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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방

[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승강기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72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23723

대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오후에 나른한 강의가 끝나고 떠들썩한 가운데 공책을 가방에 넣고 있으니 같은 과인 친구가 말을 걸었다.

“야, 너 뭔가 괴담 같은 거 잘 하지?”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랐지만 조건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괴담을 잘 말하는 게 아니라, 아, 뭐라고 해야 되지.”

친구는 억지로 웃으려다가 실패한 것처럼 얼굴이 굳었다.

“무서운 거 괜찮지?”

겨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았다.
그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괜찮을 리 없었으니까.

“밖에서 얘기하자.”

아직 사람이 남아 있는 교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내키지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학교에서만은 가능한 평범한 학생인 척하려고 애썼다.

저녁놀이 지는 주차장에서 자전거에 기대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교외 맨션에 혼자서 살고 있었다.
승강기가 있는 10층 건물로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부모님이 변호사라서 생활비 걱정은 없는 모양이다.
말투에서 자랑하는 것 같은 낌새를 느낀 내가 돌아가도 되냐고 물으니 겨우 그 맨션에서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면 표시 램프가 위층에서 내려오잖아. 그리고 자기가 있는 층에 도착하면 문이 열리지? 그런데 그대로 통과하는 거야. 나 분명히 밑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는데.”

그런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해서 그는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장이 난 게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며칠 후 업자에게 부탁했는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승강기가 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야. 버튼을 눌러도 내가 있는 층을 그대로 지나쳐서 올라가는 거야. 위층에 있는 사람이 버튼을 눌러도 중간층에 있는 사람이 도중에 버튼을 누르면 멈추잖아. 백화점에서도 그렇고. 뭐, 설정이 다른가 보다 하며 짜증이 나서 기다리고 있으면 겨우 내가 있는 층에서 멈춰. 그리고 문이 쓱 열리면…….”

그는 거기서 말을 끊고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없는 거야.”

조금 오싹해졌다.
확실히 뭔가 좀 이상하다.
자기 층을 지나쳐서 위층에 멈추다니 어떻게 된 걸까.
누군가가 타려고 승강기를 부른 게 아닌가.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기분이 나빠져서 말이야.”

"게다가 나 4층에 사는데 말이지."

그 사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투로 그가 말했다.

“게다가 5호실이야. 하나, 둘, 셋, 넷, 네 번째 방이라고.”

"정말로 최악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숫자에 구애되는 성격인 모양이다.
축구부에 소속된 그에게 쾌활한 인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 그의 모습이 의외였다.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늘은 아무런 예정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거기 가도 돼?”

친구도 나를 따라 무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본 후 괜찮다고 대답했다.

내가 간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무서운 현상은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한 것도 의외로 해결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막연한 공감을 원했던 게 아닐까.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무심코 자조 기미로 그런 중얼거림이 나왔다.
어젯밤 만화를 읽고 있을 때 그 말이 나와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딱 맞는 격언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오컬트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극기심 아니었어?”

친구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놀이 물드는 가운데 자전거를 몰았다.
밀집한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에 친구가 사는 맨션이 있었다.

위에서 보면 커다란 L 자 같은 구조였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저녁에 거대한 그림자를 뻗는 그 위용을 올려다보았다.

도저히 학생용 건물로는 안 보인다.
실제로 부지 내에서는 자그만 그네랑 곤충 모양을 한 놀이기구가 보였다.

여기는 자그만 아이들이 가진 가족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좋은 곳에서 살고 있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친구 뒤를 따라 현관으로 갔다.
1층에 들어가니 바로 앞에 승강기가 보였다.
L 자에서 딱 꺾인 곳이었다.
오른쪽과 뒤쪽에 각 방 문이 늘어서 있었다.

“계단도 있지만 저기가 끝이야.”

친구는 뒤에 있는 L 자 중 짧은 부분 끝을 가리켰다.

“좀 불편해.”

그렇게 말하면서 친구는 선뜻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현재 승강기는 5층에 있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고 바로 내려와서 1층에서 불이 깜빡거린 후 문이 열렸다.

“왠지 이렇게 보여 주려니까 긴장이 되네.”

친구는 그런 말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를 따라갔다.
4층 버튼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힌다.
닫히는 순간 정면에 있는 회색 벽에 얼굴이 보인 것 같아서 심장이 철렁했다.

소리도 없이 승강기가 올라간다.
숨이 막힌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타고 있으려나.”

친구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희미하게 말끝이 떨렸다.
무사히 승강기는 4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친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양손을 펼쳤다.

“올라갈 때는 괜찮아.”

저녁놀이 늘어선 문들을 층 끝까지 붉게 물들인다.
친구는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집인데 들를래?”

희미한 기계음과 함께 등 뒤에서 승강기가 밑으로 내려갔다.

