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70892
대학교 2학년 초여름이었다.
나는 오컬트 스승을 따라 산으로 갔다.
"재밌어 보이는 게 들어올 것 같아."
그렇게 말하기에 졸래졸래 따라갔지만 그가 말하는 재밌다는 감상은 보통 사람들 생각과는 다르기에 나는 잔뜩 긴장했다.
가는 곳이 절이라는 걸 알고서 더더욱 긴장했다.
듣자하니 아는 사람이 있는 절인데 그쪽에서 연락이 들어왔다고 한다.
시내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스승이 여기라고 말하며 길가에 경차를 세웠다.
주변은 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간에서 오후의 상쾌한 바람이 불고 있다.
오래된 문을 지나 들어가니 삼나무들 너머로 본당이 있었다.
옆에 있는 정원에는 흐릿한 못이 소리도 없이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진종사(真宗寺)야."
스승이 말했다.
멧비둘기가 울고 녹색이 짙은 숲에 희미하게 날갯짓하는 소리가 사라진다.
오른쪽에 종루가 보이나 지붕이 기울어지고 정작 중요한 종이 보이지 않는다.
버린 것 같다.
"종을 전시 중에 바친 뒤로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나 봐."
스승의 설명을 듣고 한 번 더 그쪽을 바라보았을 때 시야 끝에 뭔가 하얀 게 비친 것 같았다.
앞서 가는 스승을 쫓아가면서 고개를 틀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하얀 것이 옷인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경내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으니까.
스승이 성큼성큼 본당에서 방향을 틀어서 단층집으로 갔다.
주지가 사는 집 같다.
쿠리(庫裏)라고 하던가.
현관 쪽으로 가려고 하니 "여기야, 여기." 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뒤에서 손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매우 키가 큰 남성이다.
나와 스승은 뒷문 쪽으로 들어가서 거실로 보이는 방으로 안내받았다.
"아버지는?"
"나갔어. 파친코라도 하러 간 거 아닐까."
스승이 묻자 남자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럼 그걸 가지고 오지."
남자가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나는 스승을 쿡쿡 찔렀다.
"저 사람은 쿠로야 씨라는 나쁜 사람이야. 아버지가 이 절 주지지. 역시 나쁜 사람이야. 내게 공양을 부탁받은 물건을 팔고 있으니까."
히죽히죽 웃는다.
나는 전날 본 심령사진들을 떠올렸다.
아마 그것도 업자한테 산 걸 옆에서 빼돌린 물건이었을 것이다.
"아, 여기서 직접 산 것도 있어. 뭐, 일단 여기는 태워서 공양을 해주는 숨겨진 명사라는 소문이 퍼져 있으니까 제법 수가 돼. 뭐, 진짜는 1할 이하지만."
스승은 그렇게 말하면서 방 안에 무작위로 장식된 이치마츠 인형이나 족자를 멋대로 건드린다.
이윽고 쿠로야라고 하는 남성이 돌아와서 종이봉투를 스승 앞에 두었다.
스승이 손을 뻗으려고 하니 쿠로야 씨가 싹 종이봉투를 빼고 손바닥을 펼친다.
손가락 다섯 개를 강조하듯이 꿈틀꿈틀 움직인다.
"다섯 개는 너무 많아요."
스승이 입을 삐죽거리니 쿠로야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면서 "아, 그래?" 라고 말하며 종이봉투를 들고 일어나려고 한다.
"잠깐만. 온 건 어떤 사람이에요?"
스승이 재빨리 묻자 쿠로야는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대답했다.
"중년 귀부인. 깊이 눌러쓴 모자에 선글라스. 주소 불명. 성명 불명. 물건 경위도 불명. 그치만 공양비로 발가락까지 전부 놓고 갔지."
"20개나?"
스승이 험악한 얼굴을 한다.
"알겠어요."
스승은 주머니에서 꺼낸 지갑을 던졌다.
쿠로야는 지갑을 척 받고는 종이봉투를 넘겼다.
스승은 종이봉투를 들여다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무심코 옆에서 들여다보았다.
봉투 안에는 검은 비디오 테이프가 보였다.
"부족하잖아."
