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97086
'토카노'에 도착했을 때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녀왔어."
여관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 카에데가 말한다.
잠시 후 여주인이 프런트 안쪽에서 나타났다.
"어땠나요?"
"이야, 꽝이었어요."
스승은 쾌활하게 그렇게 대답하더니 산 위에서 본 경치를 두고 잠시 여주인과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산사태 흔적에서 발견한 돌 얘기를 왜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하게 여겼다.
그 스승의 옆얼굴이 슬쩍 이쪽을 향한다.
"야, 다음 거 보러 가자."
"엇. 또 가는 건가요?"
스승은 여주인에게 이 근처 길을 묻는다.
그때 누가 꾹꾹 소매를 잡아당긴다.
돌아보니 카에데가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왜?"
"저 사람 진짜야?"
"뭐가?"
"영능력자."
확실히 지금까지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랑은 다르지만 유령을 보는 능력은 뛰어나."
영감이 강하기만 한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스승이 정말로 대단한 건 본 것과 체험한 것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그건 어떻게 보면 탐정 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흥신소 조사원인 지금 이 스타일이 그녀에게 잘 맞는 것 같았다.
"흐응. 뭐, 됐어. 그래서 사귀고 있어?"
느닷없는 질문에 뿜을 뻔했다.
"조수야."
"그건 들었어."
"딱히 상관없잖아."
아, 저질러 버렸다.
명확하게 부정하지 않는 대답.
가벼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으니 둘이서 속닥거리는 게 궁금했는지 카즈오가 "뭐야? 뭐야?"라고 말하면서 다가온다.
"좋았어. 가자."
스승이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나는 가볍게 끌려가면서 물었다.
"어디로요?"
"이 여관 주변 조사."
요컨대 산책이네요.
그런 가벼운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고객 앞이므로 자중했다.
"또 안내하고 싶지만 죄송해요. 지금부터 용무가 있기에."
카에데가 고개를 숙인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한다고 한다.
그걸 듣고 나는 새삼 오늘이 12월 24일이라는 걸 떠올렸다.
무심코 카즈오 쪽을 훔쳐보았으나 당사자는 "좋겠다."라고 말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은 어떤지 모른다.
"그럼 저도 슬슬 돌아갈게요."
여관 밖으로 나오니 카즈오도 그렇게 말하고 부지 구석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걸터앉았다.
배기음과 함께 손을 흔들면서 떠나가는 모습을 우리는 배웅했다.
"아~ 불쌍하구만, 저 녀석."
스승은 남일처럼 그렇게 말했지만 12월 24일이라는 오늘이 우리에게도 평등하게 찾아왔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해가 지기 전에 가자."
그렇게 말하고 걸어갔다.
이미 햇빛은 서산 끝자락에 숨으려 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걸쳐서 주위를 산책하면서 지류를 따라 여관으로 왔을 때 길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한적한 길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윽고 도로를 따라 키가 높은 철망에 가린 일대가 보인다.
왔을 때 보았던 저수지다.
주변은 이미 어둡고 광대한 수량을 품고 있는 수면은 빛나지도 않고 죽은 듯이 조용히 있었다.
철망 옆에는 간판이 있었다.
'카메가부치'라는 이 저수지는 오닌의 난 이후 전국무장이 각지에서 패권을 다투던 무렵 이 땅에 침공한 타카하시 나가오키가 자기 세력이 거주할 새로운 거점으로서 지금 니시카와정 일대를 봉할 때 만든 곳이라고 한다.
지류 수량이 불안정하고 녹봉이 적었던 이 땅에 지참한 돈을 아낌없이 투자해서 토목공사를 실행하여 거대한 수자원을 제공한 것이다.
스승은 그 간판에 적힌 설명문을 다 읽고 불쑥 중얼거렸다.
"그 와카미야 신사는 이 무장이 만든 건지도 모르겠어."
"어째서요?"
"와카미야라는 이름이 붙는 신사는 예를 들어 우사 신궁을 본궁으로 할 경우 그 제신인 하치만신인 오진의 자식, 즉 닌토쿠를 섬기는 신사야. 혹은 단순히 본궁에서 새로 맞이한 제신이라는 뜻으로 와카미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 그 경우에는 하치만신인 오진의 분령을 섬기는 신사가 돼. 어느 쪽이든 기본적으로 본궁 관련 신사인 셈이지. 그리고 본궁에서 새로운 와카미야를 권청(勸請)하는 건 국사나 기타 호족 등의 유권자야. 전국시대에서는 그 역할의 중심이 된 건..."
(권청 : 신불의 분신, 분령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제사를 지내는 것.)
전국무장이라는 건가.
