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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출석하지 않아도 보고서만 제출하면 적어도 可*는 받을 수 있는 교수님 강의를 듣고 있었다.
* 일본의 학점제는 優, 良, 可, 不可로 나뉘며 不可는 F학점과 같다.
기뻐서 신청했는데도 막상 보고서 제출 기한이 다가오면 “왜 이런 걸 해야 해.” 하면서 짜증을 냈다.
학생으로서 최악이었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어쨌든 얼마 만에 들르는지 모를 대학 부속 도서관에 참고 자료를 찾으러 갔다.
ID 카드를 대고 게이트를 넘어가 어째서 모두들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 싶을 정도로 학생으로 가득 찬 곳을 서성거렸다.
이렇게 어두웠던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높은 천장에서 조명이 밝게 안을 비추고 있다.
눈을 비볐다.
향토 자료가 놓인 곳에 빛이 이상하다.
묘하게 어둡다.
위를 바라봐도 형광등이 나간 부분은 없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안경을 낀 남학생이 그 부근을 가로질렀다.
슥하고 내 눈앞에 어둡게 보이는 부분을 피해서.
그 발걸음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본인도 어째서 그렇게 움직였는지 1초 후에는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전혀 흥미도 없는 향토사를 집어 들려고 가까이 가 본다.
그 책장에 드리워진 희미한 그늘에 오른발이 들어간 순간 무척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누구나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불길한 예감이 뱃속으로 천천히 내려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코 완강히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검지로 빼려던 두꺼운 책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이건 대체 뭘까.
보고서를 위해서 자료를 찾는 걸 완전히 잊어버린 채 나는 도서관 안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그런 에어 포켓 같은 곳을 몇 군데 더 발견했다.
멀리서 관찰하니 그 곳에 발을 딛는 사람이 역시 적다는 걸 깨달았다.
찾는 책이 있는 사람은 주저 없이 그 곳으로 향하지만 단순히 어떤 책이 있는지 둘러보는 사람은 예외 없이 그 에어 포켓을 피하고 있다.
그 지점에 꽂힌 책 종류는 다양했다.
이건 대체 뭘까.
1학년 때는 이런 걸 못 느꼈다.
나는 대학교 입학 이후 오컬트 취향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무서운 일에 목을 들이민 결과 어느 방면에 관한 영감이 높아졌다.
그게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에어 포켓에서는 영적인 것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내 직감이 약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장 꺼림칙한 곳에 일부러 발을 디뎠다.
주위 사람 시선도 있으니까 적당히 고른 책을 펼쳐서 그 자리에 서서 읽는다.
불길한 예감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처럼 돌다가 하반신에 쌓여 갔다.
점점 주위에 있는 빛이 희미해지고, 산소가 부족할 때처럼 시야가 어두워지며 바로 옆에서 똑같이 책을 읽으며 서 있는 사람이 멀어지는 것 같은 잡음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압이 낮아지는 같은.
무심코 펄쩍 뛰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옆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나온 식은땀을 닦아내고서 던지듯이 책을 꽃아 놓고 그대로 도서관을 나왔다.
얼마 후 동아리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나를 무서운 일에 목을 들이밀도록 한 장본인이며 스승 티를 내는 사람이었다.
“아, 구 도서관인가.”
깜빡 잊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관심 있어?”
없을 리 없다.
스승을 따라 저녁에 도서관 게이트를 지나갔다.
“저 곳인데요.”
지나치려는 스승에게 책장이 늘어선 부근을 가리킨다.
그곳을 무시하듯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어쩔 수 없이 쫓아갔다.
그는 서고로 갔다.
몇 번이나 들어간 적은 있지만 어둡고 곰팡내 나는 독특한 공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서고에 있는 책들은 일반 학생들과 인연이 없는 책들이다.
“타이밍이 중요해.”
출입구는 보통 잠그지만 지금은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스승은 서고에 들어가더니 나에게 감시를 맡기면서 한 곳에 자리 잡았다.
나도 따라 들어간다.
아무도 안 봤겠지만 조금 긴장했다.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스승이 목소리를 죽여서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밤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
감시하는 직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모습을 숨긴 것이다.
그런가.
서고는 도서관이 닫히는 시간보다 빨리 잠기니까 여기에 숨은 것이다.
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인명 끝말잇기를 조금 한 후 꾸벅거리다가 둘 다 잠들어 버렸다.
잠에서 깨고 난 후에는 잘도 이런 답답한 공간에서 잤다고 감탄했다.
뭉친 관절 주위를 주무르면서 옆에 있던 스승을 흔들어 깨웠다.
“여기 어디야?”
잠꼬대를 하기에 어이가 없어져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난이야.”
진짜로 장난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스승은 밖을 살펴보았다.
어둡다.
그리고 서고에 있는 책장들이 검은 벽처럼 시야를 가린다.
앞서 가는 스승을 쫓아서 손을 더듬어 나아갔다.
숨과 발소리를 죽이면서 책이라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아.”
스승이 그렇게 내뱉고 멈춰 선다.
