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2432
대학교 2학년 여름에 있었던 일.
나는 심령사진을 친구에게 받아서 그걸 전문가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전문가라고 해도 내 동아리 선배였고 오컬트 분야에서는 스승으로 삼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 가서 얼른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그걸 받자마자 코웃음을 치며 한 마디로 일축했다.
“2중 노광.”
친구 할아버지가 애견과 찍힌 사진 뒤에 희미하게 사람 같은 게 찍혀 있었지만 스승은 그걸 곧바로 촬영 실수라고 단정한 것이다.
“그거라면 저번에 보여준 사진 중에 비슷한 게 있었잖아요.”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서 그렇게 따졌다.
스승은 그쪽 업자로부터 샀다는 심령사진을 산더미만큼이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여기엔 없어.”
나는 좁은 아파트 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갑자기 지금까지 보여줬던 기분 나쁜 오컬트 도구가 어디에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몇 개 정도는 벽장에 넣어뒀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번 보여준 게 또 방 안에 굴러다닌 적은 없었다.
“어디에 숨긴 거예요?”
“알고 싶냐?”
스승은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목을 비틀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그럼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
스승은 그렇게 말하며 느닷없이 이불을 펴더니 자기 시작했다.
나는 멍해져서 일단 집에 돌아갈까 생각했으나 귀찮아져서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잤다.
어느덧 어두운 방 안에 어렴풋이 빛을 내는 기묘한 불상이 북적거리고 스승을 뒤집어 쓰고 있던 이불이 방 한가운데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 황당무계한 꿈을 꾸다가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더위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땀이 나 있었다.
당연히 방에는 불상이나 스승이 모아둔 오컬트 수집품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고 방주인도 조용히 마루 위에서 자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밤이에요.”
내가 흔들어 깨우니 스승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 딱 좋은 시간이야.”
그렇게 중얼거리고 스승이 이불에서 기어 나온다.
“뚜둑뚜둑” 하고 입으로 말하면서 기지개를 펴더니 스승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나를 아파트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심야다.
딱히 뭔가 들고 가지는 않는다.
낡은 경차에 시동이 걸린다.
“어디 가는 건가요?”
조수석에서 내가 물으니 스승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대답했다.
“숨겨진 집.”
“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예상은 했다.
드디어 초대할 정도로 신뢰가 쌓인 모양이다.
애당초 아무리 훔칠 게 없다고는 하지만 집세 9000엔인 낡은 아파트에 문단속도 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인데 칸사이 업자에게 샀다면서 어마어마한 일화가 숨겨진 골동품을 자랑스레 보여준 적이 많았다.
그런 물건들을 숨기고 있는 곳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북쪽으로 북쪽으로 차를 몰아서 스쳐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도 거의 사라진 산길을 구불구불 헤쳐 나가면서 나는 어떤 감각을 느꼈다.
오싹오싹 소름이 돋는 한기다.
원인은 알고 있다.
그냥 무서운 것이다.
사람의 원한이나 악의가 뭉친 덩어리가 지금 가려고 하는 곳에 있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시선 끝 경계면에 흰 연기처럼 흔들리는 인영이 스쳐지나갈 때 깜빡이며 사라지는 착각이 들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스승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타이어가 아스팔트와 마찰하는 소리와 그때마다 몸이 좌우로 끌려가는 감각만 이어졌다.
“도착했어.”
마침내 그 목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고 나는 스승의 독촉을 받고 내렸다.
산간 외딴집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사면을 조금 내려간 부근에 다른 집 조명이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반경 20미터 이내에는 인기척이 없다.
홀로 남은 집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라 더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집세는 1만 1000엔.”
스승은 그렇게 말하면서 현관 앞에 서서 사자 머리를 한 문손잡이를 자연스럽게 두드렸다.
둔탁한 금속음이 들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 소리의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승이 말했다.
“장난이야.”
스승은 열쇠를 꽂아 그 서양식 문을 열었다.
상당히 낡았지만 어엿한 외딴집이다.
집세 1만 1000엔이라니 어떤 식으로 빌렸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왠지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다.
집 근처에 가로등 같은 건 없어서 어두컴컴했지만 집 안에 들어가면 당연히 불을 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관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스승이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움직이더니 어스름한 램프 빛이 흔들흔들 도깨비불처럼 나타났다.
“전기는 안 들어오니까.”
램프를 가진 스승 같은 그림자가 먼지투성이인 복도로 안내한다.
슬리퍼를 신고 삐걱거리는 마루 위에서 발소리를 죽이며 손을 더듬어 따라가는 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정말로 이 사람 이 집을 빌린 걸까. 불법침입한 거 아니야?’
거실이다.
그런 소리가 들리고 램프가 중앙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다.