둘 다 저도 모르게 거기서 눈을 돌렸다.
밖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깨 정도까지 오는 담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밑을 내려다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부지 내에 있는 벽돌로 포장된 길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정보 수집하러 가자.”

잠시 그걸 바라본 후 그렇게 말한 나는 시선을 돌려서 검지로 밑을 가리켰다.

“오케이. 먼저 짐부터 놓고.”

친구는 문을 열쇠로 열더니 가방 두 개를 현관 앞에 던져 놓고 돌아왔다.

그리고 승강기 앞에 다시 섰다.
승강기는 현재 8층에 있었다.
이번에는 좀처럼 아래 버튼을 누르려고 하지 않는다.
조금 긴장한 모양이다.
나는 곁눈질로 친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이상한 일이 일어날 확률은 어느 정도야?”

“어, 다섯, 다섯 번 중 한 번꼴이려나. 아니, 열 번에 한 번꼴일지도 몰라. 미안, 잘 모르겠어.”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어제랑 오늘은 어때?”

“일어났어. 어젯밤에 술 사러 내려갔는데…….”

친구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실례할게요.” 라는 목소리와 함께 40대 주부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가 서 있는 곳에 비집고 들어왔다.

마치 승강기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가 방해된다는 듯이.

뒤로 물러나서 자리를 비운 우리 눈앞에서 주부는 밑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냉큼 누르고 승강기 위에 있는 층수 표시 램프를 올려다보았다.

7, 6, 5, 램프가 내려와서 4가 표시되는 순간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며 이 아주머니랑 같이 내려가야 하는 건지 의논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4가 나타났는데도 승강기 문은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램프는 그대로 4, 3 순으로 내려갔다.

입을 딱 벌린 내 앞에서 주부는 “쯧.” 하고 품위가 없게 혀를 차더니 발길을 돌려 계단으로 내려가 버렸다.

남은 우리는 다시 사람이 없어진 공간에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이거야?”

내가 묻자 친구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역시 단순한 고장인 것 같았다.

내가 그 말을 하려고 할 때 친구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저 아줌마, 나 좀 거북해. 아마 9층에서 사는 사람 같은데 4층에 친구가 있는지 가끔씩 마주쳐. 처음에 만났을 때 인사하는 타이밍이 있잖아. 그게 서로 안 맞았다고 해야 하나, 저쪽에서 무시한 것 같아서. 그렇다고 저번에 인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인사하는 것도 좀 어색하잖아. 그래서 결국 매일 서로 무시하게 되어버렸어. 그런 일 있잖아? 너도 알지?”

확실히 공감한다.
나도 이웃들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편이다.

“저번에 1층에서 승강기를 탔더니 말이야, 먼저 그 아줌마가 타고 있었는데 내 얼굴 보자마자 쯧 하고 혀를 차는 거야. 나에겐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한지 모르겠는데 엄청 기분 나빴다고.”

친구는 목을 비틀며 욕을 했다.

승강기 램프는 1층에서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4층을 통과한 후 누군가가 승강기에서 내린 걸까.
승강기를 타기 위해서 버튼을 누른 거라면 1층에서 다시 올라왔을 테니까.

그렇다는 말은 아까 우리를 지나친 승강기는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대체 누가 탔을까.
지금부터 달려서 계단을 내려가도 이미 떠나고 없을 것이다.

나는 얼굴이 새까만 사람이 이 맨션을 배회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문이 투명한 승강기였다면 이렇게 답답한 일이 없었을 텐데.

“어떡할래? 계단으로 내려갈래?”

“아니, 승강기를 타자.”

나는 한 번 더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버튼은 불이 켜져 있었다.

“역시 고장 아니야?”

이 층에 와서 문을 열라는 명령을 나타내는 램프가 켜져 있는데 승강기가 1층에 멈춰 있다니 고장이 틀림없다.

나는 버튼을 연타했다.
아마도 기계가 오래되어서 본체 반응이 나빠진 것이다.
내 연타가 먹힌 건지 겨우 승강기가 움직였고 우리 앞에서 문이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를 재촉해서 탔다.
1층 버튼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누른다.
쓱 문이 닫히고 밑으로 내려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승강기 안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향수 냄새를 콧구멍이 감지했다.

불쾌했다.
얼굴이 새까만 사람의 실루엣이 내 머릿속에서 아줌마 파마로 바뀐다.

1층에 도착했다.
부드럽게 열린 문을 통해 나와서 아무도 없는 승강기 안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단순한 고장일까.
저녁 해가 비치는 안을 문이 그림자를 만들면서 닫아 버린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한 번 더 버튼을 눌러 이 문을 열었을 때 안에 누군가가 있다면 어떻게 하지?

불쾌한 상상이었다.
멋대로 공포를 만들려고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악취미였다.

