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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바다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31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2291

대학교 2학년 여름.
나는 대학 선배랑 같이 바다로 갔다.
내리쬐는 태양과 수영복 입은 여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조금 추운 밤바다로 갔다.

나는 선배가 조종하는 조그만 배의 뱃머리에서 덜덜 떨면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생각하고 있었다.

눈 밑에는 흔들흔들 흔들리는 해수면만 있었고 얼마나 깊을지 종잡을 수 없었다.

가끔씩 내 얼굴이 마구 구겨져서 파도 속에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 옆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머나먼 육지가 늘어뜨린 그림자는 기분 나쁜 실루엣을 눕히고 이따금 희미한 등대 빛이 막 같은 구름을 하늘 밑으로 띄어 올려주고 있다.

“바다 소리를 찾으러 가자.”

그렇게 선배가 한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오컬트 스승이기도 한 그 사람 수집품 중에는 수상쩍은 카세트 테이프가 있다.

들어보니 기분 나쁜 신음이나 흐느끼는 소리,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속삭임 같은 것이 쭉 녹음되어 있었다.

“너무 많이 들으면 수명이 줄어든다.”

다 듣고 난 뒤에 그런 말을 하는 바람에 겁을 집어 먹어서 이제 두 번 다시 듣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듣고 싶어지는 것이다.

잘 들리지 않는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 “뭐라고 말하는 걸까.” 하고 이상한 궁금증이 일어나게 된다.

“이건 바다 소리야.”

그런 내 모습을 재밌어하면서 스승은 그렇게 말하고는 밤바다로 가자고 나를 꾀었던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서 보트를 빌린 스승이 익숙한 솜씨로 모터를 조종해서 바다로 나갔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페리라면 모를까 이런 자그만 배로 바다위로 나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처음부터 발이 굳어 버렸다.

“조종 면허증 가지고 있나요?”

“등록장 3미터 이하라면 소형 선박 면허증은 필요 없어.”

내 질문에 스승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파도가 치는 어두운 해수면을 미끄러져 갔다.

바다에 나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스승은 갑자기 시동을 끄고 가지고 온 테이프 레코더를 꺼낸 뒤 녹음 버튼을 눌렀다.

바람은 잔잔했다.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니 주위가 고요했다.
아니, 잠시 기다리니 어디선가 바다 소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닷물이 흘러가는 대로 보트는 파도 사이에서 흔들린다.
뱃머리에서 고개를 내밀고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물속에 물고기 배로 보이는 허연 물체가 가끔씩 빛나다가 사라졌다.

스승은 묵묵히 수평선 근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옆얼굴을 훔쳐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희미한 바람 소리가 귀를 어루만지고 갔다.
배 밑바닥에서 둔하게 울려 퍼지는 해명 때문에 불안하고 고독하게 느껴진다.

“녹음하고 있어요?”

그렇게 물어보니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쉿.” 하고 말하려는 듯 입술만 움직였다.

무언가 들리는 것 같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애당초 바다 위에서 대체 무엇이 그 테이프에 녹음된 소리를 내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서 어둠 한 구석에 걸터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쏴쏴 미적지근한 바닷바람에 얼굴을 내민 채로 멍하니 있으니 갑자기 인영 같은 것이 눈앞을 가로질렀다.

무심코 눈을 쫓아보니 분명히 인영으로 보인다.
표류물은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린애 키만큼 해수면 위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굳어버린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흔들흔들 흔들거리면서 멀어져 가는 어두운 인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바다 한 가운데니까 나무나 인간이 설 수 있는 수심이 아니다.

좁은 시야 속에서 천천히 인영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건 뭐죠?”

스승이 고개를 젓고 이렇게만 내뱉었다.

“바다는 알 수 없는 것투성이야.”

손전등을 켜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한 걸 볼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못 했다.

딸깍.

그런 소리가 나면서 아날로그인 테이프 레코더 녹음 버튼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동적으로 되감기가 시작되면서 차르륵하는 소리가 쓸데없이 크게 들린다.

