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공포방

[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내기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29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72555

대학교 3학년 봄.

이미 강의에 출석할 의욕을 잃어 버린 나는 알바와 도박에 더욱 빠져들었다.

도박이라고 해도 경정이나 경륜 같은 아저씨나 할 도박은 아니다.

그것보다도 정보를 얻기 쉽고 학생들의 관심도 높았던 경마.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마작이나 파친코였다.

특히 파친코는 이벤트가 있는 날에 어째선지 감기에 걸려서 알바를 급히 쉴 수밖에 없는 실로 폐가 되는 체질을 발휘해서 알바 동료들 몰래 다녔다.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해졌던 오컬트 스승과 길가에서 만났다.

역 근처 거리였다.
저녁.
역앞에서 소바로 배를 채우고 다시 한번 승부욕을 불태우던 참이었다.

첫 급료가 나왔다고 기쁜 듯이 말하는 스승을 깨닫고 보니 나쁜 길로 꼬드기고 말았다.

"그거 늘려보죠."

선사시대 이후 인류가 끊임없이 잘못을 반복해온 내기였다.

스승은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했지만 내가 지폐로 가득 찬 지갑을 보여주니 관심을 보였다.

그 무렵 나는 유난히 운이 좋아서 상당히 많은 악전(惡錢)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그 전에도 몇 번 스승을 파친코 가자고 꼬신 적이 있었지만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승낙한 것이다.
나는 그때 단순히 내기에 관심이 생겼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복잡한 표정으로 보건대 뭔가 다른 생각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스승이 같이 와준다는 말에 기뻐져서 내가 점찍어둔 가게로 안내했다.

역앞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상당히 기계가 많은 대형 가게로 똑같은 체인점 중에서도 우량 가게로 알려진 가게였다.

완전히 초심자인 스승에게 3점 방식 구조를 설명하면서 걷기를 10분.

위엄조차 느껴지는 성 같은 가게에 "너무 빨아먹은 거 아냐? "라고 스승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경마나 복권 같은 공영 도박에 비하면 공제률이 낮고 실력에 따라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알았다, 알았어."

스승은 귀찮은 듯이 그렇게 대답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리니 독특한 소음이 귀를 습격한다.
나는 이걸 들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투지가 끓어오르지만 스승은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가게 안을 잠시 바라보고 카운터에서 영수증을 교환하는 손님이나 제트 카운터 상태를 보며 한바탕 설명을 한 뒤 나는 스승을 어떤 코너로 안내했다.

파치슬론 코너다.

"파친코가 아냐?"

"요즘은 이게 유행한다고요."

나는 엄지를 세웠다.
원래는 파친코로 이 길에 들어선 나는 그 무렵에는 파치슬론만 치고 있었다.

규제 완화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운이 좋을 때는 1만 개을 넘는 메달을 얻을 수 있는 기종이 늘어나던 무렵이었다.

메달 1개당 20엔이니 하루에 20만 엔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내 악전도 그 덕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고대 아즈텍 문명을 모티프로 한 기계를 좋아해서 그게 늘어선 곳으로 스승을 데리고 갔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서 둘이서 나란히 앉을 곳이 없다.
떨어진 자리에서 초보자인 스승이 혼자 치도록 할 수도 없었기에 잠시 기다렸지만 좀처럼 빌 기미가 안 보였다.

이가 빠진 듯이 빈 자리가 듬성듬성 나 있지만 그 주변 손님은 모두 천 엔 지폐를 메달 투입구에 꽂고 있어서 아직도 칠 생각 같았다.

"여기가 유행하는데 자리가 안 나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니 스승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성큼성큼 빈 자리 옆에서 치고 있는 손님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말을 걸어 한두 마디 나누었는데 느닷없이 그 스카잔을 입은 젊은 형씨가 때려서 스승이 뒤로 넘어질 뻔했다.

다시 게임을 하는 형씨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스승이 돌아온다. 화난 얼굴이다.

"자리 있으니까 옆으로 좀 비켜 달라고 했는데 화내더라."

나는 뿜었다.
아마추어의 발상은 굉장하다.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좀 붙어서 앉아 주면 둘이서 오는 사람도 같이 앉을 수 있는데. 매너 없게."

투덜거리는 스승을 달래었다.

"파치슬론에는 설정이라는 게 있어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으니 끝에 있는 기계가 2대 비었다.
바로 달려가서 자리를 확보했다.

"그럼 치죠."

솔직히 두 기계 다 그다지 좋은 기계는 아니었지만 일단 스승에겐 그나마 나은 기계에 앉히고 실전을 시켰다.

처음에 넣은 천 엔으로도 스승은 거의 당첨에 걸리지 않고 눈 깜짝 할 사이에 교환한 메달 50개가 사라졌다.

