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60443413
대학교 4학년 겨울이었다.
나는 친구 3명과 같이 조금 이른 졸업여행을 떠났다.
교대하면서 차를 운전하고 키타리쿠를 돌아 칸토로 들어갔다.
숙박집도 안 잡은 정처 없는 여행으로 비즈니스 호텔에 묵으면 다행.
죄다 방이 차서 어쩔 수 없이 차 안에서 추위에 떨면서 동이 트는 걸 본 적도 있었다.
목적은 없다.
그저 학생시절 특유의 권태와 무익한 시간 속에서 조금 더 몸을 담그고 싶었다.
모두 늦든 빠르든 그런 감상에 젖은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득 떠올렸다.
아는 사람이 이 근처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전화를 해 보니 그리워하며 맞아주었다.
1시간 정도 후에 만나기로 했다.
가로수가 늘어선 신흥 주택지 안을 지나 갓길에 내려 달라고 했다.
"끝나면 연락해줘."
그렇게 말하고 떠나는 친구의 차를 바라보았다.
도시에서 벗어나면 사람으로 흘러넘치는 숨막히는 마을보다도 공간이 상당히 여유가 있어 보인다.
알록달록한 벽돌로 포장된 길을 자연스레 경쾌해지는 발걸음으로 나아가며 커다란 맨션이 늘어선 곳을 보았다.
맨션이라기보다는 단지인가.
거기로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언덕이었다.
그 단지 입구에 공원이 있다.
넓은 부지에는 얼마 없는 놀이기구와 수많은 자연 그리고 주민들이 쉬기 위한 벤치가 있었다.
거기에 그 사람이 앉아 있다.
봄날 같은 따뜻한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나는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크게 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에, 잘 있었나요... 타다 씨."
왠지 얼굴이 간질거린다.
요 며칠 간 친한 친구들하고만 얘기했기에 입이 매끄럽게 움직이지 않는다.
잘 지낸다고 그 사람이 말했다.
예전보다 조금 통통해진 것 같다.
머리카락도 길렀다.
무엇보다 그 예리하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벤치 옆에 앉아서 근황을 얘기했다.
공원에는 우리 말고 때때로 주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지나갈 뿐이었다.
"그렇구나. 너도 졸업이구나."
감개무량한 목소리에 켕기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을 기다리는 친구들과 달리 나만 학점이 부족해서 유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 같은 걸 할 때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무렵 나는 모든 걸 흐름에 맡기는 달관 비슷한 평온한 경지였던 것 같았다.
그치만 꼴사나웠기에 그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바람이 그친 공원에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작 2,3년 전인 과거가 아득히 먼 옛날 사건처럼 색이 바랬지만 그래도 광활한 광채와 함께 되살아난다.
"치에도 결혼한 모양이더라."
"네. 2차회에 갔었는데 그 사람도 여전하더군요."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 묻길래 "역시 그런 타입인 사람이었어요." 라고 대답하니 "그렇구나." 하고 웃었다.
폐지 회수하는 차가 어디 먼 곳을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고 퍼뜩 놀라서 뭔가 떠올리려는 얼굴을 하더니 금방 "뭐, 됐나." 라고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나는 자그만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그 아픔의 정체가 뭘까 자문했다.
"그러고 보니 이 단지에도 7가지 불가사의가 있어."
문득 그 사람은 그런 말을 꺼냈다.
"엇, 학교에 자주 있는 괴담 말인가요?"
"응. 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많으니 똑같은 식으로 발생했겠지."
그렇게 말하며 순서대로 알려주었다.
단지 내 오르막길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올라가는 할멈.
밤중 C동 앞 느티나무 가지에 매달린 머리.
저녁 E동 벽에 비친 자기 그림자가 멋대로 움직인다.
단지 내 공중전화 박스에 요괴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제법 자주 듣는 이야기네요."
"그러네. 그치만 이 단지 7가지 불가사의는 어린애뿐만 아니라 주부들 중에서도 믿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때때로 소문이 들려오더라. 손이 가는 어린 애가 있고 좁은 공간에 틀어박힌 어른들에게도 마음의 병이 있는 걸까."
저기를 봐.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네 옆에 자그만 정글짐이 세워져 있다.
