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96343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다.
냄새가 가진 기억이라는 건 참 신기한 법이다.
완전히 잊고 있던 과거가 뜻하지 않은 우연으로 그리운 냄새를 맡아 선명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집 근처에는 커다란 공장이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날 때 맡는 형언할 수 없는 화학물질 냄새가 그러하다.
집을 떠나 대학이 있는 마을로 이사한 후에도 어떤 공장에서 똑같은 걸 정제하고 있었는지 때때로 비슷한 냄새를 맡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몸 깊숙이 배여 있는 향수가 밀려온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어렸을 적에 걸었던 그 길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드는 것이다.
그런 내겐 제일 추억이 담긴 냄새는 비누 냄새다.
어디서나 팔 법한 흔해빠진 비누.
그 청결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지금은 없는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산을 오르거나 마을 안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늘 자기 일이나 남 일로 돌아다니던 그 사람은 틀림없이 건강한 땀 냄새를 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은 어찌된 일인지 그 사람을 늘 비누 냄새랑 강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 후 그 빈 방이 된 연립주택을 내가 빌리게 되었다.
살풍경한 방에 자기 짐을 전부 옮겨서 포장을 풀고 하나하나 있어야 할 곳에 두었다.
그 작업이 일단락되고 먼지로 더러워진 손을 씻으려고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다.
꿀렁꿀렁 수도관 안이 울리고 몇 초에서 10초 정도 지난 후에 겨우 물이 나온다.
오래된 수도관이라서 그런 걸까.
그 사람이 있었을 때부터 그러했다.
그 사람은 자주 내게 직접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말하면 묘한 감정이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한솥밥'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
남매 혹은 친한 동료 같은 관계.
그게 바람직한지 아닌지는 제쳐두고서라도.
그 사람은 부엌에 서면 먼저 손을 씻었다.
비누로 열심히.
그래서 식사할 때 그 사람은 늘 은은한 비누 향기를 두르고 있었다.
지금도 산뜻한 그 냄새를 맡으면 그 무렵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아픔이나 초조, 환희나 비탄.
절망과 기도.
내 청춘 전부가.
수도꼭지를 틀고 물이 나올 때까지 잠시 동안.
그 사람은 메마른 비누를 양손에 쥐고 슬쩍 비비고 있었다.
그 자그만 소리.
그걸 나는 등 너머로 듣고 있었다.
소박한 한때.
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어째서 이토록 부드러운 걸까.
그 사람이 없는 방에서 나는 홀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바라본다.
손에는 무의식적으로 쥔 비누.
손가락 사이에서 콸콸 물이 흘러떨어진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청량한 냄새.
나는 되살아나는 기억에 몸을 맡겼다.
추운 날이었다.
낮부터 나는 어떤 사명을 띠고서 오컬트 스승이 사는 연립주택에 들어갔다.
12월도 절반이 지나고 마을을 아니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을 한 색으로 아니 두 색으로 물든 이벤트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전부 다빨강과 하양이다.
그에 따라 내게도 초조와 기대가 섞인 감정이 밀려왔다.
문을 두드리니 빨강도 하양도 아니고 파란 겉옷을 입은 스승이 현관에 나타나서 빤히 나를 바라본다.
아니 바라보는 건 내 손이다.
즉 슈퍼 비닐봉지다.
"코로케가 대량 세일 하기에 샀는데 같이 드실래요?"
그렇게 말하니 들어오라는 듯이 턱을 가볍게 끄덕인다.
방에 들어왔다.
코타츠 이불에는 인간 형태 공간이 생겨 있었다.
그 맞은편에 다리를 집어넣고 봉지에서 코로케 팩을 꺼냈다.
"감주야."
스승은 부엌에서 자그만 냄비를 들고와서 코타츠 위에 놓았다.
냄비 안에는 하얗고 끈적거리는 것이 김을 내고 있었다.
생강 냄새가 난다.
스승이 그릇에 떠 준 그것을 코로케를 씹어먹으면서 들이켰다.
요 며칠 사이에 겨울다워졌다.
아침에 길가에 세워진 차 앞유리창에 서리가 내린 걸 떠올렸다.
"이게 보통 코로케고 이게 호박 코로케, 이게 크림 코로케예요."
호박 코로케에 손을 뻗는 스승을 곁눈질로 보며 바닥에 널브러진 잡지를 집어 들고 페이지를 넘기는 시늉을 했다.
크리스마스 때 뭐 하실 건가요?
그 말이 좀처럼 입에서 나오지 못한 채 딱히 대화다운 대화도 없이 평온한 시간이 흘러갔다.
코로케를 3개나 먹어치운 스승은 감주를 치우고 흥흥 콧노래를 부르면서 테이블을 향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궁금해서 목을 쭉 빼고 들여다보니 연하장 같았다.
만년필로 적힌 새해 인사 옆에 귀여운 뱀 그림이 보였다.
내년은 뱀의 해였나.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 뱀은 뭔가요."
"응? 이 애는 장지뱀(카나헤비)이야."
고개를 들지 않고 스승은 펜을 움직이며 대답한다.
아무래도 십이지가 아니라 자기 서명 대신에 쓰는 캐릭터 같았다.
카나코라는 이름에서 따온 걸까.
그러고 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흥신소에서도 그녀가 작성한 보고서 끝에 이런 뱀 그림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싱긋 웃는 뱀이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면서 3중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그림이다.
"장지뱀인가요."
"그래."
한 장 다 적고 스승은 다른 종이에 글을 적는다.
"그치만 장지뱀은 도마뱀 부류 아니었나요?"
문득 생각난 의문을 입에 담으니 스승이 처음으로 얼굴을 들었다.
"뱀이잖아?"
"아니, 이름에 뱀이 붙긴 하는데 분명 도마뱀이었던 것 같았는데요... 다리도 달렸을 거예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자신은 있었기에 주장했다.
스승은 납득이 안 가는 얼굴로 자기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왠지 목이버섯(키쿠라게)은 해파리(쿠라게)인지 해초인지 논쟁을 벌였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승자가 없는 싸움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장지뱀이 도마뱀이라고?"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리는 스승에게 나는 확인해 보자며 일어섰다.
현관으로 가서 신발에 발을 쑤셔넣은 뒤 밖으로 나가니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불어왔다.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연립주택 오른쪽 옆에 있는 방 앞까지 갔다.
문을 두드리니 "네."하는 목소리랑 함께 주인이 얼굴을 내민다.
달걀처럼 동그란 얼굴에 가느다란 눈과 낮은 코, 그리고 얇은 입술이 붙어 있다.
오야마(小山)인지 나카야마(中山)인지 오야마(大山)인지 잊어버렸으나 확실히 그런 느낌인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왜 그러세요?"
