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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4가지 얼굴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8|조회수131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87353

대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그 무렵 나는 대학에 들어간 후 인터넷에 빠져서 특히 지역 오컬트 포럼에 들락날락했다.

제법 활발하게 활동하고 오프모임도 빈번하게 나갔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술집에서 잡담이나 괴담을 교환하며 즐기기만 했다.

한번은 흑마술이라는 주제를 논해 보았지만 본격적으로 그걸 실행한 건 극히 일부인 주요 멤버뿐이다.

나 또한 흑마술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걸 진지하게 연구할 마음은 전혀 없었고 그 독특한 오컬트 기분을 조금 맛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모이는 술집에서 오프모임을 한 후에 Colo 씨라는 포럼 리더격인 사람 집에서 주요 멤버들만 모인 2차회가 열렸다.

1차에서는 처음 오프모임에 참가한 경박한 남자가 쿄스케 씨라는 여성에게 집적대었고 결국 그녀가 화를 내며 혼자 돌아가 버려서 흥이 깨져 버렸다.

맨션에 있는 Colo 씨 방에서 사가지고 온 술을 마시고 있으니 자연스레 오컬트 이야기가 나왔다.

나를 포함해서 전부 5명.
그러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멤버가 모였으니 당연하겠지만 이토록 모이면서도 아직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는 게 굉장했다.

특히 사와다 씨라는 여성과 야마시타 씨라는 남성은 괴담의 보고(寶庫)였다.

사와다 씨는 간호사인데 실제체험담은 그다지 없지만 병원 괴담을 제법 많이 수집하고 있어서 그 조용조용한 어투가 공포심을 더더욱 부채질했다.

야마시타 씨는 30대 최연장자조로 영감이 강한 건지 유난히 체험담이 많았다.

다른 멤버들은 절반 이상이 거짓말이라며 놀리곤 했지만 때로는 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넘치는 얘기를 가져오는 별격인 존재였다.

그날 밤도 사와다 씨 병원 이야기와 미캇치 씨라는 여성의 어릴 적 이야기 그리고 야마시타 씨 이야기를 차례로 들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이 야마시타가 중얼중얼 말했던 이야기다.

그는 지치면 인간 얼굴이 4가지 패턴으로만 보인다고 말했다.

꾸벅거리는 나를 미캇치 씨가 자지 말라고 꾹 찔렀다.
푸슉 캔맥주를 따는 소리에 다소 머리가 맑아졌다.

"나, 나는 말이지. 지치면 4가지 패턴으로밖에 얼굴이 안 보여."

야마시타 씨는 캔맥주에서 입을 떼고 더듬더듬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게 뭐야. 4가지 패턴? 다른 얼굴은?"

10살이나 차이가 날 텐데 미캇치 씨는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대개 말을 놓는다.

"그러니까 인간들 얼굴이 전부 4가지 패턴으로 변한다구."

"허? 그럴 리가 없잖아."

"뭐, 뭐, 내겐 그렇게 보일 뿐이고..."

몰아세우는 것 같은 말투에 그가 말문이 막히자 나는 미캇치 씨를 제지하고 이야기를 재촉했다.

"어지간히 지치지 않으면 그렇게 안 되지만 뭐냐, 지쳐서 밖을 걷고 있으면 길을 가던 사람들 얼굴이 점점 똑같이 보이기 시작해서 구, 구별이 안 가게 돼."

"그거 지쳐서 그래."

미캇치 씨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가 웃기는 말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는지 혼자서 깔깔 웃었다.

"시끄러워. 이제 됐어."

야마시타 씨는 눈초리가 매서워지더니 화를 냈다.
그는 좀 신경질적인 구석이 있어서 나는 좀 상대하기 힘들었다.

사와다 씨가 미캇치 씨 입을 막고 어떻게든 계속 이야기하게끔 재촉했다.

도중에 끊기다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완, 완전히 구별 안 되는 게 아니라 이 사람과 이 사람은 똑같이 보여도 그 옆에 있는 이 사람은 다른 얼굴이라고 느껴. 그게 왠지 전부 4패턴. 똑같은 패턴 안에서는 구별이 안 되니까 그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도 못 알아봐."

이상한 이야기다.
미캇치 씨 의견이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확실히 어지간히 지친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얼굴인가요?"

사와다 씨가 흥미로운 듯 몸을 내민다.

"그게 지치지 않았을 때는 확, 확실히 떠오르지 않아. 뭐라고 해야 하지, 그... 아아, 설, 설명하기 어렵네."

"그림으로도 못 그려?"

Colo 씨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못 그려."

"그 4가지 패턴은 간장 얼굴이나 소스 얼굴 같은 식으로 구별하는 거랑 상관있나요? 그리고 뭐더라. 너구리 얼굴이나 여우 얼굴 같은 것도 있었는데."

내 질문에 야마시타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 상관없는 것 같아. 원래 얼굴은 상관없어."

"원래 얼굴은 상관없다? 그럼 어떻게 4가지 패턴으로 나뉘는 거지?"

"4가지라니 혈액형이려나."

"아, 그럴지도. A, B, O, AB. 4가지 패턴."

