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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선생님 전편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93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55804167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다.

긴 머리카락이 창가에서 흔들리고 있다.

매미 소리, 개구리 소리, 햇빛, 땅에서 올라오는 열.

그런 와글와글한 것들을 잔뜩 품은 바람이 선생님의 뺨을 간지럽혔다.

선생님의 눈동자는 똑바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왠지 안절부절못하고 연필을 깨물었다.

이렇게 더운데 선생님의 옆얼굴은 시원하다.

나는 목까지 흘러내린 땀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맴맴맴맴 매미가 울고 있다.

마른 나무 향기가 나는 오후.
교실에서 나와 선생님만이 있다.

작은 칠판에는 분필로 쓴 글자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삼각형 안에 사각형이 있고 그 안에 또 삼각형이 있다.

길이를 알고 있는 변도 있고 모르는 변도 있다.

선생님이 그리는 선이 쭉 뻗다가 뚝 꺾이고 탁 멈추었다.

무심코 만지고 싶어질 정도로 깨끗한 선이다.

그리고 cm의 m의 글자의 꼬리가 올라가서 실로 근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삼각형 안에 있는 사각형 안에 있는 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라고 하는데 그런 게 아무래도 좋을 만큼 정말로 근사했다.

m의 끝에 작은 2를 붙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 했니?"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야 쉽죠."

나는 당황해서 연필을 움직인다.

"아마도." 라고 덧붙였다.

선생님은 잠깐 이쪽을 보고 살짝 웃더니 또 창밖을 바라보았다.

등받이가 떨어져나간 의자에 앉은 채로.

나는 작은 책상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걸 알 수 있었다.

또 매미 소리와 개구리 소리와 햇빛과 땅에서 솟아나는 열이 바람과 함께 불어와 선생님의 긴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든 것도.

흰 옷이 반짝반짝 빛난 것도.

둘밖에 없는 교실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나는 그 안에 있는 한 여름이 언젠간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좀처럼 떠올릴 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어서 나는 친척 집에 맡겨졌다.

그 외가 쪽 시골은 전철을 몇개나 갈아타고서야 겨우 도착할 정도로 먼 곳에 있었다.

어렸을 때 한두 번 갔던 적은 있었지만 혼자서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것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나를 성가셔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혼자서 표를 사는 것이나 길을 묻는 것이 어렵지 않을 만큼 경험이 쌓여 있던 나는 오히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 앞에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가 붙은 것에 안도했다.

논을 둘러싸는 논두렁길을 흙투성이가 된 신발로 터벅터벅 걸어가면 큰 향나무가 한 그루가 담벼락 밖으로 쑥 튀어나온 집이 보였다.

이 지방 특유의 적갈색 지붕 기와가 햇빛을 반사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집에는 외숙부와 외숙모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그리고 시게 짱과 욧 짱이 있었다.

외숙부나 외숙모도 친척 아이인 내게 무척 잘 대해주었다.

"우리 집 아이가 될래?"

그들은 그런 농담을 하면서 농사일로 새까맣게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외할아버지는 머리는 백발이지만 허리는 꼿꼿하고 키가 컸다.

와하하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 뜨리는데 그게 아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나는 늘 그 손을 빠져나와 도망쳤다.

외할머니는 왜소한 몸에 여름 귤을 올려놓은 것 같은 귀여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뭔가를 들어올리거나 행주를 짤 때 '에헤' 라는 호령을 넣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몰래 흉내를 내다가 본인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혼날까봐 무서웠지만 외할머니는 오히려 '엣헤' 하고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그런 외할머니가 나는 순식간에 좋아졌다.

시게 짱의 이름은 시게루인데 나와 동갑인 남자애다.
옛날에 내가 더 어렸을 무렵 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나를 자기 부하로 삼았다고 말했다.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상관없다 싶어서 부하가 되어 주었다.

욧 짱의 이름은 요시코인데 시게 짱보다 2살 어린 동생이다. 눈이 큼지막하고 바가지 머리를 한 활기찬 여자아이다.

내 얼굴이나 옷자락 사이로 나온 맨살이 하얀 걸 보고 도시 촌놈은 비실이라고 놀려대기에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해가 질 때까지 진흙투성이가 되어 같이 뛰어다닌 적이 있었다.

도시 촌놈.

시골에서 와서 처음 느낀 건 이 단어의 근질근질한 감촉이다.

나는 내가 도시 사람이라는 자각은 없었지만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아이에겐 텔레비전 채널이 NHK 외에 3개 이상이 더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시 사람인 것 같았다.

시게 짱은 그 도시 촌놈을 즉시 현지에 사는 악동들에게 소개시켜주었기에 우리는 매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함께 이리저리 다니고 헤엄치고 던지고 도망쳤다.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 방학이다. 정신줄 놓고 마음대로 노는 것은 아이의 의무이다.