"백과사전을 빌려줄 수 있나요?"
이 스승의 이웃은 평소에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이따금 스승에게 먹을 걸 달라고 찾아왔다.
스승은 기본적으로 그냥 내쫓지만 당사자는 지극히 태연히 스승의 외모를 칭찬하고 세 치 혀로 구워삶아서 결국엔 안 그래도 부족한 식재료 그 몇 분의 일을 얻어가는 기묘한 인물이었다.
나는 예전에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백과사전이 꽂혀 있던 선반이 있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상관없지만 아카사타나행 중 어느 게 필요한가요?"
"카행을 부탁할게요."
그렇게 말하고 남은 코로케를 내밀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백과사전을 빌려서 스승의 방으로 돌아온 뒤 얼른 장지뱀(카나헤비)이 나오는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자그만 사진이 붙어 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도마뱀이다.
설명문을 읽으니 '유린목 도마뱀아목 도마뱀하목 장지뱀과'라고 한다.
잘 모르겠지만 요컨대 도마뱀이다.
사진을 보건대 보통 도마뱀과 비교하니 비늘이 묘하게 까칠까칠하고 기름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물론 팔다리가 있고 뱀과는 명백히 다르다.
"도마뱀이잖아요."
"......"
스승은 뭐라 반론하려고 했으나 백과사전 등표지를 보고 그게 유명한 출판사 거라는 걸 확인한 뒤 단념한 듯 한탄했다.
"네, 네, 제가 틀렸습니다. 바보였습니다. 이걸로 됐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그린 뱀 그림에 사족처럼 자그만 다리를 4개 붙인다.
똬리를 틀고 있기에 매우 이상하다.
그것보다 팔은 언뜻 보기엔 2개 나란히 붙어 있는 걸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똬리에서 튀어나와 있다.
모독적인 생물이다.
그 그림을 지적하기 전에 문득 생각했다.
백과사전 기록인데 이 사람은 출판사로 무슨 트집을 잡아낼 생각이었던 걸까.
삐친 듯이 고개를 숙이고 연하장을 계속 적는 스승을 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백과사전을 돌려주러 갔다.
문을 두드리니 오무라(小村)인지 나카무라(中村)인지 오무라(大村)인지 하는 이웃이 쑤욱 얼굴을 내밀었다.
"코로케의 뭐가 알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 확실히 코로케도 카행이지만 그걸 조사한 건 아니에요."
"그런가요. 호박(카보차) 코로케도 크림(쿠리무) 코로케도 카행이기에 전 또.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어제 옆집 사람을 찾아온 남성 이름도 카행으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코로케 좀 더 드실래요?"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나 많이."
"그래서 그 남자라는 건?"
"최근 자주 보게 된 분이에요. 그 키가 큰."
놈인가.
기분이 우울해졌다.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았지만 더욱 우울해질 뿐이었다.
"드릴게요."
"엇, 전부? 죄송하네요. 이걸로 해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달걀 같은 머리를 정중히 숙이는 걸 멍하니 내려다보고서 스승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본인은 만년필 끝을 할짝 핥으면서 진지한 얼굴로 테이블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몸에 달라붙은 냉기를 떨쳐내듯이 현관 입구에서 옷매무새를 단정하고 코타츠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때 뭐 하실 건가요?"
왠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본론을 입에 담았다.
"뭐?"
스승은 완전히 새해 쪽을 집중하고 있었는지 그 단어를 한순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했으나 금방 웃기 시작했다.
"너 크리스마스 같은 걸 믿고 있었냐?"
놀리는 것 같은 목소리.
"산타클로스라면 몰라도 크리스마스를 믿는다는 개념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요?"
설마 스승은 산타는 물론이고 크리스마스라는 이벤트 자체를 미신이라고 듣고 자란 불쌍한 아이였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게 말하고 아직도 웃고 있다.
왠지 크리스마스를 앞에 두고 초조해하는 내 마음을 간파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진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관련 괴담이 있어."
"어떤 얘긴데요?"
"실화인데..."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코타츠 안에서 부스럭거리더니 벗은 양말을 바닥에 두었다.
"재작년이었나. 그 전이었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홀로 있었어. 이 방에. 유난히 추운 날이었지. 산타라도 오지 않을까 싶어서 머리맡에 양말을 두었지. 이런 식으로. 자기 전에 문단속을 하고 이걸로 아침 일찍 양말에 뭔가 들어 있다면 산타가 온 거다, 그렇게 생각했지. 물론 농담이었어. 기분 문제였으니까. 그래서 잤는데 말이지."
엇. 거기서 괴담이 된다고? 설마?
두근거리면서 듣고 있으니 스승은 바닥에 둔 양말을 집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들어 있었어."
"거짓말이죠?"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진짜야. 들어 있었어. 내 다리가."
스승은 진지한 얼굴로 입가를 틀어막는 시늉을 한다.
힘이 쭉 빠졌다.
"추워서 그랬으려나. 평소에는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고 자니까 잠결에 신은 것 같아."
나를 놀리는 줄 알고 화가 났다.
"이제 됐어요."
그렇게 말하고 코타츠에 들어간 채로 뒤로 쓰러졌다.
"아니, 나는 꽤 무서웠다고."
스승은 그렇게 변명했지만 이윽고 조용해졌다.
다시 만년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천장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재작년은 그렇다 치고 올해 이브는 어떤데요?"
펜 소리가 그쳤다.
2번이나 물었다.
아무리 이 사람이라도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으리라.
얼굴은 차갑고 다리는 따뜻하다.
잠시 침묵 후에 "숙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앗, 아니지. 숙박."
2번이나 말했다.
그 2번째는 한 음절씩 끊어서 말했고 말할 때마다 구불구불 몸을 비틀었다.
"그런가요."
이제 됐어.
자자.
그렇게 생각했을 때 스승은 뜻밖의 말을 했다.
"너도 올래?"
"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대체 왜?
내 반응에 놀란 건지 스승이 움찔했다.
"아니,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야. 낡은 온천 여관인데."
"갈게요."
일단 즉답을 한 뒤에 물었다.
"왜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천인가요?"
"거기에는 깊은 사정이 있거든."
스승이 감질을 내면서 하는 말을 요약해 보니 요컨대 알바였다.
오가와 조사 사무소라는 흥신소에서 스승은 조사원으로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개중에서도 오컬트랑 관련된 묘한 의뢰를 전문으로 맡고 있다.
유일한 정직원이면서 소장인 오가와 씨가 그러한 수상쩍은 의뢰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스승 덕분에 의뢰를 해결한 의뢰자들 입소문을 타고 그런 일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입소문 태반을 맡고 있는 할머니가 있는데 이 의뢰는 그 사람 소개로 이 해 말에 굴러들어온 의뢰라고 한다.
