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17827
*사사(師事) : 스승을 섬김. 또는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
내가 바닷가에 있는 깡촌에서 모 중규모 도시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시험 삼아 들어가본 동아리에 엄청난 사람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영감이 강한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심령체험은 꽤 많이 해왔는데 대학 수험 때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난히 많이 가위에 눌리고 여러가지 무서운 일들이 겪은 참이었다.
그런 이유도 포함해서 오컬트에 흥미가 급격히 높아졌던 시절이라서 동아리 사람들이 질색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즐겁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떤 선배가 "너, 괜찮네." 라고 말을 받아주었다.
그 선배는 대학원생으로 불교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보통은 그다지 동아리에 참석하지 않지만 신입생 환영회라고 불려온 것 같았다.
상급생이나 쭈뼛거리는 입부 희망자, 딱 봐도 음흉한 목적으로 온 것 같은 경박해 보이는 견학자 등 사람들이 넘쳐나는 부실 안에서 그 선배는 홀로 냉랭하게 한 걸음 물러난 위치에서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언가를 살피는 것 같은 시선이 왠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처음부터 신경 쓰였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그 선배가 스스럼 없이 다가왔기에 놀랐다.
그로부터 내가 체험한 다양한 괴기담을 이야기하니 그 하나하나를 듣고 즐거운 듯 미소를 지으며 "그건 재난이었겠네." 같은 말을 하며 평가를 해주었다.
다른 신입생들은 상급생들에게 끌려서 학뒤라고 불리는 학생용 정식점 거리 같은 곳으로 끌려갔지만 나랑 그 선배만은 다른 곳으로 갔다.
솔직히 같이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망설였다.
다른 부원들과 떨어져서, 동아리 안에서도 붕 떠있는 존재라는 분위기를 슬금슬금 풍기는 선배와 둘이서 행동하는 것은 나중에 그 동아리에서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될지 정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뭐 좀 먹을까."
학내 주차장에 세워둔 선배의 경차에 타니 그는 그렇게 물었다.
이미 날이 져서 주변도 어둡다.
"아무거나 먹을게요."
그렇게 대답하니 "그럼 패밀리 레스토랑이군." 하고 묘하게 기쁜 듯 안전벨트를 메었다.
그로부터 선배는 내게 그밖에도 어떤 무서운 체험을 한 건지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갔다.
거기는 부외에 있는 가스토*였다.
차에서 내린 뒤 간판을 보며 "왜 여기인가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선배는 불쑥 말했다.
(*역자 :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중 하나.)
"여기는 말이지, 나온다고. 내가 좋아하는 게."
패밀리 레스토랑 자체를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시골 촌놈인 나는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온다니, 나, 나오는 건가요?
처음부터 예약을 해두었다는 듯이 점원의 안내도 받지 않고 선배는 한 테이블로 향했다.
나도 따라가서 맞은편에 앉았다.
메뉴도 보는 둥 마는 둥 적당히 주문한 요리가 와서 젓가락을 집는 순간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신호를 주면 머리 숙여. 발이라면 보일 거야."
이쪽을 보지도 않은 채 스파게티를 후루룩 먹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듣고 밥맛이 날 리가 없다.
대체 무슨 농담이야.
답답한 기분으로 접시 위에 있는 밥을 깨작깨작 먹고 있을 때 갑자기 귀울림이 생겼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톱니바퀴투성이인 커다란 기계가 갑자기 작동한 것 같은 그런 감각.
나온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걸 대조해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공간의 기압이 바뀌듯이 혹은 자기장이 바뀌듯이 뭔가 평소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식은땀이 나아서 젓가락을 쥔 손이 멈추자 선배가 말했다.
"야, 숙여."
황급히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잠시 조용히 있으니 시야 오른쪽 끝 테이블 바로 옆에서 새하얀 다리가 슥 지나갔다.
현실감이 없었다.
그 발은 바닥을 밟고 있지 않았다.
갑자기 선배가 어깨를 쳐서 정신이 들었다.
"봤냐?"
선배가 냅킨으로 입 근처를 닦으며 그렇게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지금 그게 점원의 발이 한 사람 몫만큼 더 많다는 이 가스토의 괴담이야. 나는 발 말고도 전부 보이지만. 뭐 얼굴은 보지 않는 게 나을거야."
그렇게 말하며 태연히 물을 마신다.
이 사람은 대체 뭐야.
"빨리 먹어. 나 미움받고 있으니까."
나도 꽤 유령은 보아온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 사람은 엄청난 사람이라는 걸 이 때 확실히 알았다.
