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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여행이 무사히 끝난 걸 축하하기 위해 4명이서 모여서 노래방을 갔었다.
내 시골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체험을 같이 극복했던 동료들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분위기가 깨졌다.
스승은 일부러 성희롱 곡만 골라 굴러 '킨타의 대모험'으로 노래방 안을 한 층 더 냉랭하게 만든 후 "어째서 요시다 마츠인 이야기가 없는 거야."라고 목록을 보며 혼자 화를 냈다.
그 후 노래방을 나와서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테이블에 앉았을 때도 그냥 얼른 해산하자는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대화를 하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쿄스케 씨랑 스승이 둘 다 검도를 배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순순히 감탄하다가 koko 씨가 툭 던진 한 마디에 위기를 직감했다.
"누가 더 강할까."
아니나 다를까 둘 다 움찔하더니 험악한 얼굴로 견제를 시작했다.
"배웠다고는 해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별로 할 기회가 없으니까. 뭐, 여자랑 남자랑은 비교가 안 된다고 해야 하나 경기도 혼합으로 하는 경우도 없고 이런 얘기 해봤자 소용없지 않을까."
"그래? 나는 지금도 검도 하고 있고 남자하고도 대련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뭐냐, 남녀 간 시합을 나누어서 하는 시점에서 애초에 승부가 성립하기 힘들다고 해야 할까 신체적인 차이가 있잖아."
"개인과 개인을 비교하는데 각자 소속된 집단을 거론하는 시점에서 핵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는 걸로 보이는데."
"호오, 일부러 일반론을 거론한 배려를 모르는 놈도 다 있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아, 싫다.
이 어른스럽지 못한 대화.
평소랑 다를 바 없지만 화제가 화제인지라 피를 보지 않고는 안 끝날 것 같다.
"그럼 일주일 후 내 도장에서 결판을 내자. 도망치지 마. 정말로 일주일이면 되는 거야?"
"좋아. 공백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고 오히려 핸디캡으로서 딱이네."
"진짜 하나하나가 짜증나네, 이 남자는."
"너만큼은 아니야."
"죽어."
"죽도로 죽일 수 있다면 보여줬으면 좋겠네. 애초에 죽도는 대련에서 살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시끄러워."
아무튼 그렇게 결전 날짜가 잡혔다.
내가 참관인인 모양이다.
햄버거 가게에서 나와서 해산할 때 koko 씨에게 누가 이길 것 같은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무신경한 어투로 대답했다.
"모르니까 물어본 거야."
...그야 그렇겠지요.
일주일 후 나는 '나카마치 검우관'이라는 간판 앞에서 스승과 나란히 서 있었다.
생각보다 커다란 도장으로 적당히 세월이 느껴지는 게 꽤 운치가 있었다.
쿄스케 씨가 어렸을 적부터 다니는 도장이다.
옆에 있던 스승을 흘끗 보았지만 그 옆얼굴에는 미묘하게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군청색 도복, 등에는 방어구가 든 자루와 죽도 형태를 한 자루를 짊어지고 있다.
굳이 집에서 차려입고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적의 본거지에서 태평하게 갈아입을 수는 없다고 한다.
엄청난 의욕이었다.
입장상 내가 어느 한쪽을 편들면 안 되겠지만 이곳은 스승이 처음 오는 곳이기에 저절로 스승 편에 서게 된다.
"그런 도구를 가지고 있었군요. 몰랐어요."
"남자가 무도를 자랑하는 게 아니야."
말은 멋있지만 요컨대 벽장 안에 파묻혀 있었다는 거잖아.
아마도 스승이 질 것 같다.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스승이 큰 소리로 "이리 오너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조금 뻘쭘해하면서 어두운 건물 안에 들어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오, 왔구나."
도장 안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전부 3명.
모두가 방어구를 입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호구를 벗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당관 주인인 나카마치입니다."
남성이었다.
벗겨진 머리에 통통한 얼굴.
오십, 아니 육십 대인가.
내민 손을 스승이 신중히 맞잡았다.
그 뒤에서 똑같이 호구를 벗으면서 쿄스케 씨가 걸어왔다.
얼굴 근처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망치지 않고 용케 왔구나. 다시 봤다."
가볍게 머리를 흔들면서 말한다.
텅 빈 도장 안을 둘러본 스승을 보고는 나카마치 씨가 미소를 지었다.
"아, 오늘 연습은 저녁부터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평일 낮이었다.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때때로 상식적인 요일이나 시간 감각이 흐려지고 만다.
쿄스케 씨가 뒤를 돌아보며서 소리를 높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넌 학교 어쨌어."
도장 안에서 죽도를 휘두르던 사람이 딱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본다.
"상립기염밀"
"뭐?"
"창립, 기념일."
남자애 목소리.
자세히 보니 체구가 작았다.
방어구에 둘러싸인 몸은 언뜻 봐서는 연령을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중학생인 것 같다.
학교는 쉬는 날인가.
"관객은 적은 편이 좋겠지요."
나카마치 씨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준비는 하고 오셨군요. 마음껏 쓰세요."