"할머니가 자주 가는 여관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온대."
"나온다면 그게 나온다는 건가요?"
"응. 이게."
스승은 양팔을 모아서 손목을 꺾은 뒤 혀를 쏙 내밀었다.
"그렇게 커다란 여관은 아닌데 매년 정월을 거기서 보내는 단골이 몇 팀 있다고 해서 말이지. 그들이 오기 전에, 즉 해가 넘기 전에 해결하고 싶대."
"액막이를 해도 안 된다던가요?"
"응. 안 된대.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자세한 건 아직 듣지 못했어."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연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일이 들어온 건가.
그치만 어째서 내겐 의뢰 얘기를 하지 않았던 걸까.
영세 흥신소인 오가와 조사 사무소 알바 조수라는 어엿한 직함이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10대 젊은이에게 크리스마스까지 일하라고 하겠냐."
"그럴 수가..."
당신과 같이 보내지 않는데 크리스마스가 다 뭐랍니까.
그런 말은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럼 조수 하나 데리고 온다고 말해둘게."
스스은 그렇게 말하더니 또 연하장을 적는다.
나는 그걸 보고 슬슬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크리스마스 이브.
스승과 함께 시골 온천 여관에서 요괴 퇴치인가.
한겨울인데 몸 속에 불이 켜진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꼭 주먹을 쥐었다.
"의욕 넘치네. 잘 부탁해."
그걸 본 스승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나는 북쪽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영세 흥신소인 오가와 조사 사무소에 들어온 기묘한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서 알바인 카나코 씨랑 그 조수인 나는 둘이서 원정을 나가게 되었다.
시내에서 출발할 무렵에는 상당히 북적거리던 열차 안도 큰 역을 지날 때마다 조금씩 사람들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덜컹덜컹 흔들리는 전철 2인석에서 나란히 앉아서 짐을 각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으나 한산해질 무렵에는 나는 비어 있는 맞은편으로 이동해서 짐을 옆에 두었다.
나를 이 여행에 데리고 온 장본인이자 오컬트 스승인 카나코 씨는 아까부터 대체 몇 개째 먹는 건지 모를 귤 껍질을 진지한 얼굴로 벗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창틀에 올려놓은 티슈 위에 벗겨진 껍질이 자그만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브에 온천인가."
턱을 괴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자 스승은 귤 표면에 달라붙은 하얀 섬유질을 끊어지지 않도록 신중히 벗기면서 고개를 들었다.
"이브라는 건 일몰부터 심야 24시까지야. 24일 낮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지."
"진짜예요?"
"백과사전으로 조사해 볼래?"
스승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그래도 산맥이나 밭, 수로, 논두렁길, 송전선 그리고 기와 지붕.
흐르듯이 지나가는 풍경에는 쌀쌀한 겨울색이 짙다.
이번 의뢰는 예전에 오컬트 사건을 해결한 이후 스승 팬이 되었다던 그 노부인을 경유해서 들어온 것이었다.
북쪽 마을 시가지에서 떨어진 온천 여관으로 최근 유령 목격담이 이어져서 장사에 지장을 준다고 한다.
그런 건 가령 진짜든 가짜든 지역 신사나 절에 부탁해서 액막이를 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전혀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것도 목격된 유령이라는 게 문제였다.
"신주라고요?"
"그래. 신주 복장을 하고 있었대."
스승은 귤에 달라붙은 하얀 섬유질을 전부 떼어낸 후에도 아직도 남아 있지 않은지 찬찬히 살펴보며 대답했다.
"자그만 온천지야. 그 부근에 있는 신사도 와카미야 신사라는 곳 한 곳뿐이고. 역사는 깊은지 조상 대대로 일족에서 신주를 물려받고 있다던데..."
"그 신사 조상님이 유령으로 나온다고요? 온천 여관에?"
"바로 그거야. 이유를 모르겠어. 장소도 걸어서 4, 50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 왜 굳이 여관에서 나타나는 걸까."
"뭔가 까닭이 있는 걸까요."
"그게 여관 쪽도 신사 쪽도 전혀 짐작 가는 게 없대. 책임을 지고 지금 궁사가 본격적으로 액막이에 힘썼다던데 효과는 전혀 없어. 밤만 되면 여관 안에서 카리기누에 에보시에 하카마 차림을 한 유령이 떠돈다더군."
카리기누 :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평상복
에보시 : 옛날에 공가(公家)나 무사가 쓰던 두건.
하카마 : 주름 잡힌 하의.
신직 복장은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며 스승은 티슈 안에서 귤 껍질을 집어들었다.
"먼저 정장. 니나메사이 같은 큰 축제 때 입는 의관이야. 다음은 예장. 기원제나 중제에 입는 제복. 이것도 머리에는 관을 쓰지. 마지막으로 소제, 연례식 같은 날에 입는 상장. 이게 카리기누, 에보시, 하카마지."
니나메사이 : 11월 23일에 햇곡식을 천지신에게 바치고 친히 이것을 먹기도 하는 궁중 제사.
스승이 순서대로 가리키는 귤 껍질들을 보아도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뭐, 관과 에보시는 실루엣으로도 차이가 나니까 알 수 있어."
"그럼 그 일상 복장인 상장을 입고 나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글쎄다. 제일 많이 보는 차림이라서 그런 거 아냐?"
스승은 모든 섬유질을 다 떼어내고 매끈매끈해진 귤을 흡족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 현지를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지."
"그러네요."
창밖을 보려던 순간 터널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언제까지 묵을 건가요?"
나도 그렇지만 스승이 가져온 짐도 별로 많지 않았다.
"그 온천에서 새해 맞이를 할 손님이 몇 팀 있다고 하니까 늦어도 29일까지는 해결해야 해. 뭐, 사흘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24, 25, 26.
스승은 손가락을 꼽았다.
"사흘인가요."
내가 보기엔 스승이 나서면 즉시 해결되거나 해결할 수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사흘은 어중간하다.
"세게 나서고 싶지만 신주 유령이 나온다는 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그런 사정도 고려해서 사흘로 잡은 거야."
스승이 귤을 단번에 입 속에 던져 넣은 순간 터널을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빛이 전철 안으로 들어온다.
"오, 도착했다. 니시카와역이야."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면서 스승이 창문에 달라붙었다.
완만한 산이 사방을 둘러싼 분지 지형이 나왔다.
강이 도로랑 평행하게 뻗어 있다.
논밭이 펼쳐진 그 너머에 희미하게 시가지가 보인다.
높은 빌딩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자, 요괴를 보러 가자."
스승은 눈을 가늘게 뜨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오래된 역에서 나오니 자그만 로터리에 밴 한 대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선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밴 옆에는 '여관 토카노'라고 커다란 글자로 적혀 있다.
