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는 길,
초여름의 샤스타데이지 풍성한 꽃절과
산딸기 새콤하게 익은 녹음이 우거지는 운탄고도의 하일라이트 숲길,
그리고 애달픈 단종의 행적 따라 엄흥도의 충절까지를 돌아보는 여행길을 다녀왔습니다.
강수확률이 50~60%라고 해서 우비에, 새로산 우산까지 열심히 갖추어 출발했지만,
감사하게도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아름다운 날을 즐기었습니다.
구불구불 굽이길을 돌아 해발 800m까지 고도를 높입니다.
기사님이 좁은길 운행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녹음 우거진 길, 앞으로 걸을 운탄고도 길을 예상할 수 있네요 ~
운탄고도 걷기 출발지이자 산중의 작은 꽃절에 도착합니다.
이름을 알리는게 오히려 민폐가 될거 같아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합니다....
봄에 들렸을 때는 갖은 색의 야생화들이 화려했지만 지금 초여름은 대부분 색은 사라져가고 여름꽃을 준비하는 꽃망울들이 보이는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분홍빛 끈끈이대나물꽃이 색을 주도하네요.
경건한 관람을 부탁드리고, 부탁드린 관람,
너무나도 조심스레 둘러보시는 모습에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차분하고 잔잔한 녹음이 짙어지는 정원입니다.
곳곳에 소담했음을 상상할 수 있는 불두화가 여름으로 계절을 가르듯 스러지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샤스타데이지꽃이 사찰 외곽을 하얗게 덮고 있습니다.
잡초 하나 없이 꽃으로만 보이는 정원을 가꾸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즐겨 봅니다...
지금은 햐안 샤스타데이지꽃 위주에 곳곳에 인동덩굴, 장미꽃이 색을 보태고, 노란 금계국이 세를 넓히고 있습니다.
염려했던 50% 강수확률은 맑음으로 마음을 확~ 틀어 버려 파란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뜬 멋진 배경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자유로이 한적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회원님을 곳곳에서 만납니다~
분홍바늘꽃이라 합니다.
함박꽃도 꽃봉오리를 열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탱탱하다는 느낌이 적더군요....
장미꽃과 잘 어울리던 창고(?)
도깨비부채.
당귀꽃
만병초꽃
제비동자꽃.
고산 습지에 자라며, 자생지가 10곳 미만으로 개체수도 많지 않은 귀한 야생화네요.
분홍터리풀
터리풀 뭉치를 가까이 당겨 하나씩 살피니 참 단정하고 예쁩니다.
분홍 초롱꽃도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인동덩굴 색도 곱습니다.
풀섶을 자세히 살피니 꽃 개체수는 적지만 정말 다양한 야생화들이 보입니다.
이곳에 200여종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고 하더니 정말 계절 관계없이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조용히 수행하시는데 방해가 될듯하여 잠깐 경내를 돌아보고 나옵니다.
지금부터는 운탄고도 3코스 일부 걷기입니다.
걷기 행렬이 미처 갖추어지기도 전에 산딸기에 꼿히셨네요~^^
재작년 이맘 때 이곳을 걸으며 지천으로 핀 줄딸기가 그리워, 이번 여행 일자도 산딸기 익는 계절에 맞춘 컨셉입니다.
요즘 날씨가 하도 들쭉날쭉해 이미 떨어지거나 안익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철에 맞추었네요. ~~^^
어디선가 진한 고급진 향기가 풍긴다 했더니 찔레꽃 한 그루에 아직 꽃이 남아 있어 주변에 짙게 퍼졌습니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딸기에, 꽃에 정신 팔려 이제사 굽이진 이쁜 길이 눈에 들어오네요.ㅎ~
언제도 걸어도 이쁘고 좋은 운탄고도 하일라이트 코스입니다.
운탄고도는 영월에서 시작해 정선, 태백, 삼척까지 고원지대의 석탄을 캐서 운반하던 폐광지역을 아우러 걷는 9개 코스로 조성된 장거리 길입니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도로는 자연으로 돌아가 지금은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 이라는 뜻의 걷기 좋고, 분위기 좋은 숲길로 바뀌었습니다.
길 양쪽으로는 짙은 보랏빛 꿀풀, 샛빨간 뱀딸기가 길을 장식합니다.
산책하듯 얘기 나누며 부담없이 걷기 좋은 길입니다.
임도가 지루하다고 하지만 저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굽이지는 유려한 곡선에 끌리고, 발길에 걸릴 것 없는 편한 걸음걸이가 좋습니다.
회원님들이 따 주신 딸기.
아주 이쁘게 잘 익었습니다. 정말 많이 따 먹었네요 ^^
쉬어가는 이쁜 코너길~
한편에서는 산딸기 따기~~^^
母女의 아름다운 동행....
두 분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 모습을 뒤에서 따라가며 참 아름다운 동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숲에 빛이 들기만 해도 자연스레 그림이 되는 연두빛 신록이 남아 있습니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설명드렸던 석탄 지질층.
저 부분을 가릴려고 어떤 수종을 심어도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그대로 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
대부분 숲이 터널을 이룬 길이지만, 두어번 공간이 열리면 멀리까지 산그리메가 이어집니다.
