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0991
스승은 장기를 잘 둔다.
물론 장기 스승은 아니다.
대학의선배로 오컬트 마니아에다가 괴짜이다.
나도 물론 오컬트를 좋아했기에 스승님, 스승님 부르며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가을에 스승이 장기를 둔다는 걸 알고 승부를 걸었다.
나도 꽤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장기말 하나 빼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1주일 후 PC의 장기 소프트에 매달려 감을 살린 나는 재도전을 위하여 스승의 하숙집에 갔다.
결과 다소 선전했지만 역시 장기말 하나 떼도 당해버렸다.
감상전(感想戦) 한중간에 스승이 툭 내뱉었다.
"난 망령과 두었던 적이 있어."
평소 괴담보다 어쩐지 재밌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귀를 기울였다.
"편지 장기라고 알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는 보통 길어도 몇 시간 안에 결판이 난다.
1수 30초 등으로 시간을 제한하면 몇 십분 안에 끝난다.
그런데 편지 장기라고 하는 것은 판 앞에서 서로 마주 보지 않고 서로 다음 수를 편지에 써서 교환하는 정말로 긴 장기다.
풍류가 깊어 젊은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런데 스승의 할아버지는 그 편지 장기를 하지와 동지 사이클로 했던 것 같다.
하지에 다음 수가 도착해 동지에 돌려주며 수를 보낸다.
1년에 2수밖에 진행되지 않는다.
장기는 1 승부에 100수 정도 걸리므로 끝날 때까지 50년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죽어버리잖아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고 할아버지는 5년 전에 죽었다고 했다.
전시중이다.
전선에 나간 할아버지는 오락이 없는 생활 속에서 소대에서 장기를 둘 수 있는 단 한 명의 전우와 종이를 만든 조그만 장기판과 말로 질리지도 않고 장기를 두었던 것이다.
그 전우가 부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두 명은 주소를 서로 가르쳐주고 한때의 우정의 증표로 전쟁이 끝나면 편지로 장기를 하자고 서로 맹세했다고 한다.
전우는 홋카이도 출신으로 사는 곳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전쟁이 끝나 제대한 조부는 약속대로 동지에 편지를 보냈다. '2육보'라고 써서.
하지에 '3사보'라고 쓴 편지가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울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1년 2수라는 장기는 계속되어, 할아버지는 하지에 도착한 수를 되받아칠 수를 반 년 걸쳐 생각해 동지에 보낸 수에 어떤 수가 되받아쳐올지 반 년 걸쳐 예상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5년 전 그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장기는 100수에 가까워졌지만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다.
스승은 할아버지로부터 장기를 배우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바보같이 우직한 노인들의 생애에 걸친 놀이가 중단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편지가 도착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할아버지의 전우였던 장기 상대에게 연락을 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슬퍼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이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다음 수를 내려고 생각했었다.
수신인은 얼마 전부터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신 쓰도록 했기에 스승은 조부의 필적을 흉내내 '2사은'이라고 쓰는 걸로 충분했다.
마침내 100수를 넘어 승부가 보였다.
"어느 쪽이 우세한가요?"
내가 묻자 스승은 복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17수로 막힌다."
이쪽의 승리라고 한다.
2년 반 전부터 판이 보였지만 그런데도 상대는 최선수를 내어온다.
봐줄까 생각도 해봤지만 저쪽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그런데도 투료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이 놀이가 도중에 내던져도 될 놀이가 아닌 그들 사이의 증표 같아서 가슴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그 기보야."
스승이 장기판에 첫 수부터 가리켰다.
2육보, 3사보, 7육보...
야구라(矢倉)나 보긴(棒銀)이라고 하는 낡은 전법으로 시작된 장기는 1수 1수 사이에 긴 시간의 흐름이 확실히 느껴졌다.
나도 아직 장기는 초보다.
지금은 분명히 나쁘다고 판단되어 이어지지 않을 것 같던 수가 헤매지 않고 다른 수를 이끌어서 몇십 수 후 그것을 보완하는 새로운 수가 나타난다.
전쟁 후, 진보를 이룬 장기의 역사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7사보 찔러, 동은, 6칠마...
국면은 종반에 이르러 승부는 최고조에 달해갔다.
"여기서 내가 대신해서 2사은으로 갔어."
스승은 거기서 한 순간 수를 끊고 또 동마로 했다.
국면이 어려워서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다음 상대의 한 수가 투료가 아니었고 더 이상 이만한 게 없을 정도로 최선수이면서도 살아날 수 없는 한 수였을 때, 난 상대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어."
할아버지와 반세기에 걸친 1국을 둔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예상치도 못한 스승의 이야기에 나는 몰입했다.
불경한 괴담과 방약무인한 행동이야말로 스승의 원래 모습이었을 것이다.
경험상 그 이야기에는 대부분 싫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주소도 이름도 알고 있고 조사하는 것은 간단했지."
내가 상상하고 있던 것은 80세가 넘은 노인이 낡은 집에서 옛친구가 보낼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죽었었어."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 곧바로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스승이 상대를 생각해 할아버지의 죽음을 숨긴 것처럼 상대방도 또 스승의 할아버지를 생각해 죽음을 숨겼던 것이다.
요컨대 서로를 생각하는 망령끼리 장기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 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죽은 것은 1945년 2월. 전장에서 진 상처가 악화되어 일본에 돌아가는 선상에서 죽었다고 해."
움찔했다.
갑자기 잔혹한 이야기가 되어 갈 것 같아서.
그럼 스승의 할아버지가 편지 장기를 하고 있던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망령과 장기를 둔 적이 있다' 라고 하는 스승의 한 마디가 머릿속을 맴돈다.
스승은 새파래진 나를 보고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후 저 쪽 집과 연락했어."
이쪽의 모든 것을 분명히 털어놓았다고 했다.
그러자 저 편의 가족으로부터 긴 편지가 도착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할아버지의 전우는 선상에서 죽는 순간 가족 앞으로 보낼 편지를 썼다.
그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나는 이제 죽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나에게 편지를 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장기의 수가 쓰인 얼간이 같은 편지가 있다면 아무쪼록 내 죽음을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내 이름으로 응답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장기를 하고 있는 걸 무엇보다도 기대하고 있는 멍청하고 유쾌한 녀석이다.'
스승은 말하면서 반면을 진행시켰다.
4일각
3이향
동은 완성되지 않고
동금
그 동금을 모퉁이로 완성되었을 때 눈물이 나왔다.
스승이 나를 울린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앞으로 17수, 노인네들의 공양을 기리기 위해 내고 있어."
스승은 손가락을 말에서 떼고 "여기까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