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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작성자안토니오|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0

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님의 스토리

 • 2시간 • 

6분 읽음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나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지난달 28일 촬영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우뚝 솟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AP=연합뉴스

교황 레오 14세가 탄 파파모빌(교황 전용 차량)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환영 시민들로 가득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통과했습니다. 교황은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차량에 올라 손을 흔들었습니다. 자로 대고 그린 듯 네모 반듯한 모습의 도시 계획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지만, 파파모빌이 향하는 방향에는 둥근 곡선이 두드러지는 모습의 건물이 솟아 있습니다. 바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스페인어로 '성가정') 대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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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가톨릭 사제들이 10일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준공식에 참여해 교황 레오 14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탑을 축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가우디 타계 100주기를 맞은 이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교황 레오 14세가 성당을 직접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2월 공사가 끝난 성당에서 가장 높은 첨탑 '예수 그리스도의 탑'에 성수를 뿌리며 축복했습니다. 착공 후 144년 만입니다. 화려한 불꽃놀이와 드론쇼도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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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성당, 아직 다 완성된 게 아닙니다. 교황이 방문한 이날도 첨탑 옆에는 타워크레인이 서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탑을 비롯해 성당의 전반적인 구조와 외관은 올해 완성되지만, 총 18개의 탑 가운데 성당의 입구 역할을 하는 영광의 파사드에 속한 4개 탑, 그리고 세부 장식 공사가 남아 있습니다. 성당의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는 때는 2034년을 전후한 시기로 예상됩니다. 완성까지 152년이나 걸릴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는 어쩌다 이렇게 늦어진 것일까요?

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세계는 왜

'기부금'으로만 건축 자금 충당하는 '속죄 성당'

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준공식이 열린 10일 성당 예수 그리스도의 탑 앞에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모습을 그려낸 드론 쇼가 펼쳐지고 있다. 바르셀로나=로이터 연합뉴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설계자 가우디가 살아 있었던 1882년 첫 삽을 떴습니다. 공사를 처음 계획한 이는 종교서적 출판사를 운영하던 호셉 마리아 보카벨라였습니다. 급격한 근대화로 종교를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보카벨라는 이탈리아 순례를 다녀오던 도중 로레토의 산타 카사 대성당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이 성당을 본떠 바르셀로나에 '속죄를 위한 성당'을 짓자는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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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벨라는 성당을 건축할 때 지원은 일체 받지 않고 기부금으로만 건립 자금을 충당하기로 했는데요, 기부금을 낸 모든 사람의 죄가 성당 건립과 함께 용서받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기부금이 뜸해질 때는 건설 작업도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것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이 100년 이상 걸리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됐습니다.

당초 교구 건축가였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르가 시작했던 성당 설계·건축 작업은 이듬해인 1883년 빌라르가 설계 방향 차이 문제로 사임한 이후 젊은 건축가였던 가우디에게 맡겨집니다. 신임 건축가로 임명된 가우디는 '신이 창조한 자연'을 모방해 곡선만을 사용한 새로운 성당 설계안을 보카벨라에게 제시합니다.

내전 기간 설계도 불타기도

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관광객들이 지난달 2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있다.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가우디의 제안에 따라 새로운 성당에는 자연과 관련한 요소가 대폭 도입됐습니다. 수직·수평의 직선은 되도록 피했고 나무나 꽃, 열매, 잎사귀와 같은 생명체가 성당 외벽 곳곳에 조각됐습니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는 동쪽과 서쪽의 색을 달리 해 오전과 오후 태양의 위치에 따라 성당 분위기가 달라지도록 했죠. 최종 설계안에 따르면 각각 기독교의 12사도·4대 복음서 저자·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총 18개의 탑이 들어설 예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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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우디는 18개의 탑 가운데 1개 탑 완성, 3개 탑이 공사 중이던 1926년 전차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1914년부터 다른 의뢰를 일체 받지 않고 성당 건축에 전념해온 가우디는 말년에는 아예 성당에 거주하며 건축 작업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외모나 행색에는 신경 쓰지 않고 극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며 지내왔는데요, 이 탓에 전차에 치이고도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해 병원 이송이 늦어져 제 시간에 치료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가우디는 이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 묘지에 묻혔습니다.