아, 그거다.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생판 남의 혈액형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야마시타 씨도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남자와 여자 2가지 패턴이겠지. 그리고 뚱뚱한가 홀쭉한가로 나누는 거 아냐? 지치면 뇌가 귀찮아져서 개인 식별이 적당해지는 거야."

미캇치 씨가 혼자서 납득한다.
그러자 야마시타 씨는 깜짝 놀랄 말을 꺼냈다.

"성, 성별은 상관없을 거야. 성, 성별도 구별이 안 돼."

"뭐어?"

미캇치 씨가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남자랑 여자 구분도 안 되다니 그게 무슨 얼굴인데."

"그, 그러니까 설명하기 어렵다니까. 아무튼 그런 거랑 상관없는 4가지 패턴이야. 아, 그, 그치만 굳이 따지자면 성별은 복장이나 머리 모양으로 대충 알 수 있어."

성별 구별도 안 되는 얼굴이라니 어떤 얼굴일까.

상상해 보았지만 호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밋밋한 가면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진다.

"그치만 더 피곤해지면 머리모양이나 윤곽이나 체형이나 최, 최악의 경우에는 복장까지 똑같이 보여서 완전히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돼."

오싹했다.

그런 세계에 혼자 남겨진 상황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치만, 그, 그래도 4가지 패턴이야."

캔맥주가 빈 걸 깨닫고 야마시타 씨는 혀를 찼다.

"저는 어떻나요? 누구랑 같아요?"

사와다 씨가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자 야마시타 씨는 Colo 씨와 나를 가리키고 이 자리에 없는 오컬트 멤버 이름을 몇 명 대었다.

"왜 나만 따돌리는 거야."

미캇치 씨가 불만스러운 듯이 몸을 내민다.
상당히 취한 모양이다.

"절, 절반 이상 사와다 씨 그룹이야."

아무래도 4가지 패턴에도 세력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일단 우리는 그 4가지 패턴을 빈도가 많은 순서대로 A, B, C, D라고 했다.

야마시타 씨가 말하길 절반 이상이 A, 그 절반이 B, 또 그 절반이 C, D는 상당히 적다고 한다.

"나는 뭔데?"

미캇치 씨가 추궁하자 야마시타 씨는 말을 흐렸다.

"지, 지금은 아직 평범하게 보이고 그렇게 지쳤을 때에 그다지 아는 사람들과 만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떠올리려고 하다가 잠시 후 "아마도 C." 라고 대답했다.

"그게 뭐야."

미캇치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일 적은 D가 아닌 걸 안도했다.

그 후에는 어째서 인간의 얼굴이 4가지 패턴으로 보이는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솔직히 그냥 호기심 때문이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 얼굴을 차례로 예시로 들어서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 듣고는 그걸로 일희일비하며 즐겼다.

"내가 있는 C는 못난이뿐이잖아. 어떻게 된 거야."

"우연이겠죠. 멋진 배우도 있잖아요."

"여자는 못난이뿐이라구."

"배우랑 아나운서를 싸잡아서 못난이, 못난이라니 너무하잖아. 미의 기준이 뭐니."

"그러고 보니 B는 미인이 모여 있네요."

"A는 왠지 잡다한 게 모인 것 같아. 개성이 없어, 개성이."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웃어넘기다가 점점 모두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분위기를 눈치채고 입밖으로 꺼내려고 할 때 사와다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D는?"

아직 아무도 D 그룹에 속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유명인이나 아는 사람을 제법 많이 열거했는데도.

그걸 들은 야마시타 씨는 한순간 겁먹은 얼굴을 하면서 우물거렸다.

모두 빤히 바라보자 마침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알, 알고 있는 사람 중에는 없어."

그 자리가 조용해졌다.
기분 나쁜 침묵이다.

"얼마나 적은 거야. D는 왕따네."

미캇치 씨가 가볍게 말했지만 이상한 여운을 남기고 그 말꼬리가 공중에 사라진다.

"그럼 D는 어디서 보나요."

내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야마시타 씨 얼굴이 굳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이 위아래로 불안하게 움직인다.

"길, 길, 길 가다가 보기도 하고."

왜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걸까.
확실히 말하면 될 텐데.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면 왠지... 무서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망설이는 시늉을 했다.
모두 그걸 긴장한 얼굴로 바라본다.
옆에 있던 빈 캔맥주를 무의식적으로 들어올리며 한순간 그 가벼움에 놀라더니 야마시타 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 안."

오싹해졌다.
뭐야, 방 안이라니.

오고가는 불특정다수 속에 섞여 극히 소수인 D가 있다.

그런 거라면 그나마 상상이 간다.

하지만 방 안이라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상황 설정을 파악할 수 없다.

모두 야마시타 씨 언동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정말로 지쳤을 때인데. 저, 저번에 욕실에 들어갔을 때 문을 열었더니 아직 물을 채우지 않은 욕조에 서 있었어."

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사와다 씨가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누, 누군지 몰라. 구별이 안 되는 얼굴.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어. 제일 적은 얼굴."

그게 서 있었다라.
야마시타 씨는 억지로 웃으며 계속 말했다.

