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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작성자서정길|작성시간26.06.19|조회수25 목록 댓글 0

여러 선생님께서 퇴고해 주신 부분을 첨삭해 수정한 내용을 AI에게 퇴고해 달라 했습니다. 

이런 글을 보내 왔습니다. (원안 그대로입니다). 묘한 기분이 듭니다.

 

눈높이

서정길

 

초등학교 삼 학년 봄, 나는 엿장수의 눈을 피해 좌판 위 엿가락 두 개를 슬쩍 옷소매에 감추었다. 엿장수는 한쪽 다리를 절었다. 가위 소리를 내며 골목을 돌 때마다 아이들이 뒤따랐는데, 그가 몸을 굽혀 엿을 자르는 틈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회초리도 들지 않은 채 한참을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약한 사람을 속이는 것만큼 못난 짓이 없다.” 그 한마디뿐이었다. 신부님께도 불려가 같은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절름발이 엿장수의 얼굴을 다시 본 적이 없다. 다만 그가 좌판을 펼 때마다 몸을 낮추던 모습, 그 굽은 등만은 지금도 또렷하다. 세월이 흘러 장애인시설에 다달이 후원금을 보내면서도, 나는 가끔 그날의 굽은 등을 떠올린다. 속죄라 여겨온 그 후원이 정말 속죄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일인지, 자신이 없다.

 

오일장을 찾아다니길 좋아하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령 장으로 가는 길이니 지산동 고분이나 둘러보고 도다리쑥국이라도 한 그릇 하자고 했다. 봄나물이 지천인 난전에서 팔순쯤 되어 보이는 노부부가 다투고 있었다. 할머니는 “종일 채소 판 돈 십만 원을 영감쟁이가 술 퍼마시는 데 다 썼다”며 눈물을 훔쳤고, 불콰해진 할아버지는 “이 여편네 동네 망신 다 시킨다”며 고함을 질렀다. 장터 사람들이 지켜보는데도 두 사람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허공에 담배 연기만 뿜었고, 할머니는 팔다 남은 푸성귀를 주섬주섬 거두었다. 그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사정을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할머니의 젖은 눈과, 등을 보인 채 굳어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마침 도착한 후배도 자초지종을 전해 듣더니 그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의 부모님도 그랬다고 했다. 어머니는 형과 자신의 공납금을 마련하느라 밤새 삯바느질을 하고 낮에는 이 집 저 집 품을 팔러 다녔는데, 아버지는 그 돈을 노름으로 탕진하곤 했다. 형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고, 딱한 사정을 안 이웃들의 도움으로 겨우 퇴학을 면했다. 후배는 지금도 해마다 고향 마을을 찾아 그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의 눈에 어린 것이 단지 옛 기억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나는 그가 노부부에게서 자기 부모를 보았는지, 아니면 자신을 거두어준 이웃을 보았는지 묻지 못했다. 다만 그 눈을 보며, 나는 문득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어졌다.

 

식사하는 내내 할머니의 젖은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팔다 만 푸성귀라도 사 줄 것을, 사는 동네라도 물어둘 것을. 그런 후회가 일었다. 그러다 ‘도움을 줄 방도’라는 말이 내 안에서 솟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켕겼다. 노부부를 바라보던 나는 누구였던가. 그들의 다툼 앞에서 내가 느낀 것이 연민이었는지, 아니면 그들을 한 단계 아래에 놓고 자선의 대상으로 가려내는 시선이었는지, 나는 구별할 수 없었다. 마치 도마 위에 푸성귀를 늘어놓듯, 나는 그 두 사람을 내 시야 안에 가지런히 놓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본다는 것, 누군가를 안쓰럽게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 위에 서는 일은 아닐까.

 

OO복지재단에 근무하던 시절, 명절이면 사무실을 청소하는 일용근로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마련했다. 기관장으로서 의례 해야 할 일이라 여겼지만, 그 마음 한쪽에는 베풀어야만 인사를 들을 수 있다는 옅은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만 나눌 뿐, 다가가 안부를 물은 기억은 없다. 퇴직한 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분들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옛 직함을 불러가며 반갑게 인사한다. 명절 선물 때문이려니 짐작했다. 어느 날 자판기 커피를 함께 마시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늘 웃으면서 가까이해 주어 잊을 수 없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귓불이 화끈 달아올랐다. 선물을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웃었던 것, 그뿐이었다.

 

미사 때마다 들었으나 한 번도 몸에 닿은 적 없던 구절이 새삼 다가왔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고령장 난전에서 등을 돌린 노부부, 눈시울을 붉히던 후배,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둔 아주머니의 말, 그리고 그날 내가 피해 다녔던 절름발이 엿장수의 굽은 등까지... 그들은 모두 내 눈높이 아래 혹은 위에 있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렇게 두고 보아왔을 뿐. 엿장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사과할 길도, 그의 얼굴을 다시 확인할 길도 없다. 나는 아직도 그가 좌판을 펼치며 몸을 낮추던 그 자세에, 내 눈높이를 맞춰본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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