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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나무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64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86749

대학교 2학년 봄이었다.

근처를 지나는 김에 오컬트 스승 집에 들렀다.

문을 두드리고 열어 보니 방 안에는 스승이 다다미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뭔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등지고 앉은 스승과 눈이 마주쳤다.

"여."

탁상에는 커다랗지만 전신거울 치고는 작은 거울이 있었다.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든다.

"거울인가요."

묻지 않아도 되는 걸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 안에서 시선을 떼고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그런 스승을 관찰했다.

이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오컬트 관련 거울을 입수했기에 보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자기 얼굴을 보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일까.

거울은 세로로 기다란 타원형을 하고 있었고 도기처럼 보이는 받침대 중앙에서 지지대가 링 형태로 이어져 있다.

거울 틀 좌우에서 튀어나온 막대가 붙어 있어서 빙글빙글 거울이 돌아가는 구조인 것 같다.

낡아 보였지만 그렇게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뭘 하고 있나요."

거울만 계속 바라보는 스승에게 싫증이 난 내가 묻자 겨우 대답했다.

"생각하고 있었어."

그 뒤에 숨을 내뱉었다.
마치 호흡하는 걸 겨우 떠올린 듯이.

"거울을?"

그렇게 묻자 훗 웃으면서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런 얘기가 있지."

한손으로 거울을 빙글 뒤집으면서 말한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져 있어. 자, 그때 소리는 났을까."

아, 들어본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면 그 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관찰자인 인간이 없이도 소리가 존재하느냐는 문제다.

"당연히 소리가 나지 않을까요? 애당초 관찰자가 없다면 나무가 쓰러졌다는 부분부터 의심해야 하는데 그걸 전제로 삼았다면 소리도 나겠죠."

"그래도 달은 거기에 있다고 말한 건 아인슈타인이었나... 뭐, 됐어. 이 명제는 '소리'를 진동 그 자체로 볼 것인지 생물이 청각기관으로 진동을 감지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사고방식이 달라지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소리가 났다고 대답하겠지."

스승은 거기까지 말한 뒤에 또 검지로 거울 뒷면을 눌러 회전시켰다.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떨까."

거울면이 이쪽을 향한 상태로 딱 멈춘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어. 그 나무 앞에는 거울이 놓여 있지. 그 거울에 쓰러진 순간이 비칠까."

이건 처음 들었다.
나는 일단 상상해 보았다.

숲 속.
썩어가는 나무.
나무 앞에는 거울.
거울에는 좌우가 뒤바뀐 나무가 비치고 있다.

나무가 쓰러진다.
거울 속 나무도 쓰러진다.

쓰러진 나무.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알았다.

"그야 비치죠. 소리랑 마찬가지예요. 사람이 보든 안 보든 비친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요."

그걸 들은 스승이 씩 웃더니 어디선가 기린 인형을 꺼내와서 거울 앞에 두었다.

본 적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장난감이다.
스승은 거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때. 뭐가 비치고 있지?"

거울 앞에 기린이 엉덩이를 이쪽으로 내밀고 서 있다.

거울 속에는 기린이 얼굴을 이쪽으로 내밀고 서 있다.

"기린이네요."

"그렇지."

스승이 기린을 쿡 찔러 넘어뜨린다.
거울 속에서 기린이 넘어진다.
이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스승은 장난을 치는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치고 좀 비켜보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석연치 않는 얼굴로 거울 정면에서 50센티 정도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어때. 뭐가 비치고 있지?"

거울을 보니 비스듬히 보게 되어 당연히 거울에 비치는 상도 달라진다.

"코끼리네요."

언제 둔 건지 왼쪽에 코끼리 인형이 있고 그게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그럼 좀 더 가 봐."

스승은 나더러 좀 더 오른쪽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뭐가 비쳐?"

이번에는 잘 안 보이지만 악어가 비치는 걸 알 수 있다.

"악어요."

그렇게 대답한 순간 왠지 이상한 공간에 빨려들어가는 착각이 들었다.

어라? 왜 악어가 비치는 거지?

왼쪽에서 보면 분명히 거울이 비치는 곳 근처에 악어 인형이 놓여 있다.

그런데 기묘한 위화감이 몸 안쪽에서 끓어올랐다.

탁 스승이 내 어깨에 손을 얹어서 움찔했다.
방 구석까지 가라는 지시였다.

벽쪽에 앉은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생각했다.

스승의 목소리가 음울해졌다.

"자, 뭐가 비쳐?"

지금 나는 거의 거울 바로 옆에 있다.
평면이라기보다는 직선.
어두운 금속색만이 보인다.

악어도 코끼리도 기린도 안 보인다.

"자, 방을 나갈까."

스승은 말만으로 유도한다.
눈을 뜬 채 유체이탈을 하듯이 나는 스승을 따라 방을 나갔다.

몸은 방에 남겨두고.
스승이 거리를 걷는다.
나도 따라갔다.
멈춰 설 때마다 스승이 내게 묻는다.

"뭐가 비쳐?"

대답할 수 없다.
문밖에 안 보인다.

"뭐가 비쳐?"

대답할 수 없다.
아파트조차 안 보인다.

"뭐가 비쳐?"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윽고 둘은 숲 속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그 안쪽에서 썩어가는 나무 앞에 섰다.

나무 앞에는 거울이 놓여 있다.
나무 쪽을 보고 세워둔 거울.

스승이 묻는다.
그 거울 바로 뒤에 서서.

"뭐가 비쳐?"

거을 뒤는 새까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자, 뭐가 비치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내 눈은 거울 뒤에 못박혀 있었다.

그 너머에 썩어가는 나무도 시야에 들어오는데 새까만 거울의 등, 그 뒷면에 비치고 있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해지고 무척 기분 나쁜 기분 좋은...

탁 어깨를 친다.

"한 번 더 물을게."

순식간에 스승이 사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벽쪽에 앉아 있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아무도 없는 솦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어. 그 나무 앞에 놓인 거울에 쓰러지는 순간은 비칠까?"

아까랑 똑같은 질문인데 그 의미가 기묘했다.

거울 앞에 놓인 기린이 아까랑 똑같이 쓰러져 있다.

"모르겠어요."

겨우 그렇게 대답하니 스승은 만족한 듯이 장난감을 주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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