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여행] 종유석과 석순 간격 1CM가 만나는데 100년...
기다리지 말자 해놓고도 못다 버린 게 있는 걸까
순간 순간 한 방울씩 녹아내린 내 마음도 흘러 고이면
저 고드름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동안
종유석 같은 고드름이 댓돌 위에 떨어져 부서진다
기다리는 것 오지 않을 줄 늦가을 무렵부터 알았다
기다림이란 ...
- '생애보다 긴 기다림' 中/ 도종환 시인
태백산 눈구경 후,
백두대간의 중추인 금대봉 하부능선 해발고도 920미터에 자리한
전국 최고지대 동굴인 용연동굴로 향하다.
안전모를 착용하고 약 3억년 전에 생성된
843미터 길이인 굴 속으로...^^
공룡 멸종이 6천 5백만 년 전이니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상상에 맞김.
석순(石筍)(stalagmite)은 종유석(鐘乳石 stalactite)과 만나
기둥 석주가 되려면 얼마만한 시간이 걸릴까?
종유석과 석순의 간격, 1센티미터가 만나는데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100년도 못사는 인간은 무엇을 붙잡으려고
그렇게 집착하며 욕심을 부릴까?
동굴 따라 꾸불꾸불 길게 누운 어둠 속에서
이 딱딱한 바위들도 한때는 흘러다녔구나.
어둠 구석구석을 꼬리치레도롱뇽처럼 기어다녔구나.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고드름으로 수세미로 버섯으로
꽃으로 아이스크림으로 마음껏 녹았었던 움직임들은.
한번도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못한 생각처럼
바위는 돌을 벗어나 유연하고도 자유로웠겠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형체가 되어
생각 속에 박힌 편견들처럼 튼튼해지고 말았구나
이제 저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깨어질지언정
다시는 움직여 꽃이 되지 못하리라.
물방울 떨어질 때마다 동그란 소리를 내며
퍼져나가던 깊은 물은 그 물줄기들은
돌 속으로 들어가 돌과 섞이고 돌을 움직이더니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돌이 되었구나.
종유석/김기택
용연동굴(龍淵洞窟):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39호이고, 태백시 화전동 산 47-1 소재하고 있다. 화전동의 용소골 산등성에 자리한다. 약 1억 5천만년에서 3억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하는 석화동굴이다. 동굴 속에는 각종 석순과 종유석이 즐비하고 특히 동굴 중간에 폭과 높이가 약 30m, 길이 약 150m 정도 되는 광장이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1966년 4월 7일 한•일 합동 동굴조사 때 동양에서 처음으로 초동굴성갑충, 긴다리장님좀딱정벌레,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옛새우와 장님톡톡이 등 6종의 생물이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백과사전 자료]
수천, 수만년을 살아오며 만든 석주...
석순은 지하수에 용융된 석회 성분이 고결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죽순 모양의 암석이 위를 향해 자라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종유석에서 떨어진 지하수가 석순을 형성하므로,
석순의 바로 위에는 종유석이 있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 종유석과 석순이 서로 만나게 되면
석회 기둥을 형성하는데 이를 석주라고 한다.
종유석은 지하수에 용융된 석회 성분이 고결되어 만들어진 고드름 모양의 암석으로
종유동(석회암 동굴)의 천장에 석회암의 용식으로 생긴 고드름 모양의 석회 기둥이다.
생애보다 긴 기다림/도종환
밤사이에 산짐승 다녀간 발자국밖에 없는데
누가 오기라도 할 것처럼
문 앞에서 산길 있는 데까지
길을 내며 눈을 쓸었다
이제 다시는 당산나무를 넘어오는 발소리를
기다리지 말자 해 놓고도 못다 버린 게 있는 걸까
순간 순간 한 방울씩 녹아내린 내 마음도 흘러 고이면
저 고드름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동안
종유석 같은 고드름이 댓돌 위에 떨어져 부서진다
기다리는 것 오지 않을 줄 늦가을 무렵부터 알았다
기다림이란 머리 위에 뜨는 별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내가 내게 보내는 화살기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길이 눈에 덮여 지워지고
오직 내 발자국만이 길의 흔적인 눈 속에서
이제 발소리를 향해 열려 있던 귀를 닫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날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천천히 지워진 다음날 새벽
아니 그 새벽도 잊어진 먼 뒷날
창호지를 두드리는 새벽바람 소리처럼 온다해도
내 기다림이 완성되는 날이 그날쯤이라 해도
나는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접은 것은 어쩌면 애타는 마음이나
조바심인지 모르겠으나
생애보다 더 긴 기다림도 있는 것이다
기다림을 생애보다 더 길게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가야 하는 생도 있는 것이다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 2006 문학동네
내 마음의 종유굴 /전윤호
너를 만난뒤
가슴에 구멍이 새로 생겼다
한번씩 헤어질 때마다
똑똑 물방울 떨어지더니
종유석이 자라기 시작했다
네가 떠나간 지금
끝이 뽀족한 거대한 석순들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어느날 바람불고
네 소식이 들려오면
네 가슴에 지진이 일어
종유석들은 비수처럼
아래로 떨어질것이다
임진왜란 등 국가 변란 시에는 피난처로도 이용된 굴...이었다고 하네요-.-
나오는 문은 있어도 들어가는 문이 없는
뜨겁게 웅크린 네 늑골
저 천길 맘속에
들어앉은
수천 년의 석순 끝
물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너를 향해 한없이 녹아내리는
몸의 꽃이 만든
몸의 가시가 만든
한번 열려 닫힐 줄 모르는
다 삭은 움막처럼
바람 속에서 발효하는
들어가는 문은 있어도 나오는 문이 없는
그 앞에서 언제나 오줌이 마려운
詩. 정끝별/사랑
태백석탄박물관과 폐광자리에 조성한 태백체험공원 등을 둘러 보았다.