"아, 오가와 조사 사무소 사람?"
여성이 우리를 알아보고 담배를 땅에 떨어뜨린 뒤 밟았다.
체크 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나는 토카노에서 일하는 이구치 히로코야. 잘 부탁해. 아, 짐은 뒤에 실을 수 있어."
그렇게 말하고 밴 뒷문을 열더니 나랑 스승이 가져온 가방을 짐칸에 휙휙 던져넣었다.
"자, 타, 타."
우리를 태우더니 바로 밴이 출발했다.
뒤에 있던 역이 작아진다.
"버스 타고 오는 길을 들었는데요."
스승이 구겨진 종이를 손에 들고 말했다.
"아, 그래? 마침 나도 한가하니까. 게다가 버스라면 한 번 관청 쪽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
히로코 씨는 별로 정중한 어조는 쓰지 않았지만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저기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당신 제령 할 줄 아는 사람이야?"
"제령은 못해요. 그저..."
스승이 노골적인 질문에 쓴웃음을 짓는다.
"그저 해결할 뿐이죠."
"흐응."
히로코 씨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그쪽이 조수?"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니 히로코 씨는 얼굴을 이상하게 모아서 미소를 지었다.
저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그로부터 당분간 우리는 밴을 타고 갔다.
스승은 히로코 씨에게 이 근처 사정을 물어보았다.
"깡촌이야 깡촌. 언젠가 반드시 이런 곳을 나가줄 테다.... 아, 타나카야다."
히로코 씨가 보는 곳에서 대형 밴이 달리고 있다.
그 뒤에는 '타나카야'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저건 우리 옆에 있는 여관 차야. 옆이라고 해도 우리가 제일 외곽에 있으니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우와~ 단체객 태우고 있잖아."
숙박객을 태워주는 차량 같다.
히로코 씨는 혀를 차더니 난폭하게 핸들을 돌려 눈 깜짝 할 사이에 앞을 지나는 타나카야 차를 앞질렀다.
"헤헹. 우리는 작지만 반응이 빠르다구."
동업자인데 아니, 동업자이기 때문인가.
평소부터 상당히 사이가 나쁜 모양이다.
본인은 휘파람을 불고 있다.
어느샌가 밴은 시가지를 벗어나 강을 따라 난 제방을 달리고 있다.
히로코 씨는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지류야. 선로를 따라 흐르는 마스이강 지류."
커다란 저수지 같은 곳이 앞쪽에서 보인다.
"아, 저건 카메가부치라는 저수지. 옛날에 어떤 무장이 만들었대."
평지 안에 수면이 보인다.
상당히 크다.
저수지 옆 길을 따라 간판이 세워져 있다.
적혀 있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구불거리는 강을 횡단하듯이 다리를 건너고 밴은 산기슭 쪽으로 나아갔다.
"도착했습니다요, 손님."
밴이 속도를 늦춘 건 산에 둘러싸인 오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2층짜리 건물 앞이었다.
'토카노'라고 히라가나로 크게 적힌 이름이 현관에 걸려 있다.
열려 있는 대문을 빠져나와 현관으로 가니 여관 점원복을 입은 청년이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고 있었다.
"어라, 저 도련님 또 왔네. 성실하기도 해라."
도련님?
히로코 씨가 어이없다는 듯이 내뱉은 말에는 왠지 의미심장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여관 종업원이 아닌 걸까?
히로코 씨가 현관에 차를 대니 청년은 이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동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가 차에서 내려서 짐을 꺼내려고 할 때 백발이 섞인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남성이 문에서 나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여관 점원복을 입고 있다. 몸은 통통하지만 움직임은 날렵하다.
"아, 제가 들게요."
그렇게 스승이 사양했지만 억지로 짐을 받아든다.
아무래도 수리업자가 아니라 나름대로 손님으로서 대우하는 모양이다.
"아빠. 차는 차고에 넣으면 돼?"
히로코 씨가 말하자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미소 한 번 짓지 않고 그는 우리를 자동문 쪽으로 안내한다.
아무래도 부녀가 같이 경영하는 모양이다.
히로코 씨가 손님을 응대하고 아버지는 지배인으로서 경영하는 걸까.
차를 모는 히로코 씨를 뒷전으로 우리는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타일이 깔린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으니 좁지만 깔끔한 로비가 눈앞에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다.
안에는 난방을 틀어 놓아서 기분 좋은 온기가 느껴진다.
인형 같은 공예품으로 장식된 프런트 안쪽에서 전통복을 입은 여성이 나타났다.
연분홍색 고급스러운 옷이다.
"어서 오세요."
미소를 지은 후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오랜 세월 몸에 밴 동작인 것 같았다.
"의뢰를 한 토카노입니다."
4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주인은 이어서 이름을 대었다.
스승이 명함함을 꺼내기에 나도 황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흥신소 소장은 우리 알바에게도 명함을 만들어 주었다.
단 가명이다.
들키지는 않겠지만 늘 이름을 댈 때 불안해진다.
여주인도 품에서 명함을 꺼내어 서로 교환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명함에 적힌 이름에 딱히 의심을 품지 않고 여주인은 싱긋 웃더니 한손을 내밀며 말했다.
"먼저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로비를 빙 돌듯이 빠져나오니 앞으로 뻗은 복도랑 계단이 있고 우리는 2층으로 갔다.
원래 스승이 혼자 올 것을 갑자기 나도 참가하게 되어 방이 2개 준비되어 있을지 불안했으나 제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넓고 가족 등 4,5명 정도가 쓸 수 있는 방 같았다.
이런 곳을 혼자 쓰는 게 왠지 죄송스러워진다.
"오늘은 달리 2팀밖에 없으므로 2층은 전부 비어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주인은 내 생각을 꿰뚫어보듯이 그렇게 말했다.
"나중에 또 오겠습니다.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 테니 먼저 피로를 풀어 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떠나갔다.
일단 짐을 놓고 테이블에 있던 과자를 집은 뒤 옆에 있는 스승 방으로 갔다.
내 방이랑 똑같은 구조였다.
옆방에서는 스승이 차를 끓이고 있기에 같이 마시기로 했다.
"생각보다 좋은 곳이네."
나는 이때까지 본 여관을 떠올린 뒤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동의했다.
"공짜로 묵는데다가 알바비도 받다니 최고잖아."
"그만큼 잘 해결할 수 있을지 불안한데요."
입에 담으니 더욱 불안해진다.
흥신소 규칙상 성공 보수랑 별개로 설령 의뢰를 달성하지 못해도 최소한 기본 요금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가는 건 좀...
"괜찮아. 요괴를 퇴치하면 끝나니까."
"그거, 그게 문제라고요. 이 여관에서 뭔가 느끼셨나요?"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스승은 관심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차과자에 손을 뻗었다.
