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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스승시리즈] 별을 보는 소녀

작성자빛빔|작성시간26.06.19|조회수54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90082

대학교 1학년 봄이었다.

그 무렵 나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유령 같은 오컬트 이야기에 독특하고도 강렬한 개성을 뿌리고 다니던 동아리 선배에게 심취하고 있었다.

아니, 심취와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공포를 조성하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일지도 모른다.

스승이라고 부르게 된 그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별을 보는 소녀를 보고 와라."

별을 보는 소녀?

한순간 어리둥절했으나 곧 그런 이름을 가진 괴담을 떠올렸다.

괴담이라기보다는 도시전설 종류일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그렇게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는다.
왠지 시험 같다.
힌트는 받을 수 없는 건가.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거리로 나선 것까지는 좋았지만 지방에서 상경해서 대학에 막 입학한 참이라 아직 지리가 낯설다.

도시 규모도 크고.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찾아낼 정도로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혹시 이 일대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려나?'

나는 소속되어 있는 동아리로 갔다.
부실에 있는 선배들에게 별을 보는 소녀 괴담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어. 그 다리 근처에 있는 맨션 말이지?"

맥이 빠질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어느 방 창문에 베란다 너머로 별을 보는 소녀가 보였다고 한다.

"몇 호실인가요?"

"글쎄다. 거기까지는 모르겠네."

동아리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다음으로 연구실로 갔다.
강의 시간은 아니었지만 역시 몇 명이 책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들어본 적 있어."

이 지방 출신인 여성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리버사이드 맨션이라는 곳인 것 같던데."

"몇 호실인지는..."

"모르겠어. 빈 방이라고 들었는데 지금도 비어 있으려나."

그다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연구실을 나온 나는 바로 그 맨션으로 갔다.

약 1시간 정도 자전거를 몰고 가니 시내에서 흐르는 커다란 강 옆에 4층짜리 맨션이 보인다.

베란다 쪽은 강과 접하고 있어서 다리 위에서 맨션 전체가 드러나 보였다.

왼쪽 제방 너머에 있었다.

그날은 봄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겨울로 돌아온 것 같은 꽃샘추위가 느껴지는 날이었다.

바람이 강해서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수면이 출렁이고 있다.

다리 중간 지점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맨션을 바라보니 각 방 베란다에 이불이나 세탁물이 널려 있는 게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옅은 구름으로 덮여 있어서 햇살이 약하다.

말리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쓸데없는 걱정이 들고 만다.

"어느 방일까."

바람이 부는 다리 위에서 어깨를 움츠리면서 소리내어 말해본다.

널리 알려진 별을 보는 소녀 괴담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남대생이 밤늦게 자기 집으로 가고 있을 때 어느 아파트 2층 창문에 젊은 여자애가 있는 걸 보았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창밖에 있는 하늘을 보고 있다. 만천하에는 별이 가득했다.

그 아파트를 지나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대학생은 그 여학생이 눈에 아른거렸다.

별하늘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 낭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또 알바를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아파트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전날과 똑같이 그 여자애가 창가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옆얼굴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애에게 연심을 품은 대학생은 다음 날 알바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또 별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자기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현관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
안에는 불을 켜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그녀는 방에 있을 테니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어 슬쩍 손잡이를 돌렸다.

열렸다.

방 안을 들여다본 그가 본 것은 창가에서 목을 매고 있는 여자애 모습이었다.

마치 창밖에 있는 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끔찍한 결말이다.

그게 개변된 것 같은 테루테루 보즈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창가에 목 매단 시체가 이윽고 부패해서 목 밑이 주륵 떨어지고 머리랑 거기에 매달린 척추만이 밧줄에 묶이게 된다.

그 끔찍한 상황이 멀리서는 테루테루 보즈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이쪽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별을 보는 소녀 쪽은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자주 보이므로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리버사이드 맨션과 관련된 별을 보는 소녀는 그 이름은 마을에서 제법 잘 알려져 있지만 소문 자체는 구체성이 없었다.

오늘 들은 건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방 창가에서 여자애가 밖을 보고 있다는 증언과 그 방에서 죽은 여자애가 밤중에 창 너머로 별을 보고 있다는 증언뿐이다.

전자는 전국판과 똑같이 그 여자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남자가 방을 방문해 보니 목 매단 시체가 있었다는 결말이었다.

후자는 목 매달아 죽었다는 결말은 없는 대신에 처음부터 죽은 자라는 걸 시사하면서 괴담이 진행되고 있다.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처럼도 보인다.