"죽도는 휘두르고 왔습니다."
스승은 쿄스케 씨 쪽을 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발밑에 있는 판을 확인하듯이 밟았다.
"밀어걷기만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짐을 두더니 판을 미끄러지듯이 걷기 시작한다.
진지한 표정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도장 벽 쪽에 앉았다.
쿄스케 씨는 땀을 닦으러 갔는지 대기실 너머에 있었다.
안뜰과 접한 창문에서 빛줄기가 뻗어 도장 바닥을 비춘다.
천장이 높다.
스승이 움직이는 것에 맞추어 꾹꾹 기분 좋은 소리가 울린다.
나무 냄새가 난다.
검도인가.
해본 적도 없고 직접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카마치 씨가 스승의 발놀림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왠지 괴이쩍은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불안해졌다.
스승은 정말로 검도를 할 수 있는 건가.
전문가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스승은 태연하게 그 시선을 흘러넘겼다.
이윽고 발을 멈추고 내 바로 옆에 둔 자루 쪽으로 다가오더니 죽도를 꺼냈다.
그때 나카마치 씨가 말을 건다.
"타격 연습 정도는 해두는 게 좋겠지요."
스승이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제가 도와드릴게요."
안쪽에서 죽도를 휘두르던 소년이 이쪽으로 온다.
스승은 자루를 열어 방어구를 꺼냈다.
곁에 오니 향 냄새가 난다.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인가?
스승이 순서대로 방어구를 입는다.
왠지 눈앞에서 스승이 스승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완전무장을 한 스승은 후 하고 숨을 쉰 뒤 죽도를 들고 도장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똑같은 차림을 한 남자애도 그쪽으로 간다.
"우치코미로 할까요, 아니면 카카리로 할까요."
(우치코미 : 방어자가 틈을 보이면 공격자가 거기에 맞추어 치는 것.)
(카카리 : 공격자가 일방적으로 치는 것. 방어자는 별로 틈을 만들지 않음.)
"아니, 호각으로 부탁하지."
한순간 헉 하는 분위기가 상대편 호구에서 새어나왔다.
하지만 곧 소년은 죽도를 쥐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서로 인사를 한 뒤 두 죽도가 소리를 내며 교차했다.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시합 형식인 대련인 모양이다.
두세 합 주고받더니 탁 둔탁한 소리를 내며 둘이 부딪친다.
"우오!"하고 스승이 소리를 지르자 나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거기에 호응해서 상대가 "하앗"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 박력에 나는 뒤로 물러났다.
진짜로 검도하고 있네.
그런 얼빠진 감상이 떠오른다.
혹시 스승은 강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고 있으니 어느샌가 대기실에서 나온 쿄스케 씨가 벽쪽으로 돌아서 내 곁으로 왔다.
힘차게 앉더니 등을 꼿꼿이 세운다.
눈은 도장 한가운데에서 죽도를 마주치고 있는 둘을 보고 있다.
나는 곁눈질로 쿄스케 씨 얼굴을 살폈다.
"어떤가요."
"뭐가."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
"이길 수 있나요?"
"이 둘의 승패 말야?"
"아뇨..."
당신이 스승에게요.
그렇게 말하려다가 멈췄다.
"보고 있으면 알아."
붕 거센 소리가 나면서 스승의 죽도가 덜컹 흔들린다.
소년이 내지른 일격이 스승의 왼손을 맞춘 모양이다.
틈을 두지 않고 둘은 딱 붙더니 밀어붙인다.
그리고 떨어질 때 한순간 틈을 놓치지 않고 또 스승이 당했다.
너무 빨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라? 스승 혹시 밀리는 거야?
본 시합 전에 벌써 밑천이 드러나 버린 건가.
그때 쿄스케 씨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제법이군."
그 사이에도 죽도를 든 둘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움직이며 서로의 머리를 노려 친 뒤 휙 고개를 돌린 소년이 몸을 숙이면서 스승의 몸통을 쳤다.
옆에 서 있는 나카마치 씨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깔끔하게 들어간 모양이다.
스승 못 이기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왠지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쿄스케 씨는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거 저 애가 우세한 거지요?"
만일을 위해서 확인했다.
"당연하지. 저 변태가 어떻게 이기겠어. 유타는 저번에 중학교 현 대회 개인전에서 우승한 애인걸."
그런 건 미리 말하라고.
엄청 강한 애잖아.
나는 그 왜소한 몸을 새삼 주시했다.
불현듯 스승이 불쌍해졌다.
쿄스케 씨랑 싸우기 전에 워밍 업할 생각으로 죽도를 들었는데 이런 애한테 밀리다니 분명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오-!"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스승이 겨우 머리를 쳐냈을 때 둘 다 멈추었다.
그리고 인사를 했다.
"이야, 강하시네요."
소년은 호구를 벗으면서 빈정거림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스승에게 말을 건다.
스승은 숨이 찬지 대답을 못 한 모양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합이 시작될 건데 분위기가 최악이다.