타카 짱이나 토시 보나 타로 짱 같은 아이들과 친해진 나는 전부 다 발이 빠르고 프라이팬에 구운 것처럼 피부가 구리빛으로 탄 것에 감탄했다.

'도시 촌놈' 이라고 구별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알 것 같다.

그들은 내 주변에 있던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아침 일찍부터 채집통과 그물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면 저녁매미가 울 때까지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막상 손수 만든 채집통을 가득 채워 돌아오면 그날 밤에 각자 부모님에게 빨리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야단 맞는데 다음 날에도 또 태연자약하게 아침 일찍부터 채집통과 그물을 가지고 산을 달려 올라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게 짱은 유난히 장난꾸러기로 골목대장의 소질이 있었다.

고집불통에다 툭 하면 싸움을 일으키지만 부하가 위급할 때는 제일 먼저 달려들어 "야이야이" 하고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도망쳐", "아무튼 달아나." 라고 정확한 지시를 내려서 우리를 궁지에서 구해주었다.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 꾹꾹 짠 걸레같은 근육이 온몸에 붙어 있어서 그 다리로 힘껏 땅을 차면 큰 웅덩이를 가뿐히 뛰어넘고 나중에 뛰어온 우리 다리가 웅덩이 가장자리를 밟아 물이 튀기는 걸 돌아보며 코웃음 치곤 했다.

다만 그런 시게 짱의 장난이 정도를 넘어서면 우리는 그 기발함과 귀찮음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산에서 찾아낸 이상한 버섯을 "버섯 독은 구우면 없어져." 라고 말하며 토시 보에게 먹였을 때는 토시 보가 배를 쥐고 졸도한 끝에 병원에 실려가게 만들어 버렸고 함정을 만들 때면 가장 무서운 '구멍 속 내용물' 을 준비한다는 게 잘 알려져 있었다.

하루는 뒷산 대나무 덤불에 우리가 모여 뭘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시게 짱이 "아, 사람이 떨어질 것 같아." 라고 벼랑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보면 정말로 누가 대나무 덤불 가장자리에서 떨어질 것처럼 아직 죽순 털이 안 빠진 가는 대나무에 매달려 있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빠직 부러질 것 같았다.

우와우와 당황해서 달려가 보니 그건 짚과 옷감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시게 짱에게 한방 먹은 우리는 화를 내거나 잘 만들어진 그 인형에 감탄했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운 나쁘게도 산나물을 캐러 왔던 근처에 사는 아줌마가 사람이 떨어질 것 같다는 시게 짱의 말을 들어버렸다.

아줌마가 우리보다 더 당황해서 인형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다가 도중에 대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져 버렸고 하마터면 벼랑으로 떨어질 뻔 했다.

우리는 그 아줌마에게 혼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또 혼났다.

시게 짱은 인형을 너무 잘 만든 탓에 할아버지가 허수아비를 만들라고 하셔서 집 논밭에 세울 허수아비를 전부 다시 만들게 되었다.

그 동안에 시게 짱은 놀러 가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허수아비를 만들고 있었지만 그 눈은 다음 장난을 생각하는 듯이 반짝거려서 우리는 그것이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시골 생활도 완전히 익숙해져서 다른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내 피부도 검게 타기 시작한 어느 날.

친주(鎮守)*의 숲에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원(寺院)을 지키기 위해 그 경내에 모시는 신

친주의 숲은 북쪽 산 봉우리를 따라 들어간 곳에 있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탓에 태양이 동쪽이나 서쪽에 떠 있는 시간에는 낮이라도 어둡고 바로 위에 태양이 있을 때도 무성한 녹나무나 노송나무의 가지와 잎에 가려져 그 숲 속을 걷는 우리에게는 빛줄기가 아주 조금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게 짱이나 타로 짱 뒤를 쫓아 간신히 친주의 숲 한가운데에서 덩그러니 놓인 신사를 찾아냈을 때는 왠지 엄숙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햇살이 마구 비치는 장소에서 놀고 있었는데 이곳은 검은 흙이 덮이고 공기는 가라앉아 있어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 올랐던 산이나 숲과는 뭔가 다르다.

"간벌도 거의 되지 않았겠지."

시게 짱이 말했다.
그 당시는 간벌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몰랐지만 분명히 그걸 하지 않은 것은 여기가 친주의 숲이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적막하게 아주 조용해진(나중에 생각해보면 매미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고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참배길을 걸어 한 신사의 본전에 간신히 도착했다.

빛도 그림자도 비스듬하게 지붕이나 판자 벽에 붙어 있어 그것이 쭉 몇 백년 전부터 거기에 그렇게 붙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끔씩 살랑살랑 잎이 흔들려 그때서야 간신히 나는 시간 감각을 되찾았다.

