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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명화

[스크랩] 꿈과 환상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작성자나무와|작성시간12.05.01|조회수590 목록 댓글 0

호안 미로

 

 

호안 미로는 20세기 초 다양한 현대미술 흐름 중에서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를 결합하여 창의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 거장이다. 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 무의식의 근원, 유아스러운 그림, 그리고 그가 태어난 스페인의 카탈란 지방의 자존심으로 평가되었다. 성숙한 시기의 미로의 그림양식은 시적인 아름다움과 혹독한 현대적 삶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환상적으로 표현해냈다.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석판화, 벽화, 세라믹 그리고 야외조각 등 광범위한 작품을 남겼고, 1930년대 부르주아 사회를 지지하고 있던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부정하는 ‘회화의 암살(Assassination of Painting)’을 선언해 당대 미술가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


미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893년 4월 20일에 태어났다. 금세공사인 아버지와 그가 태어난 카탈란 지방의 풍토는 미로에게 예술적 재능을 불어넣어주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다. 미로가 8세때 그린 드로잉 작품이 현재 호안 미로 재단에 소장되어 있는데, 어린시절 미로의 예술적 재능을 엿볼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미로는 14살에 바르셀로나의 상업학교에 입학했고 동시에 산업예술학교에도 1910년까지 다녔다. 이후 바르셀로나의 성 루카 예술학교에 들어가 1912년부터 1915년까지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이 시기의 미로 작품에는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야수파입체파의 영향이 엿보인다. 또한 후에 그에게 재단설립 등 많은 인생의 조언을 주었던 평생 친구 호안 프래츠(Joan Prats)를 만나게 된다. 스페인에 거주하던 이 시기에 미로는 양감과 색채의 상호작용에 중점을 둔 풍경, 초상화, 그리고 누드를 주로 그렸다. 그의 색채는 화려한 야수파 양식을 따랐으나 형태는 세잔느와 입체파에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유파에도 속하기를 거부했던 미로의 독특한 그림


미로는 프랑스 파리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시인과 극작가들의 영향 아래 유기적인 형태와 실처럼 가는 선으로 형태를 그리는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다. 미로는 오토마티즘(automatism)과 성적 상징에 대한 관심으로 초현실주의다다이즘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지만, 당시 유럽에서 발생한 그 어떤 미술운동의 회원이 되는 것은 거부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의 설립자인 앙드레 브르통은 미로를 그들 중 진정한 초현실주의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미로는 사실주의와 추상형식을 매우 치밀하게 결합시켰으며, 이런 특징은 [농장(Farm)]과 [경작지(The Tilled Field)]와 같은 대표적인 작품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점차적으로 그림 속에서 자연적인 소재와 사실적인 형상을 제거하면서, 새롭고 신비한 정서와 그림자와 같이 으스스한 인상을 주는 형태와 조화를 추구하게 된다.

 

 

 

[농장](1921~22)은 미로가  파리에 거주하면서도 매년 여름 그의 가족에게 돌아가서 지냈던 스페인 몽트뢰그(Montroig)의 농장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로의 예술세계에 있어 전환점을 제공했다. 입체파의 형식적인 언어로 강렬하고 원시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며, 치밀한 관찰과 정확하게 묘사된 디테일에서 사실적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세부적인 묘사에 집중하는 사실주의는 형태를 단순화하기 위해 시도한 추상 스타일과 기하학적 형태와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당시 이 작품은 아무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 파리 몽파르나스의 한 카페에 전시되었다가, 파리에 머물고 있던 소설가 헤밍웨이에게 5,000프랑에 팔렸다고 한다. 