"그대로 문을 닫았더니 계, 계속 조용하길래 잠시 후에 열었더니 아무도 없었어. 그리고 밤중에 엄청 지쳐서 집에 돌아갔을 때 현, 현관문을 닫고 문을 잠근 뒤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돌아보고 싶어서 돌, 돌아보니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고 그, D의 얼굴이 들여다보고 있었어.... 다가가려고 했는데 금방 문이 닫혀서 살펴보니 문은 잠긴 채로 있었어."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혼자 살았죠?"

Colo 씨가 확인하듯이 말했다.

괴담이다.
어느샌가 괴담으로 변했다.

"그거 살아 있는 인간인가요?"

사와다 씨가 떨면서 물어본다.

"글쎄."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 같았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무서운 것 같다.

모습이 확실히 보이는데도 그게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나타날 수 없는 곳에 나타난다.

듣는 사람도 기분 나쁜데 그걸 직접 보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본인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다, 다음. 다음 얘기 하자."

야마시타 씨는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다지 깊이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또 흔해빠진 괴담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왠지 모두 의욕이 없어 보였던 건 찜찜한 4가지 얼굴 얘기가 묘하게 신경 쓰여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나도 지쳤을 때 야마시타 씨 머릿속에서 D라는 공통된 얼굴로 보이는 정체불명인 존재가 왠지 뇌리에 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그 후로 모두 술을 마시면서 점점 말이 없어지고 깨닫고 보니 미캇치 씨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자고 만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자정 무렵이었다.
미캇치 씨와 Colo 씨는 거울 점을 보러 가자며 나를 흔들었다.

"일단 얼굴을 씻고 올게요."

일어나면서 방을 둘러보았지만 야마시타 씨와 사와다 씨는 없었다.

"지쳤다면서 돌아갔어."

미캇치 씨는 술냄새를 풍기는 콧김을 내뿜었다.

그날 이후 오프모임에 야마시타 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터넷 게시판에도 전혀 글을 쓰지 않는다.

어느 날 밤, 문득 궁금해져서 야마시타 씨가 마지막에 글을 적은 게 언제쯤인지 조사해 보았다.

그건 5일 정도 전이었다.
Colo 씨 방에서 그 이야기를 한 뒤로 2주일 정도 지난 무렵이다.

내용을 본 순간 나는 스크롤을 딱 멈추었다.

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글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D가 늘어나고 있어.]

그저 그 한 줄.
앞뒤에 있는 다른 동료들이 적은 글과 전혀 내용이 맞지 않는다.

섞여 들어갔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 글보다 오래된 글을 보니 4일 전 동료들 대화에 평범하게 맞장구를 친 글뿐이었다.

더 거슬러올라가 보아도 그 오프모임 이전 글밖에 없었다.

"D가 늘어나고 있어."

나는 검은 배경색인 게시판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의자가 살짝 삐걱거렸다.

D라는 건 물론 그 야마시타 씨가 보았다던 4가지 패턴으로 보이는 얼굴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도 아무도 없을 욕실에 서 있거나 문을 잠갔을 텐데 문 너머로 들여다보았던 신출귀몰한 존재.

그게 늘어나다니 대체 무슨 말일까.

D는 출현빈도가 제일 적었다.
다음으로 적은 C와 비교해보아도 상당히 적은 것 같았다.

그게 늘어났다는 건 A나 B, 혹은 C로 보인 인간이 어느샌가 D의 얼굴로 보이게 되었다는 걸까.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고개를 젓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거울을 흘끗 보았다.

늘 보던 내 얼굴이 비치고 있다.

이게 야마시타 씨에겐 다른 인간과 구별이 되지 않는 가면 같은 얼굴로 보인다는 걸까.

내 얼굴은 A였다.
지금도 A일까?

자기 얼굴에 이상한 점이 없는지 거울에 얼굴을 들이대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왠지 눈 주위가 부어 보인다.
기지개를 켜고 눈구덩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야마시타 씨가 보는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누구이기도 하면서 누구도 아닌 얼굴을 상상해 보았지만 알고 있는 사람과 닮은 얼굴만 떠오른다.

그 이틀 후.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 PHS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여서 "네."라고만 대답하니 "다행이다, 있었구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와다 씨였다.
오프모임 말고는 거의 접점이 없는 사람이다.
전화를 걸어오는 것도 처음이 아닐까.

[게시판 보고 있어?]

"아뇨."

그렇게 대답하면서 브라우저로 들어가서 오컬트 포럼 페이지를 열었다.

[2시간 정도 전.]

그 말대로 찾아 보니 야마시타 씨 닉네임이 있었다.

[D가 늘어나고 있어.]

예전에 본 글과 완전히 똑같은 내용.
하지만 처음에 봤을 때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느껴졌다.

그 글을 달기 조금 전에도 야마시타 씨 글이 있었다.

[무서워.]

그 두 줄만 남기고 야마시타 씨는 떠났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소름이 돋았다.

[집에 전화해 보았지만 받지 않아. 휴대전화도.]

"진정해 주세요. 괜찮아요."

사와다 씨 목소리가 조급해 보여서 되도록 천천히 말을 건넸다.