"일단 헛소문이나 착각이 아닐지 살펴보는 식으로 진행할 건가요? 그게 아니면 진짜라는 전제로 진행할 건가요?"
이토록 아무 낌새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보는 건 힘들 것 같다.
"걱정 마. 들어보니 나오는 건 밤인 것 같고. 그리고 이건 내 감인데 이번 건 아마도 진짜야."
스승은 태평하게 그렇게 말하고선 내 차과자에까지 손을 뻗어온다.
잠시 후 여주인이 왔다.
그녀가 의뢰를 꺼내려는 순간 스승이 제지했다.
"장소를 바꾸죠. 이 방에서는 주객이 바뀌어 버리니."
여주인은 뜻밖이라는 얼굴을 했으나 곧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밑에 있는 응접실에서 하지요."
그렇구나. 우리는 의뢰를 받는 입장이고 여주인 쪽이 의뢰인이다.
그런데 이런 객실에 있으면 직업병상 여주인은 우리를 손님으로 대할 게 틀림없다.
그러면 대화가 꼬일 거라고 스승은 판단한 것이다.
역시 이런 일에 능통한 사람이다.
계단을 내려가서 우리는 프런트 뒤쪽에 있는 응접실로 갔다.
나랑 스승은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여주인과 아까 우리를 맞이해준 짧은 머리 남성이 앉아 있다.
"지배인 겸 요리장인 이구치입니다."
여주인이 소개하자 남성이 고개를 숙였다.
"이구치 칸스케입니다. 선대 때부터 섬기고 있습니다."
붙임성 있는 얼굴은 아니다.
머리숱이 적은 머리 밑에 호랑이 같은 얼굴.
왠지 퉁명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섬긴다는 시대착오적인 말투에 충직한 성격이 슬쩍 보인다.
여주인 이름은 토카노 치요코이며 이 온천지인 마츠노키에서 5개 있는 온천 여관 중 하나인 '토카노' 3대 주인이라고 한다.
이 마츠노키는 온천지 치고는 역사가 짧고 메이지 들어서 온천을 파낸 모양이다.
그 온천 여관 중에서도 이 토카노가 제일 새롭고 오사카에서 목재 도매상으로 일하던 초대 토카노 카메키치 씨가 이쪽으로 옮겨와서 연 가게라고 한다.
제일 막내인데다 이방인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매우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여관 조합에서도 뭔가 트집을 잡아서 괴롭혔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대를 거듭한 지금도 몰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마츠노키 출신인데 말이죠."
여주인은 섭섭한 듯이 중얼거렸다.
이방인 따돌림도 지배인인 칸스케 씨 덕분에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구치 가문은 지역 수리 조합이나 소방단 등지에서 중심에 선 가문으로 요컨대 마츠노키 중역 중 하나이다.
그 아들이 지배인을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여관들 눈총을 피해가게 된 셈이다.
칸스케 씨 자신도 성정이 불 같아서 여관 조합 경쟁에서 '토카노'가 불리해질 사안이 나오면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 결국 그런 사안을 쏙 들어가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칸스케 씨는 젊었을 무렵 너무나도 불량한 태도에 가문에서 쫓겨날 뻔한 것을 토카노 선대 주인, 즉 치요코 씨 부친에게 설득되어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뭔가 파고들 게 있으면 진지하게 집중하는 성격이었던 듯 사람이 바뀐 것처럼 땀을 흘려 일하게 되어서 선대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그 이후 토카노에의 충성심이나 약속을 잘 지키는 성격 덕분에 지금도 중역으로서 일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만 이 정보는 후반 대부분이 그 딸인 히로코 씨가 말한 것이고 당사자인 칸스케 씨는 스승과 여주인이 응접실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거의 입을 열지 않고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진 건 1년 전이었습니다."
드디어 본론인가.
나는 긴장해서 무릎 위에서 주먹을 굳게 쥐었다.
토카노 숙박객이 밤중에 유령을 보았다고 고충을 토로했고 그 소문이 좁은 마츠노키 그리고 마츠노키에 있는 니시카와정에 퍼진 건 순식간이었다.
그 유령은 어김없이 신주 복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윽고 종업원들 사이에서도 봤다는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며 와카미야 신사에 상담해서 액막이를 받았다.
하지만 좀처럼 출몰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옆에 있는 절에도 부탁했지만 역시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염불을 외워도 효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밤에 승려를 모시고 왔을 때는 차려놓은 호마단 위에서 그걸 비웃듯이 신주 유령이 부유했기에 참석객들이 비명을 질러대서 불경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손 쓸 도리도 없이 소문을 두려워해서 손님이 줄어드는 한편 천만다행히도 저주를 받았다거나 불행한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기에 그냥 발상을 전환해서 신주님 유령이 나타나는 고마우신 여관으로 홍보할 수밖에 없을까 지금도 고민하는 모양이다.
마츠노키에서는 비교적 새롭다고는 하지만 3대 이어온 온천 여관이다.
물론 그런 건 원치 않을 것이다.
여주인은 어두운 얼굴로 이야기를 끝냈다.
스승은 소파에 깊이 몸을 파묻고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사색에 잠겼다.
그걸 보고 뭔가 보이나 싶어서 여주인도 불안한 얼굴로 천장을 따라 올려다본다.
물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은 여관업을 하면 따라붙는 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다니 뜻밖이었다.
스승은 앞을 바라보며 왼손 손가락을 턱 끝에 대면서 여주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봤나요?"
"네."
여주인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한 번뿐인가요?"
"아뇨, 몇 번이고."
"그 신주 유령은 뭔가 호소했나요?"
"글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위해를 가하려고 했나요?"
"그렇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요."
"당신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네."
스승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누군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것을 전문으로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건 미리 알렸을 것이다.
여주인은 스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영능력자처럼 "이 유령은 이런 걸 호소하고 있습니다."라고 바로 단언한 뒤 직접 빙의현상을 일으켜 보겠다고 말하는 걸 기대하고 있는 걸까.
"신주 복장은 어떤가요?"
"무슨 말씀이지요?"
"현재 와카미야 신사에 소속된 궁사 차림과 같은가요?"
"엇, 그건."
여주인은 놀란 얼굴을 했다.
"똑같았던 것, 같았는데요."
"자신이 없나요? 그럼 와카미야 신사 궁사는 유령을 보았나요."
"보지, 않았던 것 같네요."
"옷이 어떤지는 궁사가 묻지 않았나요?"
"네."
스승이 혀를 찼다.
"중요한 일이에요. 어느 시대 유령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궁사는 유령을 두고 뭐라고 말했나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무척이나 곤혹스러워했습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무튼 와카미야 신사도 저희도 전혀 짐작 가는 게 없어요."