딸랑

그런 소리가 나 그쪽을 돌아보니 새전함 앞에 시게 짱이 서있었다.

다 낡아 빠지고 이끼가 끼어 있어서 새전을 회수하기는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은 에도시대부터 담긴 새전이 잔뜩 있지 않을까 싶어 들여다보았지만 어두워서 잘 알지 못하겠고 묵직한 느낌도 없었기에 아무래도 여기에 참배하러 오는 사람 자체가 좀처럼 없어 보인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10엔짜리 동전을 꺼내 넣었다.

그 신사에 어떤 신을 섬기고 있는지 몰랐지만 딸랑 하고 매우 좋은 소리가 났으므로 나는 손을 모았다.

"이제 돌아가자"

타로 짱이 그렇게 말하며 경내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왠지 다리를 배배 꼬고 있다.
아무래도 오줌이 마려운 것 같다.

입만 살았지 겁이 많은 타로 짱은 이 친주의 숲 속에 깊이 잠든 신사의 성역을 오줌으로 더렵혀버리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즉 쫄았다는 것이다.

나와 시게 짱은 타로 짱을 놀리기보다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을 택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그 숲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느낀건지도 모른다.

녹나무가 가지를 손처럼 펴는 어슴푸레한 참배길을 빠져나와 또 시커먼 흙이 깔린 산길로 나왔다.

"어라, 어느 쪽이었지?"

마음이 급해진 타로 짱이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시게 짱이 이쪽이라며 왔던 길을 정확히 가리켰다.

나는 문득 반대 방향으로 빠지는 또 다른 길을 바라보았다.

길은 곧바로 꺾여져 나무들에 가려서 그 앞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슬금슬금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이쪽에는 뭐가 있어?"

그렇게 물어보니 시게 짱은 "아무것도 없어" 라고 대꾸하며 얼른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유혹에 빠졌지만 혼자서 친주의 숲에 남겨지는 불안함이 가슴을 압박해서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있으니 갑자기 머리 위에 있는 나무 꼭대기에서 커다란 것이 날아오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올려다보니 그 순간 덮여진 가지나 잎이나 그 사이로 비치는 빛의 섬유가 빙글빙글 내 시점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어질거리고 섬뜩해져서 숲 속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갔다.

나는 쏜살같이 다른 애들 뒤를 쫓아갔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우리는 계속 강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무진장 더웠기 때문이다.

강은 바다보다 몸이 뜨지 않고 물살을 맞아야 했기에 육지로 올라오면 피곤해진다.

그 강에는 작은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거기서 강으로 뛰어드는 것이 일종의 담력시험이 되었다.

나도 헤엄을 잘 쳤고 강바닥도 깊었기 때문에 잠시 주저하다가 멋지게 머리부터 풍덩하고 들어갔다.

파앗하고 물을 튀기면서 애들이랑 같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면 다리 난간 위에 올라선 프로레슬러 시게 짱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여봐라는 듯이 시게 짱은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허공을 날았다.

환성과 빛과 물에 녹아가는 체온. 태양 밑에는 우리의 여름이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나 혼자서 놀아야 하는 날이 왔다.

시게 짱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모두 2박 3일로 임간 학교에 가는 것이다.

나도 데려가 주었으면 했지만 학교 행사이므로 아무래도 안 되는 것 같다.

가방을 짊어지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시게 짱을 배웅하며 오늘부터 3일간 뭘 할지 생각했다.

집이 농가였으므로 외숙부와 외숙모와 외할아버지는 아침밥을 먹은 뒤 경트럭을 타고 일하러 가버린다.

외할머니가 덜그럭덜그러 집안일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가져온 숙제를 오랜만에 펼쳤다.

넓은 다다미방에서 큰 책상을 앞에 두고 턱을 괴었다.
페이지를 얼마 넘기지 않았는데 벌써 질린다.

숙제는 여름방학 마지막 3일 만에 한꺼번에 해치우는 게 정석이다.

그때까지 뭐 할 일이 없는 걸까. 연필을 데굴데굴 굴렸다.

툇마루 저편 뜰에는 태양이 찬란히 비치고 있어서 방안이 매우 어둡게 느껴진다.

뒹굴거리거나 숙제를 하거나 쉬는 걸 반복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아직 9시다.

점심 시간까지는 3시간 이상 남았다.

안 되겠다.
심심해서 미칠 것 같다.

나는 혼자서 갈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해보았다.

늘 애들이랑 갔던 장소 말고 다른 곳이 좋겠다.
도서관이라든가.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머릿속으로 친주의 숲에 있는 신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간벌되지 않는 나무들 밑에 뻗은 어두운 길.
그 너머로는 아직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또 다시 그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그 숲 속에서 사그라든 그 마음이 한 번 더 강해진다.

