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2149
그 소문을 처음 들은 건 인터넷이었다.
지방에 있는 포럼에 드나들다보면 허허실실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죄다 시시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시시한 이야기들 가운데 '검은 손' 에 관한 소문이 있었다.
검은 손과 만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검은 손을 1주일 간 들고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보 아냐?"
그 소문을 들려주자 그 사람은 그렇게 내뱉었다.
오컬트 스승이 그렇게 딱 잘라 말하니 실망스럽다.
"뭐 불행의 편지 같은 거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라고 못박아뒀다는 건 1주일 안에 뭔가 일어난다는 말이잖아."
체인 메일(chain mail)이 유행하던 시기였지만 'XX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라는 틀에 박힌 편지들과는 조금 달라보여서 들려주었던 건데 스승은 이런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분간 내 머릿속에서 '검은 손' 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흔한 체인 메일과 그 시작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메일을 읽으면" 이 아니고 "검은 손과 만나면"
즉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강제적으로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별도로 주어진 것이다.
무서워하려면 먼저 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검은 손과 만나면"
나는 만나고 싶었다.
검은 손을 얻었어.
그 한 문장을 어떤 스레에서 봤을 때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평소에 가지 않는 게시판을 드나든 건 그곳이 '이 지방에 관한 소문' 을 다루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손' 에 관한 소문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니악한 오컬트 포럼에 흠뻑 빠졌던 나에겐 조금 수준이 낮은 것 같아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지만...
"보여줘. 보여줘."
그런 레스가 달리고 잠시 후 "좋아." 라는 답변이 달렸다.
그 온쿄(音響)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은 몇 번이나 오프라인 모임을 여는 행동파인 듯 "그럼 내일 토요일 늘 모이는 곳으로" 라는 글을 적으면서 '검은 손 오프라인 모임' 을 열기로 결정했다.
신입인 나는 황급히 과거 로그를 읽고 늘 모이는 곳이 시내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걸 확인한 후에 "저 처음인데 가도 괜찮나요?" 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는 아직 이런 오프라인 모임이 익숙하지 않아서 긴장되었다.
지각해 버려서 가게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가니 다른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여."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사에 사과로 대답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니 묘하게 거북해졌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서 짐작은 했지만 역시 어리다.
아마도 대부분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일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고등학생이었지만 1살이나 2살 차이가 나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생물 같았다.
선배 행세하는 건 싫어서 여기서는 내가 연상이라는 걸 들키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래서 이거 말인데."
온통 검은색인 옷을 입은 16, 7살 정도 되는 여자애가 그렇게 말을 꺼내며 상자 같은 걸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
그런 탄성이 터져나온다.
온쿄라는 닉네임을 가진 그 애는 생색 내지도 않고 테이블 한가운데 상자를 밀어냈다.
"학교 선배에게 받았는데 가지고 있었더니 저절로 소원이 이루어져서 말이야. 혹시 필요한 사람 있어?"
뭐? 주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얼굴을 마주 본다.
"검은 손이라는 거 정말로 새까매? 미라로 되어 있었어?"
그 중 한 명이 선뜻 뚜껑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내 오른쪽 옆에 앉아 있던 얼굴이 갸름하고 머리를 땋은 여자애가 느닷없이 그 손을 잡았다.
"그만해. 이거 위험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아파라... 뭘 그렇게 정색하는 거야?"
손을 잡힌 사람은 팔을 뿌리치면서 노려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영이 지나갔다.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에이, 그럴 때는 '천사가 지나갔다'* 라고 해야지." 라는 말이 나오고 잠시 영이냐 천사냐 논쟁이 이어졌다.
그 후에 온쿄가 말했다.
(* 천사가 지나가다 : 대화나 좌담이 끊어지고 좌중이 조용해짐.)
"그래서 아무도 필요없어?"
또 조용해졌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뭐야 이 꼴은
검은 손과 만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검은 손을 1주일 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소문이 뜻하는 바가 뭔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그것도 그 소문이 사실이고 이 상자 내용물이 진짜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배짱 없는 녀석들.
나는 달라.
왜 산에 오르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잖아.
"제가 가져가도 되나요?"
모두 나를 바라보다가 온쿄를 바라본다.
"괜찮아. 멋지네. 가지고 가려면 상자 채로 가져가. 상자를 열면 안 되는 모양이니까."
온쿄가 내 쪽으로 상자를 밀면서 싱긋 웃었다.
"1주일 간 들고 있어야 해. 그래도 결혼 반지라도 사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몰라."
그 후에는 평범한 오프라인 모임이 진행되어서 시시하고 지겹고 쓰잘머리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무도 상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모인 사람들일 텐데.
해산 후 상자를 들고 가게를 나가려는 나에게 아까 머리를 땋은 여자애가 다가왔다.
