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82] "우리가 몰랐던 이중섭의 문장들"
청주방송 2026. 3. 19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이중섭이라는 이름은 참 익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오래전에 다 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황소를 떠올리고, 거친 선과 강한 눈빛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요. 그런데 '쓰다, 이중섭'은 조금 다른 자리에서 그를 만나게 합니다. 그림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을 ‘읽게’ 만듭니다. 편지와 엽서, 그리고 마음으로 써 내려간 흔적들이 전시장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도 보이고,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랑도 읽힙니다. 익숙한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더 인간적인 이중섭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한 화가의 작품을 보는 시간이면서,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이중섭 탄생 110주년 특별전 쓰다, 이중섭'을 기획한 이승민 아트조선스페이스 학예연구사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데요. 왜 ‘보다’가 아니라 ‘쓰다, 이중섭’이었을까요?
아들 태현, 태성에게 보낸 편지, 1953, 종이에 펜, 채색, 26.4×20.2cm, 개인 소장
이중섭의 예술 세계가 단순히 ‘보는’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쓰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 ‘쓰는’ 행위의 정점에는 가족과 아내에게 보내는 절절한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편지화와 엽서화가 있습니다. 전시는 격변의 시대 속 극한의 고독 속에서도, 그가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어떻게 치열하게 ‘써 내려가며’ 삶을 지탱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결국 이번 전시는 예술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이중섭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 이중섭은 많은 분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작가인데요. 그럼에도 지금 다시 이중섭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중섭은 이미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작가이지만, 그의 삶과 예술은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겪는 외로움과 단절,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은 이중섭이 편지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써 내려간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혼란과 고독 속에서도 예술의 가치와 인간적인 사랑의 의미를 붙들고자 했던 그의 기록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위로와 공감을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은지화 ‘가족 1’, ‘가족 2’도 궁금한데요. 이 두 작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가족 2, 연도미상, 은지에 새김, 8×14cm, 개인 소장
은지화는 이중섭이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절실했던 시기에 주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가족 1’, ‘가족 2’는 그가 물리적으로는 가족과 떨어져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깊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두 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걸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중섭 예술 세계의 핵심 주제인 ‘가족애’를 은박지라는 독특하고도 서글픈 재료 위에 깊이 있게 구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처음 가시는 분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보면 좋을지 고민되실 텐데요. 관람 팁 하나를 주신다면요?
가장 추천드리고 싶은 관람 방식은 ‘읽는 관람’입니다. 엽서화와 편지화 섹션에서는 작품을 단순히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글을 찬찬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중섭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남긴 애틋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그림에 담아낸 정서와 진심을 훨씬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아울러 1950년대부터 조선일보에 실렸던 이중섭 관련 기사들을 모아놓은 아카이브 섹션도 꼭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동시대 사람들이 이중섭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접할 수 있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귀한 자료들입니다.
■ 유화 섹션의 ‘환희’도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이 작품에서는 무엇을 먼저 보면 좋을까요?
환희, 1955, 종이에 유채, 29.5×41cm, 이중섭미술관 소장
가장 먼저 주목해주셨으면 하는 건 역동적인 붓 터치와 강렬한 색채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입니다. 이 작품은 이중섭이 지닌 순수한 열정과 생명력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재회를 향한 염원, 혹은 예술적 영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긍정적인 감정이 담긴 작품으로도 읽히는데요.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붓놀림 속에서, 고독한 삶 속에서도 끝내 잃지 않았던 그의 예술가적 환희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준비하시면서 ‘이중섭을 다시 보게 됐다’고 느끼신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나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주실까요?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시기에 쓴 편지화들을 마주했을 때였습니다. 단순히 그리움을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아내와 두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애정을 너무도 솔직하고 때로는 해학적으로 써 내려간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애틋함과 그리움이 귀엽고도 사랑스럽게 담겨 있는데요. 그 편지들을 보고 있으면, 고독한 예술가 이중섭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가장 진솔한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특정 작품 한 점보다는, 전시에 소개된 모든 편지화들이야말로 이중섭이 삶을 어떻게 써 내려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시를 아직 만나지 못한 아트홀릭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족 1, 연도미상, 은지에 새김, 10×14cm, 개인 소장
"쓰고, 그리고, 그리워했던 이중섭의 모든 것을 만나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이 남긴 치열한 기록을 따라가며, 그의 내면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여정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또 예술가로서 그가 써 내려간 사랑과 희망, 그리고 고독의 기록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위로와 감동을 건넵니다. 전시를 통해 이중섭의 진정한 의미와 울림을 마음에 담아가시길 바랍니다. (사진 제공: 아트조선스페이스)
■ 이중섭 탄생 110주년 특별전 '쓰다, 이중섭'
- 장소: 아트조선스페이스
- 전시 기간: ~ 2026년 6월 14일
- 관람 시간: 화요일~일요일(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