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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선생님 중편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74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42265

그 날은 유난히 햇빛이 강하고 쓸데없이 더웠던 날로 집에서 기르고 있던 개도 바닥에 축 엎드려서 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건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름 방학 학교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 시게 짱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과 합류해서 뒷산에 만든 비밀 기지로 갔다.

나뭇가지나 천으로 만든 좁은 공간에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시게 짱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한다.

"이 녀석도 이제 우리 동료로 인정해 줘도 되지 않을까?"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걸로 몇 번째일까.
시게 짱이 이런 말을 꺼낼 때는 반드시 '비밀 장소'로 데리고 간다.

그건 민물게가 많이 잡히는 장소이기도 했고 야생딸기가 많이 열리는 곳이기도 했고 장수풍뎅이가 우글거리는 나무이기도 했다.

모두가 응응 고개를 끄덕이자 시게 짱은 눈을 감고 말했다.

"오늘 밤, 얼굴 뉴도 동굴로 데리고 가자"

그걸 들은 순간 모두 움찔해서 갑자기 안절부절못한다.
그리고 "오늘 밤은 친척이 와서.", "집에서 도울 일이 남아서" 등등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자존심이 강한 타로 짱이 그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으니 시게 짱이 탁 그 목을 손으로 움켜쥐며 "너는 올 거지?"라고 묻는다.

"어, 아..... 응"

낭패한 얼굴로 타로 짱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헹. 겁쟁이는 내버려둬. 셋이서 가자"

시게 짱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본다.

아마 무서운 곳일 테지만 왠지 재밌어 보여서 나는 승낙했다.

나중에 후회할 걸 꿈에도 모르는 채.

그날 밤 저녁밥도 다 먹고 자려고 할 무렵에 헛간에서 손전등을 꺼낸 시게 짱이 내게 눈짓을 한 후 방불을 다 끄고 나서 살금살금 툇마루를 내려갔다.

마당에 있는 울타리 사이로 빠져 나가는 것이다.

이런 시간에 놀러간다고 말해봤자 틀림없이 혼난다.
어차피 혼난다면 놀고난 후에 혼나고 싶다.

전에 한밤중에 반딧불이를 보러 갔을 때도 들키는 바람에 다음날 사이좋게 외숙부에게 꿀밤을 맞은 적이 있었다.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게 손전등을 켜지 않고 논두렁길을 걸어갔다.

시골 밤은 매우 어둡고 달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몇 번이나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면서도 우리는 산으로 갔다.

도중에 타로 짱과 합류한 우리는 마을 외곽에 있는 작은 산으로 들어갔다.

숲모기를 찰싹찰싹 때려 쫓으면서 나아가니 점점 불안해진다.

시게 짱과 타로 짱이 가지고 있는 손전등만 의지한 채 낮에 와도 몸이 움츠러들 것 같은 짐승길을 조심조심 올라간다.

걸어가면서 들은 얼굴 뉴도 이야기는 기분나빴다.

지금부터 거기 갈 걸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그대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 얼굴 뉴도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 강했다.

'얼굴 뉴도(顔入道)'는 이 마을에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오는 전승이다.

옛날 높으신 스님이 산속에서 목식(木食)을 한 뒤 그대로 산속 동굴에서 등신불이 되었다.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도 마을사람들이 등신불에게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도중에 갑자기 동굴 천장이 무너져 버려서 그 앞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그 동굴을 막고 있는 무너진 바위가 마치 생전 그 스님 얼굴 같았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바위에 스님의 얼굴을 그렸다.

등신불과는 만날 수 없었지만 그 바위에 그려진 얼굴에 경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굴에 참배하러 왔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그 관습도 끊어져서 일부 괴짜들만 호기심 때문에 보러오게 되었을 무렵 그 바위에 이변이 일어났다.

움직일 리가 없는 얼굴 그림이 돌연 분노한 얼굴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젊은이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전조가 아닐까 싶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지만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가혹한 가뭄이 이어져서 마을은 기근에 휩쓸렸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어느새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 동굴 얼굴은 얼굴 뉴도라 불리면서 또 마을사람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1년에 몇 차례 제사를 벌이면서 얼굴을 다시 칠하고는 마을의 길조를 점치게 되었다.

