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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나무같은 존재 ‘아버지의 이름으로’

작성자이오공감|작성시간14.07.15|조회수216 목록 댓글 1

 

<에세이> 내 인생의 나무같은 존재  ‘아버지의 이름으로’

 

안산시의회 신성철 부의장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실제 모델인 제리 콘론이 향년 60세의 나이로 2014년 6월 22일 지병으로 숨졌다. 콘론은 1974년 영국 길포드 주점에서 발생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폭탄 테러의 용의자로 몰려 15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영국 정부의 재조사 끝에 무죄 석방된 인물이다.

 

콘론은 테러 사건 직후 영국 경찰의 고문과 살해 위협으로 인해 허위 자백을 한 뒤 살인죄로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고로 7명이 숨졌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1975년 실제 범인인 IRA 단원들이 체포돼 재판에서 “콘론은 누명을 쓴 것이고 우리가 진범”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콘론을 구하려는 술책’으로 간주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콘론은 89년 석방되면서 “나는 행하지 않은 범죄 때문에 15년을 복역했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의 억울한 이야기는 ‘입증된 무죄(1993)’로 소설화 됐으며 94년에는 이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개봉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기회가 된다면 책과 영화 한 번은 꼭 볼 것을 추천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1970년 아일랜드는 시기적으로 어수선한 상태였다. 폭탄이 터지는 등 테러가 심했고 늘 군대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때 제리는 철없는 무직의 청년으로 어느날 영국군 저격병으로 오해받아 영국군에게 쫓기고, 그만 폭동을 주도한 인물로 찍힌다. 아들이 걱정되는 아버지는 제리를 영국으로 가는 배에 태운다. 숙모댁을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그는 히피들과 생활하다 아일랜드인을 싫어하는 친구들 때문에 함께 기거를 못하고 런던 시내를 배회한다.

 

바로 그날 한 식당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리는 우연히 주운 매춘부의 열쇠로 그녀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치고 그 돈으로 고향으로 간다. 그뒤 히피 집단에 남아있던 친구가 경찰에 잡혀가고 뒤이어 영문도 모른체 제리도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심문 도중 협박과 폭력에 못이겨 허위 진술서에 서명을 하게 된다. 결국 공범으로 몰린 친구 폴과 함께 경찰의 심문에 못이겨 자신과 히피 집단의 친구들 모두 길포드 식당의 테러범으로 지목된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1976년, 아버지까지 연류되자, 제리는 결국 법정에서 확증도 없이 여론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검사측에 의해 종신형을 받게되고 온 가족이 테러 집단의 지원 조직으로 합류했다는 명목으로 같이 복역을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왜 영화제목이 ‘아버지의 이름으로’인지 느끼게 된다. 제리와 함께 수감된 아버지가 가족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 분투하는 모습과 감옥에서마저 체념하고 일탈하는 아들을 다잡는 아버지로서의 부정(父情)을 끝까지 보여주다가 결국 사망하게 된다.

 

그날 잠 동료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제리를 위로하고자 신문지에 불을 붙여 교도소 담벼락 밑으로 던지며 애도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절로 울컥해진다.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남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무고를 밝히기 위해 변호사와 함께 진실을 밝히며 결국 무죄를 입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크게 두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첫째, 아일랜드의 슬픈 민족사와 그로 인해 좌절하는 민중들의 삶을 그려내었다. 영국 연방의 일원이지만 독립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아일랜드의 의지와 한편으로 체념하며 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드리고 살아가는 슬픈 운명을.........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보면 강대국에 끼여 숨죽여 살고 있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가 교차된다. 어찌 이리 똑같은지, ‘아리랑’이 절로 입가를 맴돈다.

 

둘째, 아버지의 위대함이다. 그러한 체념 속에서 꿈과 희망을 잃은 제리 콘론은 잡범으로 살아가고, 그렇지만 아버지는 길 잃은 아들을 타이르고 제대로 나아가도록 인도하고자 노력하다 결국 숭고한 죽음을 맞아하게 된 것이다.

 

길포드 주점 폭파(Guildford pub Bombing) 사건을 자백한 IRA 대원들은 그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영국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법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로 기소된 전직 형사 세 사람은 1993년 5월 19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찰은 없다.

 

당초 이들을 기소할 때부터 경찰은 정확한 증거 없이 무리하게 수사한 사실이 입증된 셈이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사법체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됐다.

 

석방 후에도 콘론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알코올, 마약 중독과 싸워야 했고,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콘론은 4년 전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감옥에 있는 동안 자살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항상 그 생각을 하고 있고 악몽처럼 나를 괴롭힌다.”고 말했다. 또 “석방 후 몇 년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우는 일 뿐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죄 없이 복역한 트라우마를 쉽게 극복하지 못했다.

 

콘론의 가족은 “그가 얻은 것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했다는 것”이라며 “불의를 향해 감았던 눈을 뜨게 했다”고 말했다.

같지만 다른, 하지만 같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큰 나무’(저자 레오 버스카글리아)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미국의 교육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 에세이로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로 평생 자기 삶을 개선하려 의욕적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지혜와 사랑을 소개하면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과 존재, 의미,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본문 내용 중 『나는 꽤 어린 나이에 이미 부모님도 나와 똑같이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세상이라는 드넒은 광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평범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 하나의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 그렇기에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지만 언제나 새롭게 일어나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 아버지는 그렇게 사셨고, 나는 그게 올바로 사는 길이라는 걸 배웠다.』

 

보통 사람 눈에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해질 수 없는 아버지. 너무나 평범해서, 때로는 연약해보이기까지 했던 분이 왜 이렇게 내 일생을 지배하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 존재하는 것일까.

 

아버지의 그 무엇이 이토록 강렬하게 나를 움직이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 삶의 대부분을 움직여 왔으면서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될 것을 알기에, 나는 '아버지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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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낙엽 | 작성시간 14.07.15 정말 글 잘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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