혼자서도 갈 수 있다.
별 거 아니다.
그래. 오전 중인 지금 갔다오자.
해가 높이 떠 있는 동안이라면 그렇게 무섭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자마자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숙제할 노트를 정리하고 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가방을 짊어지고 있으니 그 기색을 느낀 건지 시게 짱 여동생인 욧 짱이 장지문 틈새로 빤히 이쪽을 본다.

"어디 가?"

그 순간 나는 이 아이도 데려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모험에 여자는 데리고 갈 수 없다.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니까.

"그냥 우체국에."

그렇게 말하니 '흐응' 하고 시시하다는 듯이 어딘가로 가버린다.

됐다. 방해자도 쫓아버렸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왔다.

햇빛이 내리쬐는 논두렁길을 북쪽으로 북쪽으로 걸어가니 울창한 산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옛날 입산료를 받고 있었던 무렵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나무상자가 홀로 썩어가는 곳이 입구였다.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산기슭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저벅저벅 흙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니 점점 나무 그늘이 머리 위를 가려 어두워진다.

만일을 위해 가져온 나침반을 가방에서 꺼내 오른손으로 꼭 쥐면서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때때로 멧비둘기 소리가 울리며 바스락바스락 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매미 소리.
그것도 식겁할 만큼 대합창이다.

흘끗 올려다보니 잎 사이로 반짝반짝 빛줄기가 내리쬐고 있다.

계속 위를 올려다보며 소리의 홍수 속에 있으니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진다.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든다.
당황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도중에 산으로 오르는 옆길이 몇 개 있었지만 어찌저찌 헤매지 않고 친주의 숲에 있는 신사까지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참배해두기로 했다.
나무로 둘러싸인 참배길을 걸어가 자그만 토리이를 지났다.

낡아빠진 건물이 조용히 서 있는 그 앞에 서서 새전함에 딸랑하고 100엔짜리 동전을 집어넣었다.

역시 좋은 소리다.

신사 안에는 인기척은 없다.
관리는 하고 있는 걸까.

빙 돌아서 왔던 참배길을 돌아왔다.
도중에 작은 연못이 있는 걸 발견하고 옆길로 빠졌다.
토리이 옆이다.

수면 위에서는 소금쟁이가 쓱쓱 헤엄치고 있지만 물속은 탁해져서 잘 안보인다.

비가 내리지 않는 동안은 바짝 마를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고 참배길로 돌아왔다.

사박사박 흙소리를 들으면서 걷고 있으니 뭔가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아 뒤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토리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는 길에 토리이를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뭐 상관 없나 싶어 앞으로 나아갈 때 점점 이상하게 빙빙 도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점점 강해졌다.

이게 뭘까.
속이 메스껍다.
주변이 묘하게 빛이 바래 보인다.

나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고 빛과 그림자가 교대로 늘어선 참배길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어떻게 하지.
돌아갈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벌써 도망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시간이 지나면 용기가 솟아나지 않을까 싶어 기다리고 있으니 새전함에 100엔 동전을 딸랑하고 넣는 소리가 다시 떠오른다.

괜찮아. 100엔이니까.
전에는 10엔.
오늘은 100엔이야.

그런 생각으로 억지로 용기를 끌어내서 돌아가는 길과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박사박 흙을 밟아 갔다.

매미 소리는 여전히 시끄럽고 근처는 어둑어둑했다.
계속 똑같아 보이는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길 너머에는 발자국이 없다.
때떄로 뒤돌아보았지만 땅에는 내 발자국이 나 있을 뿐이다.

커브를 돌 때마다 내가 아닌 사람이 나무 그늘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분명히 착각일 것이다.

점점 길이 좁아지고 쓰러진 나무가 그대로 방치되어 버섯이 나 있는 걸 보면 역시 이 앞은 그냥 막다른 곳이 아닐까.

가방에 넣어둔 비상식량 뭐 쿠키나 사과 같은 거지만 그런 것들이 필요할 일이 없길 바라면서 나침반을 보거나 뒤돌아보거나 딸랑하는 소리를 떠올리면서 나는 계속 걸어갔다.

이윽고 한층 더 어두운 나무의 아치가 마치 터널 속 유령처럼 나타나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나무의 이름은 뭐였을까.
두꺼운 잎이 머리 위를 다 가려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때때로 어둠 속에서 흰 손이 휙휙 흔들리는 것이 보인 것 같아 몸이 굳어진다.

다리 근처를 보니 내 다리는 분명히 지금까지 밟아온 흙을 밟고 있었고 그 위에 서있는 한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거의 달리다시피 해서 그 터널을 통과했다.

팍 하고 눈앞이 밝아진다.

흰 구름이 하늘 위에 떠다니고 있다.
그 아래에는 녹색으로 덮인 눈부신 논두렁길이 뻗어있다.