"지금도?"

내가 물으니 시게 짱은 고개를 젓는다.

"이제는 안 해. 그거보다는 아무도 몰라."

아무래도 그 시대도 지나서 마을에 사람이 적어진 지금은 얼굴 뉴도 제사가 폐지된 건 물론이고 그 동굴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비밀장소가 된 것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도 모르지 않을까"

시게 짱이 말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그 얼굴 뉴도 소문을 우연히 들은 시게 짱은 봄철에 실제로 보러 갔다고 한다.

타로 짱을 비롯한 애들 몇 명과 같이.

"어땠어?"

꿀꺽 침을 삼키면 내가 묻자 시게 짱과 타로 짱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정말로 바위에 얼굴이 그려져 있었지만 화내지는 않았어."

정말로 있는 건가.
나는 역시 그것이 보고 싶어졌다.

"그, 그래도 이번에는 화내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타로 짱이 초조한 듯 가지고 있는 손전등을 흔든다.

"그럴 리가."

시게 짱은 코웃음을 쳤다.

어둠 속에서 이름 모를 새가 울 때마다 나는 몸이 굳어졌다.

무서워하는 자신을 질타하면서 부스럭부스럭 풀을 밀어 헤치고 오로지 손전등 빛만 쫓았다.

이윽고 산 중턱 쯤에서 나무들이 거의 없는 장소가 나왔다.

"저기야."

시게 짱이 빛을 비추었다.
바위가 널려 있는 주변에 조금 후미진 동굴 입구가 있었다.

무심코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바로 앞에 2미터 정도 되는 절벽이 있었기에 빙 돌아 다가갔다.

입구 앞에 섰을 때 타로 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잖아?"

"무슨 소리야?"

"괜찮잖아. 장소도 알려줬고 이제는 그냥 쭉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타로 짱은 완전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온 건 나를 얼굴 뉴도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는 타로 짱을 시게 짱이 겁쟁이 녀석이라고 비난한다.

타로 짱이 무서워하니 나까지 무서워진다.

"좋아. 그럼 우리가 먼저 들어갈테니 거기서 기다려. 돌아오면 다음에는 네 차례야"

타로 짱을 노려보며 시게 짱이 나를 재촉했다.

타로 짱은 안심한 얼굴로 "응, 좋아."라고 묘하게 센 척을 하며 대꾸한다.

그렇군. 타로 짱은 그저 표정만 확인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화내고 있지만 않으면 되니까.

바위에 그려진 얼굴이 바뀌다니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머릿속으로는 왠지 그것이 떠올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기분 나도 잘 안다.

어둠 속에 둘러싸여 안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동굴 안.

뒤돌아보니 몇 안 되는 별빛 아래에서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인공적인 빛으로는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몇백년도 전에 이 동굴 안쪽으로 사라진 스님.

그 사람은 이승으로 돌아오지 않고 등신불이 되었다.

등신불이라는 것은 요컨대 미라다.
산 채로 단식을 계속해서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어떤 기분일까.
명상을 한 채로 배가 너무 고파오고 점점 가사 상태에 빠지다가 어느 순간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 버릴 때. 그때 그건 어떤 기분일까.

그걸 상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가자."

시게 짱이 나를 쿡쿡 찌른다.

망설일 틈도 없이 그는 내 등을 떠밀면서 동굴 안으로 갔다.

타로 짱은 정말로 들어오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다.

발밑에는 작은 돌이 굴러다니고 있어 이상한 곳을 밟아 버리면 매우 아팠다.

어른이라도 간신히 숙이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동굴은 군데군데 꺾여 있어서 손전등을 앞으로 향해도 잘 안 보인다.

앞장서서 가는 시게 짱이 천천히 걸어가고 그 발톱 끝으로 돌을 걷어찰 때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둘이서 나란히 가기에는 너무 좁다.
안에서는 희미하게 바람이 불어오고 곰팡내 같은 불쾌한 냄새가 풍겨온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좀만 더 가면 돼. 제대로 따라와."

시게 짱이 나를 재촉했다.

내 눈은 구불거리는 어둠 속에서 있지도 않은 환상을 보고 있다.

