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공포방

[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초능력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63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1096

대학시절 영감이 이상하게 강한 동아리 선배를 만나고 나서 쓸데없이 심령 체험을 많이 하게 된 나는 오컬트에 푹 빠진 생활을 보고 있었다.

난 한 때 초능력에 흥미를 가져 ESP 카드 등을 사용해서 반쯤 농담으로 ESP 능력개발에 힘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

스승이라고 존경하는 그 선배는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인지 초능력이라는 걸 싫어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니 초능력대결! 이라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러시아 소녀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상자 속에 밀봉된 종이에 쓰인 내용을 알아맞춘다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투시였다.

소녀가 눈을 가린 다음에 게스트로 나온 예능인이 종이에 적었으므로 사전에 알아차릴 리가 없는데 소녀는 정확하게 생쥐가 그려진 그림을 알아맞추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스승이 말했다.

"저런 건 투시가 아니야."

눈을 엄중히 가리는 걸 보았는데 그런 말을 하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라고 묻자 스승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건 텔레패스(telepath)라면 쉽게 할 수 있어."

허를 찔렸다.

요컨대 정신감응(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종이에 내용을 적은 게스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저런 재주는 식은 죽 먹기라는 소리다.

아무리 철저하게 눈을 가려도 상자 속에 넣어도 그걸 쓴 사람의 생각을 읽으면 그게 뭔지 알 수 있으니까.

스승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투시능력자들은 전부 다 사기꾼이고 조금 텔레파시 능력이 뛰어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재밌어서 웃었다.

스승은 울컥했지만 내가 웃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러시아 소녀 곁에서 통역하던 남자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기 초능력 재주로 몇 번이고 업계에서 바닥을 드러낸 유명한 사기꾼이다.

나는 이번 투시실험도 알고 있다.

가끔 "계속해도 괜찮아?"라면서 소녀의 몸에 접촉한다.
그 접촉으로 그림의 정보를 암호화시켜서 전해주는 것이다.

예전에 잡지에서 읽었던 적이 있는 그의 수법이다.

마츠오 뭐시기 씨가 "거기에 있을거면 통역도 눈을 가려라."라는 심술궂은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소녀가 텔레패스라고 믿고 있는 스승에게 일부러 이 방송의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왠지 불쌍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스승은 내 하숙집에 찾아와서 '오늘은 복수해주려고 왔다.' 라고 말했다.

그 방송이 나간 후에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사기가 폭로되어 화제가 되자 스승의 귀에도 들어간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음에도 가르쳐주지 않고 바보 취급했다는 것도...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방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은 가방에서 두꺼운 종이로 만든 상자 두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쪽은 상자 A, 이쪽은 상자 B라고 하자."

똑같은 상자 두 개에 그렇게 적어놓았다.
뭐가 시작될까 두근거렸다.

"A 상자에는 천 엔이, B 상자에는 만 엔이 들어 있어. 이 상자를 너에게 주지."

그렇지만 이라고 스승이 말을 이었다.

"돈을 넣은 건 실은 예지능력자이고 만약 네가 A, B 중 어느쪽을 고른다고 예지했다면 각각 천엔과 만엔이 정확히 들어있어. 하지만 만약 네가 양쪽 상자를 고르는 욕심쟁이라고 예지했다면 B상자에는 만엔이 들어있지 않아. 자, 어떻게 고를래?"

그렇게 말하면서 스승은 선택지를 주었다.

"1. A 상자를 고른다. 2. B 상자를 고른다. 3. 양쪽 다 고른다. 아, 그리고 4. 어느 쪽도 고르지 않는다."

어떤 게임인지 잘 모르겠지만 생각을 정리했다.
요컨대 B만 선택하면 확실히 만 엔이 들어오니까 2의 상자 B를 고르는 게 이득 아닐까.

스승은 얼굴을 찡그리며 '정말 그걸로 할래?' 라고 물었다.

잠깐, 냉정하게 생각하자.

"그 예지 능력자는 진짜인가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스승은 "질문은 안 받아." 라고 할 뿐이었다.

상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일단 돈이 있으니까 얼마가 있든 양쪽 모두 가지면 되잖아?" 라고 내 안에 있는 악마가 속삭인다.

잠깐, 잠깐.
예지 능력이 진짜라면 양쪽 모두 선택하면 B는 비어있으니 A의 천 엔밖에 들어오지 않잖아?