밭이 있다.
산 위에 집 몇 채가 보인다.
제비가 날고 있다.
개구리가 울고 있다.

나는 후우 숨을 토해내고 들이마셨다.

뭐야. 다른 마을과 이어져 있었잖아.
시게 짱. 거짓말 하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자연스레 가벼워진 다리를 뻗어 논두렁길을 걸어갔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니 도중에 있는 숲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음. 거짓말쟁이라고 따져도 시게 짱이 기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문득 생각나서 돌아보니 조금 전 빠져나온 숲의 입구가 어두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돌아갈 때 또 저기를 지나야 한다는 걸 떠올리면 조금 기분 나빠졌지만 혹시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이 근처에 있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길을 두리번거리면서 걷고 있으니 거기는 산에 둘러싸인 의외로 작은 마을이라는 걸 눈치챘다.

점점 밭이 산사면에 늘어서 있어 파묻히듯이 집이 듬성듬성 있었다.

길에는 햇빛이 쏟아질 뿐 걷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보인다.

나는 경사가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 커다란 지붕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땀을 닦으면서 다 오르니 거기에는 넓은 마당과 목조 이층건물로 보이는 낡은 집이 있었다.

매우 크다. 마당도 마당이라기보다 공터 같았다.
한 구석에는 철봉과 모래밭이 보인다.

어? 어쩐지 학교 같았지만 학교치고는 너무 작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학교보다는.

그때 2층 창문에 누군가 있는 걸 깨달았다.

바람이 불어서 내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는 것과 동시에 그 사람의 머리카락도 흔들렸다.

검고 긴 머리카락.
흰 옷.
여자다.

창가의 턱을 괴고 멍하니 공터 한구석을 보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공터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은 나를 알아차리는 기미가 없었다.

나는 나침반을 주머니에 넣고나서 저기요 하고 말을 걸었다.

너무 소리가 작았기 때문에 곧바로 '죄송해요' 라고 말을 고쳤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알아주지 않고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돌아가고 싶어졌지만 다시 한 번 소리를 높였다.

"실례합니다!"

그 순간 뭔가가 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이 여기를 보았다.
와, 어쩌지. 분명히 팽하고 세계가 튀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놀란 얼굴을 했고, 그 다음엔 멍하니 있던 시간이 떠나버린 걸 아쉬워하는 것 같은 슬픈 얼굴을 하더니 마지막에 생긋 웃으면서 "안녕." 이라고 말했다.

나에게다.
나에게.

"무슨 일이니?"

그 사람은 창에 조금 기대어 오른손으로 입가를 가린다.

"여기는 어디죠?"

나는 쓸데없는 걸 물어버렸다.
뭔가 좀 더 멋있는 말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여기는 말이지. 학교란다."

"네?"

"학. 교. 올라오지 않을래? 바로 거기가 현관이야. 신발장에 슬리퍼가 있으니까 신고 들어오렴."

"아, 네."

나는 당황하며 그 건물 현관으로 갔다.

열려 있는 문 너머로 먼지가 쌓인 신발장과 마루가 깔린 복도가 있었다.

불은 켜져 있지 않았지만 유리창에서 밝은 햇빛이 들어와서 안이 잘 보였다.

좌우로 뻗어있는 복도에는 '1,2학년' 이나 '3,4학년' 이라고 적혀 있는 하얀 판이 벽에 붙어 있고 그 안에는 작은 교실이 있는 것 같았다.

현관 정면에는 곧바로 계단이 있어서 나는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한쪽 발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삐걱거리는 낡아빠진 나무계단이다.

좁은 층계참 옆에 있는 벽에는 압정이 꽂힌 흔적과 그림이었던 것 같은 종이 모서리 부분이 붙어 있었다.

2층에는 1층처럼 마루가 깔린 복도가 뻗어 있었다.
그 왼쪽에 있는 교실에서 조금 전에 만난 여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서 오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실례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싱긋 웃었다.

"여기는 말이지, 옛날에는 초등학교였단다. 지금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줄어들었거든."

그렇게 말하며 나를 교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하얀 판에는 '6학년' 이라고 적혀 있었다.

작은 교실에는 책상이 5개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 졸업생 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책상이 꽉꽉 들어차 있는 내 학교 교실을 떠올렸다.

그러니 어쩐지 눈앞에 있는 책상은 장난감처럼 보인다.

그 사람이 책상에 손을 대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이 땅은 우리 집안 거라 폐교가 된 뒤에 돌려받았단다. 낡아빠진 학교가 딸려 왔지. 허물고 집을 다시 지어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집에 나와 어머니밖에 없으니까 집은 작아도 상관 없어. 보렴.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집이 보이지? 저기에 산단다."