그건 팔랑거리고 있었다.

어? 하고 빤히 바라보니 붉은 것 같기도 하고 회색인 것 같기도 한 천이 모퉁이 너머로 보일랑말랑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모퉁이를 꺾어도 그건 팔랑거리며 그 너머로 사라진다.

왜 이런 환상을 보는 걸까.
나는 멍하게 생각했다.

그 붉은 천이 옷자락으로 보였을 때 처음으로 이건 환상이 아닌 것 같아서 무서워졌다.

시게 짱은 안 보이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치만 그건 계속 팔랑거려서 나는 대체 뭐냐고 소리치면서 쫓아가고 싶은 충동과 이대로 뒤돌아 도망치고 싶은 충동 사이에서 갈등했다.

싸늘한 밤이슬이 천장에서 뚝 떨어져서 그게 발목에 튄다.

어둠 속에서 나와 시게 짱의 숨소리만 흐르고 그 너머에 붉은 옷자락이 팔랑팔랑 흔들렸다.

그건 역시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등신불이 애매한 생과 사의 경계를 스윽 넘은 것처럼 이 동굴에도 그러한 경계가 있어서 그걸 넘은 순간에 저 환상이 현실이 되어 이번에는 우리 존재가 옅어지지는 않을까.

왠지 머리가 어질거렸다.

"도착했어."

시게 짱이 멈춰섰다.
나는 어깨 너머로 보았다.

발밑을 비추고 있던 손전등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어둠 속에서 하얀 것이 떠오른다.

가슴이 철렁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얀 것은 원형 동굴 단면 전체로 퍼져서 길을 막고 있었다.

둥근 바위가 구멍을 꽉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시야 한 가득 그 하얀 것이 들어왔다.

얼굴이다.

얼굴 뉴도.
잘린 머리처럼 동굴 안을 막고 있는 바위.

인공적인 빛에 비쳐서 그 하얀 표정이 떠오른다.

인간 것보다 훨씬 큰 그 미간은 주름이 져 있고 입은 꾹 다물고 있었으며 코 옆도 주름이 있었다.

그것은 그 눈을 부릅 뜨고선 이쪽을 엄청난 기백으로 노려보고 있다.

비명을 지를 뻔한 나는 시게 짱의 말에 간신히 이성을 유지했다.

"다행이다. 아직 화내지 않았어."

후, 숨이 새어나온다.
시게 짱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지만 말투는 단호했다.
확실히 얼굴은 분노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번에 왔을 때도 이랬어."

시게 짱은 그렇게 말하며 굳어진 얼굴로 웃었다.

얼굴 뉴도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전조로 분노한 얼굴로 바뀐다고 한다.

바위에 그려진 표정이 바뀔 리가 없다는 상식은 제쳐두더라도 이걸 보면 타로 짱이 동굴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이유가 이해가 간다.

옛날부터 그랬을까 아니면 제사를 하면서 얼굴을 다시 그릴 때 마지막으로 그려놓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그려놓은 걸까.

그건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분노하기 직전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얼굴을 한 번 더 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뿔싸. 상상하고 말았다.
나는 무릎을 덜덜 떨었다.
당장이라도 얼굴이 바뀌어 화내는 걸 상상해 버렸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밋밋하고 둥근 바위에 그려진 얼굴이 꿈틀거리면서 무시무시한 노성을 지르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눈에서 불꽃이 튀고 꾹 다문 입을 벌리고 붉은 목과 이빨이...

공기가 차가워진다.
정적이 팽팽하게 감돈다.

앞에 있는 하얀 얼굴 바로 밑에 뾰족한 돌이 튀어나와 있었고 그 돌에는 하얀 게 달라붙어 있었다.

바위에 얼굴을 그릴 때 도료가 떨어져서 묻은 게 틀림없겠지만 그때 나는 마치 부러진 이빨처럼 보였다.

"가자."

나는 시게 짱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시게 짱도 고개를 끄덕이며 뒷걸음질을 쳤다.
점점 멀어져서 얼굴이 모퉁이 너머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손전등으로 계속 안쪽을 비추면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을 뗀 순간 그 분노가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얼굴 너머 지금은 아무도 갈 수 없게 된 동굴 심층부에는 등신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을 차지하는 건 얼굴이었다.
얼굴.
얼굴.
얼굴 뉴도.