타카하시 나가오키가 원래 세력권에서 섬기던 신사에서 새로운 지배지인 여기에 그 자식신이나 분령을 권청했다고 가정한다면 확실히 그럴 듯해 보인다.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해 보고 싶어."
아무튼 그 와카미야 신사로 가서 궁사랑 이야기를 나누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6시였다.
아까 그 시간을 고하는 종소리가 막 들린 참이다.
방문하지 못할 시간도 아니었다.
그 아들인 카즈오하고도 만나겠다 이야기하기도 쉬우리라.
하지만 스승은 잠시 생각한 이후 이렇게 말했다.
"내일 찾아가자."
일단은 그 여관에서 나온다는 유령을 먼저 보고 싶은 걸까.
"돌아가서 밥 먹자고."
발길을 돌린 스승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라갔다.
그렇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여관에서 요리가 나오는 걸 기대해도 되는 걸까?
우리는 일 때문에 왔으니까 "어? 그쪽 저녁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만."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근처에 도시락이나 빵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었나.
그렇게 고민하면서 걸어갔다.
드디어 토카노에 도착하니 현관 근처가 묘하게 소란스러웠다.
보니 20대 중반인 여성이 4명 모여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리 말고 2팀 더 손님이 있었다고 했지.
"안녕하세요."
스승은 붙임성 좋게 인사를 하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맞이하러 나온 칸스케 씨에게 짐을 부탁하면서 여성들은 이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 따뜻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사무원 동료들일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천 여관에 머무는 걸 보니 연인이 없는 동료들인가 보다.
현관을 지나서 복도 앞에서 스승에게 넌지시 그 말을 하니 스승은 천천히 손목시계를 보더니 그 시계바늘을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일몰 후니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바르게 썼군."
아직도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단 말인가.
"아, 마침 잘됐다."
히로코 씨가 우리 앞에 나타나서 손짓을 하며 프런트 안쪽으로 들어갔다.
"전화가 왔었어."
사무소에서 전화를 받던 여주인이 이쪽을 본 뒤 전화에 대고 짧게 양해를 구한 뒤 스승에게 건넨다.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커다란 목소리다.
"식사는 방에 가지고 갈 테니 그때까지 푹 쉬시길 바랍니다."
여주인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바쁜 듯이 사무소에서 나갔다.
스승은 짜증난다는 듯이 건성으로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두고 한숨을 쉬었다.
"그 할머니야. 이 여관 단골이면서 나를 여주인에게 소개해준 사람."
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스승을 홍보하고 다니던 그 사람인가.
"전부 다 맡겨두면 다 괜찮으니까 실례되지 않도록 굴라고 여주인에게 당부를 했대. 그밖에도 다른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으려나, 그 할머니."
그렇게 말하고 쓴웃음을 짓는다.
"자기도 정월에 묵으러 갈 테니까 유령 잘 퇴치해 달라신다."
그 후로 방에 돌아가려고 하니 스승이 이렇게 말했다.
"난 따로 전화할 곳이 있으니까 먼저 돌아가 있어."
조사 사무소 소장인 오가와 씨에게 오늘 일을 보고하는 걸까?
나는 2층 방으로 혼자 돌아왔다.
다리를 쭉 뻗고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먼저 샤워할까 생각하고 있으니 히로코 씨가 찾아와서 옆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먼저 밥부터 먹고 싶다고 하던데 저쪽 방에서 같이 먹을 거야?"
스승도 방으로 돌아온 건가.
물론 당연히 같이 먹을 생각이다.
히로코 씨도 그런 우리 사이의 역학관계라고 해야 하나 분위기를 전부 이해한 듯 그렇게 확인차 물어보았다.
스승의 방에 들어가서 테이블 앞에서 마주 앉아 있으니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여주인이 히로코 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눈앞에 알록달록한 식기가 놓인다.
소개해준 할머니의 당부를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호화로운 식사가 나왔다.
산채 튀김 등 산나물 요리가 많았지만 평소에 맛있는 걸 먹지 못하는 우리 빈곤 학생들에겐 전부 다 분에 넘치는 요리뿐이라 둘이서 몇 번이고 밥을 더 달라고 했기에 히로코 씨가 황당해했다.
스승은 마지막에 밥그릇에 남은 밥에 차를 따라서 배추 절임을 얹어서 싹 긁어 먹었다.
그리고 겨우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젓가락을 두었다.
술이 나오지 않아 스승은 그게 좀 불만이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된다.
잠시 때를 보아 여주인이 방으로 돌아왔다.
"어떠셨나요."
그렇게 묻기에 둘 다 요리를 칭찬했다.
온천지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이 땅에서 여관을 3대에 걸쳐 이어올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부가 가치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시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스승이 말투를 고쳐서 여주인에게 물었다.
