있는 힘조차 없어지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살이 찢기는 아픔, 팔과 다리에 느껴지는 고통, 호흡곤란으로 점점 조여오는 가슴,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들어올리면서 느껴지는 손과 발의 극심한 통증 등
그런 고통들 때문에 같이 십자가에 달린 두 죄인들보다 예수님는 먼저 죽음을 맞이 했다.
안식일과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그 일을 끝내고 시체를 치워야 하는데
두 죄인은 죽지 않아서 다리를 꺽었다. 이것은 아직 죽지 않았기에 빨리 죽으라고 무릎부분을 커다란 망치로 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리를 꺽으면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끌어올릴 수 없으므로 숨을 쉴 수가 없어 몇분안에 죽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와있듯이 예수는 이미 출혈과다와 함께 호흡곤란으로 숨을 거둔 상태였다. 따라서 다리를 꺽지 않고 창으로 찔러 죽음을 확인했다.
예수는 이미 죽었기에 한 군인이 옆구리에 창을 찌르자 예수의 몸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2~34)"
이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은 역사책이다. 죽은 예수에게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은 의학적으로도 판명된 진실임을 설명 할 수 있다.
호흡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희생자는 소위,호흡 산독증(酸毒症) - (혈액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의 산성이 증가하는 증상) 에 빠진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된다.
아마도 예수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을 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니이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정지되었고 죽게 되었다.
예수가 죽기 전에 저혈량성 쇼크는 심장 박동수를
지속적으로 빠르게 만들었다.
이것도 심장을 정지시킨 원인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되면 심장 주위에 있는 막 조직에 액체가 고이는,
심낭삼출이 일어난다. 그리고 폐 주위에서도 액체가 고이는데
이것은 늑막삼출이라고 불린다.
로마 군인들이 와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서,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확인을 했을 때 물과 피가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군병의 창은 오른쪽 폐와 심장를 꿰뚫었을 것이고 그래서 창을 뺄 때 물처럼 보이는 액체(심낭삼출과 늑말삼출)가 나왔다. 물과 피가 분리되어 나온 것이다.
요한복음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흘러 나온 다음에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물'이 먼저 그 다음이 '피'...'물과 피'라고 기록 되었던 것이다.
예수는 높이 7-9피트의 십자가에 아침 9시부터 오후3시까지
6시간동안이나 이런 고통속에서 달려 있었다.
건조지역의 뜨거운 햇빛에 노출되어 몸의 수분이 다 빠지고.. 벌레(파리,등에..)들도 피냄새를 맡아 몰려들어
예수의 몸에 붙어서 예수님을 더 아프게 했을 것이다.
만약 아무 죄 없이 내가 십자가에 달린다면...
어떨까?... 이렇게 극심한 고통...십자가의 모진 고통...
살인을 저지르거나 가장 심한 죄를 지은 죄수를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실행했던 십자가 형....
그러나 그런 육체적인 고통보다.. 죄없이 죽어야 했던 예수의 가장 심한 고통은 아마도 심적인 고통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당신이 만든 피조물 인간의 손에 죽어야만 하는 그 고통...자식의 손에 죽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
예수가 왜 이렇게 죽어야만 했는가...
바로 나와 여러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때문에......
바로 나 때문에...
예수는 바로 나, 내 죄 때문에 죽었다.
예수는 이 모든 고통을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견뎌내었다.
바로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던 죄 때문에 죽으셨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예수는 나를 위하여 이렇게 죽었다.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분이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이 인정하든 안하든 당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생명을 만드시고 지금도 심장을 뛰게 하시는 분...
그분이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십니다.
부활하신 그 분께서 이미 당신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나의 주인이되신 예수님 나의 주를 위해 살지 않고...
지금 나를 위해 사는 삶을 회개하고 이제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믿고 모든 죄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한복음 16장 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