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교황 레오 14세가 1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를 방문해 성당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묘지에 초를 켜 놓고 있다. 바르셀로나=로이터 연합뉴스

가우디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그의 제자였던 도메네크 수그라니에스가 작업을 이어받지만, 불과 10년 만에 성당은 다시 위기를 맞게 됩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바르셀로나는 가톨릭 교회와 적대관계인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세력의 중심지가 됐고, 아나키스트들이 성당 작업장에 난입해 설계도 일부를 불태우고 석고 모형들을 부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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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체가 파괴되는 일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성당의 예술성 덕분입니다. 당시 스페인 내전에 의용병으로 참여하며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이후 남긴 르포르타주(취재 문학)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현대식 성당으로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건물이었다. 술병 모양의 탑 네 개가 서 있었다"라는 혹평을 남겼는데, 같은 대목에서 그는 "사람들은 성당이 '예술적 가치' 때문에 파괴되지 않았다는 말만 했다"고 적었습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지만요.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관광객 급증

이후 성당 건축은 1939년 내전이 종료되고 가우디의 말년에 함께 작업에 참여했던 건축가 프란세스크 데 파울라 퀸타나가 현장 책임자로 참여하며 재개됩니다. 그는 파괴된 모형을 잔해와 사진을 통해 다시 만들고, 남아 있던 설계도로 가우디의 설계안을 복원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성탄의 파사드 공사도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1955년에는 첫 번째 대형 모금 행사도 치러졌습니다.

이후 30년간 공사를 이어온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986년 모든 구획의 기초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완공은 요원해 보였습니다. 성당 건립자금 부족이 종종 공사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랬던 상황은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이 열리며 완전히 바뀝니다. 올림픽 이후 바르셀로나는 산업도시 이미지를 벗고 유럽의 주요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는데,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연간 관광객 수 역시 급증했습니다. 올림픽 이전에는 연 방문객이 2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유료 관람객만 490만 명에 달했습니다. 바르셀로나 관광청은 외관만 보는 무료 관람객을 합치면 한 해에 약 2,000만 명이 성당을 방문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137년 역사의 무허가 건축물?

144년 걸려 완공한 '가우디의 꿈', 아직도 지을 게 남았다는데 [세계는 왜?]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창문으로 10일 햇빛이 쏟아지고 있다.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유료관람객들이 내는 입장료는 성당 건축을 위한 기부금으로 간주되는 만큼, 공사도 자금 걱정 없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2016년에는 황당한 소식이 하나 전해졌는데요,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무허가 건축물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입니다. 공사 시작 당시에는 허가 없이 공사가 시작됐고, 3년이 지난 1885년 가우디가 허가가 없음을 알고 시 당국에 신청서를 냈지만 이때도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당이 졸지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허가 건물이 돼 버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와 성당건축위원회는 대화에 나섰습니다. 스페인 법률상 무허가 건물은 철거 후 원상 복구가 원칙이지만 바르셀로나 시정부는 100년 넘게 공사를 묵인해온 책임을 인정하고,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3,600만 유로(약 633억 원)의 벌금과 460만 유로(약 81억 원)의 허가 발급 비용이 부과됐지만 막대한 입장료 수입 덕분에 공사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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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크게 줄어들면서 2026년 완공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지만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돼 명목상 완공,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다만 갈등 요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급증한 관광객 때문에 일대가 오버투어리즘에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 계획대로 성당 정문 앞에 폭 60m의 대형 계단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도시 두 블록을 철거하고 1,000여 가구와 상점 다수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탓입니다. 모든 부분이 완성되는 최종 완공일이 언제일지는 남아 있는 갈등 요인을 얼마나 빨리 매듭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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