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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제법 영감이 강한 편이라 여러 가지 이상한 걸 많이 보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나 말고 다른 영감이 강한 사람과 만나서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사이에 예전보다 이상한 체험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영감이라는 건 보다 강한 영감과 가까이 접촉하면서 공진 현상을 일으키는 걸까.
언젠가 내가 스승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저기 머리에 검지를 갖다 대고 이렇게 말한 게 떠오른다.
“길이 생기는 거야.”
대학교 2학년 여름.
그 무렵 나는 스승이 소개를 해주어서 어느 병원에서 사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사람의 죽음을 봐온 간호사가 죽은 자의 일부를 몸에 단 채로 걷는 걸 몇 번이고 봤다.
영안실 앞을 지나갈 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불러서 세울 때도 있었다.
“그거 큰일이군.”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은 스승이 만족스럽게 말하더니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게임을 하지 않을래?”
좋지 않는 일을 꾸미는 게 분명했지만 나는 승낙했다.
어떤 일을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좋은 꼴은 못 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무렵 그런 게 내게 있어 전부였다.
심야.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스승과 함께 대학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평일에도 그다지 대학에 발을 디디지 않는 불성실한 학생이었던 나는 검게 치솟는 교사 안을 누비고 다니는 것에 묘하게 고양했다.
딱히 밤중에 대학에 들어가는 게 금지된 것도 아니고 건물에 따라서는 연구실로 보이는 방 창문으로 빛이 새어나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남들과 마주치면 어색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목소리도 내지 않고 발소리를 죽여서 나아갔다.
이윽고 스승은 한 건물 아래에서 발을 멈추었다.
익숙하지 않는 다른 학부 구역으로 대체 무슨 건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스승은 제 집인 양 건물 뒤로 돌아갔다.
어둑한 1층에서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하는가 싶더니 드르륵 메마른 소리와 함께 창문 하나가 열렸다.
스승은 마치 스파이처럼 일부러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왠지 귀여웠다.
우리 학부동에도 이런 숨은 길이 있다.
대대로 선배들이 전수해주는 밤 전용 진입로.
어디든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스승을 따라 창문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쉿” 하고 속삭이더니 스승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나아갔다.
복도도 어두워서 멀리서 보이는 비상구 녹색 빛만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계단을 몇 번 올라가서 자그만 문 앞에 섰다.
열어 보니 한 순간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옥상에 나온 것이다.
밤하늘 가득히 별이 떠 있었다.
우리 둘 이외에 아무도 없다.
그저 바람만 불고 있었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학생답다는 생각 안 드나요?”
그런 내 말이 마음에 닿지 않은 듯 스승은 대충 대답하고는 옥상 펜스 너머로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묘하게 들떠서 그곳을 돌아다녔다.
몇 명 더 불러서 농구를 하면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한 번 뛰어 봐라.”
어느새 벽에 기대듯이 쭈그려 앉은 스승이 그렇게 말했다.
스승이 말한 대로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스승이 말한 게임이라는 게 벌써 시작된 것 같다.
나는 들떠서 연거푸 펄쩍펄쩍 뛰었다.
야야, 이제 됐어. 이제 됐어.
쓴웃음을 짓던 스승이 일단 말린 뒤 다른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뛰어 봐.”
눈을 감는다. 뛴다.
착지하는 순간 균형을 잃을 것 같아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래그래. 그런 식으로 땅에 닿는 순간 몸을 웅크려서 가능한 몸이 떠 있는 시간을 길게 해 봐.”
몇 번이고 그런 식으로 뛰다가 그 다음 지시를 듣고 깜짝 놀랐다.
건물 가장자리에 서라는 것이다.
나는 낙하 방지 펜스가 없는 부분 앞에 섰다.
물론 밑은 나락으로 가는 밑바닥이다.
“자, 눈을 감은 채로 거기서 뛰어 봐.”
가장자리에 서면 제자리 뛰기라도 무섭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떨어질 것 같았다.
“뒤로 뛰어도 돼.”
내가 망설이는 걸 꿰뚫어 보듯이 스승이 말을 걸었다.
그거라면 못할 것도 없다.
밤을 가르는 것 같은 건물 가장자리에 서서 눈을 감았다.
감은 순간 무릎이 휘청거렸다.
불과 몇 십 센티미터 앞에 절벽이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상상하고 만다.
그래도 아직 이 수상한 게임을 계속할 여유는 있었다.
반동을 주어서 소리를 내며 뒤로 뛰었다.
착지하면서 그대로 구를 뻔 했다.
“한 번 더.”
그 지시에 따른다.
5번 정도 반복하니 익숙해졌다.
돌풍이 세게 불지 않는 이상 추락할 일은 없었고 오늘 바람은 미풍이었다.
“다음은 어렵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스승이 말했다.
그 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로 몸을 회전시켜서 방향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는 그렇게 말했다.
죽일 생각인가.
“뛰기 전에 내가 말을 해줄 거야.”
내가 그렇게 따지지 전에 그가 말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서서 도는 게 무섭다면 쭈그려 앉은 채로 돌아도 돼.”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체 뭘 시킬 작정이냐.
그래도 나는 말한 대로 했다.