"저기, 그만두는 게 나아. 그거 정말로 위험해."
이 여자 뭐야.
영감소녀 나부랭이인 건가.
질색하는 내 귓가에 억지로 입을 갖다대고 속삭인다.
"나 누가 나를 가리키면 알 수 있어. 등뒤에서 가리켜도 말이야. 그런 경우 없어?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내게 손가락질 했을 때 무척 불쾌해. 그런데 아까 그 상자가 나왔을 때 장난 아니게 오싹했어.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그러고 보니 세로로 긴 상자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을 때 한쪽 끝이 이 애를 향하고 있었다.
검은 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묘하게 차가운 숨결이 귀에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손가락질 하는 건 상자뿐만이 아니야. 등뒤에서 누군가가."
거기까지 말하더니 머리를 땋은 여자애는 숨을 집어삼키고는 도망치듯이 떠나갔다.
가게 안에 홀로 남겨진 나는 상자를 안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툭 메마른 소리가 들리면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조금 움직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분위기는 대체 뭐야.
혹시 나 후회할만한 짓을 저지른 건가.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가게 밖에서 검은 원피스를 입은 온쿄가 유리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로 돌아와서 상자를 다시 바라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검은 손에 관한 소문은 최근에 퍼졌을 텐데 이 상자는 낡다.
낡아도 너무 낡았다.
불에 그을린 나무 상자 뒤에 서명이 새겨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이었다.
이 안에 정말로 검은 손이 들어 있는 걸까.
소문에는 검은 손이 상자에 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온쿄라는 여자애에게 짐을 떠맡긴 기분이다.
그래도 그 애는 귀여웠지.
무심코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아마도 오늘은 오컬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게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남자들은 온쿄를 보고 싶어서 참가한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상자를 열어달라는 요구 정도는 했을 것이다.
정말로 검은 손이 보고 싶어서 모인 거라면.
나는 뚜껑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에 심상치 않은 마음이나 감정들이 교차했다.
뭐, 굳이 지금 확인할 필요는 없지.
시간은 1주일이나 있으니까.
나는 요컨대 도망친 것이다.
나는 상자를 책장 위에 두고 읽다 만 만화를 펼쳤다.
그로부터 이틀 간은 별탈 없이 지나갔다.
3일째, 스승과 같이 심령 스팟에 가서 또 질릴 만큼 무서운 꼴을 당한 뒤 돌아왔을 때 방문을 여니 테이블 위에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건 반칙이다.
방은 안전지대.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심령 스팟 순례 같은 건 못 한다.
두근거리면서 어제 책장에서 테이블 위로 상자를 옮겼는지 생각해보았다.
무의식적으로 했다면 모를까 그런 기억은 없다.
애써 냉정해지려고 하면서 나는 상자를 책장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깊이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4일째 밤.
열이 조금 나서 일찍 자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니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커다란 이미지와 자그만 이미지가 교차하는 것 같은 엄청 멀어졌다가 엄청 가까워지는 것 같은 주체와 객체가 구분이 안 가는 느낌.
어렸을 적 열이 날 때마다 느꼈던 그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끙끙대던 가운데 갑자기 얼굴 일부가 서늘해져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오른쪽 뺨을 더듬었다.
거기만 아이스크림을 갖다댄 듯 차가웠다.
나는 몸이 차가운 편이지만 뺨이 차가워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왠지 가려워서 그곳을 계속 어루만지고 있으니 그 차가운 부위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일그러진 5각형에 막대 같은 게 5개.
나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상자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상자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왜 주위를 둘러봤을까.
그때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상자는 책장 위에 있었다.
내가 놓아둔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내 뺨을 만진 건 손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차가운 손바닥이었다.
무심코 상자 뚜껑에 손을 갖다대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옛날부터 나는 열어서는 안 된다는 걸 열어버리는 애가 아니었다.
신은 건드리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
지극히 옳으신 말씀이다.
하지만 그런 껍데기를 부수고 싶어서 나는 스승 뒤를 쫓아갔지 않은가.
그래.
게다가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소문에 없었다.
온쿄가 그렇게 말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떤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그걸 떠올린 순간 주저하지 않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부스럭거리는 종이가 있고 그 종이에 싸인 검은 손이 하나 들어 있었다.
마네킹 손이었다.
무심코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걸 두려워했다니.
나는 손을 들어서 살펴보았다.
특이할 것 없는 검은 마네킹 손이다.
왼손이었고 손톱이 길게 자라난 걸 보니 여성용이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때 온쿄가 분명히 말했다.
"결혼 반지라도 사준다면..."
즉 손은 왼손이고 여자 손이다.
열지 말라고 해놓고서는 온쿄 자신은 상자를 열어서 안을 보았다.
그랬을 거라고 확신했기에 나도 열었다.
