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88990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다.
대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무렵 학과 선배들이 주최하는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1차는 역 근처 번화가에서 샤브샤브를 실컷 먹었다.
2차는 졸업생이 운영하는 독일 술집에 가서 흑맥주를 실컷 마셨다.
3차는 어디 갔는지 기억 안 난다.
비틀거리면서 n차 가자고 떠드는 동료들한테서 겨우 벗어날 무렵에는 자정이 되었을 것이다.
똑같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정장 입은 남자와 거기에 매달리듯이 붙어 있는 여자.
길거리에서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부르는 대학생 집단.
전봇대 앞에 쭈그려앉아 있는 젊은이와 등을 두드려주는 친구들...
그런 흔해빠진 번화가 일상을 뒷전으로 나는 역으로 향해서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채찍질하며 걷고 있었다.
점원이 간판을 치우고 있는 중화 요리점 앞을 지나칠 때였다.
자신이 나아가는 길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길이 나타났고 그 사거리 위에 기묘한 것이 걷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은 조명에 반사되는 것도 아닌데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인간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밋밋해서 얼굴 부근에는 이목구비가 확실하지 않다.
그런 것들이 떼를 지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간다.
이 세상 존재가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보았다.
원래부터 남보다 영감이 강하고 유령을 자주 보아왔지만 이렇게 길거리에서 떼를 이루는 건 드물었다.
천천히 사거리로 다가가니 그 걷고 있는 놈들이 행렬을 이루며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수는 10~20명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사람 그림자가 번화가 그늘 속에서 떠올라서 줄줄이 걷고 있다.
오싹한 광경이었다.
'영도'라는 말이 떠오른다.
개미가 동료의 페로몬을 감지해서 똑같은 길을 줄지어 지나듯이 뭔가에 이끌려 방황하는 영들이 지나는 길이다.
'이런 번화가 한가운데...'
조심스레 사거리를 나와서 행렬이 향하는 방향을 살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으나 길 너머에 행렬 선두가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행렬 속에서 이쪽으로 손을 뻗는 놈이 있었다.
간발의 차로 그 손을 피해 거리를 두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다리가 꺾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매우 긴 하얀 손이 물결치듯이 흔들리며 형렬 속으로 들어간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행렬을 가로지르려는 사람은 없고 사거리에 들어선 사람도 좌우로 방향을 꺾는다.
원래부터 그쪽으로 갈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영도를 끊지 않도록 우회한 걸까.
그러던 중에 그들의 존재가 보이는 내게 반응한 것 같다.
하지만 행렬에서 벗어나 이쪽을 쫓아올 기미는 없다.
행렬을 따라 나아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걸까.
자세를 고치고 중심을 지나는 그들에서 가능한 떨어진 채로 진행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슴푸레 빛나는 그들을 곁눈질로 보니 입고 있는 옷이 희미하게 보이거나 무표정한 옆얼굴이나 깨진 턱에서 흘러내리는 피 왼쪽 어깨가 움푹 들어가서 쇄골이 드러난 모습이 보인다.
또렷하게 모습이 보이는 것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 같은 것.
그렇게 보이는 방식은 제각각이고 일관성도 없으나 전부 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걸어간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두 블럭 정도 앞서 가는 선두를 따라잡았다.
그때 본 광경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 광경은 생애 잊을 수 없을 만큼 광채를 띠고 있었고 다양한 순간에 몇 번이고 떠올랐다.
불이 꺼진 약국 간판 앞에서 저도 모르게 멈춰 서서 그 옆얼굴을 보고 있었다.
영도 맨 앞에 선 건 여성이었다.
하얀 저지를 입고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은 채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채로 앞을 노려보며 걷고 있다.
그 얼굴은 노기를 띤 것처럼 하얗고, 눈은...
눈은 거기에 비친 모든 걸 미워하고 혐오하고 책망하며 그러면서도 모든 흥미를 상실한 것 같은 그런 빛을 띠고 있었다.
짜증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 모든 것을 저주하면서 그녀는 걷고 있다.
그 뒤를 어슴푸레 빛나는 망자들의 행렬이 소리도 없이 이어진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장례 행렬과도 비슷한 장엄한 행진은 한밤중 광란이 사그라든 번화가에 깔린 어둠 밑바닥을 지난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을 이끌고 그 사실을 깨닫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앞을 노려보며 그녀는 걸어간다.
대체 그녀는 누구길래 벌레를 끌어들이는 불빛처럼 그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나는 그 환상적인 광경에 한 걸음 내디뎌서 지나치려던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저기..."
치켜든 오른손이 허공을 긁는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그저 짧게 말했다.
"뒤에 붙어."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한 말을 잊은 것처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떠나려고 한다.
모든 것이 슬로 모션처럼 보인다.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건 자가 이 세상 사람인지 아닌지는 전혀 신경 안 쓰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런 걸 구별할 필요도 없이 그저 둘 다 평등하게 가치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목소리에 따를 뻔했다.
심층의식 어딘가에 그녀를 따라 행렬에 섞여서 의식을 잃고 이성을 방치한 채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 있는 나는 눈앞을 지나가는 오싹한 행렬을 입을 딱 벌린 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그녀의 옆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다.
아니, 그건 눈물이 아니었다.
왼쪽 눈 밑, 뺨 윗부분에 어슴푸레 빛나는 입자가 흘러넘치고 있다.
그것이 바람에 흐르는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져서 땅에 떨어지기 전에 사라진다.
그 입자의 흔적을 쫓아서 수많은 망자들이 빛의 일대를 이루면서 나아간다.
조용한 강 같았다.
나는 거기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광경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이 무척이나 답답했다.
깨닫고 보니 행렬은 지나고 이윽고 다시 시끄러운 번화가로 돌아왔다.
아까까지 느껴졌던 이질적인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취기에 젖은 사람들이 길을 횡단한다.
멀리서 손님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끝나가는 밤의 잔재가 아스팔트 표면에 천천히 흐른다.
정신이 든 나는 우두커니 선 채로 왼쪽 눈 밑을 만졌다.
한 번 더 어디선가 저 사람과 만날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