"저 정글짐에 어느샌가 어린 애가 들어가서 놀고 있다는 얘기도 있어. 전망이 좋고 저런 가느다란 파이프 골자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을 텐데 아무도 없는 정글짐 안에 어느샌가 남자애 하나가 들어가 있는 거야. 파이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안쪽을 기어다니고 있었대. 봐도 모른 척하고 있으면 또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다고 하더라."
"마치 요괴 같네요. 괴이랑 만났을 때 대처법과 세트로 존재하는 소문이라니."
"확실히 그러네."
둘 다 정글짐을 보고 있다.
남자애는 없었다.
저 놀이기구가 저렇게 작았었나.
자신도 저런 좁은 파이프 안을 기어다닌 시절이 있었다니 왠지 기분이 묘하다.
"아이 얘기 하니 생각난 건데 이런 얘기도 있어. 유모차를 밀고 어머니가 단지 안을 산책하고 있으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두리번거리면 또 들려와. 속삭이는 것 같은 자그만 목소리. 유모차 안에서 들려. 아직 말을 못하는데 드디어 아기가 말을 했다 싶어서 어머니는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지. 그런데 아기는 쿨쿨 자고 있어. 대체 뭐가 아기에게 속삭인 걸까."
"그건."
"뭐니?"
"무서운 이야기네요."라고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
뭔가 합리적인 해석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정보가 너무 적었다.
"노이로제 아닐까요. 육아 노이로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하니 "그러네."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로 조금 먼 곳을 바라본다.
갑자기 짤랑 소리가 들렸다.
땅에 열쇠가 떨어져 있다.
주머니에서 떨어졌나 보다.
허리를 숙이고 주워 주었다.
"미안해. 이런 상태라서."
그 사람은 불편하다는 듯이 손바닥을 폈다.
넘길 때 손가락 끝이 닿아서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감추기 위해 손가락을 굽혔다.
"아직 6개네요."
"응? 아, 7가지 불가사의 말이지. 그러네. 마지막은 재밌다구."
재밌다?
웃긴 내용인 걸까.
"재밌다고 해야 할까 괴담 치고는 드물다고 해야 할까. 이런 이야기야."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 단지에서는 '수수께끼 아저씨'라는 괴담이 있다.
A동 702호실에 있는 아저씨라고 한다.
왜 수수께끼 아저씨라고 하냐면 말 그대로 수수께끼를 엄청 좋아하는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은 아이들이 702호실 문 앞에 서서 똑똑 문을 두드린 후에 문에 달린 우편함을 덜컹 안쪽으로 밀고 말을 건다.
"아저씨, 아저씨, 고래보다 크고 송사리보다 작은 생물은 뭐~게?"
아저씨는 수수께끼를 좋아하지만 좀처럼 대답해 주지 않는다.
하염없이 생각하고 있다.
문 앞에서 기다려도 대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정답은 돌고래(이루카).
그런 게 있겠냐(이루카)!
그래서 돌고래.
이토록 쉬운데 아저씨는 모른다.
아이가 자기 방에서 자려고 할 무렵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안 일어나기에 침대에서 기어나와서 조심스레 현관으로 가면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덜컹 문에 달린 우편함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래보다 크고 송사리보다 작은 생물은 뭐~게?"
우편함에서 들리는 낮은 어른 목소리.
그 목소리는 계속 말한다.
"정답은 말이지. 진흙. 진흙이야."
아이는 무서워진다.
수수께끼 아저씨가 이런 시간에 찾아왔다.
그치만 답은 돌고래인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진흙이야."
한 번 더 작게 중얼거리고 덜컹 우편함이 닫힌다.
문 너머에서 기척이 사라진다.
아저씨가 돌아간 모양이다.
'진흙'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을 남기고서.
그런 소문.
단지 아이들은 그 소문을 듣고 재미삼아 차례로 702호실 우편함에 수수께끼를 던진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과일은 뭐~게?"
"공원에서 조용하게 슬쩍 타는 건 뭐~게?"
"세계 한가운데 있는 벌레는 뭐~게?"
......
정답은 파파야(파파이야).
아빠(파파)가 싫어(이야)하니까.
정답은 시소.
쉬잇(시잇)하고 슬쩍(솟토)타니까.
정답은 모기(카).
세계(세카이) 한가운데는 '카'니까.
하지만 수수께끼 아저씨는 그 쉬운 수수께끼를 모른다.