모퉁이 너머로 얼굴이 사라지게 되자 우리는 뒤돌아서서 얼른 왔던 길을 돌아갔다.

내가 앞장서고 시게 짱이 뒤를 따른다.
맨 뒤에 있는 건 싫었다.
하얗고 긴 손이 동굴 안쪽에서 튀어나와서 발목을 붙잡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손전등을 들고 있는 건 시게 짱이었다.
외길이지만 완전히 캄캄한 동굴이었기에 발밑을 비추지 않으면 위험했다.

숨을 죽이면서 긴장해서 걷고 있으니 시게 짱이 손전등을 건넸다.

아슬아슬하게 옆에 나란히 설 공간은 있었는데 시게 짱은 손전등을 주고 후미를 자처한 것이다.

역시 두목감이었다.

넘어질 뻔하면서도 겨우 우리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우리를 보고 타로 짱이 움찔한다.
나는 숨을 고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시게 짱을 돌아보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시게 짱도 씩 웃으면서 역시 엄지를 치켜든다.
이걸로 너도 동료다.
그렇게 말한 기분이 들었다.

"어땠어?"

타로 짱이 물었다.

"저번과 똑같았어."

시게 짱이 타로 짱 등을 탁 쳤다.

"도시 촌놈도 들어갔겠다 약속대로 너도 가야지."

타로 짱은 군침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혼자서 가야 해?
그런 눈빛으로 시게 짱을 바라보면서 미련이 남은 듯이 손전등 하나를 쥐고서 입구로 걸어간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게 짱도 같이 가 줄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단념한 타로 짱이 동굴 안으로 홀로 사라지고 우리는 밖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동안 문득 그 붉은 옷자락 환상이 떠오른다.

동굴 안은 얼굴 뉴도가 막고 있고 거기까지 가는 길은 갈림길도 없는 외길이었다.

물론 눈치채지도 못하고 스쳐지나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결국 동굴 안쪽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역시 그건 환상이었구나.
무서워서 보일 리가 없는 걸 보고 만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동굴에 어울리는 환상은 스님이 아닐까.
왜 그런 붉은 옷자락이 보이고 만 걸까.

"으악!"

느닷없이 동굴 속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왜 그래?"

시게 짱이 손전등을 동굴 쪽으로 향하며 소리쳤다.
희미하게 공기가 진동하고 안쪽에서 누가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긴장해서 손바닥에 땀이 고인다.
이제부터 뭔가 무시무시한 게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다리가 뻣뻣해졌다.

시게 짱이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그걸 멀리서 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뭔가가 시게 짱을 밀치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황급히 몸을 비틀어서 그걸 피했다.

그 뒷모습에 "아, 타로 짱이다."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것은 눈앞에 있는 절벽에서 멈추지도 않고 발이 미끄러져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비명이 멀어져가고 곧바로 몸을 일으킨 시게 짱이 절벽으로 달려간다.

금방 굴러떨어지는 소리는 멈추었지만 높이는 꽤 된다.
무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밑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나는 안도했다.

"기다려."

시게 짱이 그렇게 말하고 절벽을 돌아 구하러 간다.
나도 쫓아가려고 하다가 움찔 뒤를 돌아보았다.

동굴은 아까처럼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둡고 조용한 어둠이 있을 뿐이었다.

그치만 타로 짱은 뭔가를 두려워하면서 도망쳐왔다.
그리고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절벽에서 떨어졌다.

나는 덜덜 떨면서 애써 동굴에서 눈을 돌린 뒤 도망치듯이 시게 짱을 쫓아갔다.

온몸을 세게 부딪친 타로 짱을 시게 짱이 업고 우리는 필사적으로 산을 내려왔다.

공중전화를 놓아둔 곳까지 내려와서 구급차를 불렀다.
심야였지만 시게 짱 집과 타로 짱 집에도 각각 연락을 했고 우리는 호되게 혼났다.

