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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삶

떡두꺼비, 떡갈비, 떡잎, 마땅하다

작성자또생또|작성시간08.08.13|조회수155 목록 댓글 2

떡두꺼비/떡갈비/떡잎, 마땅하다


* 출전 : 김슬옹(2004). 맥스웰향기(동서식품 사외보) 101호(2004년 3,4월호 합본호) 46쪽.


김슬옹 


웬 떡인가. 요즘 젊은 부부들은 ‘떡두꺼비 아들’에 대한 집착도 미련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유난히도 그런 아들을 바랬고 그런 아들을 못 낳으면 그 책임을 여성들에게 옴팡지게 뒤집어 씌웠다. 지금의 인권이나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천인공노할 만행. 물론 농경사회에 필요한 일꾼으로 보나 벼슬살이를 할 일꾼으로 보면 아들이 절실한 법. 아들을 원하는 사람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아들을 필요로 하는 사회 시스템이 그런 다소 잔혹한 욕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떡두꺼비’ 아들인가. 일단 두꺼비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개구리보다 듬직해 좋고. 해충을 잡아먹어 좋고. 콩쥐의 어려운 처지를 이겨내도록 도와주어 좋고. 헌집을 주면 새집을 줄 수 있어 좋았다.

문제는 ‘떡-’이다. 첫째는 ‘떡’에는 “어깨가 떡 벌어졌다.”와 같이 “훨쩍 벌어진 꼴”의 뜻이 있다. 두꺼비의 그 넓적한 등판을 보면 능히 이런 ‘떡’의 의미를 연상할 수 있다. 둘째는 실제 먹는 ‘떡’일 수도 있다. 차진 떡처럼 뭔가 끈기가 있고 그래서 아주 오래 살 것 같은 두꺼비와 아들. 더군다나 떡방아나 떡쇠처럼 ‘떡-’은 성적인 이미지로도 제격이다. ‘떡’의 연상적 의미는 바로 찰떡궁합으로 상징되는 멋진 남녀의 결합이다. 떡두꺼비 아들은 바로 좋은 날 건강한 남녀의 찰떡궁합이 있어야 가능했던 것이다. 두꺼비의 옴팡진 교미 장면이 다산과 건강한 출산의 기본 요건인 건강한 남녀 결합의 좋은 상징이고 보면 이런 의미 연상이 지나친 공상이 아닐 것이다. 이런 두 번째 설로 보면 ‘떡두꺼비’라는 말은 아들 낳기까지의 과정과 결과가 응축된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설이 더 정확할까. 내 의견은 어느 것이 정확한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견해도 두 번째 견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부연해 설명하자면, “어깨가 떡 벌어졌다”의 ‘떡’이 떡방아로 떡을 세차게 내리쳤을 때 벌어지는 떡의 모습에서 나왔을 터이기 때문이다. 또한 “찰떡처럼 떡 들러붙었다.”의 ‘떡’도 떡방아와 떡의 운명적인 만남을 의미하지 않는가. 이제 남녀평등 세상이 왔으니 전형적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화신 ‘떡두꺼비’라는 말을 없애야 할 것인가. 없애는 것이 쉽지 않고 아쉬운 점도 있다면 “떡두꺼비 딸”은 어떤가.

한편, ‘떡-’이 들어가는 다른 단어들도 살펴보자. ‘떡갈비’는 전라남도 담양․해남․장흥․강진 등지에서 시작된 요리라고 한다. 만드는 방법이 인절미 치듯이 쳐서 만들었다고 하여 떡갈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살을 발라낸 갈비뼈에 밀가루를 조금 바른 뒤, 갈빗살을 다져서 양념하여 이 갈비뼈에 도톰하게 붙여 만들거나 아니면 양념한 갈빗살을 갈비뼈에 붙이지 않고 그대로 떡 빚듯이 네모나게 빚어서 굽기도 한다. 그러니까 갈비뼈에 붙이는 과정이나 모양새가 떡모양이나 떡 만드는 방법을 연상시켜 붙은 말이다. 병산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떡산적’은 “흰떡을 짧게 자르고 쇠고기와 함께 갖은 양념을 하여 꼬챙이에 꿰어서 구운 산적(쇠고기 따위를 길쭉길쭉하게 썰어 갖은 양념을 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구운 음식)”을 말한다.

이외에도 다른 의미의 ‘떡-’도 있다. ‘떡잎’의 ‘떡-’은 아주 작다는 뜻이니 먹는 떡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떡-붕어는 손바닥 만 한 붕어를 말한다. ‘떡-쇠’는 사람 이름으로도 쓰였지만 “아주 무른 쇠란 뜻으로, ‘탄소강(탄소 함유량이 2%이하인 강철)’을 달리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마땅하다


잘 어울린다는 뜻의 ‘마땅하다’는 순우리말처럼 생각되지만 어원으로 보면 순우리말과 한자어가 결합된 말이다. ‘맞다’의 어간 ‘맞’에 ‘적당할 당(當)’자가 붙어 된 말이다. 그동안 국어순화 논의에서 많이 등장해온 ‘초가집’, ‘육교다리’, ‘역전앞’ ‘무궁화꽃, 바람벽, 모래사장, 늙은 노인, 젊은 청년, 면도칼, 고목나무, 새신랑, 큰 대문’ 등과 같은 말도 넓게 보면 ‘마땅하다’와 같은 부류의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굳건(-建하)다, 튼실(-實하)다,  익숙하다'등도 같은 짜임새의 말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혼종어들은 순화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인 셈이다.

나는 그동안 ‘지슬(知慧+슬기롭다)’처럼 한자어와 순우리말을 합쳐서 이름 짓는 방식을 활성화시키자는 주장을 해왔다.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특색을 살려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박쥐’와 같은 제 3의 영역도 있어야 다양한 언어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땅하다’가 소중한 우리 삶의 말이 된 것은 바로 혼종과 교배의 자연 법칙에 따른 것이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제3의 인간이다. 어느 날 서로 다른 인간이 만나 찰떡궁합의 황홀한 밤을 지내고 제 3의 인간, 아들딸들이 태어나는 것 아닌가. 엄격히 말하면 “그 애비에 그 아들”은 없다. 두꺼비가 수놈만 있는 것은 아니니 ‘떡두꺼비’라는 말을 딸에게도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 굳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낙인을 찍어 ‘떡두꺼비’라는 말을 없애야 할 것인가. 그보다는 새롭게 사용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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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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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또ㅎ또 | 작성시간 08.08.13 말이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답댓글 작성자동화사랑 | 작성시간 08.08.13 저도 같은 맘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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