"다 떨어졌어."

"그러네요. 지금부터예요."

"그러냐."

둘이서 나란히 정지 버튼을 누른다.

"또 떨어졌어."

"그러네요."

일일이 시끄럽구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돌아가는 릴 어느 부분을 노려서 버튼을 누르면 좋은지 설명을 하고 있으니 내 기계 쪽에 리치가 출현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얀 7그림이 두 개 겹쳐 있는 걸 흥분해서 설명했더니 이번에는 스승이 시끄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천천히 거드름을 피우면서 메달을 1개 넣은 후 한가운데 오른쪽 왼쪽 순으로 버튼을 누르고 푸른 7그림을 모았다.

빅 보너스다.

화려한 BGM과 같이 밑에 있는 접시에 좌르륵 쏟아지는 메달을 스승이 곁눈질로 부러운 듯이 보고 있다.

300개 정도 나온 후에 보너스가 끝나고 메달을 200개 이상 더 획득할 수 있는 CT라는 보너스로 돌입할 건지 묻는 추첨 룰렛이 시작되었다.

돌입 확률은 2분의 1이다.
나는 기도를 하면서 릴 밑부분 LED 고속이동을 눈으로 쫓았다.

CT로 돌입한 후 보너스가 연속해서 터지는 게 이 기계의 특징으로 메달을 대량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기폭제였다.

하지만 내 소원도 덧없게 룰렛은 꽝에 정지하고 기계 소리는 멈췄다.

굉장한 기술을 스승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깨를 축 늘어뜨리니 스승은 옆에서 풉 웃었다.
아무것도 몰라도 잘 안 풀렸다는 걸 안 모양이다.
기계를 한 번 툭 치고 다시 시작했다.

그 후로 우리가 조작하는 기계는 전혀 당첨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만 엔 날려 버린 스승이 점점 기분이 나빠져서 다른 기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저쪽 기계 900번이나 돌고 있어. 슬슬 나오지 않을까? 옮길까?"

데이터 카운터를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에 무심코 뿜을 뻔했다.

그리고 웃음을 참으면서 스승에게 귀엣말을 했다.

"그런 걸 오컬트라고 해요."

스승은 깜짝 놀란다.
왠지 무척 기묘하다.

결국 둘 다 그 후로 한 번도 당첨되지 못하고 각각 2만 엔 이상 날려 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돈을 잃은 것에 화가 났지만 이윽고 스승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가게를 나온 뒤에 머리 숙여 사과했다.

"됐어. 공부도 됐고."

유난히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것보다..."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하면서 목소리를 낮춘다.

"다른 기계에서 2000번 돌려서 안 나온 걸 봤는데 그건 얼마나 잃은 거야?"

어림잡아 계산해 보았다.

"7만 엔 정도네요."

그 기계는 나도 좋아해서 돌아가기 전에 데이터 카운터를 체크했지만 하루 단위로도 심각하게 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12,3만 엔 정도는 잃었을 것이다.

"계속 져서 빚을 진 인간에겐... 목숨이 위험한 금액이로군."

냉정한 어조로 스승이 말했다.

"최근 너 계속 이기고 있다던데 그만큼 이긴다는 건 그보다 더 지는 사람이 있다는 거지?"

당연하지만 파친코, 파치슬론에 빠진 우리 같은 인간은 때때로 그걸 잊고 만다.

유쾌하지 않은 부분을 찔러와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도박성이 올라가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되면 될수록 손님 단가가 올라가서 이득을 보는 건 가게 쪽이잖아. 그만큼 손님이 손해를 보겠지. 바보 같지 않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한번 거액을 쥐고 말면 또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밤바람을 쐬면서 가게 밖을 걷고 있으니 스승이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다가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뭔가를 감지한 모양이다.

가게 뒤쪽.
평소에 사람이 지나지 않을 것 같은 골목길뿐일 것이다.
하지만 스승은 뭔가에 홀린 듯이 주저없이 거기로 갔다.

어둡다.
근처를 지나는 입체 교차 도로의 그림자가 되어서 한층 더 어둡게 느껴지는 일각이었다.

스승은 그 안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멈춰 선다.
나도 나란히 서서 그 도로 한곳을 바라본다.

어두워서 잘 모르겠지만 검은 얼룩이 아스팔트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성벽 같은 가게 외벽이 시야를 가리고 그 위에는 밤하늘로 끊겨 있다.

그 위는 아마 주차장 옥상일 것이다.

최근에 투신자살을 한 사람 소문을 들었다.
가게에서 진 손님이 아직 오전중이라고 하는데 옥상에서 이 좁은 도로로 몸을 던져 죽었다.