그러고 보니 그런 집이 있던 것 같았다.

"지금은 여름 방학이지? 나 여름 방학 때 이 근처에 사는 아이들에게 여기서 공부를 가르쳐 준단다."

"공부요?"

"응. 나 옆 마을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거든. 비정규직이지만. 나도 여름 방학이니까 하는 것이 없어서 시간 때울 겸 하는 일이야. 그러니까 이번 여름방학에는 학교에서 수업료는 받지 않고 오전 중에만 가르쳐주지.
하지만 학교 숙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단다. 평상시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과목만 공부하던 아이들을 여름만이라도 그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 관심이 있는 과목을 조금이라도 잘하게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거야."

손가락이 책상의 나뭇결을 어루만진다.

"그래도 모두 오늘은 쉬어."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조금 흐린다.

"감기가 유행하는 것 같아."

그리고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나도 따라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넌 몇 학년이니? 어디 사는 아이? 말투가 다르네."

"어, 아."

나는 조금 말을 더듬고 나서 내가 6학년이라는 것 그리고 멀리서 와서 친척 집에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집 이름을 말했다.
하지만 말하고 나서 그 근처는 모두 같은 성씨만 있던 걸 떠올리고 "커다란 향나무가 뜰에 있는 집이에요." 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 시게 짱이 있는 곳이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시게 짱은 그 친주의 숲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일부러 거짓말을 했구나.

나는 분해서 입을 삐죽였다.

왜냐고?

그 사람은 눈이 크고 늘씬하고 어른스럽고 그리고 꽃무늬 하얀 원피스가 어울리는 남몰래 비밀로 하고 싶어지는 예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교실이 그나마 제대로 형태가 남아 있어서 늘 여기서 가르쳐. 탐험하러 와서 헤매었겠구나. 공부하고 가렴. 아무도 오지 않아서 나도 따분하던 참이었거든."

그렇게 그 사람은 나의 선생님이 되었다.

교실에 책상은 5개.
1개는 선생님이 앉는 자리. 아까처럼 창가에서 턱을 괴기 위한 자리다.

그리고 나머지가 여름방학 학교의 학생 수였다.

선생님은 일부러 다른 교실에서 내가 쓸 책상과 의자를 가지고 와 주었다.

"다섯 번째 학생이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이 학교의 마지막 졸업생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줄 알았다고 내가 말하자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졸업생은 두 명이었어. 그 중 하나는 나야. 졸업하는 것은 외롭고 슬펐지만 중학생이 되는 것은 기뻤어. 그리고 학교가 없어져 버린 건 슬펐으려나. 마이너스 1 플러스 1 마이너스 1로 역시 슬픈 쪽이 더 강했던 것 같아. 벌써 10년도 더 되었네."

선생님이 눈을 조금 가늘게 뜨니 눈동자의 명암이 바뀌어 조금 어른스럽게 보였다.

"자, 무엇을 공부할까? 뭐가 좋니?"

나는 생각했다.

"산수가 싫어요."

선생님은 나의 농담에 웃지도 않고 "응, 그리고?" 라고 물었다.

"사회하고 국어하고 과학하고 가정하고 도공하고 음악이 싫어요."

내가 늘어놓은 말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인 뒤 선생님은 "좋아, 딱 맞는 게 있어." 라며 칠판으로 걸어갔다.

작고 귀여운 칠판이다.
분필을 한 개 집어 선을 긋는다.

'세계 4대 문명'

그런 글을 적는다.

선생님의 글자는 멋졌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선생님이 쓴 글자보다 근사한 글자였다.

그러니까 그 세계 4대 문명이라는 말도 굉장히 근사하게 보여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계사라고 하는데 아직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을 거야. 산수도 국어도 사회도 과학도 싫으면 공부 자체가 싫어지잖니.
공부할 건 아직 잔뜩 남아있으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란다. 노트에 필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 편하게 들어."

그렇게 선생님은 나에게 세계사 수업을 해주었다.

처음 체험하는 수업은 매우 재미있었고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아득히 먼 옛 세계를 나는 머릿속에서 반짝반짝 그리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윽고 선생님은 분필을 내리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집트 파라오가 자기 피라미드가 완성되는 것을 바라보는 모습이 멀어지고 나는 폐교가 되었을 초등학교 교실에서 오늘 처음 만난 선생님과 둘만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어떠니? 재미있을 것 같지?"

나는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생긋 웃었다.

"잘 됐다. 실은 나, 대학에서 역사학과 전공이었어. 준비 못했으니까 산수가 아니라면 이것밖에 못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혀를 쏙 내밀었다.

그게 무척 귀여워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벌써 점심이네. 오늘은 끝. 내일은 좀 더 빨리 오렴."