[무섭다는 글을 발견하고 바로 전화했어. 그치만 받지 않아. 몇 번 다시 걸고 있으니 'D가 늘어나고 있어.'라는 글이 올라왔어.]

전화가 울리는 동안에 글을?
그게 사실이라면 이상하다.
집에 있으면서도 전화를 무시한 셈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걸까.

[집에 가보려고 하는데 같이 와줄래?]

"지금요?"

[응. 좀 무섭거든.]

왜 나인가 의아했으나 생각해 보니 포럼 단골 중에는 남성이 적고 야마시타 씨가 당사자라면 나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쿄스케 씨는?"

여성이지만 나보다 더 의지되는 사람 이름을 대 보았지만 알바 중인 모양이다.

역시 내가 가야 하는 걸까.

가능하다면 집 안에서 뒹굴거리고 싶었지만 걱정하는 사와다 씨 기분도 이해한다.

왠지 이상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나는 동행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야마시타 씨 집을 모르기에 사와다 씨가 지정한 편의점으로 갔다.

자전거를 몰면서 불길한 예감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에는 "D가 늘어나고 있어."라는 말만 빙글빙글 되풀이되었고 그때마다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쥐어짜내야 했다.

편의점 옆 주차방지턱 위에 서서 발돋움하는 사와다 씨를 보고 말을 걸었다.

"좀 멀어."

그렇게 말하는 사와다 씨와 같이 자전거를 밀면서 걸어갔다.

인적이 드문 밤에 산책로를 지나 쓸쓸하게 깜빡이는 가로등 밑을 걸으니 이윽고 2층짜리 아파트가 보인다.

"1층 오른쪽이야."

긴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더니 사와다 씨는 휴대전화를 꺼내고 리다이얼 버튼을 누른다.

잠시 귀를 대고 있다가 이윽고 포기한 듯 팔을 내렸다.

"역시 안 받아."

얼굴을 마주 보았지만 일단 방을 방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맨 오른쪽 방 앞에 섰다.
옆에 부엌으로 보이는 창 너머는 깜깜했다.
문 한가운데 설치된 우편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 부재중이었다면 신문이나 광고지가 끼어 있었을 텐데.

초인종을 누르고 귀를 기울였지만 안에서도 소리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잠시 기다린 후 문을 두드렸다.

"야마시타 씨."

"야마시타 씨!"

반응이 없었다.
왼쪽에 빛이 다가오면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뒤를 지나간다.

내가 그 차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열려 있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사와다 씨가 입을 막고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야마시타 씨."

한 번 더 부르면서 둘이서 문 틈새로 안을 들여다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나는 목소리를 죽이고 현관으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그리고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갑자기 들어온 눈부신 빛에 눈을 찡그리면서 신발을 벗었다.

"문 잠그는 걸 잊었던 걸까요."

야마시타 씨 방은 혼자 사는 것 치고는 의외로 넓었고 무척이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쓸데없는 물건이 전혀 없고 필요한 건 완벽하게 있어야 할 곳에 놓여 있다.

부엌도 조리도구가 정리되어 있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번쩍거린다.

신경질적인 그의 성격을 그대로 대변하는 방이었다.

텔레비전 앞에 있는 침대를 보니 이불 안에도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생활감이 없다.
대체 언제부터 그가 이 방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치만 2시간 반 전에는 있었을 텐데요."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보았다.
다가가서 본체 전원 버튼을 누르려고 하니 "좀, 그러면 안 되지."하고 사와다 씨가 질타했다.

그것도 그렇다.
상태가 이상하니 방문한 거지만 멋대로 부재중인 방에 손을 대는 건 좋지 않다.

실종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실종?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

컴퓨터 앞에 선 채로 바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사고가 비명으로 지워진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욕실로 보이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왜 그러세요, 사와다 씨."

그쪽으로 다가갈 때 언젠가 야마시타 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물을 채우지 않은 욕조에 서 있었어.'

D가...

등골이 오싹해진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무표정으로 문 너머에 서 있는 걸 멋대로 뇌가 상상한다.

어떻게든 그걸 떨쳐내고 반쯤 닫힌 문을 활짝 열었다.
사와다 씨가 작게 몸을 떨면서 서 있다.
그 어깨 너머에 욕실에 붙은 거울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가 깨져 있고 방사형으로 금이 가 있다.
겁먹은 사와다 씨 얼굴이 마치 찢어진 것처럼 흐릿하게 비쳤다.

나는 몸이 뻣뻣해졌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당장 샤워실 문에 손을 대었다.

활짝 여니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욕조 뚜껑을 닫혀 있고 물도 없었다.

"하아."

그게 자신이 낸 안도의 한숨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왜 이런 일이. 이런..."

깨진 거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사와다 씨에게 "괜찮아요."라고 무책임하게 말을 걸었다.

이상한 곳이 더 없는지 방을 전부 확인하며 돌아다녔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다른 사람 방에 멋대로 들어와서 가택수사를 하는 것 치고는 그다지 죄채감이 들지 않았던 건 너무나도 생활감이 없는 공간이어서 그랬을까.

잠시 후 진정한 사와다 씨에게 "이제 돌아가요."라고 말하니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마시타 씨는 여전히 전화를 안 받고 방으로 돌아올 기미도 없었지만 사건에 휘말렸다고 판단할 소재가 부족했다.