"네."
여주인은 히로코 씨에게 빈 그릇을 치우도록 하고 옷자락을 깔끔하게 정돈한 뒤 테이블 옆에 정좌했다.
그 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방석 위에서 다시 정좌로 고쳐 앉았다.
스승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가부좌를 튼 채로 여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와카미야 신사는 이 앞에 있는 저수지를 만든 타카하시 나가오키가 권청한 신사인가요."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타카하시 가문은 그 후 아들 대에서 다른 전국무장에게 침공당해서 멸망한 모양이다.
그 이후 이 땅은 토쿠가와 막부가 열릴 때까지 몇 번이고 지배하던 무장이 바뀌었다고 했다.
술술 말을 하는 여주인의 말투에서 상당히 풍부한 교양이 들어 있었다.
감탄하면서 듣고 있으니 스승은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한 후에 화제를 바꾸었다.
"이 뒷산에 혹시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지 않나요?"
여주인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방금 전에 산에서 돌아와서 꽝이라고 말해놓고서는 결국 물어보는 건가.
게다가 이 방에서 이야기를 하면 주객이 전도된다느니 어쩌니 말한 주제에 벌써 귀찮아진 걸까.
반쯤 어이없어 하면서 스승과 여주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네. 제가 어렸을 적부터, 벌써 30년 이상 되었을까요, 이 부근에 엄청 큰 비가 내린 적이 있어서..."
그치기는커녕 더더욱 세차게 내리는 비에 어린 나이였음에도 큰일이 일어났다는 걸 치요코는 알았다.
그날 큰 비로 인해 토카노에 손님은 없었으나 여관 안을 모두가 쿵쾅쿵쾅 안절부절못하게 돌아다녔다.
저녁 무렵에는 아버지랑 아직 건재하셨던 할아버지가 안색을 싹 바꾸고 뒷산을 보고 오겠다며 비옷을 걸치고 나갔다.
다른 집에서도 어른들이 빗속에서 나와서 산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현관에서 밖을 보고 있으니 폭포처럼 굉음을 내면서 쏟아지는 빗속에서 "강에는 다가가지 마라."라고 누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갑자기 산사태 소리가 으르렁거렸다.
그건 귀를 막아도 들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무너졌잖아."
남성 종업원이 그렇게 소리치면서 빗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버지랑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서 치요코 자신도 밖으로 나왔다.
양동이를 뒤집은 것처럼 굵은 빗방울이 끊임없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 빗속을 그녀는 비옷도 입지 않고 달렸다.
시야는 나쁘고 한손을 이마에 대어도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산속에서 어른들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너졌어."
"위험해."
그 중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 목소리도 있었기에 치요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심하고 나니 들키면 혼날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빨리 돌아가자고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갑자기 벚나무가 떠올랐다.
지류 제방에 있는 그 벚나무다.
제방 벽면에서 비스듬히 나 있어서 침수했을 때는 뿌리가 물에 잠기지 않을까 늘 걱정했다.
저도 모르게 강 쪽으로 향했다.
내리는 빗속에 벚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이 근처에 있을 텐데.
떠내려간 것일까.
제방에 다가가서 강 쪽을 바라보니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탁류가 꿈틀대며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무서워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빗소리랑 격류 소리로 귀가 따갑다.
납 같은 빗방울이 온몸을 때리면서 맹렬한 물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좁은 시야 한켠에 이상한 게 보였다.
엄청난 속도로 흘러내려가는 진흙물 속에서 새까만 동물이 보였던 것이다.
그 몸통은 무척이나 길고 한없이 구불대며 탁류를 타고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뱀이다.
그것도 몸통이 한 아름은 될 것 같은 엄청나게 커다란 뱀.
그 몸을 미친 듯이 꿈틀대면서 호우와 탁류 속에서 흘러내려간다.
숨을 집어삼키고 그걸 지켜보았다.
저 멀리서 그 모습이 사라져도 당분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곳에 뭘 하는 거냐."
어느새 다가온 할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손을 잡았다.
끌려가면서 토카노로 가던 중에 치요코는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뱀이, 뱀이..."
할아버지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꾸짖었다.
"이상한 말 하지 마라."
토카노에 돌아오니 할아버지가 여기는 위험하니 초등학교로 피난하라고 선언하고 모두 빗속에서 도망쳤다.
그러는 동안 치요코 머릿속에서는 꿈틀대는 대사(大蛇)가 강을 흘러내려가는 모습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다.
이야기를 끝낸 여주인은 정신이 번쩍 든 듯 덧붙였다.
"이상한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어릴 적에 보았던 환상이에요."