밤까지 생각하고 가족이 조용히 잠든 아이 집으로 찾아온다.
우편함 너머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
"아버지가 싫어하는 과일은 말이지 이빨이 난 배."
"공원에서 조용히 슬쩍 타는 건 말이지. 도려낸 느릅나무."
"세계 한가운데 있는 벌레는 말이지. 코걸음쟁이."
그 기분 나쁜 대답을 들어도 절대로 '아니야'라고 말하면 안 된다.
아니라고 말해도 더 기분 나쁜 대답을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게 되풀이되면 자신도 진짜 정답을 알 수 없게 된다.
정답을 알 때까지 수수께끼 아저씨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치만 정답이 사라져 버린다.
"그런 이야기야."
어떠냐는 얼굴로 바라본다.
"그건."
확실히 무섭지만 마치 정신이상자다.
"그 702호실은 아무도 안 사나요?"
"아니, 아저씨가 살고 있어."
"어, 그럼 실존하는 사람인가요?"
"그래. 평범한 아저씨. 물론 요괴가 아니야. 단지 모임에도 참여하고 다른 주민들과도 잘 지내. 오히려 왜 그런 소문이 생긴 건지 본인이 제일 의아해하더라."
"본인도 짐작가는 게 없나 보군요."
"그런가 봐. 다만 애들을 좋아해서 자주 근처 애들에게 수수께끼를 냈지. 정답을 맞추면 사탕이나 껌을 주었어. 반대로 애들이 내는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해도 그런 과자를 나누어 준 모양이야."
역시 그 아저씨가 한 거 맞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단지 조금 과장되었을 뿐이다.
"부인이 있는데 조금 전까지 맞벌이했거든. 낮에는 대개 그 집은 부재중이야. 7가지 불가사의 내용을 보면 낮에 702호실로 가야 해. 그리고 우편함 너머로 수수께끼를 일방적으로 말하는 거야. 중요한 건 그 수수께끼 아저씨는 정답을 알 수 없어서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당연히 아무도 방에 없으니까. 그치만 밤에 그 수수께끼 정답을 말하러 찾아오는 게 이상하지 않니? 어째서 그 아무도 듣지 못한 수수께끼를 알고 있는 걸까."
그렇구나. 아이들에겐 낮에 아무도 없는 집이기 때문에 문을 두드리고 우편함 너머로 수수께끼를 던지는 장난을 칠 수 있다.
그런데 없는 사람이 그 수수께끼를 듣고 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답이 없으니까 7가지 불가사의겠지. 그 702호실 아저씨는 이상한 소문을 낸 탓에 부인에게 혼나서 지금 수수께끼 금지령이 내려져 있어. 아니, 아예 근처 애들이랑 노는 건 자제하는 중이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일 텐데 조금 불쌍할 것 같았으나 세간의 눈이라는 게 있다.
관심이 식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관심?
문득 의문이 든다.
그런 게 정말로 시들까.
7가지 불가사의가 된 것이 그토록 쉽게.
뭔가 계기가 된 사건이나 사고가 있다고 해도 한번 그런 괴담이 생기면 계속 아이들 사이에서 홀로 걷고 이어지지 않을까.
"아니, 그게 말이지. 최근 부인이 일을 쉬고 있어서 집에 있게 되었으니 애들이 낮에 와도 우편함에 대고 수수께끼를 낸 순간 쫓겨나. 부인은 무서운 사람이니까 언젠가 아이들도 질리겠지."
그렇구나. 그렇다면 확실히 관심이 식을지도 모르겠다.
7가지 불가사의가 사라지는 건가.
웃고 말았다.
"웃기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직접 본인한테 들은 이야기 중에 웃지 못할 얘기가 있어."
"본인이라는 건 그 아저씨 말인가요."
"응. 아직 맞벌이할 무렵, 우연히 일을 쉬고 낮에 혼자 있었대. 몰래 기대하고 있었지. 소문을 들은 아이가 진짜로 문을 두드리고 수수께끼를 내지 않을까 하고. 혹시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놀래줄까 히죽거리고 있었대."
"전혀 질려하지 않네요."
그치만 아이가 올 기색이 없다.
그야 그렇다. 보통 부재중인 평일 낮이라면 아이들도 학교에 갈 시간이니까.