그 후 내가 식사를 끝낼 때까지 새하얀 다리는 우리 테이블 주위를 3번 왕복했다.
가스토를 나온 우리는 괴담을 주고받으면서 지나가면 반드시 안개가 끼는 산길이라거나 선배가 좋아하는 절 순례에 끌려가는 등 이미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게 되었다.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일 것이다.
늪인지 못인지 옆에 뻗어있는 논두렁길 같은 곳에서 선배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주변에는 제대로 된 불빛도 없었다.
차의 시동을 끄고 라이트를 끄니 주변에 정적이 찾아왔다.
"저기."
쉿...
손가락을 입가에 대며 선배는 논두렁길 너머를 응시했다.
뭔가 보이는 건가 싶어서 나도 앞유리창에 얼굴을 갖다대어 보았지만 캄캄한 시야 너머에 소방서인지 뭔지 붉은 램프만이 묘하게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숨을 죽이고 있으니 밤중에 자신의 몸이 가라앉는 것 같은 감각이 들어 불안해졌다.
봄이라고 하지만 심야는 기온이 꽤 내려가 추워서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차 바로 옆에 누군가가 지나갔다.
사람인가.
아니, 그건 과연 사람인 걸까.
어둠 속을 검은 그림자가 걸어간다.
인상이나 옷차림도 명확하지 않다.
나는 겁을 먹고 창문 너머로 빤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런 시간에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이상한데.
이런 시간에 논두렁길에 세운 차가 기분 나쁘지 않을 리 없는데.
그런데도 그 차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차 안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 자는 천천히 똑바로 나아갔다.
멀어져서 어둠에 익은 밤눈으로도 그 그림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깊이 숨을 토해내고 물었다.
"저건 뭔가요?"
선배는 핸들을 양손으로 쥐고 체중을 실은 채 약간 졸린 듯 대답했다.
"글쎄다."
그 말에 위화감을 느끼고 나는 재차 물었다.
이런 곳에 차를 세우고 일부러 기다리면서 그걸 모를 리가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선배는 뜻밖의 말을 했다.
"여기는 영도(霊道)야."
엇. 오한이 들었다.
계속 느끼고 있었던 이상한 감각을 말로 들어 버린 것 같다.
"영도라는 말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후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겨우 반응했다.
"어째서요?"
"길이라는 건 왕래라는 말이 있듯이 오고가는 곳이잖아."
"그게 어쨌는데요?"
"본 적이 없어."
그렇게 말한 선배는 앞유리창 너머 검게 문드러진 것 같은 논두렁길 너머를 빤히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녀석을."
나는 숨을 멈췄다.
밖에는 무언가를 고하는 산새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여기뿐이 아니라 영도라고 불리는 곳은 전부 그래. 그래서 길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요?
그런 말이 입속에 머물렀다.
선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구멍이지." 라고 말했다.
구멍.
떨어지는, 돌아올 수 없는 구멍.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내가 조금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갑자기 불안정한 공간에 내던져진 것처럼.
거기서는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세계와 조금도 다름없는, 그래도 어딘가 조금 다른, 그런 이계와 겹쳐져 있었다.
우리가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똑같은 것이 구멍처럼 입을 열어 조용히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런 상상에 몸서리 치면서 조수석 시트에 깊게 파묻었다.
"마지막 녀석뿐이냐."
갑자기 선배가 그렇게 물었다.
마지막? 그걸 들은 순간 나는 자신이 착각을 했다는 걸 알았다.
온몸에 소름이 더 크게 돋았다.
선배는 이렇게 물었다.
보인 것은 마지막으로 지나간 녀석뿐이냐?
농담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선배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는 훗 하고 코웃음을 치듯이 말했다.
"뭐 됐어."
선배한테는 보인 것인가.
차를 세우고 계속 숨을 죽인 동안 쥐죽은 듯이 조용한 암흑 속에서 창밖을 지나는 무수히 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나는 차갑고 쓸쓸한 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그 공간을, 그는...
아침해가 산 위에서 얼굴을 내밀 적에 나는 그 기묘한 드라이브로부터 겨우 해방되었다.
"그럼 잘가."
선배는 졸린 듯이 손을 채 다 올리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었다.
창문이 닫히고 기름을 자주 안 갈아넣은 듯 새하얀 연기를 뿜으며 낡은 경차가 새벽녘 속에서 떠났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선배를 스승으로 섬기게 되었다.
기묘한 것, 무서운 것, 기분 나쁜 것, 슬픈 것.
그 모든 것이 우리 일상의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럼 가볼까."
그가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한 순간, 일상의 바로 옆으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인생에서 한 번밖에 없는 나의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그런 것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실종할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