병원에 달려간 타로 짱 가족에게 사과하고 사정을 설명하고 겨우 집에 돌아간 시각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나는 흥분된 상태에서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낮에 잠에서 깨어나 이불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낮에 일어나니 역시 아침에 일어났을 때랑 느낌이 다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상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 얼굴 뉴도 동굴에서 나와 시게 짱은 화를 참는 것 같은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교대로 들어간 타로 짱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왔다가 절벽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상처는 별 거 아니었고 오른쪽 어깨에 조금 금이 갔지만 잠시 입원하면 금방 퇴원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다고 징징대는 타로 짱을 시게 짱이 업고 산을 내려갈 때, 타로 짱이 이상한 말을 했다.

화냈어.
얼굴 뉴도가 화냈어.

그런 말을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걸 들었을 때 나는 한시라도 빨리 그 동굴에서 멀어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 거대한 얼굴이 진노한 얼굴로 어둠속에서 쫓아올 것만 같았기에.

동이 트고 냉정해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그 동굴은 외길이고 다른 곳으로 빠지는 길도 없었다.

나와 시게 짱이 얼굴을 보고 타로 짱이 교대로 들어가기까지 거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나와 시게 짱이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당연히 다른 사람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타로 짱은 혼자서 동굴에 들어가 막다른 곳에서 얼굴 뉴도를 본 뒤 돌아왔을 뿐이었다.

우리가 보았을 때 화내지 않았던 얼굴 뉴도가 타로 짱 때는 화내다니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타로 짱은 대체 뭘 본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타로 짱은 지금 옆마을 병원에 있다.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하러 갈 수는 없었다.

"일어났냐?"

생각에 잠겨 있으니 외숙부가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한다.
시게 짱과 같이 밥을 먹고 있으니 외숙부가 한 번 더 어제 있었던 일을 묻는다.

"왜 밤에 그런 산으로 갔니."

절반은 설교였다.
우리는 말을 맞추듯이 얼굴 뉴도 얘기는 하지 않았다.
비밀을 지키는 게 동료라는 증거니까.

그저 탐색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안 할게요.
죄송해요.
그런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 위기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다 먹은 후 외할아버지 방에 불려갔다.
나와 시게 짱은 정좌해서 외할아버지의 엄한 눈빛을 그대로 받았다.

설교라면 따로 하지 말고 한꺼번에 하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더니 외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얼굴 뉴도로군."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외할아버지도 얼굴 뉴도를 알고 있었구나.

"우리도 어렸을 적에는 보러 갔지."

외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듯이 덧붙였다.

"그건 무시무시한 거야."

아무래도 외할아머니가 어렸던 시절에도 얼굴 뉴도가 화난 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는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자세한 건 알려주지 않았다.

얼굴 뉴도님이 있는 곳에는 더 이상 가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을 내린 뒤 우리를 풀어주었다.

제 아무리 시게 짱도 기운이 없었다.
대나무 인형 사건 때보다 더 심하게 혼났기 때문이다.

다음 장난을 떠올려서 눈을 빛내는 건 좀 더 나중일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그날은 결국 여름방학 학교에는 갈 수 없었다.
오전 중에 자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선생님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이토록 기묘한 일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선생님이라면 이 사건을 듣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답을 찾아내주지 않을까 하고.

전에도 한 번 오후에 그 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없었다.

모친을 데리고 병원에 간 건지도 모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여름, 집 안에서 빨리 내일이 되지 않을까 나는 안달하고 있었다.

시게 짱은 그 후에 기운이 없는 채로 어디론가 놀러 갔지만 나는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아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욕구가 끓어올라 점점 커진다.

낮이라면 그다지 무섭지 않겠지.

얼굴 뉴도를, 타로 짱이 목격한 걸 확인하러 가고 싶었다.

이때는 심하게 갈등했다.
외할아버지가 그건 무서운 거라고 말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타로 짱은 대체 뭘 본 걸까.

한 번 도망친 곳을 한 번 더 도전하는 걸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친주의 숲 안쪽으로 다시 가서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탁 노트를 덮었다.
좋았어, 가자.

나는 일어섰다.

밤과 낮은 산길의 인상이 달라서 몇 번이고 헤맬 뻔하면서도 나는 겨우 얼굴 뉴도 동굴에 도착했다.