어두운 실내를 탐색할 기력도 없던 나는 고분고분 램프 옆에 있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원래는 질이 좋은 소파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공기가 빠진 듯 퍼석거려서 앉을 만한 것이 못되었다.
스승도 똑같이 건너편 소파에 앉아서 희미한 램프 빛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아까까지 숨 막힐 정도로 더웠는데 이곳 공기는 차갑다.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있는 벽에 미크로네시아였는지 폴리네시아였는지 하여튼 어떤 원주민이 쓰던 검은 가면이 걸려 있었다.
그밖에도 유령화로 보이는 족자나 면에 무언가가 적힌 부채 등 여러 물건이 불규칙하게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여기가 숨겨진 집인가요?”
스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일부러 밤까지 기다렸다가 온 거예요?”
후우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벽 한 곳을 바라보던 스승은 입을 열었다.
“이 시간을 좋아해.”
그 시선 끝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어두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렴풋한 램프 빛에 나타나듯이 문자반이 희미하게 보인다.
시계바늘이 2시 반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리로 된 밑 부분에 시계추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고 이 시계가 이미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해보니 마침 시간이 그 정도 되었다.
시계추가 멈춰 있을 뿐 혹시 시계 자체는 망가진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으니 스승이 말을 이었다.
“그 손목시계는 빠르냐, 느리냐?”
질문을 받고 다시 내 손목시계를 바라보았지만 과연 어떨까.
아마 1, 2분 정도 빠른 것 같지만.
“아무리 정밀한 시계라도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을 나타낼 수는 없어. 100억분의 1초라는 단위에서는 전혀 오차가 없다고 해도 그 100억분의 1에서는? 또 그 100억분의 1에서는? 그리고 또 그 100억분의 1에서는?"
램프 불빛이 희미한 기류에 흔들리는 착각에 나는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을 비비었다.
“시계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정확한 시간이라는 유일한 특이점에서 멀어지는 거야. 그건 멋없는 전파시계처럼 외부에서 수정하는 장치라도 존재하지 않는 한 어떠한 시계라도 똑같은 운명이지.”
"하지만"
스승은 조금 몸을 일으켰다.
“이 부서진 괘종시계는 부서졌기 때문에 보통 시계들은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의 순간에 닿은 거야.”
나는 저도 모르게 문자반을 올려다보았다.
긴 시계바늘과 짧은 시계바늘이 90도보다 조금 넓은 각도로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 중 딱 한 순간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지. 그 순간은 형이상학적인 찰나라도 오직 한 번 반드시 가리키는 거야.”
취한 것 같은 얼굴로 스승이 시계를 바라본다.
그래서 밤까지 기다려서 이런 시간에 일부러 찾아온 건가.
나는 기분 나빠서 말꼬리를 잡았다.
“2번이에요. 하루 중 밤 2시 반과 낮 14시 반 2번.”
하지만 스승은 그 괘씸한 비판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한 마디, 한 마디 음미하듯이 말했다.
“한 번뿐이야. 이 시계가 가리키는 건 지금 이 시간이야.”
한 순간 머리를 싸맸지만 그 말에 어떠한 합리적인 해석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스승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렇게 단언하는 것이다.
탕.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울림이다.
몸이 얼어붙었다.
천장 근처를 조심스레 올려다보았지만 외딴집 특유의 어두운 공간과 들보가 있을 뿐이었다.
삐걱, 삐걱.
목재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생가에 있을 때는 자주 들었지만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해온 뒤로 소재가 다르기 때문인지 거의 듣지 못 했던 소리다.
마치 괘종시계가 원래 시간과 교차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집울림이 이어졌다.
탕하는 커다란 소리에 무심코 몸을 움츠렸다.
집울림이라는 것은 분명 습기를 포함한 소재가 공기가 건조하고 기온이 내려가는 밤중에 수축하기 시작해서 그게 마루나 벽, 기둥 같은 구조물 사이가 조금씩 어긋나는 바람에 불쾌한 소리를 내는 현상일 것이다.
평범한 집이 아니다.
어떤 무시무시한 물건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이 기분 나쁜 집에서 도움이 안 되는 노란 빛에 비치고 있는 나는 이 소리를 그냥 집울림이라고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건너편에 앉은 스승을 보니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듯이 입가를 씩 올리고 있다.
나도 소파에 뿌리가 박힌 듯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이 낡은 집에서 단속적(断続的)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스승이 잠깐 기다리라며 유일한 빛과 함께 복도로 사라졌다.
거실에 어둠이라는 장막이 슥 내려와서 탕 탕하는 집울림이 더 생동감 있게 울려 퍼진다.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겨우 스승이 옆구리에 무언가를 끼고 돌아왔다.
테이블 한 가운데 그걸 놓고 램프를 비춘다.
그림이었다.