"이방인이라는 점은 어떤가요?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는 아니지요?"
"그럴 수가. 마을 밖에서 이주해온 집은 다른 곳도 있고 저희도 여기에 온 뒤부터는 초대부터 와카미야 신사를 모시는 토박이예요. 여관 조합에서 냉대를 받으면서도 와카미야님이 살갑게 대해주셨기에 서로에게 원한도 없어요. 저는 당대 궁사님인 쇼이치 씨랑 똑같은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쇼이치 씨는 연하인 저를 신경 써 주셨고 딸인 카에데는 쇼이치 씨 차남인 카즈오랑 소꿉친구로 무척이나 사이가 좋으니까요."
와카미야 신사 궁사의 성은 이시자카인 것 같다.
칸스케 씨가 무뚝뚝한 얼굴인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정말로 그런 것 같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유령이 나오는 걸까요."
"저희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쪽 일이라는 얼굴로 여주인은 스승을 바라본다. 스승은 한숨을 쉬고 그 시선을 피하더니 살짝 말투를 바꾸어서 말했다.
"사진은 어떤가요."
"네?"
"사진 말이에요. 심령사진. 그 신주 유령 사진은 찍히지 않았나요?"
"사진은... 들어본 적 없어요. 사진에 찍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네요."
"그런가요."
스승은 아쉽다는 듯이 자기 이마를 쳤다.
"하지만 오래된 유령이라면 기본적으로 사진에는 찍히지 않기에 정체를 알기 위해 조금이나마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 경험상 사진 문화가 생기기 전 유령은 심령사진으로 찍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사진이라는 자신을 찍는 기계를 모르는 채로 죽은 유령이라면, 즉 에도시대 후기 이전 유령이라면..."
처음으로 그럴 듯한 발언을 한 스승을 보고 여주인은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믿어도 좋은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뭐, 좋습니다. 다음은 그거네요. 이 여관 뒤에는 산이 있던데 그쪽에 혹시 와카미야 신사의 분사는 없나요? 혹은 옛날에 있었다거나."
"아뇨, 없어요."
즉시 대답한다.
"지금도 자주 기분 전환하러 오르지만 그런 건 없어요. 입구가 앞쪽에서 조금 돌아간 곳에 있는데 거기서부터 산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궁금하시다면 그쪽으로 가 보세요. 무척이나 경치가 좋은 곳이랍니다."
"그렇군요. 그럼 먼저 여관 안을 보여주시겠나요. 아마도 밤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요. 그때까지 가능한 정보를 수집하고 싶네요."
스승이 일어섰다.
"운이 좋다면 오늘 밤 중에 상대 정체를 알 수 있겠지요. 정체를 알아낸다면 대처할 방법이 생깁니다."
응접실을 나갈 때 먼저 일어선 내가 문을 열다가 바로 앞에 있던 여성과 부딪칠 뻔했다.
"으악."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상대도 놀란 건지 면목 없는 얼굴을 하더니 뒤에 있던 여주인 쪽을 보고 목을 움츠렸다.
"카에데, 뭘 하는 거니."
"아니, 그게 좀..."
카에데라면 아까 이야기에서 나왔던 여주인 따님일 것이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인다.
머리는 뒤로 묶고 터틀넥 검은 스웨터에 데님 바지를 입고 있다.
활발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나 보다.
골칫거리인 유령 소동을 해결하기 위해서 영능력자를 불렀다고 하니 호기심이 동한 건지도 모른다.
"카에데. 나중에 이 분들 모시고 뒷산을 안내해 주렴."
한숨을 쉬면서 여주인이 말하자 카에데 바로 뒤에 있던 종업원이 몸을 내민다.
"아, 제가 안내할까요?"
히로코 씨다.
같이 엿듣고 있었던 걸까.
"너는 저녁 준비를 해야 하잖아."
칸스케 씨가 툭 내뱉으며 자기 딸 머리를 쥐어박았다.
꽤 아파 보인다.
그로부터 스승은 약 1시간 동안 여관 안을 둘러보았다.
특히 유령이 나왔다는 곳에서는 언제 누가 어떻게 유령을 보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돌아다니며 들은 내용을 전부 대학 노트에 메모했다.
스승은 들으면서 별로 감상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사실을 수집해 나갔다.
목격담은 현관이나 복도 객실이나 연회장 그리고 안뜰이나 온천 곳곳에서 발생했다.
절조 없이 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 걸 보면 딱히 특정 장소에 구애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 빈도로 보건대 이 토카노라는 온천 여관 그 자체에는 이상하리만치 강한 집념 혹은 집착이 느껴졌다.
신주 유령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목격자들은 모두 유령이 원한에 서려 있는 것 같다며 두려워했다.
유령은 복도 벽에서 빠져나오듯이 갑자기 나타나는가 싶더니 반대쪽 벽 안으로 사라지고 밤중에 숙박객이 문득 눈을 뜨면 이분 주변에 여러 신주 유령들이 천천히 걷는 게 보였다든지 나타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
"여러 명이라고요?"
숙박객한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던 종업원 한 명에게 한 번 더 확인했다.
"네. 두세 명인지 서너 명인지 모여서 걷고 있었다네요."
"얼굴은요? 혹시 모두 똑같지는 않았나요?"
40대 종업원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어요. 그치만 저도 본 적 있는데 얼굴은 별로 잘 안 보였어요."
얼굴은 묘하게 흐릿해서 그저 창백하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스승은 대충 필요한 정보를 다 모은 건지 혹은 더 이상 물어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판단한 건지 조사를 일단락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그럼 뒷산에 올라가 보겠습니다."
스승이 그렇게 말하니 여주인은 딸을 불렀다.
"카에데, 안내해 드리렴."
"네~"
스웨터 위에 점퍼를 걸친 채 나타난 카에데는 힘차게 대답하더니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아, 그럼 저도."
그 뒤에서 종업원복을 벗으면서 듬직한 청년이 나타나더니 수줍은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까 현관에서 낙엽을 쓸던 사람이다.
이 청년이 여주인 이야기에서 나왔던 와카미야 신사 궁사의 차남인 모양이다.
그를 두고 도련님이라고 어이없어하던 히로코 씨 태도가 마음에 걸려서 조사 중에 한 번 더 히로코 씨를 붙잡고 그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이시자카 카즈오라고 해서 현내 대학 3학년생이었다.
캠퍼스 근처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지만 겨울방학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면 될 텐데.
그렇게 생각했으나 히로코 씨가 말하길 이 여관 외동딸인 카에데에게 홀딱 반한 모양이다.
그래서 한가하면 도와 드리겠다고 토카노에 와서 청소를 하거나 짐을 옮기면서 부지런히 땀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 늦은 무렵이 되면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는 말을 듣고 연모하는 카에데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챙기는 모양이다.