쿠로야가 말하자 스승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다음에 가지고 올게요." 라고 말한다.
"다음이 언제인데."
거북한 분위기가 흐른다.
"얼마 부족한데요?"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가 말을 꺼냈다.
내가 보기에도 스승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7천 엔을 지갑에서 꺼내 쿠로야에게 건넸다.
나도 보고 싶다.
여기까지 와서 참을 수는 없다.
"또 뭔가 들어오면 연락하지."
쿠로야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돌아갈 때 나와 스승은 또 뒷문으로 돌아갔다.
신발이 거기 있기 때문일 테지만 왠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나쁜 짓이다.
공양해 달라는 물건을 이렇게 돈을 주고 사서 호기심을 채우려고 하니까.
이걸 가져왔다던 여성은 대체 어떤 심정으로 절문을 지났을까.
느닷없이 팔을 붙잡혔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녀석 제자냐."
엄청난 힘이었다.
쿠로야는 나를 잡아당기며 속삭인다.
스승은 이미 밖을 나가서 집 안에선 보이지 않는다.
"내 이야긴 들었냐."
잡힌 팔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라이 이야기도 들었냐."
"아직 전부 안 들었어요."
간신히 그렇게 말하니 겨우 손을 놓아주었다.
쿠로야는 뭔가 생각하듯이 허공을 바라보다가 씨익 입가를 올렸다.
"그 비디오 위험하다구."
그는 이제 가보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잡힌 팔꿈치 뒤쪽이 열이 난 것처럼 아프다.
나는 도망치듯이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스승이 누군가를 발견한 듯 뭐라 말하면서 본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출입구를 신경 쓰면서 황급히 쫓아갔다.
저 너머에 하얀 옷을 입은 소녀가 있었다.
아까 봤던 그.
환각은 아닌 모양이다.
"아키."
스승은 그렇게 부르면서 다가갔다.
본당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스승이 부르자 가볍게 고개를 숙여 화답한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인다.
가녀리고 살갗이 흰 애였다.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인사를 나눈 후 스승이 물었다.
"고등학교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평일일 것이다.
학교를 쉬고 있는 건가.
"아마도 어떻게든 될 것 같아."
소녀는 빙그레 웃더니 풍령이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후 참배길을 되돌아가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계속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돌아볼 때마다 주변 풍경보다 작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난 안전벨트를 메면서 스승을 바라보았다.
"아키라고 하는군요."
"응. 가을(아키)에 태어나서. 그 아저씨 여동생이야. 몸이 약해서 학교도 거의 쉬고 있는 것 같아."
상당히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매다.
그것보다 그 체격이 튼실한 남성과 차이가 너무 크다.
"피가 이어진 건 진짜야. 어디서 입양해온 건 아니야. 게다가 그 아저씨, 저래 봬도 아직 아슬아슬하게 20대라고."
스승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고 급한 산길을 내려가기 위해서 기어를 내리고 풋 브레이크에서 엔진 브레이크로 바꾸었다.
"그 아저씨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줄게."
그것보다 먼저 이거지.
그런 얼굴로 스승은 옆에 있는 종이봉투를 핥듯이 바라보았다.
서로 오후에는 볼일이 있어서 자정 무렵에 다시 합류했다.
"밤이 더 분위기가 살잖아."
스승은 그렇게 말하고 아직 보지 않았다던 비디오 테이프를 종이봉투에서 꺼낸다.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가구인지 쓰레기인지 알 수 없는 잡동사니를 난폭하게 치우고 스승도 옆에 앉는다.
"오래된 테이프 같으니까 불안했는데 호환이 되는 거라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검은 비디오 테이프 커버 부분을 손톱으로 긁는다.
120분짜리 테이프 같다.
타이틀 씰은 없다.
"자, 공양을 희망한 사연 깃든 물건. 한번 볼까."
농담처럼 말하면서 스승은 비디오덱에 테이프를 넣는다.
'재생' 이라는 글자가 떠오르고 검은 화면이 지지직거린다.
좀 두근거리면서 잡아먹을 듯이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여전히 지지직거린다.
혹시 사기 당한 거 아닐까 걱정이 될 무렵 겨우 화면이 바뀌었다.
