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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여행] 공주의 역사를 느낄수 있는 곳 국립공주박물관

작성자알빵|작성시간12.03.04|조회수421 목록 댓글 3

 

 국립공주박물관 [國立公州博物館]

 

무령왕릉 및 충청남도 일원 출토유물 등의 백제 문화재를 중심으로 약 1만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대지면적 6만 9,514㎡(2만 1,065평), 건축면적 5,034㎡(1,525평)이다.1934년 공주고적보존회(公州古蹟保存會)가 설립되고, 1940년 옛 관아(官衙) 건물인 선화당(宣化堂)에 공주읍박물관이 개관되어 공주 사적현창회(史蹟顯彰會)가 관리하였다. 1946년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으로 개관하고, 1972년 12월 30일 새 공주박물관이 건립되어 1973년 5월 1일 새로 발굴된 무령왕릉(武寧王陵) 출토유물 2,561점을 중심으로 전시했다. 1975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으며, 2004년 공주시 웅진동에 신축, 개관했다.

 

 

무료관람안내와 1,2층으로 나뉜 안내도 입니다.

 그리고 안내단말기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 령 왕 릉

 

1971년 7월 5일 공주시 금성동에 자리한 송산리고분군 안에서 역사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

송산리 6호 무덤의 배수로 공사도중 벽돌이 눈에 띄면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무덤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이 무덤에서는 무덤의 주인을 알려 주는 묘지석이 발견되었고 이를 근거로 이곳에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묘지석의 발견으로 무령왕릉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그 주인을 알 수 있는 왕릉이 되었다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분으로 벽돌에는 주로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무덤 안에서는 왕과 왕비를 안장한 2개의 나무관과 함께 금으로 만든 관장식, 자루에 용 ․ 봉황 무늬를 장식한 큰칼, 안쪽에 만든 장인의 이름과 만든 경위가 새겨진 은팔찌 등 모두108종, 4,687점이라는 많은 양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 부장품들 중에 17점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또한 귀고리를 비롯한 금속 공예품의 정교한 제작기술에서 고구려 ․ 신라와 구분되는 백제 문화의 독창성을 살펴 볼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기는 중국 남조 계통의 벽돌무덤양식과 함께 무령왕이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했음을 말해주는 증거로,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무령왕입니다.

백제의 제25대 왕(재위 501∼523). 혼란한 백제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무령왕릉 발굴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묘지석(왕)과 묘지석(왕비)입니다.

 

 

무령왕릉의 지킴이 진묘수

 

무덤을 수호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주로 짐승 모양을 하고 있다. 전국시대의 초나라 묘에서 다수 출토되었다.

초기의 것은 형태가 비교적 간단하여 얼굴에 오관(五官)이 없으나, 중기의 것은 머리가 둘이고 호랑이의 얼굴에 오관을 갖추었으며 구불구불한 목과 몸을 가지고 있다. 후기로 접어들면서 얼굴이 사람과 비슷해졌다. 공통적으로 머리에는 사슴뿔이 달렸고 네모 반듯한 대좌 위에 놓여 있다. 대부분 채색되어 있고 기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후 한나라 때부터 육조시대(六朝時代)의 묘에서는 토용(土俑) 형태의 벽사가 출토되었고, 당나라 묘에서는 짐승 또는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을 가진 삼채용이 출토되었다. 한국에서는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되었다. 

 

 

왕과 왕비의 관과 출토된 유물들

 

 

나무관

 

무령왕이 누워있던 나무관은 길이가 262cm 크기이며 다섯장의 나무판으로 뚜껑을 만들었다. 왕비의 것도 모양은 비슷하지만 뚜껑을 세장의 나무판으로 만들었고 길이가 250cm 정도로 왕의 것보다 약간작다. 무령왕릉의 나무관은 뚜껑과 옆판등에 여러장의 나무판을 조립하고 못으로 박아 고정시켰으며 옆면에는 관을 운반할 때 쓰기 위한 관고리를 각각 여섯 개씩 달았다. 이 나무 관들에 쓰인 관고리와 못, 꽃모양작싱 등은 모두 금․은박으로 입혀져 나무관 전체가 매루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관의 재료로 쓰인 나무의 둘레지름은 130cm,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종류를 분석한 결과 일본 남부지방에 많이 자라는 침엽수 계통의 금송이었음이 밝혀졌다.