아직 멈추기에는 이르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건물 끝에서 쭈그려 앉아서 눈을 감은 채 그 곳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무서워서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10번 회전하니 완전히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대체 절벽이 어디일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옥죄어 오듯이 가슴이 벌렁거렸다.
앉은 채로 있는데도 발 근처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이 볼썽사납게 떨렸다.
눈을 뜨고 싶다. 그 충동과 싸웠다.
마침내 싸워 이기고 두려워하면서도 일어섰다.
어느새 바람이 그쳤다.
낮이라면 눈을 감아도 느낄 수 있는 태양이 지금은 없다.
정말로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방향은 모르겠지만 몇 걸음 앞에는 분명히 사람 목숨을 저 세상으로 끌고 갈 절벽이 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공포심이 덮쳐왔다.
그냥 주저앉을까.
그 유혹에 질 것 같았을 때 스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여기다. 뛰어.”
확실히 그 목소리는 정면에서 들렸다.
그 순간 오른쪽도 왼쪽도 없는 어둠 속 세계에서 내가 있는 좌표가 결정된 것 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떨리는 무릎을 세웠다.
이거라면 할 수 있다.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낮추어 앞으로 뛰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둠이 베어낸 절벽 너머.
스승이 허공에서 둥둥 떠서 비웃고 있다.
바보냐.
그 악몽 같은 이미지를 머리에서 떨치려고 했다.
정면이다.
똑바로 앞으로 뛰기만 하면 된다.
자기암시를 걸면서 나는 이를 악물고 어둠 속으로 도약했다.
머릿속에 하얀 선을 그린다.
나는 스승이 있는 방향으로 몇 십 센티미터 뛰어서 이윽고 옥상 콘크리트에 발부터 닿는다.
그 하얀 선으로 그린 땅에 상상 속 내가 착지했을 때, 진짜 발에는 아직 착지할 때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순간.
하얀 선으로 만든 세계가 사라지고 거대한 구멍 같은 절벽이 발밑에 뻐끔 입을 열었다.
공포가 온몸에 퍼지기 전에 하반신에 충격이 퍼졌다.
착지.
무릎이 닿고, 양손이 닿는다.
눈을 뜨니 스승이 철학자 같은 얼굴을 하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지금 떨어지는 게 늦은 것처럼 느끼지 않았어?”
나는 머릿속을 엿보인 것 같이 불쾌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 직전에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거야. 시간의 흐름이라는 건 두개골이라는 밀실에 갇힌 뇌에게 있어선 상대적인 것에 불과해. 극한으로 집중했을 때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가. 이것은 프로 스포츠 세계를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겠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 수 있었다.
공포심도 집중하게 한 요인일 것이다.
“이 게임이 재밌는 건 착지하는 순간이 예상했던 순간과 어긋났을 때 옥상에서 추락하는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는 거야. 그리고 아주 조금 늦게 상상이 아니라 진짜 자기 자신이 착지하지. 불가피한 죽음에서 생환한다. 이 콤마 몇 초밖에 안 되는 세계에서 삶과 죽음과 부활이 들어 있는 거야.”
담담히 말하는 그 얼굴에 기쁨과 우울함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 한 번 더.”
말한 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쭈그려 앉아서 빙글빙글 돌았다.
일어섰다.
“여기야.”
오른쪽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거기를 향해 뛰었다.
땅이 없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착지했다.
왠지 울 것 같았다.
이런 게임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자기 자신이 무서워졌다.
바람은 고요했다.
“한 번 더.”
아무도 없는 심야 건물 옥상에서 두 명이 삶과 죽음과 그리고 부활을 반복하고 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옥상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하늘 가득히 펼쳐지는 별을 올려다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데네브.
베가.
알타이르.
여름 대삼각형이 일그러지게, 흐릿하게 보였다.
스승의 얼굴이 그것을 가리며 말했다.
“다음이 마지막이야.”
나는 느릿느릿 일어서서 옥상 가장자리에 섰다.
쭈그려 앉아서 돌았다.
다시 세계는 어둠으로 덮이고 내가 있는 곳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그 목소리를 기다렸다.
“…….”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용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걸으라는 말인가.
단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2분의 1 확률에.
상상했다.
이대로 뛰면 상대적인 착지 시간은 지금까지 느꼈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그건 자유 낙하 운동 방정식에서 도출된 지상까지 도달하는 시간과 분명히 똑같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길게, 이 변변치 못한 인생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기나긴 추락이 될지도 모른다.
스승은 혹시 지금 내가 절벽을 향해서 서 있다면 말릴까.
대답하지 않은 것이 이대로 뛰어내려도 좋다는 대답 그 자체일까.
실눈을 뜨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 삶과 죽음과 부활을 맛볼 수 있는 쾌감이 사라질 것이다.
그 찰나는 거부할 수 없이 유혹적인 매력을 숨기고 있었다.
뛸 것이냐, 말 것이냐.
침묵하는 우주 속에서 나는 고독했다.
이윽고 시간이 흐르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새겨져 떠나지 않았다.
결국 아무리 영감이 올라가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어도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그 앞은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절벽이고, 그 너머에 펼쳐진 세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다가갈 수 없다.
그걸 깨달았다.
“돌아가자.”
그 날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한 스승은 부드럽고, 차갑고, 그리고 왠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