깨진 거울은 마음에 걸리지만 도둑이나 폭한에게 습격받은 흔적이 없다.

이 정도 가지고 경찰에 신고하는 건 야마시타 씨에게도 폐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

다만 그토록 신경질적으로 정리정돈하던 사람이 왜 깨진 거울을 그대로 방치한 건지 그것만은 잘 모르겠다.

'D가 늘어나고 있어'라는 글을 적은 후에 야마시타 씨는 문도 잠그지 않은 채 나갔다.

마치 도망치듯이.
거울은 그때 깨진 걸까.
깬 건 누구지?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으니 또 기분이 나빠진다.
사와다 씨가 쿡 찌르기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현관으로 갔다.

방을 나갈 때 현관 입구에 낯익은 구두가 놓여 있는 걸 깨달았다.

야마시타 씨가 늘 신고 있는 구두였다.

맨발로 밖으로?
설마.
다른 구두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이상한 생각을 떨치고 밖으로 나오니 금방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그대로 가는 건 위험한 것 같아서 어쩔까 고민하고 있으니 사와다 씨가 문 옆에 놓인 자그만 화분 밑에 손을 넣는다.

꺼낸 것은 열쇠였다.

"비밀."

검지를 입에 대면서 그녀는 문을 잠그고 또 원래 장소로 돌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둘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새삼 사와다 씨가 야마시타 씨를 걱정하는 이유를 알았다.

도중까지 사와다 씨를 바래다준 뒤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야마시타 씨 체험 중에서 귀가 직후 잠갔을 문이 열리고 누가 들여다보고 있던 부분.

그 후 다가가니 문이 닫히고 손잡이를 돌려보니 문은 잠긴 채였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였는데 실제로 그렇게 문 옆에 열쇠를 숨겨 놓은 걸 알았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야마시타 씨가 말하는 D라는 것은 그의 뇌가 만든 환상인 걸까.

그게 아니면 그의 뇌가 씌운 익명의 가면을 쓴 진짜 인간인 걸까...

집에 도착하고 땀을 씻어내기 위해서 샤워를 했다.
샴푸를 쓰고 있을 때 평소보다 뒤가 신경 쓰인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뒤에 누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그 느낌.

샴푸로 눈이 따가운 것도 참고 눈을 살짝살짝 뜨면서 얼른 머리를 감았다.

욕실을 나와서 잠시 이불 위에서 누워 있다가 생각난 듯이 컴퓨터를 켰다.

브라우저를 띄우고 늘 가는 게시판에 들어간 순간 새로 올라온 글이 보였다.

[또 D가 왔어. 나간 후에 손잡이를 봤더니 또 잠겨 있어.]

야마시타 씨다.
이게 뭐야.
한순간 오싹했지만 바로 그 글을 이해했다.
적힌 시간은 D가 늘어났다는 야마시타 씨 글을 본 뒤에 사와다 씨랑 둘이서 그의 방을 간 후였다.

문을 잠근 D라는 건 우리를 가리키는 게 틀림없다.

이게 대체 무슨 장난질이란 말인가.
부재중인 척하고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걸까.
그토록 찾아다녔는데.

기분이 나쁘다.
야마시타 씨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괴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우리에게 장난을 치는 걸까.

[와사다 씨가 연락했어요.]

와사다는 사와다 씨 닉네임이다.
그렇게 적고 잠시 기다려 보았으나 반응이 없다.
이미 컴퓨터를 끈 모양이다.
한심해져서 컴퓨터를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괜히 걱정했네.

그치만 자기 조금 전 아까 글이 올라온 시간이 문득 떠오른다.

어라? 그 시간은 우리가 아직 방에 있던 시간인데?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아마도 우리가 방을 나간 후 바로 적은 거겠지.
숨은 곳에 슬금슬금 기어나온 뒤 씩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 알바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 사와다 씨가 전화를 했다.

어제 야마시타 씨가 적은 글을 보고 포럼 관리인인 멤버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다.

역시 사와다 씨도 글을 적은 시간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야마시타 씨가 또 D가 왔다고 적은 건 우리가 아직 방에 있던 시간이라고 사와다 씨가 단언했다.

[방에 있었을 때 시계를 봤으니까 틀림없어.]

그러니 그 글은 다른 사람이 적었거나 혹은 본인이 다른 곳에서 적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거의 틀림없이 야마시타 씨가 늘 사용하던 컴퓨터로 적은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액세스 분석으로 알 수 있는가 보다.

[어떻게 생각해?]

"글쎄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에서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첫째. 야마시타 씨는 늘 자기 집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인터넷에 접속한다.

둘째. 우리가 오프모임에서 만나 야마시타 씨라고 인식했던 인물은 닉네임 '야마시타'인 인물과 다른 사람이다.