뭐야 이 사기는.
나는 마네킹 손을 내던지고 컴퓨터를 켰다.
지금쯤 그 스레에서 속아넘어간 나를 비웃고 있을까.
열이 받아서 스레를 클릭하니 예상 외로 검은 손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이미 그들은 흥미를 잃은 모양이다.
온쿄가 뭐라 말을 남겼을 것 같아서 찾아보았지만 글이 없다.
과거 로그를 봐도 그 후로 한 번도 글을 적지 않았다.
도망쳤나.
하지만 그녀가 도망칠 이유가 없다.
내가 항의해도 "속은 게 바보지." 라며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원래 온쿄는 단골 중에서도 출현 빈도가 높지 않다.
주에 1번, 많아봐야 2번 정도 글을 올린다.
그로부터 4일밖에 안 지났으니 안 나타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갑자기 마우스를 쥔 손이 굳어졌다.
주에 1, 2번 글을 올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떠나갔던 공포가 한 번 더 돌아온 것 같은 오한이 든다.
착각인지 귀울림도 들리는 것 같았다.
과거 로그를 살펴보았다.
[검은 손을 얻었어.] 일요일.
내가 본 온쿄의 글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온쿄가 쓴 글은...
[좋아.] 금요일.
5일 후다.
이상했다.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에 온쿄가 검은 손을 나에게 주었다.
이상했다.
온쿄가 검은 손을 얻은 건 그 토요일로 6일째인 것이다.
검은 손과 만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검은 손을 1주일 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믿지 않는다면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단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 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역시 그거 그냥 헛소문이었어." 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믿는다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까.
하루만 지나면 소원이 이루어지니까.
왜 그 하루를 채우지 않았을까.
문득 상자를 든 나를 유리창 너머로 조용히 바라보던 온쿄가 떠오른다.
그 인형 같은 얼굴이 불안해보였다.
고작 마네킹 팔인데도.
나는 부지불식 간에 오른쪽 뺨에 손대고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잊어버릴 뻔 했는데 아까 그 차가운 감촉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돌아보니 상자는 테이블 위에 있었다.
검은 손은 상자 속에 그리고 뚜껑 밑에 있었다.
한 순간 움찔했다.
나는 떨면서 생각했다.
'내던졌다' 라는 말은 그저 수사법이고 적당한 곳에 놓아두었지만 과연 나는 검은 손을 상자에 다시 넣었던가.
상자는 당연한 듯이 뚜껑이 닫혀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생각이 안 난다.
무의식적으로 뚜껑을 닫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더 이상 저 뚜껑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점점 차가움이 사라지는 뺨을 어루만지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5각형과 막대 5개.
막대 1개만 굵고 5각형 옆에 붙어 있다.
엄지 위치만 알 수 있으면 어느 쪽 손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 뺨을 만진 차가운 손은 오른손이었다.
다음 날, 즉 5일째.
나는 스승의 집에 찾아갔다.
온쿄는 5일까지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6일까지지만 적어도 5일까지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일어날 일이 두려웠다.
아마 상자가 놓인 위치가 바뀌거나 뺨을 만지는 건 그야말로 전조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건 그 사람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스승이 하숙하는 집 문을 두드리니 맥빠진 소리가 들렸다.
"열려 있어."
"알고 있어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수염을 다듬고 있던 스승이 나를 돌아보았다.
"돌려줘."
뭐?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물으니 오히려 스승이 이렇게 묻는 것이다.
"나 지금 무슨 말 했냐?"
잘 모르겠지만 일단 검은 손이 담긴 상자를 스승 앞에 놓았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 스승이 갑자기 일부러 그러는 듯 "하항." 이라고 내뱉었다.
"이건가."
역시 스승이다.
감이 좋다.
하지만 이어서 전혀 뜻밖인 말을 했다.
"여친이 '도망쳐라' 라고 말했던 건 이것 때문이었나."
그때는 스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스승의 여친은 상당히 감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게 뭐냐."
그렇게 말하기에 나는 숨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보통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교묘하게 숨겨서 남에게 떠넘길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오히려 숨기지 않는 편이 받아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때까지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하니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나 도망쳐도 돼?"
그러면서 슬쩍 엉덩이를 뒤로 빼는 것이다.
"좀, 좀 기다려주세요."
나는 당황해서 스승을 말렸다.
이 사람마저 날 버리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거 너무 위험하잖아."
"불제든 뭐든 해서 어떻게든 해주세요."
"난 스님이 아니니까..."
옥신각신하다가 스승이 겨우 "알았다." 라고 말했다.
"아까운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벽장에 목을 집어넣고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불제 같이 거창한 건 못 하니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보장 못하고 처리가 난폭하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난 몰라."
그렇게 점잔을 빼며 말하면서 썩은 줄을 가져왔다.