물의 기운과 불의 기운이 만난 태백에서
검투성이 우리 아버지들의 얼굴을 본다...
그 시절.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한 사람들...
탄광촌이 마지막 희망이었던 서민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던 곳.
새로운 출발,
막장 인생...에서 행복을 캐던 사람들이
진폐증의 위험을 감수하며 가족을 부양하러 들어가던 길.
아버지는 광부였다.
고향을 버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이고 진 것이
이삿짐의 전부였던
12월 펄펄 송이눈 내리는 기차역
동동동 발이 시린 새끼들을 달고
아버지는 어느 먼 햇살봄을 꿈꾸었던 것일까.
저 흰눈같이만 살리라.
저 흰눈같이만 세상을 보리라.
굽은 등에 흰산 하나 지고
스스로 불이 되어
불속으로 뛰어들려 했던 아버지.
태백의 철로는 아득하기만 한데
짐을 부리고,
하루를 10년에 막장 어둠속 청춘을 묻었으니
쿨룩쿨룩 아이들은 자라나고
어머니 먹물 가슴에 몇 봄이 피고 졌던가.
그 긴 어둠속 아버지는
막장속 불빛으로 오직 나를 캐고 계셨으니
꿈길에도 발 헛디딜까, 눈부라리고 계셨으니.
슬픔과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퍼렇게 날을 세운 그런 날들이었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1 /김 성조
태백시 상장동 굴다리 벽화마을로 이동...
태백 광부들의 애환을 그린 벽화 속을 걷습니다.
내 기억 속 아직 풋것인 사랑은
감꽃 내리던 날의 그애
함석집 마당가 주문을 걸 듯
덮어놓은 고운 흙 가만 헤치면
속눈썹처럼 나타나던 좋 아 해
얼레꼴레 아이들 놀림에 고개 푹 숙이고
미안해-흙글씨 새기던
당두마을 그애
마른 솔잎 냄새가 나던
이사오고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나는 남자를 알고
귀향길에 때때로 소문만 듣던 그애
아버지따라 태백으로 갔다는
공고를 자퇴하고 광부가 되었다는
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때로 간이역을 생각했다
사북 철암 황지 웅숭그린 역사마다
한그릇 우동에 손을 덥히면서
천천히 동쪽바다에 닿아가는 완행열차
지금은 가리봉 어디 철공일 한다는
출생신고도 못한 사내아이도 하나 있다는
내 추억의 간이역
삶이라든가 용접봉, 불꽃, 희망 따위
어린날 알지 못했던 말들
어느 담벼락 밑에 적고 있을 그애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당두마을, 마른 솔가지 냄새가 나던
맵싸한 연기에 목울대가 아프던
간이역/김선우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도종환
* 흔들리지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특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아버지의 그늘/신경림
쇠락한 마을에 남은 자들의 슬픔과 우울...
70년대 광부만 4천여 명이 거주했다는 광산 사택촌.
이곳 상장 남부마을에는 2백 가구, 40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벽화 속... 광부를 든든한 아버지로 둔 어린 소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검은 눈물 / 김남주
우리 아빠 굴속에서 나올 때쯤 되면 우리 엄마 앉았다 일어섰다 가만있지를 못합니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옆집 철홍이네 엄마한테 가서 연탄불 부탁하고 날 데리고 우리 엄마 허둥지둥 탄광 쪽으로 가는 길 검은 길 까끄막길을 오릅니다. 해 저물어 저만큼 캄캄한 굴속에서 새까만 얼굴의 광부 아저씨들이 나오면 탄차에 우뚝 선 우리 아빠 얼굴이 보이고 우리 엄마 나를 꼭 껴안고 길게 한숨을 쉽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즐거운 길 아빠는 엄마에게 달그락거리는 빈 도시락을 건네주고 날마다 날마다 하신 말씀 또 합니다 오늘은 암도 다치지 않았어 조금만 더 참읍시다 그러고는 하늘 높이 기운차게 나를 안아올립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 아빠 가슴에 안겨 털가루 자욱한 얼굴을 자꾸만 자꾸만 문지르고 이윽고 검은 눈물이 아빠의 빰을 타고 방울져 내립니다
개새끼(?)도 1만원권 지폐를 물고 있는 그 시절 태백의 번성을 그린 그림과
녹아내리고 있는 눈사람.
도시와 국가의 명운도 이와 같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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