셋째. 사와다 씨가 안내한 그 방은 야마시타 씨 방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건 첫 번째려나.
왜 인터넷 환경인데 일부러 자기 방 말고 다른 곳에서 접속하느냐는 의문이 남지만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두 번째는 이때까지 게시판이나 오프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생각해 봤을 때 동일인물이라는 걸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세 번째는 단순히 사와다 씨가 착각했을 가능성.
방을 착각하고 그곳 주민이 우연히 부재중일 가능성이 있지만 사와다 씨가 계속 그 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것 같으니 그것도 아닐 것 같다.

현관 문 옆에 명패가 있고 그게 '야마시타'였다는 걸 나도 기억하고 있다.

혹시 가령 야마시타 씨와 사와다 씨가 둘이서 짜고 날 놀리려고 작정한 거라면 또 몰라도.

그런 걸 생각하고 있으니 중요한 부분을 놓칠 뻔했다.

"잠깐만요. 열쇠가 사라졌다니 오늘도 갔나요?"

[응. 글을 적은 시간은 뭔가 오해가 있었다고 쳐도 그 방 틀림없이 어딘가 숨을 곳이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제 돌아왔을 때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았을 열쇠가 없어졌다고 한다.

문은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두드려도 대답은 없었다.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뭐,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잠시 기다려 보죠."

지친 듯이 중얼거리는 사와다 씨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야마시타 씨와 거의 남남인 나와 달리 제법 친했던 그녀에겐 그리 쉽게 떨쳐낼 수 없는 모양이다.

[뭐, 됐어. 귀찮게 해서 미안해.]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까지 일어난 일을 혼자서 정리해 보니 아무래도 야마시타 씨가 일방적으로 사와다 씨를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확실히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은 줄어들고 그 내용도 이상해졌지만 원래부터 거기는 오컬트 애호가들이 보이는 기묘한 곳이다.

더러는 전생이 어쩌고 저쩌고 터무니없는 말을 꺼내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그저 사와다 씨가 개인적인 연락을 취하려고 했다가 잘 안 된 게 아닐까.

치정 사건이라면 더 이상 끼어들지 말자.

그때는 무책임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다.

"4가지 패턴인 얼굴 말이지. 그거 재밌네. 요컨대 세상 사람들이 전부 4종류인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거잖아."

"게다가 피로가 절정에 달하면 체격이나 복장까지 알 수 없게 된대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전부 인형탈을 뒤집어쓴 상태구나."

대학 선배이면서 내 오컬트 스승과 만났을 때 우연히 생각나서 말해 보니 유난히 기쁜 얼굴로 관심을 보인다.

"그 사람 병들었네."

뭐, 평범하지는 않지만 댁이 그런 말을 할 입장인가.

히죽거리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인 후 스승이 불쑥 말했다.

"D는 틀림없이 이 세상 존재가 아니야."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타나는 방식도 그렇지만 원래부터 영감이 강한 사람이었으니.

"실제로 3가지 패턴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 대다수인 A, 그 다음 B, 소수파인 C. 모든 사람이 그 셋으로 보이는 정신병인 거지. 거기에 영감으로 감지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존재를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4번째 모습으로 인식해 버린 거야. 그렇다면 그 야마시타 씨의 영감은 상당히 강하겠네."

"어째서요?"

"다른 3가지 패턴과 질적으로 똑같은 수준으로 보기 때문이야. 제법 잘 보이는 사람도 웬만하면 구별할 수 있잖아."

확실히 나도 경험상 인간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는 걸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과 똑같이 감지하지는 않는다.

유령은 유령이다.

"항상 영을 시각적으로 인간과 똑같은 수준으로 인식해 버리는 사람은 극히 소수인가 봐. 그 예시가 되는 엄청난 사람을 나는 알고 있는데 그런 사람은 일단 제대로 된 생활을 못 해."

"누군데요?"

"아키."

모르는 이름이었다.
아직 그 당시에는.

"뭐, 아무튼 그 야마시타 씨가 보이는 D가 영적인 거라면 그게 늘어난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네."

그렇다. 처음에 그 글이 올라온 후 그와 누구도 연락을 한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포럼 동료 중에는.

"단순히 D를 영이라고 바꾸어 쓰면 눈에 보이는 영이 늘어난다는 걸까."

"영감이 올라간다는 뜻인가요?"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혹은 실제로 영이 늘어나는 건지도 모르고."

스승이 말한다.

"그의 주변에서.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이루어진 인파 속에서. 혹은 텔레비전에 비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 사람은 또 기분 나쁜 말로 날 겁주려고 한다.

"애당초 이 마을에 인간이 몇 명 있는지 아무도 정확한 수를 몰라. 관청? 관청이 파악하고 있는 건 형식상 주소에 올려진 사람들 수뿐이지. 특히 대학생은 주민표를 옮기지 않고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좋은 예시야. 그 주민표가 없는 인간조차 있지. 정말로 이 마을에 있는 인간 수를 알고 싶다면 시간을 멈추고 하나둘 세어볼 수밖에 없어."

그 결과 조금 더 인간 수가 많다고 한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

이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뭐, 그건 제쳐두고 그 야마시타 씨가 보고 있는 D가 늘어났다는 건 어디선가 불쑥 솟아난 건 아닌 모양이네."

"어째서요?"

"또 D가 왔다는 글은 방을 찾아온 너희를 가리키는 말 같은데 둘 다 저번 오프모임에서는 A였을 거야."