우연히 학교를 쉬거나 수요일 오후 수업이 없으니 그런 날이 아니라면 찾아올 이유가 없다.
아이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근처 편의점을 들렀다.
돌아와서 702호실 문 앞에 섰을 때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아무도 없으니 대답이 안 들린다.
우편함을 엄지로 밀자 몇 센티미터 틈새가 생긴다.
쭈그려앉은 채 아이들처럼 수수께끼를 내었다.
"아저씨, 아저씨, 소나무 밑에서는 수다를 떨고 싶었는데 벚나무 밑까지 걸어갔더니 실뜨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이유가 뭐~게?"
...대답이 없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게 부끄러워져서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애들은 이걸 왜 재밌어 하는 건지 생각하면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 누가 있다면 싫다 생각했지만 물론 아무도 없었다.
안도하고 편의점에서 사온 걸 봉지에서 꺼내어 냉장고에서 넣고 있으니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를 뒷발로 닫고 현관으로 가서 샌들을 걸치고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밑에서 우편함이 덜컹 열린다.
바깥 소리가 살짝 흘러들어온다.
술렁술렁술렁술렁...
아, 이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아저씨, 소나무 밑에서는 수다를 떨고 싶었는데 벚나무 밑까지 걸어갔더니 실뜨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이유가 뭐~게?"
누구 목소리지?
문을 열러던 손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어라? 어느덧 밤이 된 거지.
어둡다.
현관이 어둡다.
불.
불을 켜야 하는데.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정답은 말이지..."
나무(키)가 바뀌었으니까.
답은 마음(키)이 바뀌었으니까.
심장이 세게 뛴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낮은 남자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말한다.
"정답은 말이지. 벚나무 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으니까."
쾅. 문을 찼다.
목소리가 그친다.
바로 문을 열고 활짝 열었다.
빛이 흘러들어온다.
아까까지 심야처럼 어두웠던 것이 거짓말처럼.
밖에는 아무도 없다.
누가 도망친 기색도 없다.
지금 그건 뭐지?
발이 덜덜 떨린다.
자기 목소리 같았다.
아까까지 문 너머에 자기가 서 있었나?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계속 떨고 있었다.
라는 이야기.
나는 오랜만에 오싹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무섭네요."
완전히 괴담이다.
수수께끼 아저씨라는 7가지 불가사의에 나오는 존재가 자기자신과 별개인 존재처럼 나타나고 있다.
마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옆에 앉은 사람 얼굴을 보았다.
이 사람 주변에는 '그것'이 너무 많다.
예전에 자기 체험을 기억 끝에서 불러내려고 한순간 의식이 이 자리에서 떠났다.
그때였다.
내 귀에 어린애 목소리가 들렸다.
칭얼거리는 소리.
가깝다.
오싹해서 정글짐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아까까지 없었을 아이를 본 것 같아서 얼굴이 굳어졌다.
1초, 2초, 3초...
내 모습에 그 사람도 긴장한 것 같지만 이윽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듯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렇구나.
나는 굳이 보이지 않는 척을 했다.
냉정해지고 나면 전혀 괴담이 아닌데.
"잠깐 화장실 좀."
부끄러워져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저기 있어."
가리킨 곳으로 걸으니 자그만 공중 화장실이 나와서 볼일을 보고 생각했다.
가볼까.
화장실 앞에는 C동이라고 적힌 크림색 벽이 있다.
A동과 가깝다.
의심사지 않을 만큼 적당히 두리번거리면서 여러 색으로 분할된 벽돌 위를 걸어 A라고 적힌 거대한 건물 앞에 섰다.
현관에는 시큐리티가 없었기에 당당히 현관으로 들어가서 승강기를 탔다.
'7'를 누르니 도중에 멈추지 않고 목적지에서 문이 열렸다.
평일 오후.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 때문인지 묘하게 차가운 공기가 풍겨오는 복도로 나온다.
조용하다.
여기 올 때까지 다른 주민과는 만나지 않았다.
702호실은 끝이었다.
벽과 비슷한 색깔로 칠해진 문이 늘어선 걸 흘끗 보면서 걸어가니 이윽고 702호 표시가 보인다.
문 양쪽 옆에는 자기가 직접 단 건지 플라스틱 판이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 금연을'
'흡연은 정해진 곳에서'
그런 활자가 새까맣게 새겨져 있다.