그래서 그런 선생님의 말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어쩐지 둥실거리는 기분으로 학교를 뒤로 하고 공터에서 교정을 뒤돌아본 나를 2층 교실 창문 너머로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나도 지지 않을 만큼 손을 붕붕 흔든 뒤 내일도 반드시 오겠다고 마음 먹고 돌아갔다.

역시 돌아가려면 그 친주의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진저리가 났지만 오늘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다리를 무의식 중에 움직이니 눈 깜짝 할 사이에 숲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올 때는 그렇게 음침하고 무서웠는데 이번에는 매우 쉽게 통과한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향나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 외할머니가 만들어 준 소면을 먹었다.

던져 둔 숙제를 조금 하고 나서 낮잠을 잔 뒤 욧 짱과 그 친구들과 같이 깡통차기를 하면 놀고 나니 하루가 끝났다.

그날 밤 시게 짱이 없는 집은 매우 조용했다.

불을 끄고 나서 나는 모기장 너머로 천장 나뭇결을 올려다보며 오늘 만난 선생님과 그 작은 학교를 생각했다.

오늘 아침, 공부는 싫다고 밖으로 뛰쳐 나왔는데 지금은 빨리 그 학교에 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자마자 나는 집을 나왔다.

욧 짱이 역시 어디 가냐고 물었지만 "어딘가" 라고만 말하고 뿌리쳤다.

오늘은 가방이 없다.
비상식량을 챙길만큼 대모험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제처럼 친주의 숲으로 들어가 어두운 나무 아치를 기어들어가야했지만 오늘은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논두렁길을 빠져나와 비탈길을 오르니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2층 창가에 선생님이 있다.
턱을 괴고 멍하니 밖을 보고 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곧바로 알아봐주었다.

"어서 와."

"지금 갈게요."

그렇게 나는 교실에 들어갔다.

오늘도 다른 아이들은 오지 않는 것 같다.
무료해 보였던 선생님은 기쁜듯이 나를 맞이했다.

"어제 했던 거 마저하자."

그렇게 말하며 분필을 잡는다.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에게 해에 번창한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후 철기 문화 시대로 접어들면 그리스에는 폴리스라고 하는 많은 도시 국가가 생겨났다는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서 아테네나 스파르타라는 강력한 폴리스가 나타나 동쪽에 있는 대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침공에 대항했던 것이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를 격퇴한 뒤에 각 폴리스가 모여 결성했던 것이 데로스 동맹.

그 맹주 아테네와 다른 동맹을 만든 스파르타가 싸웠던 것이 펠로포네소스 전쟁.

중우 정치에 빠져 약해진 아테네나 스파르타를 대신해 대두해온 테베...

테베(テーベ)

선생님의 분필이 거기서 멈춘다.
교단에 선 등이 굳어졌다.

의아해하는 내 앞에서 선생님은 퍼뜩 정신을 차리자마자 칠판지우개를 들고 '테베(テーベ Tēbe) '를 '테베(テーバイ Tēbai)'로 고쳐 썼다.
(일본에서는 그리스의 테베(テーバイ Tēbai)와 이집트의 테베(テーベ Tēbe)를 다르게 표기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선생님은 계속 진행했다.

그 후 테베는 아테네와 연합해서 북방에서 온 침략자 마케도니아와 싸웠지만 패배했다.

시대는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도시 국가 사회에서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통치하는 거대한 전제 국가 사회로 옮겨졌다.

선생님이 그 말을 왜 고쳐썼는지 그때는 몰랐다.

다만 선생님의 등이 한순간 무겁게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든 건 분명했다.

헬레니즘 문화 설명이 끝나자 선생님은 손을 멈추었다.

"힘들지? 쭉 같은 과목만 해도 질려버리니까 이번에는 이런 걸 해보지 않을래?"

그렇게 말하고 건넨 것은 산수 문제가 쓰여진 종이였다.
나는 처음에는 질색했지만 잘 보니 의외로 쉬운 문제였다.

"어디까지 진도가 나간지 모르니까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 않아요."

내가 즉석에서 풀어내니 선생님은 "굉장해, 굉장해" 손뼉을 치더니 "그럼 이건?" 하며 다음 종이를 보여주었다.

식은 죽 먹기지.
응? 또 있는 건가?
이번에는 솔직히 조금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연필을 꽉 쥐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새 세계사 수업은 산수 수업으로 바뀌고 실컷 문제를 풀었더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

"내일 또 보자."

돌아가는 길 결국 내가 분명히 싫다고 말했던 산수를 어느새 하고 있던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어갔다.

산수 문제는 프린트된 게 아니라 선생님이 직접 쓴 걸로 그것을 풀고 있으면 어쩐지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또 내일 가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와 선생님의 여름 방학 학교가 계속되었다.

아침은 세계사 수업.
다음에는 산수.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한자 받아쓰기가 추가되었다.