헥헥 숨이 차올랐다.
어젯밤보다 힘들었던 건 햇빛이 가지 너머로 흉폭하게 내리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사라지고 탁 트인 곳에서 나는 이마를 닦았다.
자그만 절벽이 보인다.
어제 타로 짱이 떨어진 그곳이다.

타로 짱이 데굴데굴 굴러서 몸을 부딪친 바위도 그곳에 있다.

그 묵직한 바위를 보고 있으면 오싹해진다.
타로 짱은 대체 뭘 보고 그렇게 두려워하며 도망친 걸까.

낮에도 어두운 입을 벌리고 동굴이 내 눈앞에 있다.
각오를 다져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얼굴 뉴도는 화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어떤 얼굴인지 온갖 상상이 다 든다.
지금 최악의 사태를 상정해두면 쫄아서 절벽에서 떨어지지는 않겠지.

온갖 화난 얼굴을 충분히 상상한 후에 나는 심호흡을 5번 했다.

5번 한 후에 3번 더 하고 그 후에 또 4번 더 한 뒤 동굴에 발을 내디뎠다.

햇빛이 닿지 않기에 서늘하다.
바깥 열기가 따라오지만 몇 번 모퉁이를 꺾으니 떠나가 버렸다.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시게 짱이 어제 들고나간 건 찾을 수 없어서 벽장에서 찾아낸 자그만 손전등이었다.

미약한 빛줄기가 앞에 나타났지만 동굴 안은 구불구불하기에 앞이 잘 안 보이고 언제 모퉁이 뒤에서 무시무시한 게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목덜미가 오싹해지는 걸 느끼면서 나는 동굴 안쪽으로 나아갔다.

'바위에 그려진 그림이 화내다니 그럴 리가.'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아니, 이 세상에는 뭐가 일어날지 몰라.' 라고 긴장하게 된다.

그래.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

숨겨진 비밀 통로가 없는지 신중히 확인하면서 나는 깊고 깊은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낯익은 모퉁이를 돌았을 때 눈앞에 하얀 것이 들어왔다.

얼굴이다.
얼굴 뉴도.

어제랑 마찬가지로 동굴을 꽉 막고 있는 하얀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공포보다 구역질이 났다.

이게 뭐야?

그토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상상도 못한 이상한 모습이 나타나 나는 얼이 빠졌다.

발밑에서 천장까지 뻗은 거대한 얼굴은 웃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의 주름은 뺨 쪽으로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다.

이게 바로 이 동굴 너머에 등신불이 된 스님의 평소 얼굴이었을까.

하지만 그 얼굴을 본 순간 구역질이 날 정도로 기괴함을 느꼈다.

나와 시게 짱은 둘이서 여기까지 와서 '화를 참는 얼굴'과 만났다.

그리고 그 후 교대로 타로 짱이 혼자 들어가서 '화난 얼굴'을 만났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지금 나는 웃는 얼굴을 보고 있다.

이건 대체 뭘까.

다리가 덜덜 떨린다.
눈앞에 있는 하얀 얼굴이 꾸물렁꾸물렁 엿처럼 형태를 바꾸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착각일까.

나는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이것만은 하겠다고 정한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군침을 삼키면서 떨리는 다리를 재촉하여 조금씩 얼굴로 다가갔다.

얼굴이 커질수록 이 좁은 공간이 이 세상에서 잘라낸 이공간처럼 느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내 얼굴을 들이대고 얼굴 뉴도 표면에 빛을 비추었다.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도료가 벗겨져 있고 하얀 얼굴에 검은 얼룩이 눈에 띈다.

그 살은 분명히 바위이고 그 위에 그려진 얼굴은 어제오늘 그린 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몇 년, 아니 몇십 년도 전부터 여기에 이렇게 끼여 있었을 것이다.

얼굴 바로 밑에는 부러진 이빨처럼 도료가 묻은 뾰족한 바위가 있다.

웃고 있어도 아까까지 이빨이 있었던 증거마냥 창백하게 빛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오한이 들어서 얼른 도망쳤다.

하얀 손이 쫓아오는 환상이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무섭다.
무섭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그래도 햇빛이 들어오는 길 끝이 보인 순간 제동을 걸었다.
동굴 밖까지 뛰쳐나온 나는 절벽 앞에서 딱 멈춰설 수 있었다.

