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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철탑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1943

"뭐라고요?"

스승이 이상한 말을 해서 무심코 반문했다.

"그러니까 철탑 말이야."

대학교 1학년 가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동아리 선배이기도 한 오컬트 스승에게 오컬트를 기초부터 배우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때도 철탑이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 하고 되물었던 것이다.

"철탑. 철.탑. 철의 탑. 아이언... 뭐지, 파일론(pylon)? 어쨌든 본 적 없냐. 한밤중 위를 바라보면 있으면 꽤 있어."

스승이 말하기를 밤에 교외에 있는 철탑에 가면 인간의 영혼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째서 유령은 철탑에 오르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들기 전에 유령이 철탑에 오른다는 이야기 자체를 들어보지 못했다.

머릿속에 있는 괴담들을 정리해봐도 유령과 철탑이 연관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스승은 진지한 얼굴로 그게 당연한 듯이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장소라서 그런 게 아니라 철탑 자체를 좋아해서 영혼이 모이는 거라고 한다.

근처에 철탑이 있었는지 다시 떠올려보니 어렸을 때 근처에 있던 철탑이 떠올랐다.

저녁 때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옆에 우뚝 솟은 높은 철탑과 송전선.

해가 질 무렵에는 그 위용어린 자태가 기분 나쁜 실루엣으로 변하여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밤에 본 철탑은 이상하리만치 무섭다.
그러나 거기서 영혼을 본 적은 없었다.
스승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궁금증이 치솟아서 나는 근처 철탑을 찾아 자전거를 몰았다.

막상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정확히 대답할 자신은 없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멀리서도 철탑은 아주 잘 보였다.

주택가를 빠져나와 강가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발견한 뒤 근처에 자전거를 세우고 철망에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올려다보니 송전선이 없다.
너덜너덜한 표지판에 'OX선-12' 같은 게 적혀 있다.
아마 이설 공사로 송전 루트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검붉게 녹이 슨 탑은 무섭다기보다는 어쩐지 쓸쓸해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근처 편의점이나 책방에서 시간을 때우고 다시 철탑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지자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사람이 적게 다니는 교외에 있는 철탑을 올려다보니 한층 더 커보였다.

녹이 슬어 붉어진 철탑이 지금은 검게 보인다.
암회색 구름에다가 철탑 모양으로 검은 구멍을 뚫어 놓은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서 출입 금지 표시가 붙어있는 철망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송전선이 없는 철탑은 그 뼈대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며 기묘한 신음을 내고 있었다.

주위에는 불빛이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철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컬트는 끈기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나는 새벽 3시까지 눌러앉았다.
나온다는 소문이나 일화도 없는 장소에서 애초에 유령이 보일까 의문도 들었다.

뼈대에 그림자가 앉아있는 것 같은 이미지를 계속 상상했지만 뭔가 보인 것 같아 눈을 떠도 역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걸 보려고 한 긴장감 때문에 피로가 쌓여서 날이 밝기 전에 물러갔다.

다음날 즉시 스승에게 보고하자 스승이 묘하게 기쁜 얼굴을 했다.

"응? 그 철탑에 간 거야?"

왠지 자신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나왔다니까요."

그렇게 말하자 스승은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러니까 가는 거야."

영문도 모른 채 낮에 함께 그 철탑에 갔다.
밤에 봤던 기분 나쁜 분위기가 사라진 채 그저 녹슨 철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스승이 턱을 문지르면서 이곳은 유명한 심령 스팟이었다고 말했다.

몸에 기름을 붓고 자신의 몸을 불로 태워 자살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밤중에 이 철탑 앞을 지나가면 "뜨거워, 뜨거워" 하면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그 근처에 검은 얼룩이 있었어."

철망 너머로 스승이 가리키는 그곳에는 지금은 지워졌는지 안 보인다.

뭔가 느껴지냐고 물어봤지만 스승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나도 본 적이 있었어."

자살자의 영혼을 여기서.
그렇게 말하는 스승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없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렇구나. 어째서 철탑에 오르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햇빛을 받아 혼탁한 빛을 내는 철탑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물어봐도 비밀이라고 대답했다.
스승이 마음대로 세우고 마음대로 결론을 도출한 명제는 그걸로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철탑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어하는 영혼이 현세를 떠나기 위해서 '철탑' 이라는 하늘에 뻗은 상징적인 건축물을 오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긴 계단이나 고층빌딩에서는 그러지 못 할 것이다.
그 너머로 인간의 세상과 이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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