다른 아이는 아무도 여름 방학 학교에 오지 않았다.

"심한 감기가 유행하고 있으니 너도 조심하렴."

선생님의 말에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사 공부는 재미있었다.
그저 훑어보는 거였지만 역사의 매력은 충분히 전해졌다.

산수나 한자 받아쓰기 시간은 별로 즐겁지 않았지만 다 쓴 종이를 선생님에게 보여줄 때 드는 그 자랑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느낌은 싫지 않았다.

내가 문제를 풀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창가 자리에 걸터앉아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그만 종이학이었다.
어느 정도 수가 모이자 선생님은 실로 꿰어 학들을 창에 걸었다.

"모두 빨리 감기가 나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또 다음 학을 접는 것이었다.

나는 불경하게도 감기 같은 건 낫지 않으면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둘만의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책상 위에 놓인 문제와 씨름할 때 창가에 앉아 있는 선생님의 옆얼굴이 쓸쓸해 보였고 그 눈동자가 창밖을 멍하니 볼 때마다 왠지 나는 안타까워졌다.

내게 말투가 다르다고 말한 선생님 자신도 그 말에는 사투리가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도쿄로 나가 대학도 도쿄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서 쭉 거기서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쿄에서 취직도 정해졌는데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쓰러져서 모든 걸 내던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해줄 때 선생님의 눈동자는 흐려졌다.

"우리 집은 모녀 가정이었는데 어머니 혼자 남기고 나왔을 때는 드디어 이런 시골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어. 아무 말도 없이 송금을 해주던 어머니가 어떤 기분으로 이 시골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

그래서 지금은 임시 교원 같은 걸 하면서 집에서 모친을 간호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가본 적이 없었지만 학교 옆에 있는 작은 집에서 둘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에겐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버리고 지금은 이렇게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작고 낡은 학교에서 손수 만든 문제집으로.

점심시간이 되어 내가 돌아갈 때 선생님은 2층 창문에서 몸을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또 보자."라고.

나는 언젠가 여름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매미 소리가 귀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고 맑은 하늘 아래를 터벅터벅 걸어가며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길을 매일 두근거리면서 계속 다녔다.

임간 학교에서 시게 짱이 돌아와도 오전 중만은 그들의 놀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 숙제하지 않으면 위험해. 우리 학교에서 쫓겨나"

그렇게 말하니 "그건 큰일이네"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게 짱은 더는 권하지 않았다.

여기서도 두목으로서의 소질을 엿볼 수 있다.

아침부터 밖을 뛰쳐나가는 시게 짱이 갑자기 돌아오는 일은 없었지만 만약을 위해 "아, 그렇지만 기분 전환 겸 산책 정도는 할지도 몰라"라고 예방책을 세워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친주의 숲 너머에 있는 여름 방학 학교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 시게 짱에게 알려버리면 선생님과의 시간을 박살내 버릴 것 같았다.

선생님도 시게 짱을 알고 있었고 시게 짱이 친주의 숲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거짓말했던 것이 쭉 마음에 걸렸었다.

아침부터 놀러가는 시게 짱을 배웅하고 나서 남몰래 집을 빠져나갔지만 오후부터 애들이랑 놀았으니 특별히 의심받을 짓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시게 짱의 여동생인 욧 짱이다. 매일 아침 "어디 가?"라고 물어온다.

그때마다 산책 간다고 적당히 말을 해 쫓아버렸지만 집을 빠져나갈 때마다 미행당하고 있지 않은지 도중에 몇 번이나 뒤돌아보아야 했다.

세계사 수업은 로마 제국의 흥망에서 이슬람 세계로 바뀌었다.

선생님이 만든 종이학도 점점 늘어나 교실 창문에 주렁주렁 달렸다.

휴식 시간에는 나도 배워서 학을 접었다.

선생님이 요령을 가르쳐줘도 실력이 형편 없어서 이상한 학만 나왔다.

전체적으로 삐뚤빼뚤한 게 너무 꼴사납고 분했기 때문에 적어도 날개 끝을 바짝 세웠다.

전투기같이.

선생님은 방글방글 웃으면서 그 학도 장식해 주었다.

하루는 아침부터 비가 뚝뚝 내리는데 친주의 숲을 빠져나오니 말끔히 개여 있었던 적이 있어서 선생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산이니까."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렇지만 그 숲은 이상한 일이 자주 있어. 나도 어렸을 때..."라며 괴담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생님의 짧은 소매에서 드러난 팔은 가늘고 연약해 보였다.

도시 촌놈 손이다.

선생님은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과 비교해 봐도 너무 젊어서 마치 옆집에 사는 누나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누나의 입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하룬 알 라시드 같은 이름들이 줄줄 나와서 그것이 이상하게 멋져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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