여기 모퉁이를 돌아가는 트레커 모습을 담는 것을 좋아하는 곳인데, 오늘은 딸기 따는 여인들이 아름다운 시즌입니다 ^^
말끔한 소나무가 쭉쭉 뻗은 품격이 느껴지는 구간도 지납니다.
온통 푸르름에 변화를 주는 엉겅퀴꽃도 모셔 봅니다~
우리는 MTB 코스로~~
에고, 알바를 살짝하신 분들도 계시네요 ^^;;
운탄고도,,,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린 길이라는데....
오늘은 파란풀이 잔디처럼 깔린 연두의 길입니다.
대부분 솔가리나 낙엽이 이렇게 쌓인 푹신한 길이였는데, 비에 씻겨 내려가 골이 파인 부분도 가끔 보이더군요.
노루오줌꽃.
탄광갱도를 다녀오기로 합니다.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길의 이름이 '광부의 길'입니다.
트레이드 마크 같은 광부상.
전망대로 올라서면 철분이 많아 물줄기 주변이 노랗게 물든 황금폭포가 보입니다.
방금 다녀온 갱도에서 흘러나온 물을 주민들이 저곳으로 떨어지도록 만든 폭포라 합니다.
탁트인 주변 풍광도 시원스럽습니다.
yooni님 일행 ^^
탄광 흔적이 남은 '동발 제작소'
동발은 광산이나 탄광, 토목 공사를 위하여 땅속에 뚫어 놓은 길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을 말합니다.
우리는 운탄고도 3코스 중 일부인 6km만 하일라이트로 걷고 있습니다.
오늘 걷기의 종점인 모운동벽화마을 도착.
모운동은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해발 700m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아침이면 안개가 자욱하고 비 오는 날이면 구름 사이로 언뜻 비치는 마을 풍경이 신비롭기해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폐광 전 한때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황폐해져 주민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건물 마다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담장 없는 정원 마당에 자연스레 피어나는 꽃들이 아름답습니다.
목향장미 열매도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여기 풀섶에도 줄딸기가 한창입니다.
양지 바른 곳이여서 오늘 따먹은 딸기 중에 제일 맛나게 익었네요 ~^^
마을 중간에 '운탄고도 마을호텔'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2022년 엄홍길, 정보석, 이장우님이 자오는 마을호텔을 촬영했던 세트장인데 주민 요청으로 그대로 두었다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이 열려있고 뭔가 활기찬 느낌이였는데 지금은 관리되지 않는 듯 썰렁합니다...
점심은 엄마가 차려주는 듯한 느낌의 소박한 시골 밥상.
금방 만들어내는 반찬맛이 소박하지만 감칠맛을 담고 있어 반찬 마다 싹싹 비우셨네요 ^^
오전 걷기를 마치고 오후에는 비운의 왕 단종의 영월 행적을 따라 충신 김흥도의묘까지 시간순으로 짚어보는 일명 '충절여행'입니다.
이런저런 여행 때마다 단종 행적지를 한 두 곳씩 들려보았지만, 이번에는 단종의 행적대로 청령포~관풍헌/자규루~장릉~엄흥도묘를 들려 집중도 있는 역사 이야기 여행을 해 보려 합니다.
단종의 영월로 유배오며 처음으로 묵었던 청령포를 오랜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조선 6대와 단종은 원손, 왕세손, 세자에 책봉된 후 1452년 12살에 왕위에 오른 조선왕조 27대 왕 중에서 적자의 맥을 잇는 가장 정통성 군주였으나, 1455년(15세)에 세조에 의해 왕위를 찬탈 당하고, 1457년(17세) 영월로 유배되어 그 해 관풍헌에서 10월에 승하했습니다.
단종이 영월에 머문 기간은 5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영월 하면 단종의 유배지가 먼저 떠오를 만큼 단종의 역사를 담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입장료 겸 승선료를 내고 청령포를 들어갑니다.
2~3분은 탔을까요? 여전히 징검다리나 다리를 놓지 않는 이유가 있겠지요?~~
단종이 살던 '단종 어소'
1996년 홍수로 떠내려갔는데, 졸속으로 복원해서 웬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있습니다.
옆에는 단종을 따라 온 궁녀들이 생활한 행랑채가 있습니다.
단종어소를 둘러싼 소나무숲이 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은 단종어소를 향해 누운 소나무가 있습니다.
단종에게 절을 하는 모습과 같아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던 엄흥도의 이름을 따 엄흥도 소나무라고 부른니다.
또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젖었다고 하는 노산대, 단묘유지비, 금표비 등도 있습니다.
단종어가 뒤쪽 숲 가운데에는 한국에서 가장 높이가 높다고 알려진 영월청령포 관음송 (천연기념물 제349호)이 있습니다.
600살이 넘은 노거수로,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때문에 단종의 슬픔을 보고 들었다는 뜻의 관음송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랑 '천상 재회'
단종의 정비인 정순왕후는 1454년(단종 14세)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가 되었고, 단종이 승하 후 종로구 숭인동에 초암을 짓고 살았으며, 동망봉에 올라 단종을 그리워하며 생을 살다 81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영월 군민들은 단종과 정순왕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천상재회를 통해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이루고 영원한 영면에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이 동상을 세웠다합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관풍헌.