어둠 속에서 제스처를 보낸 걸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앉았다.
“그 에어 포켓 같은 곳은 말이야.”
소곤소곤 말하기 시작한다.
“인간에게는 거북한 공간이라도 영혼에게는 그렇지 않아. 오히려 영혼이 거기에 머무르기 때문에 인간은 피하려고 하는 거야.”
“영도(霊道)라는 건가요.”
고개를 젓는 기척이 느껴진다.
“길이라는 말로는 잘 감이 안 오겠지. 굳이 말하자면 구멍. 그래, 구멍이야.”
그런 말이 조용한 서고 공기를 희미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스승은 이 도서관이 세워진 곳에는 예전에 구 일본군 시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건 알고 있다.
대학 안에서는 관련 괴담도 많다.
“이 바로 밑에 거대한 구멍이 있어.”
파보면 분명히 엄청난 것이 나올 거야.
그렇게 말하며 똑똑 마루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그러니까 거기에 빨려 들어가듯이 예전부터 이 도서관에는 영이 지나가는 그런 구멍이 잔뜩 있어.”
침묵이 흘렀다.
스승이 두드린 마루를 쓸어낸다.
오랜 세월 동안 쌓였던 먼지가 손가락 끝에 묻어 나온다.
갑자기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니 멀리서 들리는지 가까이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누군가가 발을 끄는 소리가 들린다.
엉덩이를 떼려고 하니 스승이 손을 뻗어 그걸 제지한다.
그 소리는 등 뒤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오른쪽으로 돌아 앞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책장 너머를 엿볼 배짱이 들지 않는다.
걷는 기척이 계속 느껴진다.
그것도 명백히 우리가 있는 이 곳을 찾으려고 한다.
나는 알 수 있었다.
한밤중에 서고에 있는 인간은 우리 2명밖에 없다.
그것도 안다.
이 사이로 빠지는 비웃음이 들려서 스승을 바라보았다.
“저건 여기로 못 와.”
그는 그렇게 속삭였다.
“결계라는 건 말이야. 다도에서 주인과 손님이 있는 자리를 구분하는 칸막이 같은 거야. 보통 대나무나 나무로 만드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책으로 만드는 결계가 가장 아름다워. 불도에서는 승려를 덮치는 세속을 막는 것을 결계라 부르고 밀교에서는 마를 막는 것을 결계라고 불러. 결계를 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고금 통틀어 책으로 만든 결계만큼 아름다운 결계는 없어.”
가죽이 위아래로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며 스승은 등 뒤에 늘어선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빼냈다.
어두운 색을 띠는 커버로 제목은 안 보인다.
“이게 내가 여기에 놓아둔 책이야. 어떻게 하면 알맞은 곳에 알맞은 책을 놓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하고 여기에 드나들었지. 덕분에 문헌정보학에 관해서는 남부러울 것 없는 견문을 익히게 되었어. 교수님 몰래 책을 기증하거나, 어느 공간이 다음에 채워질까, 그 전에 어떤 책이 서고에 보내질까, 그 전에 그 영향을 주는 책이 과연 다음에 구입될까. 계산해도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어.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서고라고 하지만 몰래 바꾼 뒤에도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가 있는 걸. 아무리 해봐도 수정할 수 없을 때는 조금 비합법적인 수단도 썼지.”
발소리가 늘어났다.
보폭이 다른 2가지 소리가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면서 주위를 돌고 있다.
한쪽은 초조해하고 있다.
한쪽은 슬퍼하고 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대체 뭐가 여기에 다가오려는 둘을 막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낡은 종이 냄새가 풍기는 기류가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시야가 좁고 앞이 암막을 친 듯이 안 보인다.
“내가 서고에 있는 구멍을 막은 뒤로부터 흐름이 바뀐 건지 밖에 있는 구멍까지 벌레 먹은 듯이 난잡하게 지기 시작했어.”
고작 책만으로도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거야.
스승은 기쁜 듯이 말했다.
지금 들은 이야기로는 동기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을 했는지 물어봐도 “고작 책만으로도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거야.” 라는 그 말밖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계속해서 발소리는 돌고 돌았다.
그 수가 늘거나 줄면서 초조해하거나 슬퍼하는 기척이 커져서 공기를 찔렀다.
살을 베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나는 보이지 않는 방벽에 모든 것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언젠가 “적당히 해.” 라는 인간이 아닌 것이 내뱉는 소리가 내 귓가에서 인간의 규칙이 끝나는 걸 알릴 것 같아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밖에 닫을 게 없을까 생각할 때 내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기관이 발밑에 계속 있었던 무언가를 느꼈다.
거대한 구멍.
스승이 말한 ‘구멍’을 ‘영도’로 바꾼다면 밑으로 향하는 영도 같은 게 존재할 수도 있는 걸까.
이 감각을 닫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아침을 기다렸다.
그 서고도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것 같다.
소방법(消防法)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스승이 사서로 일하던 시기랑 관계가 있는 것 같지만 과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