 

[경작지](1923~24)는 [농장]에서 발전된 작품이다.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채로 마을을 묘사한 이 작품은 미로의 초현실주의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인간, 동물, 식물을 환상적으로 병렬 배치와 수직 배치한 방식은 오직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을 그린 것으로 미로의 예술적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의 복잡한 도상들은 오랫동안 미로가 흥미를 가져 온 예술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정적이면서 강한 대조를 이루는 화면 톤은 카탈란 지방의 프레스코를 연상시키며, 장식적인 느낌의 동물들은 지중해 스페인의 타피스트리에 영감을 받은 듯하다. 그림 속 생생한 창조물들은 미로가 수집했던 카탈란 지방의 세라믹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쟁기와 같은 형상은 선사시대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 미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서 신비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나무에 커다란 귀를 덧붙인 것은 모든 사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작지]는 정치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당시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란의 독립을 막기 위해 깃발과 언어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로는 프랑스, 카탈란, 스페인의 깃발을 그려넣어 고향 카탈란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다.

 

 

꿈의 그림과 상상의 풍경 – 자유로운 양식의 실험


미로는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마송(Andre Masson)과 함께 처음으로 전통 회화를 부정하는 방식인 오토마티즘을 발전시켰다. 오토마티즘은 ‘자동기술법’을 의미하며 이는 이성의 통제나 선입관이 배제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사고의 받아쓰기’ 방법이다. 미술 영역에서는 ‘자동적 소묘’라 하며 사물과 관계를 맺지 않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떠오르는 무한한 현상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영역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이성과 사상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즉, 자유스러운 무의식의 세계를 진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한 방법이다. 오토마티즘은 다다이즘에서 주장한 ‘우연의 법칙’에서 발전 확대되었으며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이를 이용해 추상적 형태성을 만들어내었다. 당시 미로는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컬러필드 페인팅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적인 양식을 추구했는데, 1925년 이후에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그리고 파울 클레의 영향 아래 있는 그림들을 선보였다. 이 시기에 미로는 ‘꿈의 그림(Dream Pictures)’과 ‘상상의 풍경(Imaginary Landscapes)’을 그렸다.

 

 

  

1928년에는 네덜란드를 여행하며 그곳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17세기 사실주의 화가와 그림에 대해 연구하여 ‘네덜란드의 실내’ 시리즈를 그린다. 더불어 콜라주, 조각 아상블라주 그리고 발레를 위한 무대 세트와 의상제작을 하는 등 더욱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에 몰두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댄서](1928)는 미로가 처음으로 제작한 콜라주 작품이다. 이 작품은 거친 타르 종이를 사용해 최소한의 드로잉으로만 그려져 있고 오브제를 활용해 제작했다. [어릿광대의 카니발](1924~25)는 파리 피에르 화랑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 전시에서 사람들의 흥미를 끈 작품으로 미로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기독교 사순절 전에 열리는 흥겨운 축제를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캐릭터와 오브제로 변장하고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미지와 형상들은 전례없던 것으로  화려한 캐릭터를 사용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흥겹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가면을 쓰고 변장한 사람으로, 유쾌하고 환상적인 상상을 마음껏 밖으로 표출하고 있다. 또한 두 마리의 고양이가 한 다발의 실뭉치를 가지고 놀고 있으며, 창문을 통해 호기심 많은 햇님이 실내를 들여다보고 있다. 바이올린 옆에는 악보가 날아다니고 있으며, 중앙에는 노란색 마스크를 쓴 키 큰 남자가 하늘거리며 서 있다. 그 옆으로 기타로 변장한 남자가 있으며, 테이블 위에는 물고기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놓여 있다. 미로는 축제의 흥겨움을 놀랄만큼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동심과 유아적 표현방식에서 찾은 작품의 모티브


미로는 미술을 시작한 이후 80여 년 동안 다양한 미술 운동을 거쳤지만, 어느 한 사조에 빠지지 않고 자기 나름의 독특한 세계를 창출했다. 그런 이유로 미로의 작품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그의 그림임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개성적인 특징을 가진다. 또한 20세기 초 거의 모든 작가들이 인간의 고뇌, 비극와 쓸쓸한 인생,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주제로 삼았다면 미로는 유일하게 인생을 즐겁게 표현한 작가이다. 미로는 동심과 유아적인 표현 방식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풍부한 공상, 강렬한 형상, 미래 지향적 암시는 작가의 한없이 밝은 너털웃음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선사했다. 미로가 처음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의 스승은 눈을 감고 물체를 만지면서 그 촉감으로 뎃생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 촉각적인 데생의 기법이 미로의 예술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별, 달, 원, 눈, 새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형상