물론 그건 최근 일이 아니라 좁은 시골 사회에서 옛날부터 소꿉친구로서 친해졌다고 한다.
카즈오 아버지인 현 궁사 쇼이치 씨는 여주인 치요코 씨랑 소꿉친구이기도 하고 쇼이치 씨 부인인 마사코 씨는 치요코 씨랑 똑같은 선생님에게 다도를 배운 인연으로 사이가 좋았다.
두 살 연하인 카에데가 올해 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에 있는 단기 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카즈오는 적극적으로 변했다.
장수를 쏘려면 말부터 쏘라고 했던가.
여관에 들어가서 척척 일을 하는 카즈오를 여주인이 잘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여주인은 10년 정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그 이후 혼자서 카에데를 키우고 부모한테 물려받은 여관을 번창시켰다고 한다.
언젠가 카에데를 결혼시켜서 여관을 물려줘야 한다.
그런데 와카미야 신사 차남이자 소꿉친구인 카즈오라는 딱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걸 놓칠 수야 없다.
카에데 자신은 단기 대학에 막 입학해서 한창 놀고 싶을 때다.
아무래도 카즈오는 은근히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알바니 동아리 활동이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둘 사이를 교묘하게 조정해서 결코 성급하게 손을 대지 않으며 카즈오가 제 발로 적극적으로 이 여관을 찾아오게 해서 이것저것 돕게 하는 것이 여주인 치요코 씨인 셈이다.
들어보니 카즈오는 주말에도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성실한 사람이다.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카에데가 현관에서 돌아보면서 소리를 높인다.
"카즈오, 부탁할게."
"네."
여주인은 카즈오에게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스승과 내게 인사를 하고 여관 안으로 돌아갔다.
"이쪽이에요~"
카에데가 앞장서서 부지 밖으로 나간다.
바로 뒤에 있는 산이기에 여관 건물을 돌아갈 줄 알았다.
"이 앞을 돌면 입구가 있어요."
빠른 걸음으로 홀로 앞으로 나가는 카에데를 보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카즈오가 설명한다.
여관 옆을 흐르는 강을 따라 조금 걸으니 산 쪽에 돌계단 같은 게 보였다.
"여기서부터 올라가요~"
카에데는 이끼가 낀 돌계단을 두 계단씩 뛰어서 올라가고 그때마다 말총머리가 흔들린다.
돌계단은 바로 끊기고 지엽으로 덮인 산길이 나타났다.
표고가 낮은 산이지만 길은 상당히 험하다.
추위에 익은 몸은 금방 더워지고 숨이 차올랐다.
그래도 산행은 올해 스승을 따라다니며 상당히 자주 했기에 페이스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카에데도 카즈오도 익숙한 발걸음으로 태연히 올라간다.
"아하, 흥신소에서 일하고 있나요."
"응. 그 중에서도 나는 요괴 전문."
"요괴 전문이 뭔가요?"
카즈오는 스승과 계속 대화했다.
왠지 빈틈없는 놈이다.
체격도 좋고 굴곡이 뚜렷하지만 꽤나 미남이고 미소가 상쾌했다.
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희도 봤어요. 그 유령. 그치?"
그는 앞서 가는 카에데에게 화제를 던진다.
"응. 봤어. 무서웠어."
"어땠는데?"
스승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모두 연하라서 그런지 아까까지 쓰던 영업 어투를 버리고 평범한 말투로 말을 건다.
카에데는 평일에 종업원이 한 명 쉬었기에 밤에 일을 돕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 복도를 지나고 있으니 유리창 너머로 유난히 하얀 옷을 입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온다 나온다 말은 들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 간 떨어질 뻔했어요."
인영은 금방 사라졌다고 한다.
3개월 전 일이었다.
"저는 목욕탕이었어요. 2달 정도 전이었나. 대욕탕 밖에 노천탕이 있는데 귀가가 늦어져서 묵게 되었을 때 손님이 전부 나간 후에 홀로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자욱한 김 속에서 이쪽으로 스윽 수면을 걸어오는 사람이 보이는 거예요. 위험하다 싶어서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물 속이라 잘 달릴 수가 없어서... 저쪽은 스윽 다가온다고요? 정말로 무서웠어요. 간신히 도망쳐서 탈의실까지 간 뒤에 돌아보니 사라졌지만요."
아, 노천탕 자체는 무척 좋은 곳이니 나중에 즐겨 주세요.
카즈오는 은근슬쩍 그렇게 덧붙였다.
"넌 그 신주 유령 자손 아냐? 왜 겁먹은 건데."
"이야 그건 그렇지만 왠지 딱 감이 안 오더라고요. 조상님이 왜 토카노를 저주하려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뭔가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텐데 원통하다 한 마디를 안 하시더라고요. 대체 뭘까요. 아버지도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부친인 쇼이치 씨는 상당히 책임을 느끼고 여주인이나 카에데를 만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한다.
액막이도 몇 번이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창피를 무릅쓰고 이런 데 강한 절을 직접 찾아나서는 등 아무튼 신주 유령이 나오지 않도록 협력을 해주고 있지만 지금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차남이라고는 하나 성인인 아들이 소꿉친구 여자애 집에 들어가서 종업원 행세를 하는 것도 꾸짖지 않고 눈감아주는 것도 그러한 죄책감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님이 궁사지?"
"네. 조상 대대로요."
스승은 와카미야 신사의 궁사, 이시자카 가문 가족 구성을 정확히 들었다.
부친이 궁사인 쇼이치, 모친이 마사코, 형이 신직 대학원에 재학 중인 오사무 그리고 여동생이 전문대 학생인 미도리.
그리고 할머니가 계신다던데 지금은 니시카와정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한다.
마츠노키도 행정 단위상 니시카와정 일부지만 이 근처 사람들은 관청 부근만을 가리켜서 니시카와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형이 대학을 졸업하면 돌아올 거예요. 집에서 곤네기(権禰宜)를 하면서 니시카와정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 거라고 하더군요. 친분이 있는 신사에서도 신직이 부족하다고 상담을 받았기에 어쩌면 그쪽으로 갈지도 모르지만."
곤네기 : 신직 직계 중 하나. 네기(궁사를 보좌하는 일반적인 신관)의 명을 받아 신사의 업무에 종사하는 신관.
아무튼 형은 언젠가 저희 와카미야 신사 뒤를 이을 거예요.
카즈오는 농담을 하듯이 자기 팔뚝을 두드렸다.
"그래서 저 같은 건 입지가 좁아요. 얼른 일자리를 찾지 않으면 언젠가 집에서 쫓겨나 버릴 테니까."
카즈오 쪽은 신도 계열 대학이 아니라 일반 대학 법학부에 재적하고 있다.