수수께끼 아저씨는 아무래도 금연 활동이나 혐연 운동을 이 단지에서 추진하던 사람인 모양이다.
단지 모임에서는 어머니들의 지지를 받고 아버지들한테는 눈총을 받고 있을 게 틀림없다.
나는 작게 웃은 뒤 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려도 반응은 없다.
역시 일하러 나갔나 보다.
문 손잡이 옆부분에서 바로 밑에 가로로 기다란 우편함 입구가 있다.
색은 녹색.
가볍게 쭈그려앉아서 엄지로 밀었다.
들여다보아도 방 안은 보이지 않는다.
문 안쪽에 우편물을 받는 커버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 헤비 스모커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금연한 이유는 뭐~게?"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그래도 커버 너머로 흘러들어가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실내에서는 인기척이 없고 대답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
정적이 귀를 때린다.
귀울림이 울릴 것 같아서 긴장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건 오지 않았다.
탁 우편함에서 손가락을 떼고 702호실을 뒤로했다.
한번 복도를 돌아보았지만 살짝 문이 열려 있다는 전개는 없었다.
A동 현관을 나와서 가능한 멀리 돌아가려고 왔던 방향 반대로 돌아갔다.
어찌어찌 망설이지 않고 원래 있던 공원으로 돌아오니 그 사람은 반대 방향에서 온 나를 보고 의아한 얼굴을 하더니 곧 씩 웃었다.
"괜히 배려하게 했구나."
마침 가슴께를 정리하던 참이었다.
품에 안고 있는 아기는 아까까지 칭얼대고 있었는데 지금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아기 입을 손수건으로 가볍게 닦아내고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웃었다.
"집에 들르지 않을래?"
그 제안에 한순간 주저한 뒤 사양했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 아쉽네."
별로 아쉽지도 않은 듯이 그렇게 말한 뒤 그 사람은 아기를 향해서 "아부부" 하며 얼렀다.
나는 벌써 갔다 왔다고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3자리 번호가 적힌 열쇠가 그 타이밍에 주머니에서 떨어진 것은 우연인지 생각하고 있다.
이윽고 그 몽상도 애매한 채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겨울 사이에 잠깐 찾아온 봄날 같은 따뜻한 공원에 나는 서 있다.
이런 계절을 미국에서는 인디언 서머라고 한다.
추위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 살짝 찾아오는 겨울나기를 위한 따뜻한 시간.
봄도 거창한데 여름이라니 엄청난 비유다.
그때 문득 생각났다.
몇 년 전 사람이 없는 수영장에서 시작된 나의 여름이 끝나 버린 건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면 계속 여름이었다.
가을도 겨울도 봄도 또 찾아온 여름도.
본 것 들은 것 해야 할 일 했던 일 죄다 엉망진창인 채로 계속 여름이었던 것 같았다.
산속에서 몸을 숙이고 벌레소리를 듣던 가을도. 추위에 떠는 겨울밤 바닷가에서조차.
이윽고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하나하나 닫혀가고 깨닫고 보니 길었던 여름도 끝나 있었다.
'여름으로 가는 문'이라는 소설이 있다.
그 중 피트라는 고양이는 집밖으로 통하는 문 11개를 주인인 주인공에게 차례로 열게 한다.
문 너머가 겨울인 걸 불만스러워하고 여름 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으라고 주인공을 재촉했다.
몇 번이고 추위에 실망하면서도 적어도 하나는 여름으로 가는 문일 거라고 의심하지 않은 채.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런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따위는 없는 편이 좋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무렵 살짝 본 말도 안 되는 세계의 풍경에 새삼 감상에 젖게 된다.
그런 상처가 가슴에 미약한 아픔을 가져다주는 걸까.
"그럼. 안녕히."
손을 흔들고 공원을 나왔다.
그 사람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이쪽을 배웅한다.
이제부터 그 사람이 돌아갈 문 너머에는 평범한 생활이 있을 것이다.
7가지 불가사의 세계 같은 게 아니라.
나는 한 번 더 "안녕히."라고 중얼거리고 걸으면서 천천히 등을 돌렸다.
봄날처럼 따뜻한 벤치와 계속 안고 있던 멀고도 광활한 광채와 그리고 예전에 사랑했던 여름으로 가는 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