그렇다.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A로 보이는 것이 D로 보이게 되었다는 거지."

"잠깐만요. D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가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거 아니야?"

스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저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그치만 그럴 리가 없다.

"오, 부정하는구나? 자신이 죽은 걸 인정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영체 증세입니다."

또 놀린다.
나는 울컥했다.

"자자, 그렇게 화내지 마라. D가 된 네가 전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D는 인간이라는 말이잖아."

D는 인간.

그건 나도 생각했다.
현관문에서 들여다보는 얼굴은 화분 밑에 있는 열쇠를 쓴다면 인간일 가능성이 있다.

귀가한 야마시타 씨가 안에서 문을 잠근 걸 노려서 화분 밑에서 열쇠를 꺼낸 뒤 문을 연다.

그걸 깨달은 야마시타 씨가 다가오기 전에 문을 닫고 밖에서 꽂아둔 열쇠를 돌려 잠그고 도망친다.

1층 맨 끝에 있는 방이니까 모퉁이만 돌면 잘 도망쳐 숨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왜 그런 짓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욕실에 서 있는 D는 모르겠다.
그 욕실은 직접 보았으나 자그만 창문만 있을 뿐 인간이 드나들 곳은 없었다.

몰래 집에 침입해서 들키지 않고 나갈 수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사람은 진짜 인간도 아니고 영도 아닌 인간을 볼 수 있잖아."

"환각을 봤다고요?"

그치만 스승도 야마시타 씨가 영감이 강하다는 걸 인정했을 텐데.

"D를 영이라고 가정했을 경우엔 그렇지. 내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

스승은 또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그 사람 병들었다구."

그렇다면 아까 했던 얘기는 뭐냐.
진짜 이 자식은 말을 뱅뱅 돌린다.

"처음에는 환각이 보인 거야. 그래도 그때는 진짜 인간과 환각이 구별이 갔어. 그게 점점 진짜 인간까지 환각처럼 보이기 시작한 거지. 완전히 말기 증세네."

완전 남일처럼 말하는 말투로 환청이 어쩌고 환각이 어쩌고 줄줄 늘어놓는다.

"너무 관여하지 않는 게 좋아."

마지막에 그렇게 충고해 주었지만 그건 결국 내 결론과 똑같았다.

그로부터 얼마 동안 야마시타 씨도 D도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새로 시작한 알바나 동아리 활동에 바빠서 오컬트 포럼 자체에도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사와다 씨한테도 전화가 오지 않았고 이 사건은 이미 내겐 끝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자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포럼 게시판을 들여다보니 제일 밑에 "죽이는 방법이라는 게 뭐야?"라는 글이 있어서 가슴이 철렁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건 조금 전에 올라온 글에 달린 답글이었다.
올린이는 내가 모르는 닉네임.
신입인가.
긴장하면서 위로 스크롤해 보았다.
그러자 지금부터 1시간 정도 전에 야마시타 씨 이름으로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놈들을 죽이는 방법을 알아냈어.]

그 글을 본 순간 고동이 빨라졌다.
그 놈들이 누구야?
죽이는 방법이라니?

또 거슬러 올라갔다.

[아니, 흉내가 아니야. 그렇게 믿고 있는 거지.]

중간에 광고가 몇 개 지나간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 놈들은 인간 흉내를 내고 있어. 나만이 그걸 간파할 수 있지.]

위험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뭘 하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야마시타 씨 글은 그 3개뿐이다.
5분 정도 간격으로 적혀 있고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몇 명이 농담처럼 글을 올렸지만 단골 이름은 안 보인다.

모두 이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서불안정 같은 게 아니다.
야마시타 씨는 정말로 정신상태가 위험했다.

D가 늘어나고 있다.
그의 평온한 생활을 위협하는 D가.

지쳤을 때 사람 얼굴이 4가지 패턴으로 보이듯이 조금씩 미쳐가는 그의 정신이 늘어나는 D에게 압박당한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무시무시한 결단을 내렸다.
그 늘어나는 D는.
그 놈들은.
나이기도 하고 사와다 씨이기도 하고 그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일 텐데.

나는 집을 나와 자전거를 탄 뒤 야마시타 씨 방으로 갔다.

질척질척 달라붙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먼저 편의점에 도착해서 저번에 갔던 코스를 그대로 따라갔다.

이윽고 낯익은 아파트가 보인다.
문에 달려들어 세게 두드렸다.
이름을 불렀다.
심야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야마시타 씨."

잠시 멈추고 조용히 기다려 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뒤로 돌아서 베란다 쪽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커튼이 쳐져 있어서 안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불빛은 일절 흘러나오지 않고 여전히 인기척은 없었다.

다음으로 나는 주변 도로를 돌아다녔다.
야마시타 씨로 보이는 사람이 없는지 눈을 부릅 뜨고 찾아보았지만 안 보인다.

지쳐서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3개월이 흘렀다.

야마시타 씨는 보이지 않았다.
실종해 버렸다.
직장에도 말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는 걸 사와다 씨한테서 들었다.

얼마 동안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상해 사건이 올라올 때마다 야마시타 씨랑 관련된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기우로 끝났다.