"쇼이치 씨 전 궁사는 할아버님이야?"
"네.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이미 타계하신 것 같다.
스승은 토카노에 나타나는 유령이 그 할아버지일 가능성이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카즈오는 그건 아니라고 즉시 대답한다.
"할아버지는 그 연대 사람 치고는 무척이나 풍채가 좋으신 분이시거든요."
지금 자기보다도 키가 크다며 머리 위에 손을 대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커다란 사람이라면 설령 얼굴이 흐릿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주인이나 여관 사람들도 선대 궁사를 자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래도 카즈오의 할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좀 더 옛날에 계신 조상님이려나.
"최근에 신직 옷을 도둑맞은 적은 없어?"
스승이 묻자 카즈오는 눈썹을 찌푸렸다.
"누가 장난이라도 쳤다는 건가요?"
"뭐, 어떤 일이든 가능성은 있으니까."
직접 유령을 목격했다는 카즈오가 보기엔 도저히 그게 누가 장난을 친 거라고 믿기지 않으리라.
확실히 여태까지 들은 수많은 목격담을 보아도 전부 인간 짓이라고 단정 짓는 건 어려워 보인다.
"옷은 도둑맞지 않았어요. 물론 잃어버리지도 않았고요."
카즈오가 딱 잘라 그렇게 말하니 스승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아, 이 너머부터 보여요."
카에데가 가리킨 곳에는 나무들이 뻥 뚫린 공간이 있었다.
그 트인 곳까지 올라가니 멀리 있는 풍경까지 볼 수 있었다.
"경치 좋구나."
스승이 근처 그루터기에 한쪽 발을 올렸다.
밑에는 앙상한 나무들로 덮여 있는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다.
그렇게까지 높이 올라온 건 아니지만 각도 때문인지 여기서부터 토카노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평야를 사이에 두고 멀리 있는 산 중턱에 어떤 건물이 보인다.
"저게 저희 신사예요."
카즈오가 가리켰다.
"이렇게 보니 꽤 가깝구나."
"그치만 토카노에서 걸어가면 1시간 정도 걸리죠."
내려다보는 풍경 속에는 밭이나 논 그리고 나뭇가지만 남은 숲 등 을씨년스러운 색채만 퍼져 있다.
그 사이를 누비듯이 강줄기가 구불구불 뱀처럼 꿈틀대며 뻗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지요? 점점 인구도 줄어들고 저희 신사 근처는 버스 정류장하고도 멀어서 불편해서 견딜 수 없어요. 가족 모두 오토바이를 타지요."
"엥, 우리 토카노 근처가 버스 정류장에서 더 멀잖아. 가끔씩은 그 정도라도 걸으라구."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거기서 풍경을 보고 있으니 해가 지기 시작하여 추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바람도 조금 불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인데요."
카즈오가 그렇게 물었지만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됐어. 돌아가자."
정상까지 가는 길은 여기서부터 조금 내려간 후에 또 올라가지만 이미 전부 다 보았다.
여주인이 말한 대로 뒷산에는 신사와 관련된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상 반대편 내리막길에도 똑같이 아무것도 없다고 카데에랑 카즈오가 단언했다.
스승은 딱히 아쉬워하지도 않고 또 앞장서서 왔던 길을 내려가기 시작하는 카에데 뒤를 따라 산길을 내려갔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오른쪽에 커다란 V자형으로 파인 골짜기가 있는 곳으로 나왔는데 거기서 스승이 걸음을 멈추었다.
골짜기 쪽으로 몸을 내밀며 목을 쭉 빼고 있다.
그 앞은 상당히 가파른 절벽이다.
뒤에 있던 나는 저도 모르게 뭘 하는 거냐고 말리려고 했다.
스승은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나무가 듬성듬성 나 있는 자그만 길을 발견하고 거기서부터 절벽 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처음에는 주르륵 능선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간 후 고목을 잡아서 기세를 죽인 뒤 솜씨좋게 나뭇가지를 잡으면서 순식간에 절벽 밑에 도착했다.
지역 주민인 둘도 놀란 듯이 그걸 바라보고 있다.
"뭔가 있나요?"
나는 양손으로 나팔을 만들어서 소리를 높였다.
스승은 절벽 밑에서 두리번거리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아, 이건 산사태 흔적이야."
비스듬히 나 있는 관목을 치면서 대답한다.
그 골짜기는 도중부터 물이 솟아나서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스승은 그 근처 흙을 파거나 나무를 흔들면서 그 주변을 탐색하다가 이윽고 툭 튀어나온 돌 앞에 쭈그려앉고는 쌓인 흙이나 이끼 등을 손으로 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뚝 움직임을 멈추더니 또 금방 일어나서 근처에 있는 못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 너머는 위험한 지형이었기에 들어가는 건 단념한 건지 스승은 또 원숭이처럼 나뭇가지를 잡으면서 이쪽으로 돌아왔다.
"미안. 기다렸지?"
산길로 돌아온 뒤 스승은 바지에 묻은 흙과 지엽을 털어내며 태연하게 말했다.
"굉장하네요. 레인저 같아."
카에데는 그렇게 칭찬했지만 카즈오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위험하니까 이제 그런 짓은 하지 말아 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이제 돌아가자."
스승은 웃었다.
그리고 카에데랑 카즈오 뒤를 따라 다시 산길을 내려간다.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나는 스승 바로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앞에서 가던 두 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스승이 슬쩍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얼굴을 갖다댄 내 귓가에 스승은 재빨리 입을 대고 속삭였다.
"산사태로 묻힌 돌 표면에 이런 무늬가 있더라."
그리고 내 손을 잡더니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 글자 같은 걸 적었다.
"어?"
"재밌어졌어."
괴이쩍은 얼굴을 하는 내게 스승은 한 번 더 그렇게 속삭인 뒤 앞을 가는 둘을 얼른 따라갔다.
이 글자는 뭐지?
나는 손바닥에 남은 글자의 감촉을 찬찬히 머릿속으로 새기면서 그리고 동시에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한자다.
비우머리는 알 수 있다.
그 밑에 동그라미... 아니 口가 3개 옆으로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뭔가 복잡한 글자가 이어져 있다.
龍이라는 글자일까.
혹은 能이라는 글자일까.
어느 쪽이든 그런 한자가 있을까.
엄청 획수가 많다.
하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보건대 한 글자로 보인다.
이 글자는 뭐지?
나는 자신이 걸음을 멈추었다는 걸 깨달았다.
앞을 가는 스승의 등을 바라보면서 손바닥에 글자를 썼던 감촉에 전율했다.
이게 뭐야.
그런 말을 입 안에서 중얼거리면서 나는 겨울 산길 중간에서 우두커니 섰다.
슬금슬금 그 글자를 쓴 흔적에서 자기 피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한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