스승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다행히도 산이 무너진 건 강쪽뿐이어서 여관 쪽은 괜찮았습니다. 그 후 관청이 위탁한 파견 회사에서 조사를 해본 결과 이후 만에 하나 산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역시 이 토카노 쪽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안심해 주세요."
착실히 설명을 덧붙인다.
빈틈이 없는 사람이다.
하긴 나쁜 소문은 어디서 퍼질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그 산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역시 뒷산에는 신사 관련 건물은 없었나요?"
"네. 없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은 그렇게 말하더니 여주인 할아버지나 선대인 아버지가 어떠신 분이셨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물론이지만 부친도 모친도 이미 타계했다.
그리고 데릴사위인 여주인의 남편 즉 카에데 부친도 10년 정도 전에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난 모양이다.
스승은 이 토카노 가문 사정을 대강이나마 듣고 만족한 건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오늘 밤은 저랑 이 조수가 밤중에 불침번을 서며 조사하겠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다 자고 나면 여태까지 신주 유령이 많이 목격된 곳을 중심으로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혹시 그 전에 나타난다면 일단 바로 저에게 알려주세요."
"종업원들에게 전부 그렇게 지시할 테니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여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차를 끓여온다고 여주인이 방을 나간 후에 스승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건 장지뱀이야."
장지뱀?
왜 여기서 장지뱀이 나오는 걸까.
그 뜻을 물어봐도 스승은 얼버무리듯이 "자자, 욕탕에 들어가자."라고 손뼉을 칠 뿐이었다.
"저기, 저 사람 남친이야?"
"아니야."
"거짓말."
"진짜야."
......
그런 목소리가 머리 너머로 들려온다.
노천탕이었다.
카즈오 말대로 넓고 좋은 탕이었다.
그런 곳을 혼자서 독차지하다니 기분이 떨떠름했다.
바위에 머리를 대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쏴 물을 뿌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머리 너머에는 대나무로 만든 벽이 있고 그 너머에 여성용 노천탕이 있다.
김이 밤하늘로 올라가고 맑은 하늘에 걸린 별을 슬쩍슬쩍 가린다.
추운 하늘 아래 얼굴은 차가운데 몸만은 따뜻하다.
평소에는 샤워만 하고 탕에 몸을 담그지 않지만 이건 이거대로 좋다.
"얘, 진짜로 남친 아니니?"
"진짜야."
주르륵 미끄러져서 그대로 머리 끝까지 탕 속에 담갔다.
머리 끝까지 뜨거워진다.
"남친도 아닌데 여행하는 거야?"
"왠지 그쪽이 더 엉큼해."
그런 목소리가 물을 통해 들려온다.
스승은 아까 보았던 여성 손님 4명과 친해진 것 같다.
스승은 지금 24살일 테니 동년배인가.
탕 속에 잠겨서 홀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스승은 별로 어른이라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어린애가 그대로 커진 것 같다.
생물학상으로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아홀로틀이나 도롱뇽이 이런 부류던데...
아, 그래. 네오테니, 유형성숙이다.
뭐, 스승이 어려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그 성격 때문이겠지만.
머릿속에서 도롱뇽이 꾸물꾸물 변해서 도감에서 보았던 장지뱀으로 변했다.
이건 장지뱀이야.
탕에서 얼굴을 내밀고 스승이 한 말을 곱씹었다.
여주인이 보았다던 큰 뱀은 대체 뭐였을까.
그 지류에는 그러한 '주인'이 있다는 전승은 딱히 없었을 것이다.
그럼 대체 뭐지?
호우.
산사태.
대사(大蛇).
그 뒷산에서 스승이 발견한 돌에 새겨진 이상한 비우머리 한자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것은 신주 유령이 나오는 사건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또 여탕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했어?"
"안 했어."
"거짓말."
"진짜야."
동요한 나머지 바닥을 짚었던 손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첨벙 소리가 났다.
"얘, 옆에 들리잖아."
벽 너머로 목소리가 들리더니 깔깔 웃음소리가 뒤를 잇는다.
이제 나가자.
나는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노천탕을 나왔다.
문을 열고 대욕탕 쪽으로 돌아오니 머리가 벗겨진 부친과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들이 몸을 씻고 있었다.
다른 가족 손님이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탈의실로 갔다.
안 나왔네.
카즈오는 노천탕에서 신주 유령을 보았다고 했지만 모습도 안 보이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복도를 나와서 '탕(湯)'이라고 적힌 포렴 앞에 둔 긴 의자에 걸터앉아 탕을 나오기 직전까지 달아오른 몸을 식혔다.
잠시 그렇게 멍하니 있으니 스승과 같이 여성 손님들이 다른 쪽 붉은 포렴 밑에서 우르르 나왔다.
"아, 역시 있다."