여기가 그 현장인가.
이 얼룩은 아직 닦아내지 못한 피일까.
불쾌한 걸 보고만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죽음을 고른다는 건 내기야."

스승이 이쪽을 돌아본다.

"빚이 아무리 많아도 죽어 버리면 그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무의식의 내기."

"내기."

앵무새처럼 복창했다.

"그런 인간은 천국이나 저승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고 싶어서 죽는 걸까."

잠시 생각한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파스칼의 내기라는 말이 있지."

스승이 말했다.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걸어야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걸어야 하나.

그 문제를 듣고 과학자로 유명한 파스칼이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걸면 이겼을 때 얻을 수 있는 축복이라는 기쁨이 무한대가 되고 졌을 경우 사후가 허무라 할지라도 그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는 운명이다.

그에 비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건다면 승리라는 건 즉 사후가 허무라는 걸 인정하는 게 되고 패배라는 건 축복이라는 기쁨을 포기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걸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건 고통스러울지도 모르나 이기면 그걸 충분히 보상할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설령 져도 그 고통은 사라진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걸어 현세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이겨도 그 이익은 허무 속으로 사라지고 지면 축복이라는 영원한 행복을 잃는다.

그러니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걸어야 한다.

이걸 듣고 나는 과학자다운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느꼈다.

"사는 방식으로서는 그 내기가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죽는 방식으로서는 어떨까."

파스칼이 말하는 신은 물론 그리스도교일 것이다.
자살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니까 원래 그 질문 자체가 난센스인 것 같다.

"신을 사후 세계라고 바꾸어 말해보자.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자살하는 건 내기로서 합리적일까 아닐까."

그 질문에 아까 스승 자신이 꺼냈던 '그런 인간은 천국이나 저승에 가고 싶어서 죽는 걸까'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스승도 바로 그 말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조금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죽고 싶은 충동은 좀 더 깊은 곳에서 오는 거야. 그건 저승에 관한 이미지가 심어진 종교관이나 고유문화라는 배경보다도 훨씬 깊은 곳에 있어."

"그건 어딘가요?"

저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스승이 입을 연다.

"우리 기억이 시작되기 전, 깜깜한 어둠 속에서야."

......

그 말을 듣고 왠지 반고리관이 한순간 기능을 잃은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즉 자살이라는 건 사후 세계를 원하는 게 아니라 소멸을 원하는 건가요?"

그때는 그 말이 극단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매번 질리지도 않고 스승의 술수에 빠져든다고 나중에야 실감했다.

"그래. 그러니 아까 그 질문은 '소멸을 원해서 한 자살은 내기로서 합리적인지 아닌지' 라는 말이 되지."

그때 내 눈에는 스승 뒤에 어느샌가 나타난 새파란 것을 보고 있었다.

나와 마주 보고 있는 스승 뒤에는 캄캄한 밤길이 쭉 뻗어 있을 뿐일 텐데 명백히 뭔가 흔들리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스승의 등 뒤로 보였다 사라졌다 반복하고 있었다.

심장이 차가워진다.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귀울림이 뇌 안쪽에 울리기 시작한다.

스승 뒤에는 아스팔트에 얼룩이 있었을 것이다.
희미하게 인간 형태를 하고 있던 얼룩이.

이쪽을 보고 있는 스승의 귀 뒤에 희미한 남자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채 흔들리면서 빼꼼 나온다.

소멸을 요구한 자살은 내기로서 합리적인가 아닌가.
그건 논리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내기 결과였으니까.

그 중년 남성으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은 아이가 우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 불균형이 너무나도 모독적으로 보여서 공포심과 함께 생리적 혐오감이 들었다.

스승은 뒤를 돌아보고 있지 않다.
이미 눈치챘을 텐데도.

"우리는 그 답을 손득 이론으로 도출하려고 하지 않아. 왜냐하면 관찰 결과가 그걸 대신 말해주고 있으니까."

스승의 얼굴 뒤에 우는 얼굴을 한 남자가 얼어붙은 듯이 흔들리고 있다.

"그치만 우리는 그 관찰 결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걸까."

눈치챘을 텐데 스승은 조용히 말을 잇는다.
나는 그 목소리를 숨을 죽이며 듣고 있었다.

"최근 나는 의심하게 돼. 저것들은 과연 사람이 죽은 후 그 다음 모습인 걸까. 혹시 우리 상상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우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닐까?"

담담한 목소리가 바람이 없는 밤 공기에 녹아들어간다.

그 말은 지금 눈에 비치는 창백하고 공허한 것에서 느껴지는 것보다도 훨씬 깊었고, 원시적인 공포심이 잠드는 곳을 쓰다듬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