하지만 저번에 어떤 사람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상상은 꼭 자발적인 것이 아니야. 도둑잡기에서 마지막 두 장을 고를 때 한쪽만 집기 쉽게 조금 튀어나왔다면 그게 조커가 아닐까 상상하잖아. 무언가가 유발하는 상상도 있는 법이야. 혹시 보이지 않는 조커를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느꼈다면 그건 상상이라는 가죽을 쓰고 나타나는 건지도 몰라.”

에둘러 한 표현이었지만 나는 그걸 그가 나름대로 해 준 충고라고 여겼다.

즉 느꼈던 공포를 간과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상상이야말로 망상이니까.

“그래서 어떡해?”

틱, 틱 소리가 나면서 돌멩이가 벽돌이 깔린 포장도로 위에 미끄러진다.

그 후 아이들이 달려 나간다.
맨션 벽에 막혀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도 길게 뻗은 그림자만이 희화인양 꿈틀거리며 땅에 몸부림치고 있다.

나는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말을 걸었다.

“이 맨션에 사는 애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모두 멈춘다.
6, 7명 정도 있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뭔가요?” 라고 물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틈을 두지 않고 재빨리 그렇게 말한 다음 이 맨션 승강기에서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한순간 얼굴을 마주 보는 기색이 있었으나 주뼛주뼛 한 아이가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몰라요.”

꼭 승강기가 아니라도 좋으니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은 없는지 재차 묻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아이들은 다시 돌멩이를 차며 달려갔다.

대표로 나선 남자애도 그쪽이 신경 쓰이는지 안절부절못했다.

“뭔가 이상한 걸 보았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니?”

남자아이는 기분 나쁜 얼굴을 하면서 “없어요.” 라고 자그만 목소리로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로 뒤에 있던 애가 “야, 가자.” 라고 말하자 휙 등을 돌려 달려가 버렸다.

“아아.”

친구가 한숨을 내쉬고는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것 같았는데.” 라고 중얼거린다.

“어른들에게 물어볼래?”

내가 묻자 내키지 않는 듯 신음을 흘리고 옆에 있는 그네에 발을 걸쳤다.

“나 여기 사는 사람들 거북해.”

“어째서?”

나도 다른 그네에 앉았다.
끽끽 쇠사슬을 비틀면서 친구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고향은 시골인데 말이야.”

이웃은 전부 얼굴을 알고 있었다.
사람과 잘 사귀는 건 아니었으나 길에서 만나면 인사는 하고 식사에 초대받기도 하고 장난치다가 들켜서 혼나기도 했다.

좋든 나쁘든 그곳에는 인간관계가 풍부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서 여기서 자취한 후 이웃과 전혀 교류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인사를 했지만 반응이 시원찮은 거야. 휑하고 좁은 통로에서 마주쳐도 이렇게 목례만 할 뿐이고. 서서 이야기한 적도 없고 이웃집 애가 두 명인지, 세 명인지도 몰라.”

친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이사한 후 주민들과 거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학생용 건물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생활시간도 전부 다르고 옆집 사람 얼굴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주쳐도 어색하기만 할 뿐이다.

“무관심이겠지.”

친구가 불쑥 말했다.
그렇다.
그리고 우리도 무관심에 전염되어 간다.
이런 식으로 밀집해서 살아가면 모두 이렇게 변해 버리는 걸까.

문득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메뚜기의 군집 생활이 떠올랐다.

“모르는 주민하고 승강기에 같이 타면 숨이 탁 막혀. 백화점 승강기를 타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고개를 드니 해가 져서 땅거미가 진 맨션 안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끽끽 소리만 울려 퍼진다.

익명이다.
죄다 익명이다.
익명인 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그림자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동안 쓸데없이 그네만 타던 우리는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진데다 배도 고팠기에 그만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려서 받아 보니 나에게 그 ‘보이지 않는 조커’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오컬트 스승이다.
모레 갈 예정인 심령 스팟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건 전화였다.

나는 통화한 김에 지금 있는 장소를 알려 주면서 그 맨션 승강기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몰라.”

딱히 기대는 안 했지만 주민도 아닌데 유독 이런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혹시나 싶어 물어본 것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전화를 끊으려고 하니 그게 거슬렸는지 그는 자세히 이야기해 보라고 다그쳤다.

나는 친구가 겪은 경험과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스승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 승강기가 있는 곳에서 기다려.” 라고 말하고는 멋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뭔가 알아낸 걸까.
우리는 전등이 켜진 맨션 입구로 걸어갔다.

“뭐야? 누군데?”

“동아리 선배.”

친구가 묻자 나는 그렇게만 설명하고 얼버무렸다.
그가 누군지 내가 더 알고 싶다.

