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지금이 같은 풍경, 사람만이 변한 풍경
덕절산 청련암 (德節山 靑蓮庵)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26
바람 불면 그대로 머리를 두어 눕고 싶을때가 있다.
잠시 현실을 잊고 싶을때가 있다.
그러나 그 작고 초라한 절집은 호락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잠시 앉을 자리하나, 더욱이 누울 자리하나 만든다는 것은 사치라 생각 하는듯 하다.
사인암의 뒤로 선 작은 암자 청련암 경내
사인암의 뒷편, 작은 암자.
절집이라 하기에도 초라하다. 번듯한 본당도 없이 요사인지 불당인지 모르는 길게 늘어진 집한채가 청련암이 가진 전부다.
그러나 겉모습의 작고 초라한 자리는 이내 수많은 발걸음이 오고가는 길로 내어주는 여유와 배려가 있다.
익숙한 느낌으로 누군가가 왔다가 간들 무어라 하지 않는다. 가는길 오는길의 소란스러움도 더 이상의 들뜸이나 예민하지 않다.
청련암(靑蓮巖),
대한불교 조계종 제 5교구 법주사의 말사다.
절집에 따르면 원래의 절집 자리는 대강면 황정리 일대로 당시 대사찰이던 대흥사의 말사였다.
1373년(공민완22년)에 나옹화상에 창건 하였다 하는데우리나라의 절집은 의상과 나옹 아니면 창건 된 절집이 없는듯 하다.
어쨋뜬 고려말에 창건된 고찰임에는 틀림이 없고
1592년(선조25)년에 임진란으로 모두 불타 없어진것을, 1710년(숫종 8년)에 인근 대흥사 승려들이 중창하였으나
1741년(영조17년)에 큰 장마로 모두 떠내려 갔다 한다. 1746년 인근 주민들이 힘을 모아 중창 하였으나 구한말 일본의 침략으로
본산이던 대흥사가 소실되고 1954년 친일색출에 황정리 일대의 주민과 절집은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된다.
당시 대들보와 기둥을 함께 옮겨 지금의 가람에 그대로 쓰였다.
남은 것이라고는 청련암 현판이 걸린 단청빛 바랜 본당과 사인암을 병풍삼아 그 뒤로 숨은 삼성각이 전부다.
조종천을 건너 바라본다면 무엇하나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는 절집인 것이다.
그나마 구름다리마저 없었다면 절집은 말 그대로 청정 수도원이 되는 것이다.
그 많은 인고의 세월,
청련암과 사인암은 그렇게 그 세월을 말 없이 지켜보고 왔다. 어느 누구에게 말 전하지 않고 묵묵히 선 사인암과 같이 그렇게 늙어 온것이다.
그래서 청련암의 경내는 그렇게 소박하고 그렇게 잔잔할 수 밖에 없다.
욕심을 내어 중창과 불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니 그만큼만, 그 정도만 가지는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객들이 들려 마음 내려 놓고 가는 절집이라 생각하면 된다. 막지도, 잡지도 않는다.
신도수가 우글우글하여 야단법석을 하지 못하더라도 절집은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을것이다.
그저 들러 묵음 마음이 짐 내려 놓고, 근심 풀어 놓고, 헐가분하게 길을 나서면 되는 것이다.
이곳에 마음 풀어 놓은 이는 그 먼 옛시절에도 있었으니,
700여년전 사인(임금을 보좌하는 자리)의 벼슬에 있던 역동 우탁(易東 寓倬 : 1263~1343)선생이 낙향하며 이곳에 들러 시 한수를 바위에
새겨 넣었는데 80까지 사신 양반네의 늙음의 서러움을 너래하는듯 마음의 짐 풀어 놓는 노파의 투정으로 들린다.
"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그렇게 소박하고 초라한 작은 절집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이번엔 바위덩어리인 사인암이다.
단양팔경중에 8경으로 으뜸의 경치다.
200여년전, 먼 과거 단원 김홍도는 사인암을 10여일간을 바라보고 눈에 익혔지만 끝내 붓을 들수 없었다 한다.
그 후,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 기억으로만 그려진 그림이 단원의 '사인암도'다. 그래서인지 작품속 사인암은 실제 어느자리에서도 나오지 않는 각도다. 그러나 노심초사 공들여 그린 작품임에는 부정할 이유가 없다. 단원의 단양을 소재한 그림중에 '삼봉도'와 '옥순봉도'와 같이 사인암도 역시 전혀 다른 각도의 그림이 된다.
당대에 시인과 묵객들이 머물고 놀고 마시던 자리는 바닥에 새겨진 장기판과 바둑판을 보고리도 알수 있듯이, 예전부터 내려온 명풍경의 자리를 지금은 수많은 여행객들이 대신한다.
그 자리, 그 뒤편에 조용히 자리한 청련함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200여년 전, 단원이 돌아와 그렸던 '사인암도'의 모습이 그러하듯, 지금의 사인암 모습도 그대로다.
그리고 몇년전인가의 방문때의 청련암 모습 역시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도 대웅전 중창 불사와 종각과 해우소, 요사를 중창 할 요량으로 만원짜리 기와불사가 있지만, 그것을 공양하는 이는 없다.
사인암을 ?는 객들의 근심을 풀어줄 해우소가 급함에도 정작 청련암은 느긋하기만 하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좋다..는 듯하다.
단원의 사인암도
by 박수동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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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해피쭌 작성시간 09.06.24 와~~ 후기보면서 이 말 밖엔 안나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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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길손旅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6.24 감사합니다. 전국구 모델 되심을 축하드리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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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owboy 작성시간 09.06.24 역시 고수작가의 글과 사진은 느낌과 깊이가 다릅니다 어디 살 떨려서 새내기는 후기 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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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길손旅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6.24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회원님들 사진 보면 저는 올릴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그저 제 맛에 올리는 거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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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돌담 작성시간 09.06.26 단원의 그림까지...역시 일등작가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