 

위부터 관장식과 금동신발(왕) 아래 관장식과 금동신발(왕비)이다

첫번째사진 - 무령와 금제관식(국보 제154호)

왕의 머리부분에서 포개어진 채 발견된 금으로 만든 왕관 작식 한쌍이다 관식의 각 부위에 127개 원판 금제영락을 매달았고,

좌우로 벌어진 줄기 중간에는 꽃무늬를 배치하였으며, 줄기가 길게 뻗으면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세번째사진-무령왕비 금제관식(국보 제155호)

왕비의 머리부분에서 거의 포개진 채 발견되었으며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문과 화면문장식을 투조하였다.

중앙에는 7개의 연꽆잎이 바닥으로 늘어진 모습을, 그 위에는 막 피어오르는 꽆을 꽂은 꽃병을 투조하고 있어 불교적인 요소가 관식의 제작에 반영되었다.

 

목걸이와 귀걸이

글자있는 용장식 은팔지 각종 장식구

 

 

청동거울

 

 

은잔

왕비의 머리부근에 높여 있었던 은으로 만든 잔이다. 잔과 뚜껑은 은으로 만들었고, 잔받침은 동으로 제작하였다. 뚜껑의 꽃봉오리 모양 손잡이 아래를 금꽃잎으로 장식하였고, 뚜껑과 잔, 받침의 겇면에는 산과 골짜기 노니는 짐승 나무 연꽃잎 구름 용을 새겨 극락정토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신석기시대-토기의 제작과 농경의 시작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는 토기와 간석기를 제작하기 시작하고 구석기시대의 수렵, 채집, 이로에 더하여 농경과 목축등 다양한 생산활동이 이루어졌다. 주로 큰 강가나 바닷가에 부락을 이루며 정착생활을 하거나 동굴을 집으로 이용하였다. 충남지역은 큰 하천과 하천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많고 구릉이 발달하여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에 해안지역 뿐 아니라 내륙지역까지 신석기인들이 진출하였다. 충남지역의 신석기시대 유물로는 바닥이 계란모양처럼 뾰쪽한 빗살무늬토기와 땅을 팔 때 사용하는 돌보습, 곡물을 가공하기 위한 갈돌과 갈판이 많이 출토된다. 또한 뼈를 재료로 제작한 송곳이나 낚시바늘, 조개로 만든 장신구도 사용하였다. 

 

 

 

계유명천불비상

지붕모양을 한 덮개돌과 연꽃무늬받침, 몸체를 각각 따로 만든 비석 모양으로, 앞면에 작은 불상들이 새겨져 있다 하여 천불비상이라 한다. 불비상의 아래쪽에 있는 삼존불의 좌우에는 “계유년 4월 15일에 백제 유민 250명이 국왕대신, 7세부모, 법계중생을 위하여 이 불상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통일신라 초기 백제 옛딸레 백제불교와 미술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서혈사지 석불좌상

공주시 웅진동 서혈사터에서 발견된 부처상이다.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하여 다리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린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여덟 잎의 연꽃을 표현하였으며, 대좌를 받치는 지대석에는 극락의 천사인 천인과 인간의 얼굴을 한 상상의 새 가릉빈가를 새겼다. 전체적인 자세와 세부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 소 : 충남 공주시 웅진동 360

전화번호 : 041-850-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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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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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워크뷰 | 작성시간 12.03.05 박물관 잘 보았네요^^
  • 답댓글 작성자알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3.05 사진이 잘 안나와서리^^;;; 잘보았다니~감사합니당^-^*
  • 작성자화천비타민나무 | 작성시간 12.04.09 좋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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