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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북부 권역

[양주]권율장군 묘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07.09.30|조회수480 목록 댓글 0

권율장군 묘(경기 기념물 2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그 동안 많은 묘역을 다녀 왔음에도 권율장군 묘는 몇 번 가려고 벼르다가도 못 갔던 곳으로 아예 나홀로의 9차 능원묘 답사 일정에 포함을 시켰습니다. 능원묘 길눈이 합니다만, 저도 안가 본 곳을 가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수도권에서 미답사한 묘지는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가 아주 어려운 곳만 남아서 이제는 승용차로만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대중 교통편 소개를 못할 겁니다.

▲ 도로변에 위치한 신도비각

▲ 후대에 새로 조성한 신도비로 추측됨.

권율장군 묘는 장흥 유원지 도로변에 있었습니다. 주변을 보니 10수년 전에 이 곳으로 많이 다녔던 곳이더군요. 그런데 묘지 답사 다니면서 묘역에 들어간다고 주차료와 입장료를 내 보기는 처음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원처럼 상당히 넓습니다.

▲ 입구에서 바라 본 묘역 원경과 묘역으로 오르는 계단 전경

도로변 방향으로 세워진 비각 안에는 신도비가 있으며, 묘역으로 오르는 길목에도 신도비가 서 있습니다. 비각 안에 있는 신도비는 다른 신도비와 크키니 모양 등 특별히 다를 바가 없으나 묘역 입구 방향에 있는 신도비는 재질과 모양이 조금 특이합니다. 비문에 11세손 어쩌구 저쩌구 써 있는 것을 보면 후대에 세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도비 있는 곳에서도 묘역이 잘 보입니다. 묘역 우측의 계단을 오르면 맨 아래에 위치한 묘역이 권율장군의 묘역입니다. 봉분은 3기가 나란히 있어서 두 분의 부인과 함께 묻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권율장군 묘역 및 석물 전경

묘역 좌우로는 문인석과 봉분 가까이에 망주석이 좌우로 세워져 있으며, 가운데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그리고 향로석이 있습니다. 또한, 향로석 좌우로도 동자석 한 쌍이 서 있습니다.

▲ 권율장군 묘의 전경과 후경

권율장군의 부인 중에서 전부인이 창녕 조씨이고, 후부인이 죽산 박씨입니다. 중앙에 있는 봉분이 권율장군 묘이고, 좌측이 전부인, 우측이 후부인의 봉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묘역 뒤에서 볼때)

▲ 중간에 위치한 묘역의 전경과 후경

권율 장군의 묘역 바로 뒤에 있는 묘는 단분의 합장묘로 묘비에는 권향(權向)의 묘라고 쓰인 것 같은데, 권율의 아버지는 권철이어서 부모의 묘는 아닌 것 같습니다.

▲ 맨 위에 위치한 묘와 문인석의 모습

맨 위에 위치한 묘역은 쌍분으로 봉분에 사각의 호석을 두른 것을 보면 조선 초기의 무덤 형태로 권율장군의 몇 대 위의 선조 묘 같습니다. 다만 이 묘역에서 특히한 점은 문인석의 머리에 쓴 모자 부분입니다. 무슨 학자의 모자 같기도 합니다. 이런 문인석은 처음봅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 보니 이런 내용이 있네요...

 

"권율이 과거시험에 임한건 그의 나이 무려 마흔여섯살때의 일입니다 보통 사대부의 자제들이 스무살을 전후로 해서 응과하는 당시의 세태에 비추어볼때 권율의 출사는 상당히 늦은 셈이지요. 사실 권율은 그때까지 소위 장안의 한량으로 지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영의정인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과거에는 별 뜻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전국을 유람하면서 파락호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지요. 이러다보니 자연 부모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권율은 과거에 응하지 않고 관직에 나갈수 있는 음서까지도 마다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나이 마흔두살때인 1578년 마침내 아버지 권철이 위독하게 됩니다 권철의 나이가 이때에 일흔두살 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매우 고령인 셈이었습니다 한량처럼 지내는 아들 권율이 들어오자 권철은 한동안 아들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널 내가 낳았구나" 그리곤 이내 운명 했다고 합니다.

