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오월 중순 장미들이 껑충 피었는데
한 가지를 꺾어다가 흰 호리병에 꽂아두고는
겹겹 싸인 내전(內殿)을 엿보는데
어디서 온 내력들을
뷹디붉은 문장들로 새겨두었다
나는 글 배운 바 없어 읽을 수는 없어서
보며 웃을 뿐이었다
공의 성은 장씨이고 휘는 미이며
허공이 고향이다 글 읽기를 좋아하고 전고(典故)에 대한
지식이 많으며
질문이 있으면 척척 응답하여 의문이 없었다
세상 소인들이 횡행하니 스스로 가시를 내어
멀리하였다
눈 펄펄 날리는 날
이러한 묘지명을 받으러
어느 얼어붙은 빙벽을 방문할 것이다
서너뼘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받으면서
벌 몇 마리가 잉잉댄다
[내가 사랑한 거짓말],창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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