뭐가 역시냐.
여성들은 저쪽에 탁구대가 있으니 탁구 치지 않겠냐고 권해왔다.
아, 좋네.
탁구는 오랜만이다.
온천에 오면 왜 이렇게 탁구를 하고 싶어지는 걸까.
그렇게 시끄러운 공간을 수건을 가득 실은 짐차를 밀며 칸스케 씨가 지나간다.
노려보는 것 같은 매서운 눈초리를 하며 우리 옆을 지나간다.
'댁들 놀러온 거냐!'
그렇게 책망하는 것 같았다.
"아, 응, 우리는 사양할게. 그치?"
스승이 그렇게 말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까 부탁한 대로 요괴가 나타나면 알려줘."
스승은 여성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나를 끌고간다.
그 후로 우리는 또 여관 안을 관찰하며 돌아다녔다.
안뜰이나 뒤에 있는 주차장도 보았지만 낮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번 스승의 방으로 돌아왔다.
우연히 쇼기판을 발견했기에 둘이서 신나게 두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신주 유령이라는 건 대체 뭘까요."
"글쎄다.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겠어."
"그 돌에 적혀 있던 한자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요?"
"글쎄다."
스승은 계속 얼버무리면서 정보를 숨겼다.
명백히 뭔가 파악한 것 같지만 늘 그렇듯이 감질을 낸다.
"야, 이거 물러."
"벌써 2번째라고요."
"됐으니까 물러."
한숨을 쉬면서 스승이 은(銀)을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걸 지켜보았다.
승부가 달아올라서 스승이 무릎을 세우고 몸을 앞뒤로 흔든다.
그러고 있으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답을 하니 히로코 씨가 쟁반에 케이크를 올려서 가지고 왔다.
"남았으니까 줄게."
그리고 자신은 이제 잘 테지만 힘내라고 말하고 떠나갔다.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두 조각.
스승은 정수리부터 반으로 잘린 산타클로스가 얹어진 조각을 들고 갔다.
머랭이 딱딱해서 자를 때 상당히 힘을 준 건지 산타클로스 몸이 케이크에 푹 파묻혀 있었다.
스승이 홍차를 끓여 건배를 권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쯤 마을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을 빨강과 하양 두 색과 다른 수수한 방 안이지만 조금 크리스마스 기분이 났다.
나는 히로코 씨에게 감사했다.
케이크를 다 먹은 뒤 스승은 말했다.
"먼저 자. 아침까지 교대로 불침번을 설 테니까."
시계를 보니 9시였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5시간이 스승 차례고 2시부터 아침 6시까지 4시간이 내 차례인 셈이다.
"저는 그냥 밤을 새도 괜찮아요."
"하룻밤만에 끝날 거라는 보장은 없어. 됐으니까 먼저 자."
"알겠어요. 그치만 왜 제 차례가 6시까지인가요?"
"여기서는 시종이 울린다고 했잖아."
그러고 보니 물으러 다닐 때 누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저수지를 보러 갔을 때도 그 종소리가 울렸다.
지금처럼 시계가 없었던 시대에는 서민들에게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 종을 울렸다.
절이나 신사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종을 치는 것이다.
아케무츠(明け六つ=아침 6시)라면 6번, 히루코코노츠(昼九つ=정오)라면 9번처럼.
그걸 듣고 사람들은 일이나 생활을 구분했다.
예를 들어 낮에 8번 종이 울리는 히루얏츠(昼八つ)라면 현재로 따지자면 오후 2시 무렵인데 그 종을 듣고 휴식을 취하고 그 사이에 피로를 회복하게 위해서 달콤한 걸 먹는 습관이 있었다.
이게 요즘 말하는 간식(오야츠)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 한다.
이 마츠노키에서는 와카미야 신사에 시종이 있어서 요즘도 하루 중 아케무츠, 히루코코노츠, 쿠레무츠 총 3번 시각을 알린다고 한다.
각각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시에 그 종소리가 토카노에도 들려온다.
"이러한 경계를 나타내는 것은 오래된 영혼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스승이 말한다.
해가 질 무렵을 타소가레(誰そ彼=누구인가, 그는)라고 해서 건너편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어둡고 불안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이매망량이나 악귀가 활보하는 밤의 세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똑같이 해가 뜰 무렵에도 카하타레(彼は誰=그는 누구인가)라고 해서 건너편에 서 있는 게 누구인지 분간이 안 가는 불안한 느낌을 나타내는데 그것 또한 밤에 사는 인외들이 지배하는 시간과 낮에 사는 인간들이 지배하는 시간의 경계에 위치하는 시간대인 것이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물러가는 귀신 얘기를 들어본 적 있지?"