신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승강기 앞에 서니 느낌이 이상했다.
맨션이라는 익명인 상자 안에 또 들어 있는 익명인 공간.
지금 닫혀 있는 이 문 너머에 누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층수를 표시하는 빛만 흘러가는 가운데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곳에 정말로 사람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아니, 알 수 없게 되었다.
얼굴 없는 환영이 방황하는 모습이 저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같은 간격으로 천장에 달린 전등이 통로를 비추고 있었다.

“기다렸지? 혹시 버튼이 달린 표시판이 밖에 있어? 없으면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

그 말대로 나는 친구랑 같이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다.

“표시판 주위에 글이 적힌 스티커나 플레이트 있지? 메이커 명이 뭐야?”

닫힐 것 같은 문을 손으로 막고 친구에게 열림 버튼을 눌러 달라고 부탁했다.

“어, 외국 제품인 것 같네요. 메이커 명이 뭐지.”

나는 그럴듯해 보이는 글자를 찾아서 읽었다.
스승은 수화기 너머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오케이. 그럼 네 친구에게 3층에 가라고 말 좀 해 줘.”

스승은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다음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해하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

1층 승강기 앞에는 내가 3층 승강기 앞에는 친구가 섰다.
승강기 안에 들어간 나는 스승이 시킨 대로 5층과 닫힘 버튼을 동시에 누른 뒤 휴대전화로 친구에게 “눌렀어. 그쪽도 눌러.” 라고 말했다.

친구도 3층에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잠시 후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건너편 벽 모양이 역시 얼굴처럼 보였다.
시뮬라크르(Simulacra) 현상*, 시뮬라크르 현상.
나는 최근에 배운 심리학 용어를 불경처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 시뮬라크르 현상 : 뇌가 점 세 개가 모인 도형을 인간 얼굴처럼 인식한다는 현상.)

천천히 승강기가 올라가는 감각이 느껴질 때 나는 바로 3층에 멈출 거라고 짐작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강기는 3층에서 멈추지 않고 5층으로 올라가서 문이 열렸다.

밤바람이 들어온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을 딱 벌린 채 내린 나를 남겨 두고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계단을 달려 올라온 친구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면서 뛰쳐나왔다.

“방금 그거 뭐야? 왜 그냥 지나친 거야?”

“너야말로 3층에서 버튼 누른 거 맞아?”

“눌렀어. 올라가는 버튼에도 불이 들어왔는걸.”

그야말로 친구가 체험한 괴기 현상이었다.
나는 얼른 스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뭐예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나에게 스승은 한심하다는 듯이 “급행 모드.” 라고 말했다.

“외국에서 만든 승강기 중에는 이런 숨겨진 기능이 있어.”

이 제품은 닫힘 버튼과 자신이 갈 층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그 후에 어떤 층에서 버튼을 눌러도 무시한다고 한다.

현재 표시된 층은 5층이다.
이 문 너머에 아직 승강기가 있다.
3층을 누른 친구는 무시당한 것이다.

“그 말인즉…….”

“그래. 그 맨션에 사는 사람들은 그걸 알고 평소에 계속 쓰고 있었던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 마지막에 “모레 늦지 마라.” 라고 덧붙이며 스승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짐을 친구 방에 두고 4층에서 밑으로 내려갈 때 위층에서 승강기가 내려왔는데 4층을 그대로 지나 1층으로 갔다.

그때 같이 있던 주부는 혀를 찼다.
그건 누가 급행 모드를 사용한 걸 알고 혀를 찬 것이다.

친구는 전날 그 주부랑 탈 때도 그녀가 혀를 찼다고 말했다.

그건 다른 사람과 같이 탈 때는 급행 모드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짜증이 났던 게 아니었을까.

친구가 체험한 일 하나하나를 살펴보아도 전부 이 급행 모드로 설명이 가능했다.

너무나 간단히 괴기 현상을 해결해 버린 우리는 맥이 빠진 나머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문 너머를 두려워하는 우리가 한심해졌다.
그 애들도 알고 있었을까.
당연히 대답해 줄 리가 없다.
분명히 부모가 비밀이라고 입을 막았음이 틀림없다.
더 이상 급행 모드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안 되니까.

그렇다.
자기만 알고 있으면 된다.
다른 사람이 급행 모드를 사용하면 폐가 될 뿐이니까.

“나는 역시 무서워.”

친구가 툭 내뱉었다.
남을 기다리게 할지라도 자신만 편리하면 된다는 그 생각에 나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분명히 그건 익명이라서 그렇다.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익명이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악의.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악의.
그런 사소한 악의가 이 맨션에 가득 차서 그것이 우리 마음을 어둡게 가라앉혔다.

친구는 2학년이 되자 그 맨션에서 나와서 2층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동안 그는 계단밖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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