 

이때에 권율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아버지의 3년상을 치르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금강산에 들어가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공부하기를 2년, 마침내 1582년 마흔여섯살의 나이로 등과하게 됩니다. 이당시 동문수학하던 윤근수가 종2품 반열의 참판직에 있었고 사위인 이항복도 정5품 반열의 정랑직에 있었으니 권율의 출사가 얼마만큼 늦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수가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명장인 만취당(晩翠堂) 권율(權慄, 1537∼1599) 장군의 묘소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중종 31년(1537) 강화군 영동에서 철(轍)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선조 15년(1582)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55세 때에는 의주목사로 부임하여 북방 여진족을 방어하였다. 임진왜란(1592∼1598) 중에는 전주에서 군사 만 여명을 지휘하여 독산성에 진을 치고 적이 서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또한 선조 26년(1593)에는 서울을 회복하고자 행주산성으로 진을 옮겨 군·관·민이 힘을 합하여 3만의 왜군을 물리쳤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진주대첩,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이다.
장군이 선조 32년(1599)에 62세로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그의 관직을 영의정으로 높였으며, 선조 37년(1604)에는 선무공신 1등에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으로 모셔졌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前)부인 창녕 조씨와 후(後)부인 죽산 박씨가 안장되어 있다. 묘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동자석 1쌍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을 세웠다. 묘역의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마모되어 철종 12년(1861)에 장군의 후손들이 새로 세운 것이다.

권율 장군과 관련된 다른 곳에 있는 문화재는...

▲ 사당과 이치대첩비 비각 전경

이치대첩비 비각

▲ 사당(문화재청 사진 3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5호인 권율장군 이치대첩비(權慄奬軍 梨峙大捷碑) -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산83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승리로 이끈 이치대첩을 기념하고 있는 비이다. 이치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와 충청도 일대를 휩쓸고 승승장구하던 2만여 병력의 왜적이 호남으로 나아가 군량미를 얻고자 이곳을 넘으려 하였다.

 

이 때 먼저 길목을 지키고 있던 권율 장군이 1,500여 군사를 이끌고 결사전을 벌인 끝에 적을 섬멸하여 그들의 호남진출을 막아 내었다. 이 대첩은 행주대첩, 진주대첩보다 앞서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지에서 승리한 싸움이다. 고종 3년(1866) 도원수 권공이 비와 함께 사당을 세웠으나, 1944년 일제에 의해 폭파되어, 1963년 이 대첩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손과 지역 유지들이 지금 장소에 다시 건립하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74호 행주대첩비<구비>(幸州大捷碑<舊碑>)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1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1537∼1599) 장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장군의 부하들이 세운 비이다. 현재 2기가 전하는데 하나는 처음 세워진 구비(舊碑 :옛 비)이고, 다른 하나는 옛 비의 상태가 좋지 못하여 새로 세운 중건비이다.

행주대첩은 조선 선조 26년(1593) 권율장군이 서울을 되찾기 위해 군사 2,300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진을 친 후 일본군 3만여명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여 마침내 승리로 이끈 대첩,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이다.

덕양산 정상에 있는 구비는 받침돌이 땅에 묻히고, 비몸이 어깨부분에서 밑부분까지 금이 가 있어,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선조 35년(1602)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최립이 짓고 한호가 글씨를 썼으며, 김상용이 비의 명칭을 썼다. 비의 뒷면은 장군의 사위인 이항복이 글을 짓고, 김현성이 썼다.

충장사 앞에 놓여 있는 중건비는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헌종 11년(1845)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구비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 비의 뒷면에 조인영이 일부 내용을 추가하여 비문을 짓고, 이유원이 글씨를 썼다.

행주대첩비(문화재청 사진)

권율장군 묘역 위치도

                                           화살표 밑에

소재지 : 경기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168-1

 

좌측 지도의 맨 위 중앙에 권율장군 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흥 유원지만 들어서면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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