그건 닭 울음소리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밤과 낮의 경계를 넘어 버리는 걸 알고 귀신이 도망치는 것이다.
따뜻한 물을 새장 안에 부어 억지로 닭을 깨워서 울게 하면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귀신을 쫓아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닭 울음소리 역할을 하는 것이 이 땅에서는 아케무츠 종인 셈이다.
"종이 울린 아침 6시 이후로는 안 나올 거야. 오늘 모아본 목격담을 살펴보아도 쿠레무츠보다 전에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나오는 건 쿠레무츠부터 아케무츠 사이.
즉 토지 관습에 호응한 오래된 영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반상에 막히고 만 자기 왕장(王将)을 손톱으로 튕겼다.
"아무튼 이제 자. 2시가 되면 깨우러 갈 테니까."
그렇게 쫓겨난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이를 닦고 깔아놓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꺼진 방 현관문에서 작게 노크를 한 뒤 스승이 얼굴을 내밀고 툭 내뱉었다.
"오늘 밤은 안 나올지도 몰라."
"네?"
무슨 말인지 물어보려고 하니 "그럼 순찰갈게."라고 말하고 슬며시 문을 닫았다.
얼마나 잤을까.
오랫동안 전철을 타고 여관 안을 돌아다니고 산을 올라 오늘 하루 피곤해진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은 순간 잠에 빠졌다.
조용했다.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으나 어느샌가 머나먼 땅에 있는 여관 한 칸에 드러누워 있는 자신이 있다.
몸이 무겁다.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조용하다.
그리고 어둡다.
난방은 틀어져 있다. 방 안이 부드러운 온기로 덮여 있다.
하지만 밖은 차가울 것이다.
차가운 공기가 건물을 움켜쥐는 것 같은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몇 시일까.
교대 시간은 아직일까.
또 졸음이 밀려온다.
조용하다.
천장이 높다.
낯선 천장이다.
여기는 어디냐.
누가 있다.
방 구석에.
누가 서 있는 걸 알 수 있다.
조용하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그리고 토해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누굴까.
드러누운 채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무겁다.
돌을 올려둔 것 같다.
방 안에는 나밖에 없다.
그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서 있다.
목을 움직이려고 했다.
방 구석을 보기 위해서.
무겁다.
기름칠이 덜 된 기계 같았다.
목 관절 사이에 자그만 티끌이 잔뜩 낀 것 같았다.
어째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걸까.
툭.
머리가 떨어졌다.
그런 것 같은 소리가.
삐걱.
구석에서 한 발자국 내딛는 소리도.
툭.
또 머리가 떨어졌다.
삐걱.
또 한 걸음.
툭.
삐걱.
툭.
......
다가온다.
그때마다 머리가 떨어진다.
떨어진 머리가 바닥 위를 기듯이 굴러간다.
이불 끝을 누가 밟았다.
툭.
이불 위에 뭔가가 떨어졌다.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반대로.
반대로 움직여라.
보고 싶지 않다.
고개를 돌리고 싶다.
보고 싶지 않
"야."
누군가가 내 몸을 난폭하게 흔든다.
"아."
눈부시다.
인공 조명이 눈을 파고든다.
스승의 얼굴이 보인다.
"교대 시간이야."
그런 말이 들린다.
눈을 떴다.
여관 방이다.
자고 있었던 건가.
"잠 깨. 차라도 마시고."
이불에서 몸을 일으켜서 스승이 끓여준 김이 나는 따뜻한 차를 마셨다.
하아.
머리가 맑아진다.
아까 그건 꿈인가?
꿈이라고 한다면 그건 자각몽이다.
경험상 그런 꿈은 지쳤을 때 자주 본다.
그리고 그건 대체로 악몽일 때가 많다.
"누구 방에 없었나요?"
"아니."
스승은 졸린 듯이 하품을 하더니 깊이 숨을 쉬면서 자겠다고 말한다.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넘었다.
"추워."
그렇게 말하며 스승이 내 이불로 들어온다.
"조, 좀..."
"뭐가 좀이야. 얼른 나가."
내가 당황하니 스승이 이불 속에서 걷어찬다.
"자기 방에서 자세요."
"시끄러워. 아까까지 현관과 밖을 돌아다니느라 춥다고. 이불 데워두어서 수고."
쉿쉿 손사레를 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크게 기지개를 폈다.
"뭔가 나왔나요?"
"아니."
나는 한숨을 쉬었다.
스승이 불침번을 서는 동안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유카타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니 이불 속에서 스승이 말을 걸었다.
"그치만 여기에는 뭔가가 있어."
엇, 뭔가 느끼셨나요.
그렇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후, 하고 이불 속에서 지친 듯한 한숨이 들려와 대화가 중단된다.