자그만 역 안 같다.
밤인 듯 조명이 없는 곳과 있는 곳의 명암이 확실하다.
사람 그림자도 적은 플랫폼만 계속 비치고 있다.
무슨 기록 영상인 걸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화면 오른쪽 끝에서 옅은 녹색 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가 나타나서 건너편 플랫폼을 보면서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하얗고 밋밋한 가면을 쓰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알 수 없다.
알리바이가 어쩌고 하는 단어가 나와서 아무래도 추리극 홈비디오를 촬영하는 것 같았다.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담담히 독백하는 스타일은 그다지 연출이 좋지 않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학예회 출품용이려나.
아니면 그걸 연습하기 위해 찍은 건지도 모른다.
눈 부분만 구멍이 뚫린 하얀 가면도 그리 무섭지 않다.
그저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쓴 것 같았다.
왜 숨기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열차도 들어오지 않고 구내방송도 흐르지 않는 단조로운 영상을 배경으로 아마추어 연기가 계속 이어진다.
이 다음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던 나도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화면은 때때로 흔들려서 고정시켜둔 게 아니라 카메라맨이 있는 것 같다.
고작 둘이서 촬영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이 다음에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갑자기 영상이 끊겼다.
또 지지직거린다.
스승이 빨리감기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여전히 화면은 지지직거린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되감기를 시작한다.
스승이 입을 열었다.
"뭐 이상한 거 있었냐?"
내가 다 묻고 싶다.
5만 엔이나 주고 산 사연 깃든 비디오 테이프가 고작 이건가?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낸 7천 엔 스승은 돌려줄 마음은 있는 걸까.
한 번 더 처음부터 재생했다.
지지직거리고 또 플랫폼이 비친다.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카메라 앞에서 떠든다.
플랫폼에는 전철도 들어오지 않는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휩싸인다.
단조로운 영상이 이어지고 이윽고 끊긴다.
그리고 지지직.
똑같다.
별반 이상한 데도 없다.
스승을 보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두 번 더 우리는 되감기와 재생을 반복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속은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스승은 하품으로 대답한 뒤 불쾌한 듯 "잘래."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불을 깔고 잔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돌아가려고 현관을 보았다가 왠지 기분이 나빠서 고개를 저었다.
그 쿠로야라는 사람이 이 비디오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게 왠지 마음에 걸린다.
이걸로 끝날 리가 없다.
나는 비디오덱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뽑았다.
빛에 비추어서 한 번 더 관찰했지만 역시 흔해빠진 테이프다.
자주 듣는 메이커명이 새겨져 있다.
혈흔 같은 불길한 것이 없는지 조사했지만 그런 것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역시 내용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으니 스승이 눈부시다고 잠꼬대를 하며 뒤척였기에 불을 껐다.
어둑한 알전구 밑에서 나는 덱에 다시 테이프를 넣었다.
위잉하는 무미건조한 소리와 함께 재생된다.
지지직.
플랫폼.
하얀 가면을 쓴 남자.
독백.
건너편 플랫폼을 지나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
희미하게 떨리는 화면.
그리고 지지직.
정지.
되감기.
재생.
지지직.
사람이 거의 없는 밤 플랫폼.
하얀 가면을 쓴 남자의 녹색 셔츠.
연기 같은 독백.
건너편 플랫폼.
또 다른 한 명이 들고 있는 것 같은 비디오카메라.
웅성거림.
단조로움.
그리고 지지직.
정지.
한숨을 쉬었다.
몇 번을 보아도 똑같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상한 점을 꼽는다면 플랫폼에 선 하얀 가면을 쓴 남자라는 비일상적인 광경뿐이지만 그것도 그것뿐이다.
절에 가서 태워서 공양해 달라고 부탁할 필요까지 있는 걸까.
다만 있다고 한다면 내가 모르는 정보를 전제로 한 괴기현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 비디오를 촬영했을 때 아무도 카메라 앞에 있지 않았는데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멋대로 찍혀 있다는 결말이라거나.
그 생각에 좀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 가면을 쓴 남자가 너무 생생해서 괴담과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아마추어가 찍은 홈비디오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 번 더 덱에 손가락을 뻗었다.