마지막 머리치기조차 초보자인 내가 봐도 소년이 일부러 당해준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쿄스케 씨의 입가가 느슨해진다.
"저 애 너무 강해요."
내가 항의했다.
상대가 현내 중학교 챔피언이라는 걸 모르는 스승은 지금 충격을 받았을 게 틀림없다.
너무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내가 걱정하고 있자 옆에서 쿄스케 씨가 스윽 일어섰다.
그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은 녹 하나 슬지 않은 칼을 칼집에서 빼어내는 것 같았다.
"과연 그럴까."
입술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라니 너무 강하다고요.
초보자인 제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재차 그렇게 항의하려고 할 때 쿄스케 씨가 스윽 발을 움직였다.
"내가 더 강해."
그런 말을 남기고.
그 후는 처참했다.
숨을 고른 스승이 쿄스케 씨랑 마주보고 죽도 끝을 마주댄 후 시합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5전3선승제라고 들었는데 스승은 불과 1분 만에 2패를 당해 빨리도 패색이 짙어졌다.
내 옆에 앉은 소년이 해설해주는 걸 들으니 첫 번째 공격은 '손목치기', 두 번째 공격은 '머리로 들어오는 공격을 피해서 몸통치기'라고 한다.
스승은 끈질기게 "한 번 더!", "한 번 더!" 하며 물고늘어졌고 승낙한 쿄스케 씨에게 흠씬 두들겨맞았다.
아까 소년과 대련할 때보다 유효타가 적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결판이 나 버린다.
스승과 쿄스케 씨 모두 중단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도중부터 스승만 하단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아무래도 방어를 중시한 자세 같은데 전혀 통하지 않는 건지 여전히 탕탕 얻어맞는다.
"저 누나 강해?"
조심스레 물어보니 소년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4단이긴 한데 공식전에서는 별로 실적이 없어요. 중학교 시절에는 굉장했다고 하지만. 그치만 아마 지금이 더 강할 거예요. 저번 전일본 예선에선 2회전 때 경찰검연 우승 후보자랑 맞닥뜨려서 져버렸지만 시합 자체는 막상막하였거든요."
4단?
4단이라면 검도 3배단 법칙으로 12단 공수도 유단자랑 호각이 아닌가.
머릿속에서 금색 띠를 두른 공수도 유단자랑 쿄스케 씨가 대치하고 있는 얼빠진 상상이 떠올랐다.
"뭐, 제가 더 강하지만요."
소년은 귀여운 얼굴로 스스럼없이 그런 말을 했다.
꾸밈없는 미소였다.
하지만 아까 스승과 소년의 시합과 비교하면 지금 쿄스케 씨가 스승을 더 몰아붙이고 있다.
혹시 그 시합 때 소년은 많이 봐준 것일까.
"머리!"
나카마치 씨 목소리가 도장 안에 울려퍼졌다.
스승이 정면에서 머리를 치려고 하자 쿄스케 씨는 왼쪽으로 피하면서 상대의 죽도를 쳐올리듯이 흘리고 재빨리 머리를 쳤던 것이다.
"저거 주특기예요. 저도 자주 당해요."
소년은 빈손으로 죽도를 휘두르는 시늉을 한다.
그런데 그 직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근데 저 사람 움직임이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니?"
그렇게 물으니 으음 신음하면서 스승을 빤히 바라본다.
"저랑 대련할 때는 좀 더 정석적인 움직임이었는데 지금은 곳곳에 묘한 움직임을 넣고 있어요. 그것도 점점 심해지네요."
봐요, 저 사이에.
그런 식으로 지적했지만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시합은 10점 이상 쿄스케 씨가 따내고 6,7연승 정도 했을 때 나카마치 씨가 시합을 종료시키고 "이제 됐지요?"라고 둘에게 말을 건다.
스승은 힘이 빠진 듯 하늘을 올려다본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쿄스케 씨도 그에 따랐고 서로 인사한다.
스승이 이쪽으로 와서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상당히 지친 것 같다.
"제기랄."하고 분한 듯이 내뱉으며 호면을 벗었다.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스승이 호구를 다 벗자 나카마치 씨가 걸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검도가 아니로군요."
스승은 뜨끔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수행이 부족하네요."
나카마치 씨는 조금 험악한 얼굴을 한 후 힘이 빠진 듯이 한숨을 내쉬더니 수고 많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고개를 숙인 뒤 헤어졌다.
이상한 대화였다.
쿄스케 씨는 도장 한가운데 선 채로 호면을 벗고 이쪽을 보고 있다.
그토록 압도적으로 이겼는데 그 얼굴은 동정도 경멸도 고양감도 달성감도 조금도 없었다.
그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숨을 집어삼키듯이 스승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목숨을 건 아슬아슬한 싸움을 하고 난 직후처럼.
스승은 슬며시 눈을 돌리고 가져온 자루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앗."
방 안에 가득 찬 열기를 깨닫고 소년이 창문으로 달려간다.
열어젖힌 창문에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서 땀에 젖은 둘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마루바닥에서 왠지 그리운 나무 향기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