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형수님과 쏠레김, 소래산이 참여하여 여섯 명이 광화문에 모여
창의문옆 식당으로 이동,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는데 정상과 자락길 2팀으로 나누어졌다.
윤동주문학관에서 자락길이 시작된다. (13:30)
10여분 후 화장실을 지나 자락길이 시작되는데 대부분 데크로 만들어져 걷기에 적당하다.
계곡이 깊은 곳에는 멋있는 출렁다리가 놓여 구경거리를 제공해 준다.
도로옆 전망대를 지나고 조금 더 내려가면 수성동이 나온다.(14:13)
이곳이 청계천의 발원지이면서 도룡뇽, 가재, 버들치, 개구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란다.
수성동은 누상동과 옥인동의 경계에 위치한 인왕산 아래 첫 계곡으로 조선시대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 이라 하여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으며, 수성동의 '동(洞)'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골짜기’․‘계곡’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현재 철거된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 자리에서 복원된 계곡으로
길이는 총 190.8m, 폭은 최대 26.2m, 최소 4.8m에 이르며 하류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돌다리가 1기 남아 있다.
옛날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玉流洞)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물줄기가 기린교에서 합수되어 청계천으로 흘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옥같이 맑게 흐르던 "옥류동 계곡"은 콘크리트로 덮여 주택가로 변했지만,
수성동 계곡은 옥인아파트 철거 후 옛 모습을 되찾아 여전히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고 있다.
수성동은 조선시대 도성안에서 백악산 삼청동과 함께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답기로 첫 손가락에 꼽혔고,
조선후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한경지략』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고,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의 집 터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은 자신이 나고 자라 평생 살던 터전인 백악산과 인왕산 아래 장동(壯洞) 일대를 8폭의 진경,
즉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으로 남겨 놓았는데 인왕산 일대 <수성동>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그림을 보면 거대한 바위 사이로 급한 개울이 흐르고 주변에는 암석이 수려하며,
계곡에는 장대석을 두 개 맞댄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있는데, 선비들은 한가로이 풍경을 즐기고 있다.
오늘날 인왕산 수성동 풍경의 원형이 18세기 겸재 정선의 회화 속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계곡 하류에 걸려 있는 돌다리(길이 3. 8m, 폭 0.9m)는 장대석 2개를 잇대어 만들었는데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고 도성(都城)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 보존된 다리이며,
또한 통돌로 만든 가장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어
약 190.8m에 달하는 계곡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기로 하였다.
이 돌다리는 현재까지 각자(刻字) 등이 발견되지 않아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기린교"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조선후기 역사지리서에 실린 기록들과 겸재의 그림 등을 고려할 때 "기린교(麒麟橋)"로 추정할 수 있다.
무악동으로 내려가는 도로에서 성곽이 끊겨있는데 이 곳에서 정상팀과 조우한다.(14:50)
20분정도 간식시간을 가지고 다시 선바위방향으로 올라간다.
선바위를 내려오면 바로 국사당이다.
인왕사 일주문을 지난다.(15:36)
독립공원을 지나 안산으로 들어간다(15:45)
안산자락길에 들어서 워킹이 시작된다(16:00)
잠시 후 두 명이 코스를 바꾸고, 조금 후 또 다시 두 명이 정상방향으로 코스를 바꾼다.
남은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멀고, 힘껏 걷는 일 만 남았다.
인왕산 능선을 담고
북한산 비봉능선도 담아 본다.
잣나무숲을 지나 메타세콰이어숲 숲속무대를 지난다.(16:50)
모악정옆길을 지나(17:00) 지름길로 갈 수 있는 삼거리를 지난다.(17:06)
이 곳에서 정상을 조망해 본다.
서쪽으로는 기우는 해가 광채를 발산하고 있다.
오늘 코스의 종착지 독립문 앞에 선다.(17:25)
2차 회합은 민회장이 참석하여 특도가니탕으로 마무리하였다.
오늘 트레킹은 인왕과 무악의 각각 정상코스와 자락길을 번갈아 하여
모두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특이한 트레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