재생.
지지직.
갑자기 나타나는 밤 플랫폼.
화면 끝에서 나타나는 하얀 가면을 쓴 남자.
플랫폼을 향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
흔들리는 화면.
웅성거리는 소리.
그때 위화감이 들었다.
뭐지?
뭔가 이상하다.
대체 뭘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 순간이었다.
뭔가 부풀어오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카메라 앵글 끝 플랫폼 화면 구석에서 탄환 같은 게 튀어나왔다.
전철이다.
전철이 지나간다.
플랫폼 안을.
그 회색 상자는 잔상의 꼬리를 끌고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눈을 부릅 뜨고 텔레비전 앞에서 숨을 집어삼켰다.
있어서는 안 되는 광경이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재생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비디오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이상한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승이 사는 낡은 아파트는 알전구 밑에서 어둡고 조용하게 침전해 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게 일어날 것 같은 전조는 없다.
귀울림도 없다.
빨라진 고동을 의식하면서 한 번 더 화면을 보았다.
통과한 전철이 퍼뜨린 소리가 가라앉은 후에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곤란한 듯이 카메라를 향해 "컷, 컷." 이라고 말한다.
전철 소리 때문에 대사가 들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투가 너무나도 인간다워서 아슬아슬하게 내 마음을 일상 속에 붙잡아두었다.
그래서 그 후에 들린 비명에도 간신히 견딜 수 있었다.
그렇다.
비명은 화면 속에서 들렸다.
가면 쓴 남자가 카메라를 향해서 컷 제스처를 취할 때 플랫폼 건너편에서 커다란 종이봉투를 안은 여성이 느닷없이 비명을 지른 것이다.
움찔한 가면 쓴 남자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카메라도 덜컹 흔들린 후에 각도를 바꾸어 그쪽을 향한다.
건너편 플랫폼에는 몇 명이 달려왔고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가리키는 선로 주변을 몸을 내밀며 보았다.
대체 뭘까.
플랫폼을 옆에서 촬영하는 카메라로는 각도상 밑에 있는 선로가 안 보인다.
다만 직전에 통과한 전철을 생각해 보면 뭐가 일어났는지 알 것 같다.
카메라가 플랫폼 끝을 향해 다가가려고 할 때 "좀!" 하고 거친 목소리가 들리더니 뭔가가 렌즈를 가렸다.
한순간 보인 제복 자락을 보건대 아무래도 역원이 촬영을 막은 것 같다.
어두워진 화면 너머에서 노성과 뭔가를 지시하는 목소리가 섞여 들린다.
그리고 갑자기 뚝 재생이 끝난 뒤 화면이 지지직거린다.
나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냉정하게 정리하려고 했다.
비디오 내용이 바뀌었다.
그것도 확.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했다.
두려워하는 건 그 뒤다.
잠자코 화면을 바라보는 내 앞에서 화면이 계속 지지직거린다.
어두운 방에서 그걸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방사형 빛이 얼굴을 비추고 있으면 왠지 그 밑에 있는 몸이 희미해져가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자기 얼굴만 떠오르는 기분이다.
뭘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무의식적으로 검지를 내밀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되감기다.
되감기를 해서는 안 된다.
이 앞부분 재생이 끝나고 지지직거리기 시작해서 나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 후 나는 되감기를 잊은 채로 재생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리고 지지직이 끝난 비디오는 또 하얀 가면을 쓴 남자의 일인극을 보여준 뒤 아까 전철이 지나간 후 끝났다.
다른 영상이 남아 있었던 건가.
나는 흥분해서 바로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재생 중 되감기를 하면 시간이 되감기듯이 영상이 역재생된다.
지지직이 끝나고 전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가면 쓴 남자가 플랫폼을 향해서 중얼중얼 뭔가를 말하는 장면 후에 지지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또 플랫폼 광경이 나오는 것이다.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나오는 시시한 장면이 또 지지직거리는 화면으로 돌아오고 이윽고 쿵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화면에 녹색 '정지' 글자가 나타났다.
정리하자.