관풍헌은 글자 그대로 '바람을 본다'라는 의미로, 여기서 '바람'은 자연의 바람 뿐만아니라 백성의 삶과 마음, 즉 민심을 상징한다합니다.
본래 조선시대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입니다.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던 단종은 그해 여름 큰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길 것을 우려해 처소를 이곳 관풍헌으로 옮기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 곳입니다.
관풍헌 마당 한편의 자규루입니다.
원래 매죽루라 불리던 누각인데 단종이 이곳에 올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읊은 시 한 편이 누각의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합니다.
▽단종이 읊었다는 자규시를 올립니다.
읽노라면 가슴이 짠~합니다.
| 자규시(子規時) 단종(이홍위) 一自冤禽出帝宮(일자원금출제궁) 원통한 새(자규) 한 마리 궁에서 쫓겨나 孤身隻影碧山中(고신척영벽산중) 외로운 몸으로 푸른 산속에 갇혔구나 假眠夜夜眠無假(가면야야면무가)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을 이룰 수 없고 窮恨年年恨不窮(궁한연연한불궁) 해가 갈수록 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성단요금잔월백) 자규 울음 끊긴 새벽 달빛만 저리 흰데 血流春谷洛花紅(혈류춘곡낙화홍) 피를 뿌린 듯 봄 골짜기에는 붉은 꽃이 지네 天聲尙未聞哀訴(천롱상미문애소) 하늘은 귀머거린가 아직도 나의 애끓는 호소를 듣지 못하고 胡乃愁人耳獨聰(하내수인이독총) 어이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 귀만 밝게 했는가 |
👉이 시에서 ‘자규(두견새)’는 곧 단종 자신입니다.
왕위에서 쫓겨난 억울함, 외로운 유배 생활, 끝없는 한(恨)과 슬픔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절망, 특히 “피 울음(血流)” 표현은 두견새 전설과 자신의 처지를 비유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합니다.
장릉은 영월군 영흥리에 위치한 조선 제6대 국왕 단종의 능입니다.
이전에는 노산군묘(墓)로 불려왔다가 1681년(숙종7년) 단종이 추존 및 복권됨에 따라 노산군묘에서 장릉(莊陵)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단종의 장릉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남한 내 40기의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수도권이 아닌 곳에 있는 능입니다.
이는 아래의 복잡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숙부인 세종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단종이 숙부 금성대군이 벌인 순흥에서의 마지막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결국 영월에서 죽게 되었고, 시신이 영월 동강에 버려지면서 지역 호장(戶長)인 엄흥도가 동강에서 그의 시신을 운구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暗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서슬퍼런 세조의 눈을 피해 암장했던 만큼 단종의 무덤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후 1541년 중종 때, 노산군의 무덤을 찾으라는 명을 받고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 없어 난감해하던 차에 영월군수 박충원이 발견하여 묘소를 정비하게 되었고, 주변에 비석들이 세워지기는 했으나 이 당시까지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상태여서 묘(墓)라는 칭호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다 1698년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킴에 따라 무덤도 능으로 격상되고 장릉(莊陵)이라는 능호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모셨던 엄흥도에게는 공조판서가 추증되었습니다.
다음 마지막 일정으로 들린 충신 엄흥도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리라."
서슬 퍼런 어명 앞에서도 어린 임금을 향한 의리를 지켰던 인물, 호장 엄흥도.
그의 묘소와 숭고한 정신이 깃든 영월의 현장을 찾아와 봅니다.
단종이 죽고 동네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밤중에 몰래 아들들을 데리고 가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급하게 일어난 일인데다가 날씨조차도 눈보라가 쳐서 맨 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산속에 앉아있던 노루 한 마리가 일행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는데 노루가 앉았던 그 자리에는 눈이 녹아서 맨 땅이 드러나 있었고, 이를 보고 엄흥도 일행은 천우신조라 여겨 그곳에 단종의 시신을 매장한 후, 식솔을 거느리고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후에 단종이 정식으로 복권되어 왕릉을 이장하기 위해 지관을 조정에서 내려보냈는데 그들이 살펴보니 단종이 묻힌 그 자리가 이미 천하의 명당이었기에 이장하지 않고 묘제만 고쳤다합니다.
엄흥도는 장사를 치른 후,아들을 데리고 숨어 살았습니다.
현종 때 송시열의 건의로 그의 자손이 등용되었고, 영조 때 그의 충성심을 기념하는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공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입니다.
엄흥도의 묘는 영월읍에 후손들이 잘 단장해 놓아 아름답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묘역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이 이 고요한 숲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 걷기와 함께 여러 곳을 방문하는 일정을 마치고 귀경길에 오릅니다.
염려되었던 비는 오지 않아 일정 진행이 순조로웠고, 귀경길에는 아름다운 석양 마저 함께 합니다.
아름다움을 보았고, 충신의 마음을 만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