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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그 무렵 아파트에서 자취를 하던 나는 자기 전에 알전구만을 켜놓았다.
자취방에 딱 하나 있는 베란다 쪽 창문에 두꺼운 커튼이 달려 있어 나는 밤에 늘 그걸 빈틈없이 치고 잔다.
그래서 알전구도 꺼 버리면 밤중에 눈을 떴을 때는 완전히 깜깜해져서 전구 켜는 줄을 손을 더듬어 찾느라 애써야 했다.
그게 싫었다.
어느 날 밤 늘 그렇듯이 알전구만 켜두고 침대에 쓰러지듯이 잠이 들었다.
잠이 든 건 자정 무렵이었을 것이다.
의식의 공백 기간이 갑자기 끝나고 머리가 반쯤 깨었다.
눈을 뜨고 있어서 자신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걸 알았다.
주변은 바다 밑처럼 조용했다.
천장에 달린 알전구가 은은하게 실내를 밝히고 있다.
몇 시일까.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안경을 쓰지 않아서 시계바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짧은바늘이 심야 3시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리맡 어딘가에 있을 안경을 찾기가 귀찮았다.
머리가 깨어 있어도 몸은 아직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멍한 머리로 왜 잠에서 깬 건지 생각했다.
전화나 알람시계가 울린 흔적은 없다.
요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 수면도 규칙적으로 취하고 있어서 이렇게 이상한 시간에 잠에서 깰 이유가 없었다.
수면 장애도 없어서 밤중에 몇 번이고 깬 적도 없고 아침까지 푹 자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가끔씩 이렇게 까닭없이 깨어날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마음속에서 들끓는다.
이유는 없다.
어쩌면 무방비하게 의식을 끊기는 것에 대한 원시적 공포 그저 밤이 무섭다는 그 본능이 되살아난 건지도 모른다.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본 채 한 번 더 자려고 눈을 감았다.
깊이 숨을 내쉬니 잠이 또 밀려온다.
다음 날 스승과 만났을 때 문득 생각나서 말해보았다.
"잠에서 깼을 때 눈을 뜨려고 생각했는지 어떤지 말이지."
스승이 재밌다는 듯이 말을 곱씹는다.
"네. 어젯밤에 갑자기 잠에서 깨었는데 눈을 뜨기 전에 의식이 각성해서 그 각성한 의식으로 눈을 뜨자고 생각하는 건지 눈을 뜬 순간에 의식이 각성하는 건지 궁금해서요."
아무래도 좋잖아.
스승은 그런 얼굴을 했지만 일단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눈을 감은 채로 '아, 지금 꿈에서 깨어났다.' 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치만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아?"
"뇌 어딘가에서 일어난 반사로 눈을 뜨고 그 눈이 뜬 걸로 의식이 각성한다거나."
"글쎄다. 그치만 그거라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데?"
그렇구나. 그런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나도 어둠 속이다.
즉 잠에서 깨어나는 계기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그치만 평소에 시각에 의존하는 우리가 그 감각이 차단되면 어떻게 될까.
눈을 뜨지 못하도록 완전히 테이프를 붙이고 자면 잠에서 깨는 순간은 어떻게 지각할까.
생각하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겨서 다음에 시험해 보기로 했다.
"눈을 뜨는 게 각성의 계기라면 계속 잠에서 깨지 못할지도 모르지."
스승이 이상한 말을 한다.
그치만 그건 그거대로 재밌을 것 같다.
"하지만."
스승이 말을 끊고 아무렇지도 않는 어조로 계속 말한다.
"보통 숙면을 취하는 사람이 밤중에 갑자기 잠에서 깨는 이유라면 알고 있어."
그날 겨울방학에 나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세탁이나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생활을 보냈다.
어느 날 밤 방에서 자고 있으니 밤중에 잠에서 깼다.
천장 나뭇결이 희미하게 보인다.
알전구 빛에 비치고 있었다.
점점 맑아오는 머리로 여기가 아파트가 아니라 고향집이라는 걸 떠올렸다.
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얼마 동안 이런 적은 없었는데.
머리를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서 눈만 돌려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부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전과 똑같았다.
내가 집을 나가자 가족들이 내 방에 짐들을 쌓아두기 시작해서 여기는 거지반 창고 상태가 되어 있었다.
옷장이나 상자, 쓰지 않는 선반이 시간이 멈춘 듯이 조용히 놓여 있다.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니 내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올랐다.
또다.
까닭없이 찾아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
이럴 때는 머리맡에 놓아둔 안경을 찾고 싶지 않다.
뭔가 보이는 것보다 흐릿한 해저 세계 쪽이 더 나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스승이 한 말이 떠올랐다.
'밤중에 잠에서 깨는 이유라면 알고 있어.'
.......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밤중에 눈을 뜨고 왜 잠에서 깨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렘 수면과 논렘 수면이 반복되는 중에 잠에서 깨기 쉬운 시간이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피로 때문에 수면이 옅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밤중에 갑자기 잠에서 깨는 건 집 밖에서 누가 찾아오기 때문이야.'
그 말에는 보이지 않는 진리를 비추는 것 같은 요상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이불 속에서 굳은 채로 호흡이 조금 빨라진다.
조용하다.
몇 시일까.
벽에 걸린 시계는 방 안쪽에 있다.
알전구 불빛으로는 어두워서 안 보인다.
스승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누가 집 밖에서 왔다. 그래서 잠에서 깨었다.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밤중에 잠에서 깨어도 이유가 없다면 그냥 자면 그만이다.
일부러 밖을 보러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심장 소리가 울린다.
이불이 무겁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경은 바로 옆에 있었다.
공기가 끈적하게 방을 감싸고 있다.
공포심.
평소에 맛보는 그저 밤을 두려워하는 원시적인 게 아니다.
좀 더 무시무시한 감정이었다.
천천히 일어서서 살금살금 다다미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끼익... 끼익... 끼익...
마당과 접한 창문 근처는 판자벽이다.
창문에 있는 무거운 커튼이 밖과 안을 나누고 있다.
숨을 집어삼키고 커튼을 붙잡았다.
창문 끝에서 밖을 들여다보았다.
한순간 유리창 표면에서 냉기가 흘러온다.
토해낸 숨결이 유리창을 하얗게 흐린다.
잠옷 자락으로 그걸 닦으니 마당과 나무 그리고 벽돌담 너머로 도로가 보였다.
조용한 주택가.
알전구 노란 불빛과는 다른 바늘 같은 달빛이 어슴푸레 그걸 비추고 있다.
마당을 횡단하는 석판.
그걸 둘러싸는 잔디.
그 너머 현관문.
누가 있다.
차갑게 맥동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대었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어루만진다.
문 오른쪽 기둥 앞에 선 채로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마당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그 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밤중에 갑자기 잠에서 깨는 건 집 밖에서 누가 찾아오기 때문이야.'
......
한번도 밖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실은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누가 밖에 서 있었던 걸까.
토해내는 숨이 차갑다.
몸이 오한으로 떨리고 있다.
구름 사이로 한순간 달빛이 비추었다.
공허한 얼굴.
남자.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낯익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생 동급생 중에 비슷한 얼굴을 한 애가 있었던 것 같다.
성장하면 저런 얼굴이 될까.
남자는 달빛에 겁먹은 듯이 얼굴을 천천히 좌우로 흔든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갔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이.
근처 숲에 사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잠들었다면 그리고 침상에서 나가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광경이 그렇게 끝났다.
커튼을 되돌리고 창가에서 떨어져서 다시 한 번 잠자리로 갔다.
몰라도 되는 건 모르는 채로 있자.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