낮이라서 다행이다.
밤이라면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사지가 공중에 떴을지도 모른다.

뒤에서 이상한 기척이 들었다.
홱 돌아보니 동굴 안쪽에 붉은 옷자락이 보인 것 같았다.
그건 곧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덜덜 떨면서 동굴 입구를 향해 물었다.

"누가 있는 거야?"

있을 리가 없었다.
길은 외길이고 막다른 곳에는 얼굴 뉴도 바위가 막고 있다.

땅과 벽과 천장에 딱 끼여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니 그 바위 안쪽에 누가 숨어 있을 리가 없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저번에 텔레비전에서 나왔는데.
그래, 밀실.
밀실이다.

밀실 안에는 산 미라가 된 스님만 있을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두 번 다시 바뀌지 않는 표정을 얼굴에 붙인 채로.

그 얼굴은 화내고 있을까, 웃고 있을까.

아앗.

왠지 참을 수 없어서 나는 도망쳤다.
절벽을 돌아 산길을 달려내려갔다.
돌아보지도 않고 땀을 흩날리면서.

헉헉 계속 달리고 있으니 뇌가 멋대로 상상한다.

얼굴 뉴도가 화내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

외할아버지가 그건 무시무시한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진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로 짱이 절벽에서 떨어진 것도 그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절벽 앞에서 그 등을 떠민 건지도 모른다.

아까 본 얼굴 뉴도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좋은 일을 암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늘 아무도 오지 않는 어두운 동굴 안쪽에서 어째서 웃고 있는 걸까.

상상이 얼굴 뉴도 얼굴을 크게 변형시켜 시야 한 가득 아니 머릿속 한 가득 퍼지게 한다.

그 기괴한 모습을 떨쳐내려고 나무 뿌리를 뛰어넘으면서 달려갔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외숙부가 3,4일 후에 타로 짱이 퇴원한다고 말했다.

나도 안도했지만 주모자이면서도 두목인 시게 짱이 제일 크게 안도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나는 시게 짱에게 얼굴 뉴도 동굴에 한 번 더 갔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시게 짱은 "지쳤으니 잘래." 라고 말하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왠지 얼굴 뉴도가 웃고 있었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게 무서워졌다.

그렇기에 시게 짱이 잔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면서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기로 했다.

브라운관 너머로 프로레슬링 중계를 하고 있었다.
무서운 외국인 레슬러가 링 안이나 밖에서 날뛰고 있었는데 시시각각 그 표정이 바뀌어서 한순간도 똑같은 얼굴이 없었다.

노려보는 얼굴, 긴장한 얼굴, 아파하는 얼굴, 웃는 얼굴, 소리치는 얼굴.

바느질을 하는 외할머니랑 나란히 앉아서 나는 텔레비전을 계속 바라보았다.

다음 날.
조금 기운을 차린 시게 짱이 아침부터 밖으로 놀러가는 걸 배웅한 뒤에 나는 여름방학 학교로 갈 준비를 했다.

선생님에게 어떻게 동굴 얘기를 할지 생각하면서 숙제를 하는 척을 하니 외할머니가 먼지털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탁탁 가구나 벽을 치우고 좀 무거운 물건을 치울 때 "엣헤" 하면서 1시간 정도 먼지를 털어낸다.

나는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쳐서 점점 먼지가 일어나는 방 안에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때 한바탕 먼지를 털어낸 외할머니가 허리를 두드리면서 내 눈앞에 서더니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 지친 거 아니니."

요 2,3일 간 확실히 많은 일을 겪어서 지쳤다.
그래도 타로 짱이 금방 퇴원하는 걸 알았고, 어제 만나지 못했던 선생님하고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다.

"별로. 산책하고 올게요."

나는 외할머니를 남겨두고 방을 나갔다.
밖은 여전히 쨍쨍 해가 내리쬐고 있었고 반소매에서 튀어나온 팔에 몇 겹이고 쌓인 그을린 흔적이 가려웠다.

아는 아주머니와 스쳐지나가면서 인사를 하고 아무것도 없는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으니 왠지 발이 무거워진 것 같았다.