목을 매달아 죽은 여자애가 지금도 망령이 되어서 나타난다는 식으로.

진상이야 어찌 되었든 창문에서 소녀가 하늘을 보고 있다는 부분은 공통된 사실인 모양이다.

나는 각 방 베란다에 걸려 있는 이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바라보았다.

거의 모든 방은 커튼을 치고 있어서 그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부재중인 세대가 많은 것 같다.

커튼이 열려 있는 창문도 몇 개 있었지만 유리문은 닫혀 있고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뭐, 낮부터 그리 쉽게 나올 존재는 아닐 것이다.

나온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새삼 깨달았다.

스승은 별을 보는 소녀를 보고 오라고 말했으니 현재도 계속되는 괴담일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오늘 들은 두 소문 중에 전국판에 가까운 목을 매었다는 결말은 이상하다.

그건 누군가의 체험담으로서 말하는 유형인 괴담이지 똑같은 체험을 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는 괴담은 아니다.

그걸 들은 당신 곁에도... 라는 식으로 휘말리게 하는 유형도 아닐 터였다.

전제 조건이 너무 특수하니까.

역시 죽었을 소녀가 창문에 비친다는 쪽이 진짜일까.
스승은 그걸 보고 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낮에 와도 소용없을 것이다.
밤이 되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름부터가 별을 보는 소녀이니까.

나는 현지를 확인한 걸로 만족하고 거기를 떠났다.

그날 밤이었다.

나는 똑같은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아직 바람은 세게 불고 도시 불빛이 물결치는 어두운 수면에 난반사해서 운치가 없다.

그 강 제방 너머에 4층짜리 맨션이 있다.
각 방 창문에는 커튼 너머로 불빛이 새어나온다.

손목시계를 보니 밤 11시.
이 시점에서 불이 꺼진 방은 4개.

눈을 가늘게 뜨니 그 중 한 방은 세탁물을 그대로 널어둔 게 보인다.

남은 세 방은 낮에 세탁물을 널어두었는지 떠올려 보려고 했으나 기억이 애매했다.

다만 빈 방이라면 그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찬찬히 살펴보아도 각 창문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불빛이 없는 창문은 너무 어두워서 안에 사람이 있어도 안 보일 것 같았다.

나는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보면 잘 안 보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낮에는 어두운 집 안에서 밝은 밖이 잘 보이고 밖에서는 집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밤은 반대로 밝은 방 안이 밖에서 잘 보이고 집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리 위에서 가로등이 듬성듬성 있을 뿐이라 별로 밝지는 않았지만 몇십 미터 떨어진 맨션 어두운 창 너머를 보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있는 곳은 다리 중간 부근이었으나 더 맨션에 다가가면 각도가 너무 벌어져서 방 안은 보이지 않게 된다.

뭔가 이상했다.

이래서는 아무도 별을 보는 소녀를 볼 수가 없다.

만일을 위해서 다리를 건너 맨션 앞까지 가 보았지만 제방과 너무 가까워서 그 제방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올려다보아도 창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각 층 베란다 밑부분을 밑에서 올려다보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너편 제방에서 보기엔 너무 멀다.

역시 창문 너머에서 인연이 보이는 건 그 다리 위다.
그게 주변을 관찰하고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강에 배를 띄운다면 좀 더 가까이서 창문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야 일반적인 소문이 되지 않는다.

"으음."

나는 끙끙대면서 한 번 더 제방 옆에서 맨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다리 근처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온다.

로프나 난간을 통과하는 다층적으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분위기 좋다.
오싹오싹하네.

뭔가 단서가 없을까 살폈지만 어슬렁거려도 생각은 나지 않았다.

편의점 봉지를 든 주민이 맨션 입구에서 이쪽을 이상하게 쳐다보았기에 새가슴인 나는 그것만으로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빈 방이 없는지 확인만이라도 하려고 빙 돌아서 맨션으로 돌아온 뒤 입구 근처 우편함을 확인했다.

은색 박스에 적힌 방 번호 밑에 이름판이 있었지만 방 번호뿐인 것도 많았다.

방범 대책일까 방문판매 대책일까.
광고지가 대량으로 구겨넣어진 박스도 없다.
빈 방이 있어도 관리인이 회수하는 것 같다.

생각에 잠겨 있으니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저기, 실례합니다."

주부로 보이는 여성이 자기 방 박스를 열려고 했다.
나는 스스로도 한심할 정도로 허둥대며 웅얼웅얼 변명을 하면서 도망쳤다.

돌아가는 길에 스승이라면 좀 더 뻔뻔스레 정보를 모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비참해졌다.