그가 살던 곳은 보증인인 가족이 정리한 모양이다.
지금 그 방에는 그런 사정도 모르는 새 주민이 들어서 있다.

봄이 되어 다양한 이별이 찾아왔다.

간호사인 사와다 씨가 고향에 있는 현외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게 되어서 오컬트 포럼 멤버끼리 송별회를 열었다.

붙임성 좋고 오컬트 화제를 많이 제공해준 공로자에게 감사와 작별을 보냈다.

사와다 씨는 주변 사람들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그러다 취한 듯이 말수가 적어지더니 바깥 공기를 쐬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따라 술집 밖으로 나갔다.
주역이 없어져도 떠들석한 연회 자리를 뒤로 하고 사와다 씨는 가로수에 기대듯이 서 있었다.

"토하실래요?"

그렇게 물으면서 내가 다가오자 그녀는 고개를 젓고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전화가 왔어."

"누구한테요?"

"야마시타 씨."

한순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야마시타 씨.
야마시타 씨?

"잘 지내냐고 묻길래 어디에 있냐고 화를 냈어. 그랬더니 방에 있대."

야마시타 씨라니 그 야마시타 씨를 말하는 건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 방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렇게 말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웃는 거야. 자신은 계속 여기에 있다면서."

반쯤 각오했던 광기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납득이 갔다.

처음에 사와다 씨랑 같이 그의 방을 찾아갔을 때 우리가 거기에 있었을 시간대에 글이 올라왔었다.

그런 우리를 어디선가 보고 있던 것 같던 내용.
그리고 현관에 있던 구두.

마치 보이지 않는 그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지 않은가.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보니 계속 찾아돌아다니고 있대."

무엇을?
뻔하지. D다.

"그 놈들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대. 어느샌가 그 본인과 뒤바뀐다는 거야.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까 보통 인간처럼 살고 있지만 자신만은 알 수 있대. D의 얼굴로 보이니까."

찾아서 뭘 하고 싶은 거지?

사와다 씨는 고개를 숙인 채 더듬더듬 말했다.

"흉내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니까 알려주면 된대. 너는 인간이 아니라고. 그랬더니..."

무시무시한 말을 집어삼키듯이 입을 다문다.

"무서웠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전화 너머로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반복해. 미친 줄 알았어. 그치만 미친 건 나인지도 몰라. 그런 전화가 정말로 걸려온 건지도 의심스러워."

자그만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다.

자기 주변 사람들이 어느샌가 모습은 똑같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로 뒤바뀌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야마시타 씨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뒤바뀐 건 그 자신이 아닐까?
아니, 그걸 뒤바뀌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봐서 그가 있는 공간과 우리가 있는 공간이 겹치지 않는 이 기묘한 현상에 내 머리도 뒤죽박죽이다.

야마시타 씨는 확실히 미쳤다.
그치만 그 광기가 내면이 아니라 외면 즉 현실에까지 슬금슬금 침투해 있다는 걸까.

"이제 마을에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대. 발견하는 대로 자신이 죽이고 있으니까. 아무도 없는 마을을 매일 걸으면서 그래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울먹이며 말하는 거야. 그리고...만나고 싶다면서..."

사와다 씨는 입을 다물었다.

"잠깐만요."

나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깨진 거울이 떠올랐다.
그가 없는 방에 남겨진 유일한 생활 흔적.
아니 그때도 그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방에 침입한 두 D를 두려워하면서.

거울.
거울.
어디선가 그 말을 들었다.

그래. 그가 처음 그 4가지 얼굴 이야기를 꺼낸 밤.

나는 어느샌가 자버렸고 깨어났을 때는 그는 없었다.
지쳤으니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서.

그때 거울 점을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거울.
거울.

지쳤으니 돌아간다?

지쳤을 때 4가지 얼굴이 보인다.
거울 너머에는 뭐가 보이지?

나는 A, 사와다 씨는 A, Colo 씨도 A, 미캇치 씨는 C....

그 자신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묻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그가 그 화제가 나오지 않게끔 교묘하게 피했던 것 같다.

그는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밤 먼저 돌아갔다.
그리고 자기 방 거울을 깼다.

왜 보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상상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그리고 그 거울에 비친 얼굴이 한순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어디서도 보지 않은 것 같은 알고 있는 사람 같은 모르는 사람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보인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D를 죽이고 다니는 그가 정말로 두려워한 건...

자신에게 진실을 고할 다른 존재.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오지 말라고 말했어..."

사와다 씨가 입을 막았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가.
갑작스럽게 이사하는 이유도 알았다.

어라?

그때 갑자기 기시감을 느꼈다.
이렇게 될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왜지?
기분 나쁘다.

"'알았어.'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 이제 연결이 안 돼. 걸어도 현재 쓰지 않는 번호라며..."

사와다 씨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그렇게 둘이서 묵묵히 밤바람을 맞고 있다가 이윽고 진정한 것 같아서 자리로 돌아가자고 권했다.

술집 자동문 앞에 서서 그게 열린 순간 유리로 된 불완전한 거울에 비친 나와 사와다 씨 뒤.

아무도 없을 공간에 무표정한 인간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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