이 테이프에는 지지직거리는 화면을 사이에 두고 두 번째 영상이 들어가 있었다.
처음에 스승이 빨리감기를 할 때는 단순히 빨리감는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리고 두 번째 영상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걸로 보인다.
아마도 영상극을 위해서 다시 찍은 영상일 것이다.
처음 시작된 영상과 거의 같은 구도였지만 건너편 플랫폼에 찍힌 사람들 배치가 미묘하게 달랐기에 거기서 위화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 테이크 2에서 전철이 통과했기에 가면 쓴 남자는 컷을 요구했고 그 직후 이변이 일어났다.
아마도 열차사고다.
나는 테이크 2에서 전철이 화면 끝에서 나타나기 직전 영상을 일시정지시키고 느리게 재생했다.
화면은 딱딱 끊기면서 움직이며 노이즈가 섞인 조잡한 영상 속에서 나는 건너편 플랫폼 오른쪽 끝에 있는 코트를 입은 인물을 눈으로 쫓았다.
전철이 지나간 후 소동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건너편 플랫폼에 그런 코트를 입은 인물은 없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숨을 삼키며 보고 있는 가운데 코트를 입은 인물이 휘청거리나 싶더니 플랫폼 끝에서 선로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에서 돌격해오는 전철.
지나간 후 소동.
역시 그랬다.
코트를 입은 인물이 치인 것이다.
혹은 죽은 건지도 모른다.
한 번 더 감아서 똑같은 장면을 일반 재생해서 보니 모든 게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번만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가면 쓴 남자도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동료도 전철이 지나간 후 여성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누가 선로에 떨어진 걸 깨닫지 못했다.
전철이 지나가던 도중인 플랫폼 분위기를 봐도 아무도 눈치 못 챈 게 분명하다.
영상을 보건대 주변에 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고나 누가 밀친 게 아니라면 역시 자살인가.
아니면 현기증이나 발작으로 쓰러진 걸까.
몇 번이고 돌려 보고 있으니 자신이 완전히 냉정해진 걸 깨달았다.
그것도 그렇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순간이 찍힌 테이프라고는 하지만 인체가 파괴되는 장면이 찍힌 건 아니니까.
간접적으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기분 나쁜 건 변함없었지만 세상에는 그런 끔찍한 장면이 여실히 찍힌 악취미인 비디오도 있다.
그런 것과 비교하면 약과다.
5만 엔. 그런 단어가 떠오르고 이어서 7천 엔이라는 단어도 떠오른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그날 밤 제일 핏기가 가시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불에 들어갔을 스승이 내 뒤에서 한쪽 무릎을 세운 채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눈은 번뜩이고 있었고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려 있다.
그 몸은 바로 거기에 있는데도 동시에 아득히 멀리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거는 게 망설여진다.
굳어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갑자기 스승은 힘이 빠진 듯이 웃었다.
"재밌네."
"재밌지는 않지요."
겨우 그렇게 대답한 나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또 지지직거린다.
스승이 손을 뻗어서 재생한 채로 빨리감기를 한다.
노이즈가 형태를 바꾸지만 화면은 계속 지지직거린다.
이윽고 뚝 테이프가 멈추고 자동적으로 정지 상태가 되어 되감기가 시작된다.
그렇구나.
2번째 영상이 있었으니 3번째 영상도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해?"
스승이 중얼거린다.
그 코트를 입은 인물을 말하는 것 같다.
"아마도."
혹시 역원의 제지를 받지 않고 카메라가 선로를 촬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그 아저씨에게 들어온 물건이야. 이걸로 끝나지는 않겠지."
스승이 씩 웃었다.
"찬찬히 조사하고 싶지만 일단 잘래."
또 이불 속으로 눕는다.
나는 그것이 거액을 지불해서 억울해하는 것처럼 들려서 좀 유감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납득이 안 가는 얼굴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스승이 툭 말을 던졌다.
"비디오 속은 여름이야."
한순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야 가면 쓴 남자가 입은 셔츠나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 복장을 보니 더운 계절인 건 분명하지만...
잠시 시간이 걸린 후 겨우 스승이 하고 싶은 말을 이해했다.