내 안에 있는 천사가 속삭인다.
예지 능력이 가짜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생각해서 B에 돈이 들어있지 않는데 B만 선택해버리면 이득이 없다고.

악마가 다시 속삭인다.

그렇다.
애초에 예지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애매모호하다.
눈앞에 있는데 그 상자의 내용물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돈을 넣는다는 행위는 벌써 끝난 과거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상자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3번 상자를 양쪽 다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3' 이라고 말하려다 단념했다.
이것은 게임이다.
어차피 스승이 준비한 장난이다.
하마터면 진지해질 뻔했다.

아마 3을 선택하면 상자 B는 텅텅 비어있고 '거봐, 욕심을 부리니 천 엔밖에 못 얻었지.' 라고 웃을 것이다.

어쩐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2의 B만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밖에 선택하지 않았는데 만 엔은 들어있지 않아' 라는 결과도 생각했다.

그러나 3의 '양쪽 다'를 선택해두면 최악의 상황이라도 천 엔은 손에 들어온다.

"고민하고 있군."

스승이 즐거운 듯 끼어들었다.

"한 가지 힌트를 주지. 네가 만약 투시 능력, 또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래?"

나왔다.
또 이상한 조건이 나왔다.
예지 능력이라고 가정한 다음에 한층 더 다른 가정이 나오니까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망설이고 있으니 스승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며 웃었다.

"투시라고 하는 것은 요컨대 내용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상자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보면 훌륭한 투시 능력이 되는 거야."

그런 치사한 방법을 쓸 수 있는 거냐고 따졌지만 스승은 "그게 투시 능력이니까." 라고 대꾸했다.

스승이 괜찮다면 나도 상관없다.

"텔레파시 쪽은 더 간단하지. 넣은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어쩐지 점점 게임과 상관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전 초능력자가 되도 괜찮나요?"

"괜찮아. 다만 투시 능력인지 텔레파시인지 둘 중 하나를 골라. 하지만 텔레파시는 넣은 본인이 여기 없기 때문에 제외할까."

본인이 없다고?
불길한 예감이 든다.

"혹시 스승님 여친인가요?"

그렇게 물으니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내용물은 몰라." 라고 말했다.

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스승의 여친은 이상하게 감이 좋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지 비슷한 걸 할 수 있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이건 진짜잖아요!"

나는 눈앞에 상자로부터 떨어졌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만약, 만약에 정말, 진짜로 스승의 여친이 정말로 진짜 예지 능력을 가진 경우 이것은 진짜...

난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 사람에게 테스트 피실험자로 도와준 일이 있다.

너무 잘 맞아서 기분 나빠졌기 때문에 최근에는 도와주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 투시 능력을 사용할 거냐?"

스승은 커터칼을 가져와 상자 B에 갖다대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보다 이야기에 담긴 진지함이 달라진다.

예지 능력이 진짜라고 했을 경우 양쪽 다 선택한다면 B 상자 내용물이 거슬러 올라가 소멸하는 게 가능할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일도 모두 예지에 포함되어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것도 완전히 정해져 버리는 것일까?

'소가 어느 쪽 풀을 먹을까는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런 불확정성 원리 같은 까다로운 물리학 예제가 떠오르지만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이 후회스럽다.

내가 고뇌하면서 선택하려는 것을 과거에서 엿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내가 결정하는 것과 동시에 상자에 돈을 넣는다고 하는 불확정적인 과거가 정해지는 것인가?

그 '동시에'는 뭐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서워진다.
인간이 접근해도 좋은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자 B는 아무 일도 없이 거기에 있을 뿐인데.
그리고 그 상자를 선택하기 전에 안을 들여다본다고 하니까 어쩐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무릎에서 힘이 빠지고 식은땀이 흘러나와 나는 쥐어짜듯이 대답했다.

"4. 어느쪽도 선택하지 않는 걸로 할게요."

스승은 히죽 웃으며 칼날을 집어넣었다.

"전제가 하나 부족한 걸 깨달았어? 다른 한쪽을 선택하는 경우는 각각 돈을 넣고 양쪽 다 선택하는 경우는 A밖에 넣지 않는다. 그럼, 어느쪽도 선택하지 않는다고 예지하고 있었을 경우는?"

결정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이 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몰라.

스승은 그렇게 말하면서 상자 두 개를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나는 이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