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감동♡좋은글

고래의 꿈(바다로 간 아이들)

작성자운한|작성시간24.12.13|조회수378 목록 댓글 2


#웹에세이


고래의 꿈(바다로 간 아이들)


-때는 1979년도 여름-

새벽이 드리우는 물언덕을 따라 늘 푸른 강을 나르는 물새들이 넘나드는 낙동강 하구 명지 마을 조그만 분교엔 오늘도 넘실대는 파도 따라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천진함이 물결처럼 펼쳐지고 있었는데요

“너거들 수업 끝나고 집에 가지 말고 철봉 밑에 다 모이래이“

6학년인 봉구형의 말에 숨죽인 풀잎처럼 대답을 한 아이들은 산처럼 품어 주시는 선생님과의 수업을 마치고는 허기진 녹슨 철봉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맏형 봉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너거들...나랑 고래 잡으러 안갈래?“

“울 아버지가 그라던데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커다는데 우리가 우에잡노“

“고래가 그렇게 커나?”

"그라고 나룻배보다 큰 고래를 우찌 싣고 올 건데?”

“밧줄로 묶어서 끌고 오면 된다.”

"난 안할란다.."

"나두"

"너거들 엄마 아버지가 맨날 쪼맨한 메기와 붕어만 잡아 오는 게 좋나?"

" 더 큰 잉어도 잡아 올 때도 있다"

"우리가 엄마 아버지 고생 안 하게 큰 고래 잡아다 드리면 울엄마도 너거엄마도 고생 안 할 거 아이가"

"그건 봉구형아 말이 맞다"

"그라면 우리 엄마 아버지 집에서 쉴 수 있겠네"

" 내는 고래 팔아서 우리 엄마 아버지 호강시키 줄끼다"

"근데 바다는 어딨는데?"

"강 따라 쭉 가면 큰 바다가 나온다."

"우리 모두 봉구형아 말대로 고래 잡으러 가자"

“너거들 우리가 고래 잡으러 간다는 말은 절대 비밀이데이“

겨울에도 깡깡 언 얼음을 깨가며 차디찬 강가에 손 담궈 자식 키우고 먹일 것들을 마련해야 하는 엄마 아버지의 일그러진 일상을 생각하던 아이들은 잡초처럼 밟아도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들을 걸고 있었는데요

“그라먼 ..너거들 약속한기다"

"봉구 행님아,,,언제갈낀데?"

"내일모레 여름방학 하는 날, 강기슭에 떠 있는 돛단배 앞으로 다 모이라“

화사하게 떠오르는 햇살같이 고래 잡는 꿈에 부푼 아이들이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오늘

돛단배에 모여 앉아 있던 봉수형은 숨죽인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전부 쑤그리라"

"산수 아버지가 이 시간에 어쩐일이고?“

"설마 우리 작전이 들킨거 아이가?.""

"너거들 아무한테도 말 안했제?"

"내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순둥이한테도 끝까지 비밀로 했다."

"어젯밤에 내방 창문에 달님이 내 비밀을 캐려고 자꾸 얼쩡거리는기라 그래서 이불을 폭 덮어쓰고 잤삐다"

멀리 있던 까만 점이 점점 커진 자리에 떠오른 새벽녘 해님을 안고 출렁거리는 바다 너머 고래의 꿈을 향해 노를 저어가던 아이들은

"형님아....고래는 언제 나타나는데?"

"지가 숨이 차면 올라 올끼다. 동서남북으로 잘 봐라..."

" 뭐로 잡을 건데?"

"돛에 다가 이 잉어를 통째로 끼워놓으면 지가 물끼다. 물리면 집으로 끌고 가면 되는기다"

"와…. 역시 봉구형아 머리 좋네"

"근데 봉구야...배에 물이 들온다."

"거기 바가지로 퍼떡 퍼내뿌라"

"행아야...바가지도 물이 샌다 "

"그라먼 신고있는 고무신으로 막아삐라"

숨 쉬는 호흡과 맥박 하나에 묻어오는 긴장감 속에서 아직도 떼어내지 못한 두려움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아이들은

"우리 이러다 고래 잡기도 전에 배에 물이 들어와 죽는거 아이가?"

허기진 배에 물 한 방울 넣지 못한 채 노 저을 힘조차 없어지자

"엄마…. 흑흑흑"

"아버지…. 흑흑흑"

울음 섞인 이름을 닮은 엄마 달에다가 그리움에 작은 불씨 하나 피워놓고는 둥둥 떠내려가기만 하는 돛단배를 부여잡고 울먹이다

"엄마♡ 누나야….~~ 강변 살자.~"

마디마디 숨겨진 두려움을 목젖에 감추고 좁은 배안에 옹기종기 어깨동무를 한 채 붙어 앉아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울엄마 보고 싶다"

"나두...'

"난 울아버지가 보고 싶다"

“내는 우리 집 순돌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어깨 뒤로 숨어든 아픔 위로 떨어지는 서로의 눈물방울들을 닦아주며 울다 잠이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바람이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까만 새벽에 덧칠한 어둠을 따라 달려온 배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용기 있는 도전…

고래의 꿈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답니다

계절이 지나 봉구형은 졸업해 서울로 갔지만 가을 물든 분교에 남은 아이들 귀에는

"너거들 수업 끝나고 철봉 밑에 
다 모이래이"

라는 봉구형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오늘도 이루지 못한 고래의 꿈….
그건 
가족의 사랑이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 위 게시글은 작가(노자규님)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있습니다.


 

토지사랑 http://cafe.daum.net/tozisarang/

토지투자동호회밴드
(카페회원님들은 같이이용하시면됩니다)

 

추천부탁드립니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마윤철 | 작성시간 24.12.17 쌀쌀한 화요일 아침.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신바람나게 출발하는 하룻길 되셔요^^*
  • 답댓글 작성자운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2.17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