역시 지친 걸까.
아침밥도 한 그릇밖에 안 먹었고.

그래도 나는 발을 열심히 움직였다.
적란운이 북쪽 산 능선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 너머를 향해서.

아바스 왕조나 후 우마이야 왕조, 파티마 왕조 등으로 분열되거나 건국된 이슬람 왕가는 터키나 이베리아 반도, 북인도 등지로 착실히 세력을 넓혀갔다.

그 중에서도 로마 제국의 후계자인 동로마 제국 영토에 침공한 셀주크 왕조는 그리스도교 성지 예루살렘까지 압박해왔고 로마 교황 칙령 하에 서방국들이 들고 일어나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제1차 원정이 성공한 후에도 십자군은 터키인이나 이집트 살라딘 등 상대를 바꾸면서 제2차, 제3차, 제4차, 결국 제7차까지 원정을 감행했는데 이슬람 세력과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지금도 터번을 두르거나 스카프를 두르거나 "인샬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잔뜩 있는 곳이 텔레비전에서 나온다.

모두 죽었을 리가 없다.

그 사람들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역사 너머에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머나먼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도 결코 판타지 세계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 있는 지금과 이어지고 있는 거라고 실감할 수 있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지금 인간 사회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두근거리면서 선생님 수업을 들었다.
한자가 잔뜩 나오는 중국 역사는 그냥 훑고만 지나갔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니?"

세계사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동굴 얘기를 어떻게 얘기할까 고민하는 도중에 선생님이 먼저 물어보았다.

덕분에 나는 겁먹어서 도망친 걸 교묘하게 숨기지 못하고 전부 사실대로 얘기하고 말았다.

꼴사납다.
환멸하지 않으려나.

선생님은 늘 앉는 창가 자리에 걸터앉아서 진지한 얼굴로 들었다.

꽃무늬가 새겨진 하얀 옷이 햇빛을 반사해서 반짝거린다.

오늘 아침 선생님은 어제 내가 오지 않은 걸 혼내지도 않고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도 그렇지만 어제도 다른 애들은 오지 않은 걸까.
분명히 선생님은 오전 중에 계속 교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2층 창가에서 턱을 괴고 멍하니 교정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아파졌다.
선생님처럼 젊고 예쁘고 머리도 좋고 착한 사람이 이런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서 나 같은 어린애를 기다리고 있다니.

선생님은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도쿄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걸 죄다 버린 채 이 시골로 돌아와서는 여름 동안 계속 이런 낡아빠진 학교에서 고작 몇 명밖에 안 되는 학생을 매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산수 문제를 풀고 있는 동안 때때로 선생님은 창밖을 보면서 멍하니 있었다.

그럴 때 선생님은 그곳에 있는데도 그곳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옆얼굴을 훔쳐볼 때마다 나는 왠지 슬퍼졌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선생님은 턱에 검지를 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뉴도는 들어본 적이 있어. 내가 어렸을 적에도 남자애들이 담력시험을 하러 갔었지. 나는 본 적이 없지만 신기한 이야기구나."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 멍한 표정을 잠깐 보여주었다.

"이게 말이 돼요?"

나는 왠지 당황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정신이 든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세상에는 신기한 일투성이란다. 특히 이런 시골에는 생활 바로 옆에 이상한 미신이나 전승이 있어.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나 산수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나도 도시 생활이 길어지면서 잊어버릴 뻔했지."

선생님은 후 숨을 내쉬었다.
밖은 시끄러울 정도로 매미가 울어대는데 교실 안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바위가 화내거나 웃는 것도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신비한 힘이 작용해서 그런 걸까.

평범한 숲을 친주의 숲이라고 부르면서 신사를 세우는 것도?

벌을 주기 위해서 어둡고 좁은 곳에 나를 밀어넣는 아버지의 얼굴과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된 후에도 어느샌가 누가 뒤에 있는 것 같은 무서운 느낌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치만 과학이나 산수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으로서 그걸로 설명을 끝낼 수는 없지."

그때 내가 느낀 걸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선생님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을 즐겁게 그리고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그 근사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참을 수 없을 만큼 신나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분필을 쥐더니 칠판에 쓱쓱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손가락이 그리는 하얗고 시원시원한 선을 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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