"그거 신사에서 결계 칠 때 사용하는 금줄인가요?"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반대지."
스승은 검은 손이 들어 있는 상자를 줄로 칭칭 감기 시작했다.
"후지산 기슭에 수해라는 자살 스팟, 아니 자살 존이 있잖아? 거기서 사람이 어떻게 죽냐면 대개 목을 매고 죽어. 몇 년, 몇 십 년 지나서 시체가 목을 맨 줄에서 떨어진 후 그대로 풍화되어 유골도 산산조각 나서 사라져 버리지. 하지만 줄만은 계속 흔들리며 남아 있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말이야. 목을 매려는 사람은 튼튼한 나무와 튼튼한 가지를 고르니까."
들으면서 나는 무릎이 덜덜 떨렸다.
이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1개로는 부족하군."
또 벽장에서 같은 줄을 가져온다.
칭 하고 귀울림이 들렸다.
"어떻게 해서 얻었는지는 묻지 마라."
나를 보고 씩 웃으면서 스승은 상자를 솜씨좋게 칭칭 감았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가 유리창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결코 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스승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윙윙 벌레가 떼지어 다니는 것 같은 소리도 천장에서 들렸다.
스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했다.
급기야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까지 울렸다.
나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기절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스승이 지금 하려는 일에 반응해서 좋지 않은 것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끼익거리며 문이 열렸다 닫혔다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조심스레 문을 바라보았지만 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시끄럽군."
스승이 툭 내뱉었다.
"야, 무슨 말이든 해봐라. 아무거나 좋으니까. 이런 건 조용히 있으니까 시끄러운 거야. 정적 때문에 귀가 따갑다는 말은 들어봤겠지. 그거랑 똑같아."
"그렇군요."
그 말을 듣고 그렇게 대답한 뒤 구구단을 외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달리 없어서 왼 거지만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하고 중얼거리니 신기하게도 아까까지 시끄럽게 다가오던 괴음들이 한 순간에 차단되어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만은 계속 울렸다.
"이건 진짜가 아닌가요?"
"받지 마."
내가 황급히 받으려고 하니 스승이 강한 어조로 말렸다.
그 순간, 전화가 뚝 그쳤다.
나는 수화기를 들려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흘렀다.
"자, 다 됐다. 어디에 버릴까."
상자는 밧줄로 완전히 감겨서 군데군데 희한한 매듭이 보였다.
의논한 결과 스승이 가진 경차를 타고 근처 호수까지 가기로 했다.
나는 조수석에서 상자를 안고 부들부들 떨면서 '나무아미타불' 이나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 등 알고 있는 불경을 생각나는 대로 외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순식간에 호수에 도착했다.
불쾌한 색을 띤 탁한 물 속에 두 명이서 "하나, 둘" 신호를 주고받으며 던져 넣었다.
첨벙하고 가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돌과 같이 묶어서 던졌기에 상자는 보글보글 공기가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가라앉았다.
그 돌도 귀를 틀어막고 싶어지는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다.
일을 다 끝내고 손을 탁탁 털면서 스승이 말했다.
"문제는 또 다른 손인데 뭐 본체는 해치운 것 같으니 괜찮겠지."
자동차 시동을 걸면서 "그건 그렇고" 라며 스승이 말을 이었다.
"도시전설이 실체를 가지고 있다니 반칙이네. 정체를 모르니까 무서운 거 아니야?"
나는 그 상자가 뭔지 검은 손이 뭔지 몰랐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도시전설로서 완성되었군.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저지당하고 제 4의 벽을 넘어간 셈이야. '검은 손과 만나면' 인가. 확실히 조금 쿨한데. 그런데 말이야."
스승이 나를 바라보았다.
"넌 무슨 소원이 빌고 싶었는데?"
아, 라고 생각했다.
'검은 손과 만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휘말린 걸 어떻게 수습할까 생각하다가 그런 전제는 잊고 있었다.
"이제 상관없잖아요."
그렇게 말하자 스승이 '흐응.' 하고 콧김을 뿜었다.
그리고 정확히 1주일이 되던 밤.
'그러고 보니 그거 어떻게 됐어?'
그런 질문이 그 스레드에 올라와 있었다.
'아직 살아있어?'
그 질문에 '응' 이라고 글을 올려보았다.
'소원은 이루어졌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
온쿄는 나타나지 않는다.
'상자 필요한 사람 있어?'
'그러니까 안 일어났다잖아.'
....
이제 이 스레드에 올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윈도우를 끄려고 할 때 '정말로,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
끈질기게 물어온 녀석이 있었다.
내게 경고를 했던 그 머리를 땋은 애일 것이다.
'알고 싶다면 검은 손을 만나면 돼.'
그렇게 쓰고 창을 닫았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검은 손에 관한 소문은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