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좋아하는 정철의 권주가(장진주사).
그가 쓴 권주가 몇 편을 아래에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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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놓고 무궁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어 매어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 숲에 가기 곳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바람 불 제 뉘우친들 어쩌리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나무 가지를 꺾어 술잔 수를 셈하면서 한없이 먹세그려.
이 몸이 죽은 뒤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꽁꽁 졸아매어 가지고 무덤으로 가져가거나
화려한 장식의 상여에 실려 많은 사람이 울면서 따라가거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사시나무 우거진 숲에 묻히고 나면
누른 해. 흰 달. 가랑비. 함박눈. 쓸쓸한 바람이 불 제 그 누가 있어 한 잔 먹자고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슬피 울 때면 지난 날을 뉘우쳐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송강의 기주가(嗜酒歌)로서의 호탕한 성품이 잘 나타나 있다.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면서 죽은 뒤에 후회가 없도록
살았을 때 술이나 실컷 먹자는 권주가다. 꽃을 꺾어 술잔을 셈하면서 도도하게 즐기는 낭만적인 정경과 후반에 그려진
무덤 주변의 처량한 분위기는 대조적인 효과를 나타내어 인생무상을 절감케 한다.
결국 살아 있을 때 술이나 실컷 마시면서 즐기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노래는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과 이하(李賀)의 권주가 두보(杜甫)의 시 같은 데서 시상을 따 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순연한 우리말로 자연스럽고 교묘하게 읊어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구절마다 인생의 무상함과 처량함이 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술을 좋아하는 송강의 풍류스러운 몸가짐이 누네 보이는 듯하다
송강의 시조는 이 밖에도 다양한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거의가 정치생활에서 물러나 은거하거나 유배되었을 대 지은 것이다. 특히 성산에서의 4 년간은 그의 시작이 가장 무르익던 때였다. 이 시기가 정치적으로 불운한 시기였으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타고난 시인으로서의 재질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 불우한 시기가 없었더라면 그의 위대한 문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송강에게 있어서는 매우 값진 시기였고 우리 고전 시가사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고 할 것이다
일정 백 년 산들 그 아니 초조한가
초초한 부생(부생)이 무슨 일을 하랴 하여
내 잡아 권하는 잔을 덜 먹으려 하는다
한결같이 백 년을 산다 해도 그것이 어찌 바쁜 일이 아닌가. 바쁘게 사는 덧없는 인생이 무슨 큰 일을 하려고 내가 잡아 권하는
잔을 덜 먹으려 하는가. 옛 사람들은 인생을 부생(浮生)이라 했다. 덧없는 인생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술이 허전함을 달래는 유일한 벗이었다. 더욱이 정치에서 실의 했을 때는 자연과 술 밖에 벗할 것이 없었다.
이 시조는 권주가의 형식을 빌려 백 년밖에 못사는 인생의 유한성과 허무를 노래한 것이다
재 너머 성 권농(成勸農)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이야 네 권농 계시냐 정 좌수 왔다 하여라
고개 너머 성 권농 집에 빚은 술이 익었다는 말을 어제 들었기에
누워 있는 소를 발로 차서 일으켜 언치만 놓아 껑충 뛰어 눌러 타고
고개를 단숨에 넘어 성 권농의 집에 이르렀다. 여봐라 너의 주인 계시냐? 정 좌수가 왔다 아뢰어라
술을 좋아하는 정 좌수가 성혼의 집에 술 마시러 가는 신명 나는 장면을 노래한 것이다. 초장과 중장까지는 순서대로 나가다가
종장에서는 어느새 하인과 대화를 하고 있다. 비약과 생략이 심하나 술을 좋아하는 정 좌수가 술 벗을 찾아가는 들떠 있는 모습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것은 이마 "박차"와 지즐 타고"에서 신이 나는 모습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술이란 마시는 것도 좋지만 술 벗을 찾아가는 기분이 때로는 더 좋은 법이다. 이 시조에서 송강의 언어 구사가 자유자재함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