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3085
대학교 2학년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려서 젖은 아스팔트 표면은 안개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날은 우울해진다.
기분이 가라앉고 사고는 더 깊숙이 가라앉는다.
오른쪽에는 강이 있고 하얀 가드레일 너머에도 희미하게 연기가 보인다.
짤깍짤깍 차 비상등 소리만 쓸데없이 크게 울린다.
그것만이 세상이 내는 박자가 된다.
모든 것이 그 박자에 따라 이루어진다.
나는 한 번 더 강을 보았다.
그 가드레일을 사이에 두고 이쪽에도 비가 내리고 저쪽에도 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길에 떨어지는 물과 수면에 떨어지는 물.
올려다보면 어둡고 낮은 하늘에서 그래도 몇 백 미터 높이를 천천히 떨어져 지표에서 몇 센티미터 차이로 운명이 갈린다.
이런 이미지가 묘하게 귀여워서 운전석에서 핸들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고 있는 사람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귀찮은 듯이 입을 열었다.
“차안과 피안의 상징인가. 확실히 이 세상과 저 세상 같은 건 고작 그 차이야. 하지만 땅속에 스며들어도 강에 흘러가도 언젠간 바다에 도달해.”
바다.
나에게 오컬트를 가르쳐준 스승이 말하는 그 ‘바다’ 는 분명히 ‘허무’ 일 것이다.
그는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후 세계라는 건 지옥이라거나 천국 같은 이 지상 이외에 존재하는 세계를 가리킨다.
왜 인정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완고하게 그렇게 믿고 있는 건 확실했다.
해가 지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다.
나와 스승은 갓길에 세워둔 차 안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비가 내리는 날에 스승은 여기서 뭔가 재밌는 걸 봤다고 했다.
“좋은 비가 내리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날 불러서, 지금 난 여기에 있다.
마치 잠복한 형사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팥빵을 베어 물고 우유팩을 기울였다.
왼쪽에는 빈 터가 있어서 풀숲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외발자전거가 비를 맞고 있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갑자기 스승이 입을 열었다.
“가령 태어날 때부터 지하실에서 자란 아이가 있다면 그 애는 지하실 밖에서 스스로 겪기 전까지 비라는 걸 모를까.”
무서운 말을 한다.
“불보다 비에 관한 역사는 오래 되었어. 인간이 원숭이였을 무렵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표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에게 비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유전자 깊숙한 곳에.
그렇게 말하며 부스럭거리며 편의점 봉투를 뒤진다.
이제 팥빵밖에 남지 않았는데 고집을 부린다.
자기가 팥빵만 산 주제에.
비에 관한 기억인가.
사고가 다시 깊숙하게 가라앉는다.
동물은 자신에게 위험한 걸 분간하는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잡아먹어야 할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들과 마주했을 때 유전자에 새겨진 반응이 일어난다.
좀 더 원시적인 생명에게 있는 주광성(走光性)이나 주수성(走水性)이 그럴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에 대한 반응도 태어나면서부터 몸속에 잠자고 있는 걸까.
아득한 과거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온 기억이.
처음으로 비를 봤을 때를 떠올려 보려고 했다.
당연히 그런 건 지금 기억날 리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처음 본 비는 어땠습니까.” 라고.
분명히 아무도 대답하지 못 할 것이다.
누구나 겪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유쾌하다.
한 번 더 내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비 냄새는 언제나 친근하다.
그 친근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알 수 없는 걸 생각하고 있을 때 스승이 하품하는 소리에 번쩍 현실로 돌아온다.
“왔어.”
빗줄기로 잘 안 보이는 길 너머로 인영이 보였다.
스승은 흐려진 앞유리창을 소매로 닦아냈다.
나는 눈을 돌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빨간 우산이 보였다.
이어서 그 손잡이를 잡은 여성이 나타났다.
표정까지는 알 수 없다.
30살 정도 될 것 같다.
옷차림으로 그렇게 추측한다.
그리고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금방 그 혐오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우산을 쓰고 걷는 여성 바로 뒤에 5, 6살 정도 되는 여자애가 따라서 걷고 있었다.
분홍색 신발, 노란색 모자.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지극히 평범한 엄마랑 자식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기엔 이상한 광경이었다.
우산을 쓴 여성.
그 1미터 뒤를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우산을 쓰지 않는 아이.
우산 밑에 바짝 붙어서 걷는다면 아무런 위화감도 없을 것이다.
고작 1미터로 마치 차안과 피안이 나뉘는 것 같다.
“비 때문인지 냄새를 맡을 수 없어.”
스승은 그렇게 말하고 잡아먹을 듯 그 둘을 바라본다.
이윽고 차 옆을 지나쳐 둘은 다시 빗속을 연기처럼 사라진다.
“저건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냐?”
나에게 물어본다.
알 수 없었다.
스승도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흐려진 뒷유리창을 닦으려고 시트를 넘기고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공중에서 방황했다.
“엄마도 딸도 인간. 엄마는 인간, 딸은 귀신. 엄마는 귀신, 딸은 인간. 엄마도 딸도 귀신.”
스승이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전부 슬프다.
왠지 무척이나 슬퍼졌다.
숨이 막혀서 조수석 유리창을 조금 내렸다.
쏴하는 빗소리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비상등이 짤깍짤깍 시간을 재는 것 같은 소리가 작아진다.
소리도 풍경도 마음도 죄다 비에 맞고 있다.
이런 세계로 되어버린 것 같았다.
처음 본 비가 언젠가는 멈출 거라는 걸 그때는 알았을까.
갑자기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