코트를 입은 인물은 마치 다른 계절 속에 있는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더 전철이 통과하기 전 장면을 재생하니 그 인물은 커다란 코트를 걸치고 장갑을 끼고 있었다.
게다가 깊숙이 모자를 눌러쓰고 햐안 마스크를 착용하여 얼굴까지 가리고 있었다.
화질이 안 좋은 비디오 영상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이 안 간다.
그저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눈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그 몸은 플랫폼에서 떨어져서 쇠덩어리가 그걸 밟듯이 지나갔다.
비디오를 본 밤에는 결국 스승 집에 묵었다.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있는 대학 강의를 빼먹고 2교시부터 출석한 뒤 동아리 방에서 시간을 때웠다.
사람들과 같이 학교 뒤 정식점에서 저녁을 먹은 뒤 딱히 할 일도 없기에 해산.
나는 그 길로 편의점을 들러 유통기간이 다 되어가는 20엔 할인된 빵을 사서 내 아파트로 돌아왔다.
5개 천 엔으로 일주일 동안 빌린 대여 비디오 묶음에서 적당히 2개 꺼내어 빵을 씹으면서 보고 있으니 실로 평범한 나의 하루가 끝났다.
기지개를 펴면서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매달려 있는 전구 줄을 누운 채로 간신히 잡아당기니 방 안이 어두워진다.
나는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기묘한 일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감긴 눈꺼풀 뒤로 아까까지 밝았던 전구 윤곽이 비친다. 별로 이상한 건 아니다.
자기 전에는 늘 보던 광경이니까.
하지만 그 전구 윤곽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또 다른 윤곽이 나타났다.
한순간 각인된 빛이 희미한 시각정보를 뇌에 보낸 후에 금방 확산되어 사라진다.
눈을 감은 채로 그걸 자세히 보려고 해도 환상처럼 녹아들고 만다.
눈을 뜨면 어둠 너머로 천장이 있을 뿐이다.
줄을 잡고 불을 켠 뒤 한 번 더 감아 본다.
그러자 또 전구 윤곽이 허공에 떠오르며 뢴트겐 사진처럼 음영을 남기면서 스며들듯이 사라져갔다.
이번에는 또 다른 윤곽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지만 이상한 건 보이지 않는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눈꺼풀 뒤로 윤곽이 비칠 정도로 빛을 발하는 혹은 반사하는 물건은 천장에 매달린 전구 말고 없을 텐데.
눈을 감은 순간 애매한 기억을 불러냈다.
침대에 눕기 전 그런 걸 봤을 리가 없다.
왠지 고동이 빨라졌다.
전구 옆에 무수히 많은 창문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빌딩을 보고 있었다니.
숨을 깊이 토해내고 그 후 가볍게 웃듯이 마지막 숨을 토해냈다.
오늘 본 대여 비디오에 그런 빌딩이 나왔나 생각하면서 지친 눈구덩을 누르면서 줄을 잡아당겼다.
다음 날도 대학 수업이 있었다.
1교시, 2교시에 성실하게 출석한 후에 점심을 먹기 위해 학식으로 갔다.
쟁반을 들고 둘러보니 늘 앉는 지정석에 스승이 보인다.
"카레인가요."
건너편 자리에 앉으니 그는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학식 카레 L 사이즈는 300엔에다 거스름돈이 나올 정도로 싼데도 배고픈 학생의 위장을 그럭저럭 만족시켜줄 양을 자랑한다.
물론 맛은 논외지만.
"뭔가 알아냈나요?"
스승은 잠시 우물거리다가 물을 마셨다.
"장소는 알았어."
"어? 그 비디오에 찍힌 역 말인가요?"
"화면 끝에 한순간 다음 정차역이 나왔어. 타카토역이야. 근처 노선도를 살펴보았더니 해당하는 역명이 있었어. 틀림없겠지. 그 서쪽 역이 키타카코역, 동쪽 역이 마에바라역이야."
구체적인 이름이 나왔지만 역명이나 그와 관련된 이름은 가명으로 하는 게 무난할 것 같다.
"비디오 안에서는 다음 정차역인 타카토역이 왼쪽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어.
