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 음소 설정의 원리 _ 김슬옹_2010.11.1
음운은 말의 뜻을 구별하여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그러니까 자신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단어의 뜻을 구별하는데 도움을 주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존재다. 약방의 감초. 감초는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감초가 빠진 약재는 약재 구실을 못한다. 어찌 보면 비행기의 나사와 같은 존재다.
이러한 음운은 자음과 모음으로 분절되는 분절 음운이 있고 자음과 모음으로 쪼갤 수 없는 비분절 음운이 있다. 분절 음운을 음소라 부르고 비분절 음운을 운소라 불러 음운을 음소와 운소의 결합으로 보기도 한다.
소리의 세기, 길이, 높이, 음색, 억양 등 다양한 반언어(半-, semi-verbal language) 가운데 높이(고저)는 중세 국어에서 길이(장단)는 현대 국어에서 비분절 음운 구실을 한다. ‘밤’을 짧게 발음하면 밤 시간이 되지만, 길게 발음하면 먹는 밤이 되어 뜻이 달라진다. 문제는 이러한 비분절 음소는 특정 단어와 결합되었을 때만 제 구실을 한다. 날아다니는 ‘나비’를 누군가가 첫음절을 길게 [나:비]로 하건 아주 짧게 [나비]로 발음하건 서로 다른 나비로 알아차리지 않고 똑같은 나비로 여긴다. 그러니까 ‘나비’에서 사람마다 다른 소리의 장단이나 고저는 반언어 구실을 할지언정 비분절 음운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음운 구실을 못하는 반언어를 무시하지는 말아라. “사랑해요.”에서 ‘사랑’을 짧게 발음했다가 뜻을 못 이룬 선남선녀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분절 음운, 곧 음소를 어떻게 설정해 내느냐가 문제다. 분절된 음운이므로 당연히 자음 음소와 모음 음소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문제다. 사전 풀이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같은 음이라고 생각하는 추상적 소리로, ‘님’과 ‘남’이 다른 뜻의 말이 되게 하는 ‘ㅣ’와 ‘ㅏ’, ‘물’과 ‘불’이 다른 뜻의 말이 되게 하는 ‘ㅁ’과 ‘ㅂ’ 따위를 이른다. 음운은 사람들의 관념에 따라 그 수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ㄹ’을 영어에서는 ‘l’과 ‘r’의 두 개의 음운으로 인식한다. _표준국어대사전
사람들이 같은 음이라고 생각하는 추상적 소리가 음소라고 했다. 이 때 ‘사람들’은 같은 모국어 화자를 가리킨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나비’를 크게 소리 내건 작게 소리 내건, ‘나비’의 ‘ㅂ’을 강하게 내건 부드럽게 내건 같은 나비로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음성 차원이 아니라 음소 차원에서 사람마다 때에 따라 달리 나는 음소가 있다. 그러니까 ‘나비’에서 ‘ㅂ’을 어떤 사람은 안울림 입술소리인 파찰음 /b/로 내는 사람도 있고, 옹달샘처럼 ‘ㅂ’을 안울림 입술소리인 마찰음 //로 좀 더 부드럽게 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옹달샘도 바쁠 때는 안울림 입술소리인 파찰음으로 낼 때도 있다. 이렇게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살짝 달리 나는 음소를 변이음이라 한다. 특히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다르게 나는 이러한 변이음을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선택된다 하여 ‘수의 변이음’ 또는 ‘자유 변이음’이라 한다. 이러한 자유 변이음 곧 /b/와 //는 당연히 별개의 음소로 볼 필요가 없다. 의미 변별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규칙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표 음소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좀 더 일반적으로 실현되는 음소를 택하면 된다. 그래서 /b/ 를 대표 음소로 정하는 <규칙1>이 성립한다.
<규칙 1> 수의적 변이음(자유변이음)은 별개의 음소로 보지 않는다.