다음 날.
나는 대학 강의 빈 시간대를 이용해서 또 리버사이드 맨션으로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어둠 속에서는 역시 다리 위에서 불이 꺼진 실내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이 켜진 방, 즉 빈 방이 아니라 누가 사는 방에서 일어나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창가에 서서 밖을 보는 사람이라면 실내 빛은 뒤에서 왔을 것이다.

직접 얼굴이 비치지 않는 사람을 밤중에 다리 위에서 보고 그게 소녀라고 인식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림자가 보인다는 정도로만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 수 없다.

어제처럼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었다.
수면에 비친 맨션도 구깃구깃 흔들리고 있다.

지금처럼 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고 있으면 오해받을 것 같다.

"야."

자조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서 펄쩍 뛸 듯이 놀랐다.

돌아보니 갈색머리에 피어스를 한 무서워 보이는 사람이 서 있다.

"이런 곳에서 뭘 하는 거야?"

한순간 긴장해서 몸이 굳었지만 상대가 시비를 거는 말투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아, 선배인가요?"

갑자기 떠올랐다.
분명 같은 연구실에 있는 3학년생이다.
거의 연구실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사람이라 기억이 애매했다.

"땡땡이냐?"

"네, 뭐..."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그때는 미안했어."

그렇게 말하며 선배가 어깨를 탁 쳤다.
웃고 있다.
따라 웃는 동안 점점 떠올랐다.

잔디밭에서 열리는 전통 신입생 환영 파티에서 내게 억지로 맥주를 마시게 해서 인생 첫 구토를 맛보도록 해준 것이 이 선배였다.

"내 집은 저기야."

선배는 리버사이드 맨션을 가리켰다.

"자취하는 곳은 아니야. 원래 살던 집이지. 난 좀 더 대학과 가까운 방을 잡았는데 세탁이 귀찮아서 말야. 쌓아둔 세탁물 들고 이따금 돌아가."

아, 그거 좋겠다.
나도 처음 하는 자취 생활 중 세탁이 제일 곤란했었다.
부모님에게 전부 맡긴 고등학교 시절에는 상당도 못했는데 이게 여간 귀찮기 짝이 없었다.

선배는 생각보다 친근하게 대해 주었지만 역시 얼굴이 무서워서 금방 친해질 수 없었다.

대화가 끊긴 즈음에 "그럼 전 이만." 하고 떠나려고 하다가 새삼 이 사람이 중요한 증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엇, 그럼 그 소문 아시나요? 저 맨션 창문에서 여자애가..."

"암, 알지. 하늘을 보는 소녀가 어쩌고 하는 얘기 말이지?"

당첨이다.
실은 별을 보는 소녀이지만.
나는 흥분해서 물었다.

"선배는 본 적 있나요? 어디서 봤나요? 어느 방인데요? 빈 방이었나요?"

"야, 야. 좀 진정해."

선배는 남들 눈치를 보는지 주변을 둘러본 후에 다리 너머 벤치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건 그냥 소문이야. 진짜일 리가 없잖아."

앉자마자 선배가 말한다.
아, 그렇구나.
시원스레 납득하고 말았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그런 여자가 보인다는 얘기지? 내가 아는 한 빈 방은 없어. 어렸을 적 일은 잘 기억 안 나지만 고등학교, 아니, 아마도 중학교 시절 이후로는 주민들은 바뀌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선배는 맨션을 바라보면서 턱짓을 했다.

"빈 방이 있다면 보통 덧문을 닫아둘 거잖아?"

"아."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듣고 보니 그 말대로다.
햇빛이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이 달린 방에 차광을 안 할 리가 없었다.

"그 방에서 죽었을 애가 밤중에 밖을 보는 이야기는 어떤가요?"

"그런 소문도 있었지. 그쪽도 헛소문이야. 애당초 맨션에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주민에겐 이만저만 폐가 아니라구.
선배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 자신은 이미 주민이 아니었지만.

"203호실이다, 302호실이다, 아니아니 402호실이다. 전부 소문 내용이 달라. 너무 적당하잖아. 내가 사는 집 버전도 나와서 중학교 시절에 놀림당한 적도 있었다구."

어째서인지 나를 노려보았다.

"죄송해요."

황급히 사과하면서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소문인가요?"

"응. 어렸을 적부터 있었던 것 같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옛날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수가 있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으니 갑자기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어깨를 툭 쳤다.

어깨 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그런 황당무계한 소문 같은 거 믿지 마. 미신을 믿으면 험한 꼴을 당한다는 말도 있잖아?"