채비를 갖추고 문을 열려고 할 때 "조심해."라고 졸린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나오니 기온이 내려갔다.
방보다 난방을 약하게 튼 것 같다.
천장에 있는 커다란 형광등은 꺼졌지만 그 옆에 있는 자그만 노란 전구가 켜져 있다.
맨발로 슬리퍼를 신어서 발등에 냉기가 달라붙는다.
2층은 전부 방이 6개 있다.
오늘 밤은 나랑 스승만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을 위해서 남은 방들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려 보고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전부 다 잠겨 있다.
복도를 지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층계참에서 목만 빼고 복도를 내려다보니 그 너머에 있는 어두운 복도에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레 밑으로 내려가서 이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1층에는 사무실 안쪽에 종업원들이 자는 수면실이 있지만 이구치 부녀는 본관 옆에 있는 별채에서 살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본관 바로 뒤에는 토카노 가문 주택이 붙어 있어서 여주인이나 카에데는 거기서 자고 있었다.
옛날에는 가족이 많았지만 둘 있다던 여주인의 동생들도 각각 독립해서 집을 나가 버렸기에 4년 전에 카에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모녀 둘이서만 살고 있다고 한다.
사무소 안을 들여다보니 전화기에 붙어 있는 FAX가 수신 가능 상태로 녹색 램프를 빛내고 있다.
멀리서 환기구를 돌리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대욕탕 쪽이리라.
그쪽도 보러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서 나중에 하자고 현관 로비에 있는 소파에 걸터앉으니 그대로 일어나기 싫어졌다.
신기한 일이다.
요 4월에 평범한 학생 생활을 막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샌가 이렇게 먼 곳에 있는 온천 여관에 묵으러 와서는 심야 아무도 없는 현관에서 정체불명이 나오는지 감시하고 있다.
난방을 시간대 별로 낮추고 있는 건지 추위를 느끼면서 감상에 젖어 있으니 갑자기 현관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서 조심스레 현관 자동문에 걸린 커튼 틈새로 밖을 엿보았다.
현관 부지 안에 키가 큰 가로등이 둥근 불빛을 내는 그 밑에서 누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동문은 전기 스위치가 꺼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오늘 밤만은 잠금을 해제해 놓았을 것이다.
두꺼운 유리 2장이 붙어 있는 그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힘을 주니 문이 수동으로 열렸다.
순간 냉기가 얼굴 쪽으로 불어온다.
지나가려던 사람이 움찔하며 멈춘다.
"카에데."
상대는 스쿠터를 밀면서 걷는 도중이었다.
"와, 깜짝이야."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던 건가.
벌써 시간이 2시 반인데.
"오늘 밤은 불침번이야? 그 사람은?"
"교대로 서고 있어. 지금은 방에서 자고 있지."
옆으로 다가가니 술 냄새가 난다.
"음주운전..."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위표를 만들자 카에데는 웃었다.
"고지식하게 굴지 마."
그 후로 소리를 낮춰서 잠깐 대화를 했다.
오늘 밤은 꽤나 즐겁게 논 모양이다.
그러다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불쑥 물어보았다.
"카즈오를 어떻게 생각해?"
여주인은 노골적으로 둘을 이어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카즈오 자신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중대한 이벤트 날에 여성 친구들과 노는 걸 우선하는 그녀는 대체 무슨 심정인 걸까.
카에데는 잠깐 고민하더니 툭 내뱉었다.
"카즈 오빠는 너무 고지식해."
뭐, 요즘 남자들 치고는 드물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에 낀 장갑을 하나씩 빼낸다.
"좀 더 세게 나가야지. 오늘 같은 날도..."
그렇게 말했다가 아차 하는 얼굴을 했다.
"뭐, 그 형인 오사무 오빠보다는 그나마 낫지만."
그럼 안녕.
그렇게 말하고 손을 흔들더니 카에데는 스쿠터를 밀고 여관 뒤쪽으로 사라졌다.
앞길과 똑같이 포장되어 있기에 길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장사를 하고 있기에 심야에 귀가할 때는 손님들이 깨지 않도록 앞길에서는 엔진을 끈 것이리라.
취했다고 해도 몸에 밴 습관이 있는 법이다.
꽤나 성실한 애로 보인다.
그건 그렇고 아주 마음이 없는 건 아니구나 카즈오에게.
나는 잠시 거기 서서 주변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걸 확인한 뒤에 여관 안으로 돌아갔다.
난방은 약하지만 건물 안은 추운 밖과 비교하면 당연히 천지 차이이다.
따뜻한 공기가 주변을 감싸고 얼마 없는 조명만이 로비에 있는 의자나 장식품을 어둠 속에서 비추고 있다.