스승이 테이프 레코더 쪽으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면서 희미하게 배가 흔들렸다.

“들어 볼래?”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나는 싫었다.
듣는다면 나나 스승의 방에 가서 듣고 싶다.
아니, 구태여 말하자면 보통 심령 스팟에서라면 괜찮다.
하지만 여기는 육지에서 떨어져서 파도에 출렁이는 여기는 해수면 위도 아래도 인간이 사는 영역이 아니어서 싫었다.

“삼계에 집 없다(三界に家無し)*” 라는 단어가 왠지 머릿속에 떠올라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불안해졌다.

무언가가 변덕으로 이 자그만 배를 뒤집는다고 해도 이 세상은 그걸 용납할 것 같은 그런 알 수 없는 오한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배 옆을 필사적으로 잡았다.
그런 나를 무시하고 스승은 딸깍하고 버튼을 눌렀다.
* 세상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음.

나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발을 벌리고 섰다.
나의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지고, 테이프 레코더 앞에 쭈그려 앉은 스승이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슴을 조이는 것 같은 비릿한 바닷물.
판자 1장 밑은 지옥(板子一枚下は地獄)*.
아, 어부에게 있어서 저세상은 바다구나.
파도 따라 흔들리는 스승의 어깻죽지에 인영 같은 것이 보였다.
* 배를 타는 것이 위험하다는 걸 나타내는 말.

또 다시 바다에 선 그림자가 배 바로 옆을 가로지르려고 하고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손이고 어디가 발인지 윤곽조차 또렷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이 인영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스승이 그쪽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노성을 지르면서 배에서 상반신을 내밀었다.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배가 한 순간 기울어서 반사적으로 나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

인영은 그대로 선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고 했다.
스승은 밖으로 내밀었던 몸을 바로하며 뱃머리에 있는 모터에 달라붙었다.

나는 균형이 무너져서 실수로 귀를 막고 있던 양손을 떼고 배 가장자리를 짚었다.

저게 뭐야.
저게 뭐야.

스승은 상기한 목소리로 떠들면서 시동을 걸려고 했다.
뱃머리를 돌려서 인영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 손을 덥석 잡고 소리쳤다.

“안 돼요. 돌아가요.”

스승은 나를 뿌리치고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지. 꽉 잡고 있어라.”

바로 커다란 시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배는 가속했다.
짭짤한 바닷물이 얼굴에 튀는 가운데 나는 안경을 난폭하게 닦으면서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 빛을 쫓았다.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얼마 후, 스승이 그때 녹음했던 테이프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안 듣고 있었다.
“목구멍을 넘어가면(喉元すぎれば)*” 이라는 말도 있으니 나는 어슬러어슬렁 스승의 방으로 갔다.
* 목구멍을 넘어가면 뜨거운 걸 잊는다(喉元過ぎれば熱さを忘れる). 괴로운 경험도 지나가 버리면 그 고통을 잊게 된다.

“엄청난 게 녹음되어 있었어.”

그런 말을 들으면 듣지 않을 수 없다.
테이블 위에 라디오 카세트를 놓고 재생 버튼을 누르니 분명치 않은 파도소리나 바람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귀를 갖다 대고 들어 보니 그 중에 다른 소리가 섞인 것 같았다.

볼륨을 올려서 들어 보면 확실히 들린다.
쏴쏴하는 소리도 웅웅거리는 소리도 아닌 규칙적인 울림.
그게 계속 들리는 것이다.

좀 더 볼륨을 올려 보니 소리가 갈라져서 오히려 잘 안 들린다.

볼륨을 조정하면서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것은 두 가지 단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 목소리로도 들리고 자연 소리로도 들리는 형언할 수 없는 울림.

그 단어가 뭔지 깨달은 순간 나는 무심코 엉덩이를 뒤로 빼며 숨을 집어 삼켰다.

그건 틀림없이 나와 스승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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