그것도 본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소름이 돋을 것 같은 본능을 직접 건드리는 기분 나쁜 그림이었다.
왜 이런 그림이 무서운지 알 수 없었다.
캠퍼스 한 면을 뒤덮는 검은 바탕에 한 점, 한 가운데에서 조금 떨어진 부근에 노란색 얼룩이 툭 묻혀 있다.
그런 그림이었다.
“이 집 원래 소유자는 말이지, 양화가(洋画家)였어.”
그것도 작년에 미쳐버린 화가였지.
스승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누가 안에 있다.’ 라고 말하며 겁을 먹었던 사람인 것 같아. 이 그림도 자신이 그려 놓고선 ‘이건 무슨 그림일까.’ 라고 말하더니 그대로 몇 주일, 몇 달 동안이나 생각에 잠기었지.”
탕하고 벽이 울었다.
착각인지 집울림이 더 커진 것 같았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홀쭉 여윈 채로 이 그림을 계속 노려보던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든 그는 경악하면서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던 모양이다. ‘알았어, 이것은.’”
탕. 삐걱. 삐걱.
마치 스승이 하는 말을 방해하듯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된다.
“그 4일 후에 그는 가족 앞에서 사라졌어. ‘지하실에 있다.’ 라는 메모를 남기고. 가족은 집 안을 뒤졌어. 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지. 그로부터 7년을 기다려서 실종 선고를 받고 그는 죽은 걸로 간주하고 이 땅과 집은 남은 가족들이 팔아치웠어. 그걸 산 수집광은 이 집에 전해지는 사연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야. ‘지하실에 있다.’ 라는 이 말에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어. 나는 그 수집광과 만나서 이 집을 빌렸지. 반쯤 공동 창고로 쓰고 있지만.”
하지만 말이야.
스승은 말을 이었다.
그 한 순간에 누군가가 천장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끼어든다.
“하지만 말이야 이 그림도 물론 그렇지만 예를 들어 이 방을 둘러싸는 물건들은 전부 그 양화가가 수집한 물건들이야. 그는 화가면서 정신 나간 오컬티스트였거든. 가족들은 그가 모은 수집품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집에 딸린 부품으로 헐값에 팔아버렸지. 그 괘종시계도 그 중 하나야. 전쟁에 관련된 기괴한 일화가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는 나도 몰라.”
스승의 목소리를 쫓아가듯이 집울림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내 수집품들은 문을 잠근 지하실에 있어. 그가 ‘지하실에 있다.’라고 글을 남긴 그 지하실에. 나도 그 말을 좋아해. 왠지 누군가가 어루만지는 것 같이 기분 나쁘지 않아? ‘지하실에 있다.’라는 문장에서 생략된 주어가 ‘나는’이 아니라면 어떨까.”
탕하고 바닥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니 아마도 내가 그쪽에 의식을 집중해서 그런 생각이 든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있다고 생각해.”
스승은 눈을 돌리며 웃었다.
“그가 혹은 그가 아닌 무언가가 이 집 지하실에. 적어도 이 집 안에.”
그 목소리는 건조한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 사라져 가면서 어디선가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맞물렸다.
내 등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오한이 들었다.
다시 그 어두운 그림에 시선이 못 박힌다.
그리고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스승님은 알았나요?"라고.
뚝, 뚝 뼈를 꺾는 것 같은 공허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릴 때 스승은 슥 가면처럼 표정을 지운다.
“모르겠어.”
충분히 뜸을 들인 뒤 그 말만 툭 내뱉었다.
날이 밝는 걸 기다리지 않고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결국 스승이 비밀스럽게 모아둔 물건은 보지 못 했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됐어요.” 라고 말하며 양손을 젓는 나를 보며 스승은 웃고 있었다.
스승이 행방불명된 후로 나는 그 집 주인을 찾아다녔다.
1만 1000엔으로 집을 빌려준 사람을 말이다.
집을 빌린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없어진 것도 두고 간 것도 없으니까 별로 상관없어.”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그걸 듣고 나는 단순히 스승이 자기 수집품을 처분하고 사라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그 집을 산 이유? 그거야 물론 ‘지하실에 있다.’ 라는 흥미진진한 메모 때문이지. 왜냐하면 그 집에는 지하실이 없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집을 한 번 더 방문하지는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기회가 생겨서 들러보니 빈 터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이제 영원히 찾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이야기에는 몇 가지 합리적인 해석이 있다.
지하실이 있는데 없다고 한 거짓말.
지하실이 없는데 있다고 한 거짓말.
그리고 ‘지하실에 있다.’ 라고 적은 거짓말.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심야에 혼자 있을 때 방 어디선가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낡은 미술품에 둘러싸인 방에서 램프 빛을 비추며 스승과 나눈 불가사의한 시간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