다음 열차가 간 방향이지.
그리고 비디오를 보건대 건너편 플랫폼에는 개찰구가 보이지 않아.
아마도 개찰구 쪽에서 촬영한 거야.
키타카코, 마에바라, 양쪽 역에 전화해서 확인했는데 둘 다 개찰구는 남쪽에 있었어.
그렇다는 건 개찰구 방향에서 봤을 때 왼쪽은 서쪽이 되는 셈이니..."
"비디오를 촬영한 역은 동쪽 옆인 마에바라역이군요."
"그런 셈이지."
스승은 한 번 더 숟가락을 카레 안에 찔러넣었다.
마에바라역인가.
잘 모르는 역이다.
현외인데다 특급이나 신칸센은 멈추지 않는 역일 터다.
"다른 거는요?"
스승은 입을 움직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덤으로 어젯밤에 일어난 그 기묘한 체험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구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끗 보고 급히 카레를 먹는 스승을 보니 아무래도 급한 용무가 있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스승이 빈 컵을 눈앞에 내민다.
눈빛을 교환할 필요도 없이 나는 물을 뜨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 오후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역 지하에서 양과자를 파는 가게가 있는데 그 가게에서 굽기 전 반죽을 만드는 작업장이 역 근처에 있다.
내 일터다.
늘 줄이 생기는 유명한 가게로 점원도 젊고 귀여운 여자애가 많았다.
막연한 희망을 품고 알바 모집에 응모해 보았는데 점포 스태프는 전부 여성이 맡게 되고 남자인 나는 당연히 뒤쪽 제조 스태프로 가게 되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나는 자신의 경솔함을 원망했다.
아무튼 그 무렵 나는 주에 2,3번꼴로 소맥분이나 버터를 반죽하고 있었다.
그 가게는 JR 관련 회사가 경영하고 있어서 정사원은 두 명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알바생이다.
그 정사원 중 한 명이 키타무라 씨인데 예전에는 역원이었다.
그날도 추가 반죽 주문이 많이 들어와 숨 돌릴 틈도 없이 일하고 있었다.
다른 역에도 지점이 있기에 냉동해서 옮길 반죽도 만들어야 했기에 대행렬을 이루는 점포에 지지 않을 만큼 뒤쪽도 빡셌다.
겨우 가게를 닫을 시간이 되어서 이쪽도 청소를 시작했다.
동료 사이에 웃음소리가 들리는 온화한 시간이다.
나는 옆에서 금속 쟁반을 씻고 있는 키타무라 씨에게 말을 걸었다.
"역원이었을 때 플랫폼에서 자살한 사람 본 적 있었나요?"
"있었지~ 청소도 했어."
미끄러질 것 같은 안경을 치켜올리면서 키타무라 씨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40대도 반은 넘었는데 그 성격에 알바생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선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비참하다.
바퀴에 휘말려서 원형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
절단되어 사방으로 튀는 살점.
그걸 치우는 것이 역원이 할 일이다.
살아 있다면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들것에 실어서 보호하지만 온몸이 토막난 경우에는 가능한 조각을 모아서 하얀 천으로 덮어둔다.
그렇게 즉사한 경우는 나중에 교통감식 현장검증이 있을 때까지 구급대 쪽에서 인계하지 않는다.
그런 시체 곁에 있는 건 정말로 기분 나쁜 일이라 어서 경찰이 와 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걸 키타무라 씨는 유난히 즐거운 듯이 말한다.
"특히 정차역이라면 감속하니까 팍 치고 가지 않아 바퀴에 휘말려서 엉망이 되지. 그때는 양동이를 들고 집게로 살점을 집어담아. 그때는 2,3일은 고기 요리를 못 먹게 되더라고."
손짓발짓 섞어서 과장스레 말했기에 뒤에서 "떠드는 동안에도 손을 움직일 것." 하고 주의가 날아온다.
점장도 대놓고 세게 나서지 못하는 대단한 알바생 아주머니다.
어쩔 수 없이 뒷정리를 전부 끝낸 뒤에 대기실에서 한 번 더 키타무라 씨에게 말을 걸었다.
"마에바라역? 그쪽은 잘 모르겠는데."