1930년대 후반 미로는 스페인 내란이 끝나자 파리로 돌아와 머문다. 또한 1934년부터 미로의 그림들은 정기적으로 스페인과 미국의 갤러리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미로의 예술이 정치적이진 않았지만 스페인 내란은 그에게 사회 비판적 영감을 주었다. [수확자]와 [여인의 머리]와 같은 작품은 이 시기의 공포와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전시된 미로의 [수확자]는 전시장 철거 후에 파손되었거나 사라져버려 현재 남아있지 않다. 이 시기의 중요한 작품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오래된 신발이 있는 정물]이다. 이 작품은 병, 빵, 사과 혹은 오래된 신발과 같은 일상적인 사물에 비현실적인 빛을 비추어 마치 혼란스러운 무대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1940년대는 미로의 창작시기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속한다. 미로는 고향 몽트뢰그에서 작품세계의 정점을 보여주는 23점의 [성좌] 시리즈를 제작했다. [성좌] 시리즈는 별, 달, 원, 눈, 새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자유로운 우주 안에 배치하거나, 무한한 기운이 느껴지는 형태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당시 미로는 밤, 별, 바흐의 음악과 모차르트의 음악, 그리고 시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조각과 공공미술에서의 활동


피카소, 달리 등 재능이 많은 스페인 출신 화가들이 조각을 많이 했던 것처럼 미로 역시 조각에 조예가 깊었다. 1950년대부터 조각에 관심을 가진 미로는 조각을 위한 모델을 따로 제작했고, 이것을 후에 브론즈로 캐스팅했다. 특히 미로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공장소에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다수 설립했다. 1947년 미국 신시네티 힐튼 호텔의 벽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두 개의 벽화를 제작했고, 하버드 대학 하크니스 센터(Harkenss Center)의 다이닝 룸에 세라믹 벽화 시리즈 제작했으며(1960-61), 바르셀로나 공항의 벽화(1970), 오사카의 세계박람회의 글라스 파빌리온(1970)을 제작하는 등 엄청난 벽화 및 조형물을 남겼다.

 

이러한 국제적인 명성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미로는 조용히 창작작업에만 매진했다. 그의 예술은 초기의 서투른 표현에서부터 후기의 쾌활한 대표작에 이르기까지 매우 천천히 전개되었다. 그의 말년 작품들은 훨씬 단순화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로는 가끔 [블루]에서처럼 푸른 바다 표면 위에 감각적인 하나의 선과 하나의 점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것은 공격적이고 왁자지껄했던 초기의 작품과는 완연히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느낌까지 자아낸다. 

 
1983년 12월 25일 미로는 스페인 마조르카 팔마에서 9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생전 그가 남긴 작품은 유화가 최소한 2,000점, 조각 500여점, 세라믹 400여 점, 드로잉과 꼴라쥬 5,000여 점으로 추정된다. 1970년 바르셀로나에 설립된 호안 미로 재단은 현재 14,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회화 217점, 조각 178점, 텍스타일 9점, 세라믹 4점, 드로잉과 그래픽 작품 약 8,000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작가 자신이 기증한 작품이며 나머지는 부인 준코사 여사와 친구 호안 플래츠 소유 작품, 그리고 지인들의 끊임없는 기증으로 이루어진 컬렉션이다.

 

이외에도 본 원고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로의 판화 작품 또한 매우 유명하며 <1953년 베니스 비엔날레> 그래픽 부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관련링크 : 통합검색 결과 더보기  호안 미로 미술관 홈페이지

 

 

 

국립현대미술관 웹진 Art:mu 2009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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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서양화가 김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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