뒷부분은 농담인 듯 웃으면서 어깨를 탁탁 치기에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랑 헤어지고 그 자리를 떠난 나는 자전거를 몰면서 오늘 얻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옛날부터 빈 방은 없다.
죽었을 여자애도 없다.
소문 내용도 제각각.
주민 자신도 믿지 않는다.

한숨이 나왔다.
소문이란 다 그런 걸까.
실제로 별을 보는 소녀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별을 보는 소녀를 보고 와라.'

머릿속에서 떠오른 스승이 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흘 후, 나는 또 리버사이드 맨션이 보이는 다리 위에 왔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냥 와 보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쓸데없는 노력이다.

실은 그저께도 왔었다.
물론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갔다.

다리 한가운데 난간이 조금 바깥쪽으로 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맨션을 바라보기 딱 좋은 곳이었다.

나는 근처에 자전거를 세우고 거기에 양 팔꿈치를 얹었다.

그리고 문득 선배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소문이 상당히 폐가 된다고 말했던 선배는 농담인 양 웃고는 있었지만 재미삼아 몰려드는 구경꾼들에게 내심 적잖이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또 내가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본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실은 어제도 왔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못 본 채 돌아갔다.
요컨대 나는 매일 여기로 온 셈이다.

선배가 없는 걸 확인하고 맨션 쪽을 바라보고 관찰했다.
정렬된 베란다에는 세탁물이 쭉 늘어서 있다. 잘도 저렇게 매일 빨래를 할 수 있구나.

나는 너무 귀찮아서 1주일 정도는 그냥 쌓아두는데.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선배가 무척 부러웠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날이 좋다.
요 며칠 간 이어지던 추위가 거짓말처럼 따뜻한 날씨로 돌아와서 빨래 널기엔 좋은 날이었다.

오후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는 기분 좋게 맨션을 바라보았다.

커튼이 쳐진 방이 전체의 6분의 5.
반쯤 열린 곳이 2개.
전부 열린 것도 2개.
어느 베란다에도 이불을 치거나 빨래를 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평일이니 맞벌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주부 스케줄은 잘 모르겠지만 전업주부라도 빨래를 너는 건 오전 중이라고 정해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

하품이 나온다.
난간에 턱을 괴었다.
졸리다.

오늘은 바람이 안 분다.
그래서 따뜻한 건지도 모른다.

목을 쭉 뻗어서 강을 내려다보니 잔잔한 수면이 조용히 넘실댄다.

어제까지 바람에 출렁이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선명하게 비춘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거울 안 맨션을 보니 베란다에 널린 이불 색도 잘 보인다.

자세히 보려고 하면 무늬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탁물도 커튼도 사람 얼굴까지도 보인다.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아무리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바다에서는 이런 걸 볼 수 없을 것이다.

호수나 흐름이 완만한 강에서 까다로운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이렇게 온전히 풍경이 보일 수는 없다.

실로 좋은 걸 보았다고 만족하고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싶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꿈틀꿈틀 목덜미에 뭔가가 기어오르는 것 같은 기분 나쁜 감각이 퍼졌다.

얼굴.

얼굴이다.

아까 분명히 사람 얼굴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서 다리 너머로 맨션을 바라보았다.

1층, 2층, 3층, 4층.
어느 방에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커튼이 쳐져 있다.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고개를 숙여서 거울 속에 있는 맨션을 바라보았다.

있다.

3층.
오른쪽에서 3번째 창문.
커튼이 반쯤 열려 있다.

그 창가에서 밖을 보는 얼굴.
여자애다.
머리카락이 길다.

나는 당황해서 눈을 비볐다.
거울 같다고 해도 결국은 흐르는 물이다.
잘못 본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번을 눈을 비벼도 수면에 비친 그 방 창문에는 여자애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실제로 그 방을 응시해도 커튼은 반쯤 열려 있지만 창 너머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안 보였다.

그대로 고개를 숙이니 거울상으로 여자애가 물끄러미 밖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왠지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꿀꺽 침을 삼켰다.

다리 밑 수면에 비친 거울 속 시선이 다리 위에 있는 내 쪽을 향하고 있다.

저도 모르게 그 시선을 피해서 외면하듯이 얼굴을 돌렸다.
자연스레 그 시선의 연장선을 쫓았다.

시선은 내가 있던 곳을 지나서 그대로 하늘로 향하고 있다.

구름 몇 개가 둥둥 떠 있는 푸른 하늘로.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감격인지 쾌감인지 알 수 없는 격류가 치솟았다.

하늘을 보는 소녀!