나는 스승과 본 비디오 사고를 설명했다.
별로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전 역원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물어본 것뿐이다.
그런데 키타무라 씨는 뭔가 떠올린 얼굴로 슬쩍 내 귀에 입을 가져다댄다.
"사이토 이치로를 치우면 저주받는다."
속닥속닥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이 뻣뻣해졌다.
"그런 소문이 있어."
얼굴을 떼더니 순식간에 쾌활한 어조로 바꾸며 안경을 치켜올린다.
"그쪽 구역에서는 사고가 많았대. 특히 신원불명자가 휘말리는 사고가. 뭐라고 하더라. 무주고혼은 아니야. 뭔가 어려운 말이 있었는데... 뭐, 어쨌든 그 무주고혼 시체를 치우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퍼졌대."
소문이라고 해도 역 관계자 사이에서 몰래 전해내려오는 뒷이야기다.
"사토 이치로가 뭐예요?"
"무주고혼이라면 이름도 모르잖니. 그러니 모두 사토 이치로, 사토 이치로 하는 거야."
업계 용어라는 건가.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은어인 셈이다.
영화 업계에서는 감독이 촬영 중에 강판될 경우 앨런 스미시라는 가명이 올라온다고 한다.
"어떤 저주인데요?"
키타무라 씨는 팔짱을 끼고 필사적으로 떠올리려고 했지만 마지막에는 싱긋 웃더니 잊었다고 대답했다.
대신에 그 소문을 잘 알고 있는 선배가 시내에 살고 있으니 알고 싶으면 이야기를 들으러 가라고 알려주었다.
"이미 은퇴했으니 아마 얘기해 줄 거야. 술 한 병 가지고 간다면 말이지."
나는 그 주소를 듣고 감사를 표했다.
이미 모두 돌아가 버리고 일터에는 우리밖에 안 남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키타무라 씨가 말했다.
"요괴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여기에도 나온대. 전에 여기가 식당이었을 때 알바하던 아줌마가 봤다더라."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지만 대충 맞장구를 쳤다.
일터를 나와 키타무라 씨와 헤어진 후 역앞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돌아갔다.
도중에 100엔 숍에 들러서 바나나와 과자를 샀다.
그걸 먹으면서 뒹굴뒹굴 비디오를 보는 게 낙이었다.
방에 돌아와서 목욕을 한 뒤 얼른 비디오를 세팅.
그때는 내일 1교시 강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결국 남은 3편을 다 보니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지개를 펴면서 알람시계를 들었다.
몇 시에 맞출까 생각하다가 결국 귀찮아져서 운명에 몸을 맡기기로 하고 침대로 갔다.
불을 껐다.
그러자 눈앞에서 이상한 빛이 나타났다.
아니, 잔광인가.
그건 야경이었다.
극소의 빛 입자가 좌우로 늘어난다.
마치 떨어진 곳에서 마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바로 눈을 떴다.
환각은 이미 사라졌다.
어제랑 똑같았다.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희미한 빛의 흔적이 보인다.
꾹 눈을 감으니 한순간 그 윤곽이 강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도 이윽고 사라진다.
나는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면서 생각했다.
눈을 감기 직전에 야경을 본 적은 없다.
비디오가 끝난 뒤 바로 텔레비전도 껐다.
물론 마지막에 본 비디오에도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한 비디오에 한순간 야경이 나온 것 같았지만 좀 더 멀리 있는 야경이었고 6시간도 전에 본 장면이 계속 눈꺼풀에 새겨져 있을 리가 없다.
왠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스승의 방에서 그 비디오를 본 뒤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건 과연 우연일까.
'그 비디오 위험하다고.'
저주의 비디오?
비디오의 저주?
기억의 그림자에 한 번 더 환각인 야경을 들여다보았다.
떨어진 곳에서 본 거리의 빛.
그것은 언젠가 보았던 밤에 전철 창문에서 본 광경 같았다.
'사토 이치로를 치우면 저주받는다'
저주받는다.
저주받는다?
영문을 알 수 없어서 그저 공포심만이 강해진다.
밤은 안 된다.
지금만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말아다오.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나는 주변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