예) 나비〔nabi〕: 나비〔naℬi〕→ /b/
이제는 무엇을 다른 음소로 볼 것인가가 문제다. 당연히 뜻의 차이를 가져오는데 이바지하는 음소를 설정하면 된다. 그것은 자음과 모음 차이로 인해 뜻 차이를 가져오는 단어를 찾으면 된다. 그렇다고 뜻차이를 가져온다고 해서 ‘분류’와 ‘구분’과 같이 아무 단어나 가져다가 검증할 수는 없다. 자모음 음소 하나하나를 걸러낼 수 있는, 곧 설정해 낼 수 있는 단어의 쌍을 찾아야 한다. 위 사전 예에서 보면 '님‘과 ’남‘, ’물‘과 ’불‘이 그런 예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음소 검증을 위한, 최소의 음소를 설정할 수 있는 어휘 쌍을 ’최소 변별쌍‘이라 부른다. 이렇게 해서 제 2 규칙이 성립한다.
<규칙 2> 최소변별쌍에서 뜻차이를 가져오는 음소는 별개의 음소로 본다.
예) 남〔nam〕:담〔dam〕:삼〔sam〕→/n/, /t/, /s/ : 세 개의 서로 다른 자음 음소 추출
오이[oi] : 아이[ai] →/o/, /a/ :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음 음소 추출
요리[jori]: 오리[ori] →/jo/, /o/ :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음 음소 추출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자유 변이음처럼 자유롭게, 불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변이음이 아니라 매우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변이음을 별개의 음소로 볼 것인가 같은 음소로 볼 것인가가 문제다. 이를테면 ‘바보 [pabo]’에서와 같이 ‘ㅂ’은 한 단어에서 첫소리에서는 안울림 입술소리이면서 파열음인 /p/로 나지만 울림 소리 사이에서는 울림 입술소리이면서 파열음인 /b/로 난다. 이러한 변이음은 서로의 고유 자리를 지키면서(서로를 밀어내는 배타성) 늘 같은 가족으로(상보성) 기능한다. 그래서 상보적 변이음 또는 조건에 따라 규칙적으로 바뀌는 변이음이라 하여 조건 변이음이라 부른다.
이러한 상보적 변이음을 별개 음소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음소를 정하는 대원칙을 생각하면 금방 판단이 된다. 이러한 상보적 변이음은 의미 변별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뿐더러 모국어 화자들에게는 같은 소리로 인식된다. 따라서 별개의 음소로 볼 필요가 없고 더 일반적인 음소를 대표 음소로 설정하면 된다. 이렇게 하여 제 3 규칙이 성립한다.
<규칙 3> : 상보적 변이음(조건 변이음)은 별개의 음소로 보지 않는다.
예) 보리〔pori〕:가보〔kabo〕→ /p/
이러한 상보적 변이음은 모국어 화자에게는 같은 소리로 인식되지만 다른 말을 사용하는 화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음소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사람들에게 /p/와 /b/는 당연히 다른 음소다.(pull, bull)
이러한 제 3 규칙에는 보완 규칙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상보적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음소로 설정되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어의 이응 받침/ŋ/과 히읗/h/은 상보적 관계에 놓여 있다. 이응은 반드시 끝소리에서만, 히읗은 첫소리에서만 난다. 이러한 상보적 관계와 ‘바보’에서의 비읍의 상보적 관계 차이는 음성적 유사성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보완된 제 3 규칙이 필요하다.
<규칙 3 보완> : 상보적 변이음은 음성적 유사성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상보성을 가진 음소 가운데 별 개의 음소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교사[kjosa〕:고사〔kosa〕’에서 /j/와 /o/는 상보적이다. /oj/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이 만날 필요가 있을 때는 /jo/와 같이 늘 붙어 다닌다. 그러면서 /o/는 혼자서도 잘 논다. 혼자 놀 때와 같이 놀 때에 따라 의미도 달라지므로 당연히 다른 음소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반모음도 음소로 설정된다.
<규칙 4> 상보성을 가진 두 음성이라도 만일 이들이 해당 언어에서 나란히 이웃하여 나타나고, 이들 중 어느 하나가 고립된 위치에 올수 있으면 이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음소가 된다.
예) 교사〔kjosa〕:고사〔kosa〕→ /j/, /o/
참고문헌
김혜숙·변정민(2007). 모도리가 떠나는 국어학과 국어교육 여행. 월인.
허웅(1985). 국어 음운학-우리말 소리의 오늘·어제-. 샘문화사.
이문규(2004). 국어교육을 위한 현대 국어음운론. 한국문화사.
이진호(2005). 국어 음운론 강의. 삼경문화사.
강옥미(2003). 한국어 음운론. 태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