선배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소문의 원형은 그것이었다.
잘못 말한 것도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밤에는 보이지 않았구나.

그렇다. 이 하늘을 보는 소녀야말로!

넋이 나간 내 뺨을 바람이 어루만졌다.
따뜻한 봄바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강을 내려다보았다.

수면은 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맨션도 창문도 그 너머에 공허하게 선 소녀도 죄다 녹아들듯이 허무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 볼 수 없다.

강 상류를 보아도 출렁이는 물결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적어도 상류에 출렁이는 수면이 이 다리 밑을 지날 때까지는 이제 거울 같은 모습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에 또 바람이 불어도 안 된다.

나는 힘이 빠진 것처럼 난간에 기대었다.

그리고 다리 밑을 보며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그 섬세한 광경을 그 얼굴을 보려고 애썼다.

별을 보는 소녀를 사랑한 대학생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한 번 더 이번에는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변덕스럽게 나타난 기적과도 같은 순간.
틀림없이 거기에 있었던 환상을.

그날 밤.

스승 방으로 간 나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히죽거리면서도 스승은 입을 다문 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벽장에 몸을 처박더니 부스럭거리며 안을 뒤지고는 파일 하나를 꺼냈다.

펄럭펄럭 넘기는 걸 보니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둔 파일 같았다.

"네가 본 게 틀림없이 소문의 정체야. 하늘을 보는 소녀. 강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모습을 우연히 보고만 사람이 있었겠지. 영감과 거울 같은 수면. 그 두 가지가 우연히 겹쳐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매우 드문 요괴야."

페이지를 넘기면서 스승이 말했다.

'요괴'라고 표현하니 낭만적인 감상에 젖어 있던 나는 왠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는 그 정확한 소문이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별을 보는 소녀라는 좀 더 유명하고 이름도 비슷한 도시전설이 있었기에 혼동되었어. 하늘을 보는 소녀 쪽은 자주 볼 수 없으니 소문이 섞이면 섞일수록 자연스레 비중이 작아지지. 결국 다양한 버전으로 퍼져 있던 별을 보는 소녀 속에 흡수되어 버린 거야."

있다, 이거야.
스승은 오려낸 낡은 신문 기사를 꺼내었다.

지역 신문 기사다.
날짜는 17년 전.
이 사람은 어떻게 뒤를 캐낸 걸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기사에는 '여고생 익사'라는 글자가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장소는 그 강, 리버사이드 맨션 제방 바로 앞부분이었다.
그렇게 수심도 깊어보이지 않는데 기사를 읽어 보니 익사한 원인을 모르는 모양이다.

살고 있는 여고생 주소도 나와 있지만 리버사이드 맨션은 아니었다.

"그야 그렇지. 이 애는 리버사이드 맨션에 집착해서 거기를 떠돌고 있는 게 아니거든."

스승은 기사를 팔랑거리면서 설교하듯이 말했다.

"거울 속에서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건 본래 맨션에서는 수면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야. 반사각 같은 걸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건 알 수 있겠지? 요컨대 이 애는 자기가 죽은 곳을 보고 있는 셈이지."

그걸 들은 순간 오싹해졌다.
별을 보는 소녀에 뒤지지 않을 만큼 끔찍한 걸 느꼈기 때문이다.

"소문에서는 203호니, 302호니, 어느 방에서 나타나느냐는 부분은 제각각이야. 실제로 어디든 상관없었으니까. 즉 이 애는 그 강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았던 거야. 커튼이 열려 있는 방이라면."

스승은 만족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신문 기사를 스크랩 속에 담담히 다시 끼워넣는다.

나는 며칠 간 했던 소박한 모험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별을 보는 소녀라는 괴담 혹은 도시전설에 덧씌워지고 만 그 소녀를 떠올리면 왠지 안타까워진다.

직접 맨션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수면에 비친 환상 속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왠지 젊은 나이에 덧없이 가 버린 그녀의 생애랑 겹쳐 보여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감상을 더듬더듬 말하니 스승이 내 어깨를 탁 쳤다.

최근 유난히 자주 어깨를 맞는다.

"일단 시험은 합격으로 해두겠지만 상중하로 따지면 중이야."

이 사람은 뭘 그리 잘난 듯이 말하는 걸까.
열받아서 쏘아보니 그것보다 몇 배나 더 날카로운 안광에 압도되었다.

"그럼 상은 뭔데요."

내가 간신히 그렇게 묻자 스승은 번뜩이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 안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속삭였다.

"나는 직접 볼 수 있어."

언제든지 말야.
그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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