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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길 남산 코스(3코스)

작성자산돌이|작성시간15.12.17|조회수222 목록 댓글 0

이제 3코스다.

원래 계획없는 길을 걷다보니 조금더 가고픈 욕심으로 3코스를 시작 한다.

3코스는 남산길로 광희문에서 숭례문 까지 약 6km다.

오랫만에 보는 숭례문이지만 멀리서 인증샷만하고 남산길로 오른다.

숭례문(崇禮門)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최초로 축조되었고 1398년 2월 중건되었다. 이 문은 조선시대 한성 도성의 정문으로 4대문 가운데 남쪽에 위치하므로,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1448년에도 크게 고쳐지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도 남대문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양측에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1908년 도로를 내기 위하여 헐어 내고 성문만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었으나, 2006년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보물에서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의 필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지봉유설>에는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문의 편액은 가로로 쓰여 있으나 숭례문이 세로로 쓰여 있는것은 숭례(崇禮)의 두 글자가 불꽃을 의미하여,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숭례문은 2008년 2월 10일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었고, 5년 3개월에 걸친 복구 사업을 완료하고 2013년 개방되었다. 2013년 5월 1일에는 숭례문 복구를 고하는 '고유제(告由祭)'가 치러졌다.
숭례문 복원에는 충남 태안의 안면송이 사용되었다. 안면송은 고려시대부터 궁궐이나 선박용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이번 숭례문의 석가래, 기둥, 지붕 등에 사용되었다.

이제 남산 성곽 길에 오른다.

지난 가을 멋진 단풍을 우리에게 보여준 길이지만 이제는 다 지고 앙상한 가지에 잔디는 노랗다.

남산의 높이는 262m이며, 목멱산·인경산·마뫼로도 불렸다.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 때 능선을 따라 도성을 축성했으나 현재는 성곽의 일부만 남아 있다. 남산타워라고도 하는 N서울타워는 산정에 솟아 있는 높이 236.7m의 송신탑으로 사방을 조망 할수 있다.

서울 타워를 당겨 본다,

백범 광장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박대장이 힘찬 발걸음으로 걷는다.

오늘 계획대로 갔더라면 이런 사진이 나왔을텐데

북악산,인왕산,남산이 다 보이는. . . .

계속되는 계단길을 오른다.

잠두봉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인왕산과 북악산도 잡아 보지만 너무 뿌연해서 사진이 답답하다.

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이 우리가 출발한 자하문 고개다.

서울 타워를 다시 잡아보고

봉수대 밑에는 이런 모습이다.

봉수대다.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써 변경의 급보를 중앙에 전달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의 영진에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했던 통신 제도에 사용된 높은 산 위의 봉화 시설로서 군사통신으로만 사용되었다. 조선 세종 때 4군 6진의 개척과 더불어 확립되었으며, 경봉수에서는 변방으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병조에 보고하며, 병조는 승정원에 보고하여 국왕에게 알렸다.

해상과 육상을 구별하여, 무사시에는 1개의 홰를 올리고 왜적이 해안에 나타나면 2개의 홰, 가까이 오면 3개의 홰, 우리 병선과 접전시에는 4개의 홰, 상륙할 때는 5개의 홰를 올렸다.

육지의 경우는 적이 국경 밖에 나타나면 2개의 홰,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개의 홰, 국경을 침범하면 4개의 홰, 우리 군사와 접전하면 5개의 홰를 올리도록 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근대적인 통신 제도가 도입·정착되자 폐지되었다.

부산의 다대포에 왜적이 나타났을 때 한양까지 정보를 알리는 데 약 12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한양까지의 거리는 약 450km이고, 봉수대는 약 12km마다 있었으므로 38개 정도의 봉수대를 거쳐야 합니다. 따라서 한 봉수대에서 신호를 연결하는 데 약 20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팔각정과 타워다. 4시 30분인데 벌써 어둑하고 중국 어느 관광지에 온듯 온통 중국 사람이다.

여기에서 맥주 한캔씩으로 목을 축이고 이젠 하산이다.

정상에는 인왕산으로 옮기기전 국사당 터가 있다.

하산길에 타워를 바라 보니 많은 층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거 같다.

시간이 있었다면 한번 둘러 봤을 텐데. . .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국립극장이 보이네요


급경사 계단길이다.

국립극장 앞을 지나

수표교에 도착한다.

수표교(水標橋)는 청계천의 다리이다. 조선세종(世宗) 2년에 처음 놓였으며,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동에 있었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2005년 청계천 복원 당시 원래 자리에 다시 놓으려고 했으나, 복원된 청계천의 폭과 수표교의 길이가 맞지 않아 옮겨지지는 못했고, 대신 그 자리에는 임시 다리가 놓여 있다.

수표교는 만들어질 당시는 그 곳에 마전(馬廛)이 있어서 마전교(馬廛橋)라 불리었다. 세종 23년(1441년) 다리 앞에 개천(開川, 청계천)에 흐르는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 수표(水標, 보물 제838호)를 세웠다.

이 다리는 물길을 건너는 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홍수의 조절을 위해 수량을 재는 역할을 했던 중요한 다리로,

서울의 풍속 가운데 정월 대보름날 서울 사람들이 밤을 새워 즐겨하였던 답교놀이 때는 이곳이 가장 성황을 이룬 곳 중의 하나였다.


오늘은 너무 늦어 광희문 까지는 다음에하고 장충동 족발집으로 향한다.


역사 탐방으로 생각하고 여러 사적들을 둘러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트레킹이다.

너무 걷는 거리만 생각하고 걷다보니 많이는 걸었지만 보았던건 적은 아쉬움이 있다.

다음 1,2 코스는 시간을 일찍 시작하고 사전 준비도 더해서 재미있는 트레킹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걸었던 지도를 박대장이 만들어 같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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