아까랑 뭔가가 다르다.
멈춰 선 나는 고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이 기척은 뭐야?
숨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도.
정지한 이형도.
대욕탕 쪽으로 갔다.
주머니에서 펜라이트를 꺼내어 스위치를 켰다.
포렴을 넘어서 탈의실, 욕탕, 노천탕을 차례로 지나갔다.
모든 출입구는 전부 열려 있었다.
스승도 모두가 잠이 든 후에 이 근처도 전부 둘러본 걸까.
부웅.
환기구 소리가 호흡과 섞인다.
노천탕에 있는 탕은 아직 따뜻하고 김이 추운 공기 안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새까만 화분 그림자가 그걸 둘러싸고 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목욕탕을 나와서 객실로 가는 복도를 발소리를 죽여서 걸어갔다.
창문 너머로 안뜰이 보인다.
어떤 곳이든 신주 모습을 한 유령이 나타난다고 했다.
거의 넓지 않은 이 한적한 여관에서 너무나도 목격담이 많았다.
이래서는 찾기가 어렵다.
어디를 중점으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으니까.
장소가 아니다.
장소에 씐 건 아니다.
그럼 대체 뭐에 씐 걸까?
나는 숨을 죽이면서 로비로 돌아왔다.
중간 정도에 위치한 테이블.
그 의자에 걸터앉아서 현관문 쪽을 보았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뭔가가 있다.
꿈틀대는 기척이 그래도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연기나 김 같은 모습으로 여관 안을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자세 그대로 나는 굳어서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흘러갔다.
아침은 아직 오지 않는 건가.
어느샌가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밖은 아직 어둡다.
아직은 밤을 사는 주인들의 세상.
이계에 도사린 자들...
......
있다.
누가 복도 구석에 서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건 알 수 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소리도 내지 않고 말도 걸지 않고 조용히 그것은 서 있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꿈속 같다.
깨어난 줄 알았던 그 꿈속.
아니, 자신은 정말로 그 이후 깨어난 걸까.
실은 계속 몸은 그 방에 있는 이불 속에 있는 건 아닐까.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는 자신은 누구냐.
아, 사고가 뒤죽박죽이다.
누구냐.
자신은 아니다.
서 있는 건 누구냐.
움직였다.
다가온다.
로비 구석 어둠에서 그것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소리는 없다.
내딛는 발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 도중에 내가 있다.
현관문을 향해서 앉아 있는 내가.
기척은 사라지지 않는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뭔가가.
그 예감이 마음속에서 팽창한다.
그리고 그것이 터지려고 하는 순간 내 귀는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다.
종소리.
아득히 그리고 늘어지는 것 같은 희미한 파동이 메마른 공기를 진동시킨다.
아케무츠다.
경계를 넘은 것이다.
아침 6시에 울리기로 약속된 이 토지의 시종은 이 겨울에는 카하타레(彼は誰) 여명보다 빨리 울렸다.
아니, 밖으로 나가면 산 끝자락 하늘은 밝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관에 커튼을 쳐둔 로비에서는 그 미묘한 시간 이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케무츠다.
틀림없이 인간과 괴이의 세상을 구분하는 틈새가 끝난 것이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종소리는 이어졌다.
2번째.
그리고 그 여운이 사라진 후에 3번째가.
그걸 세면서 나는 돌아보려고 했다.
아까까지 뒤에서 느껴지던 기척은 이미 사라지...
그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사라지지 않았다.
기척은 바로 뒤까지 와 있었다.
털이 곤두서는 공포가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볼펜 끝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갈겨쓴다.
스...스테가네(捨て鐘)다!
왜 잊고 있었던 걸까.
나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아케무츠 종을 6번 치기 전에 이제부터 시각을 알린다는 예고로 울리는 종이 있었다.
3번 스테가네.
즉 아케무츠는 종을 9번 울리는 것이다.
그 첫 3번은 아케무츠보다 전 즉 경계상에 있는 시각.
그것이 다 울릴 때까지는 인간이 지배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출렁거리는 틈새에 속한다.
뒤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기척이 느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뭔가가 지나갔다.
종소리.
4번째.
그 순간 뒤에서 느껴진 기척은 그대로 내 몸을 통과해서 사라졌다.
아케무츠가 시작되자마자.
그 기척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사라지면서 현관밖으로 가는 걸 느꼈다.
그 기척이 지나간 부분은 체온이 송두리째로 빼앗긴 것 같았다.
아니 체온뿐만이 아니다. 생기라고 해야 하나 기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야금야금 깎여나간 것 같았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9번째 종소리를 다 듣고서도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의자에 걸터앉은 채 오한이 온몸을 휘도는 걸 그저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야."
느닷없이 누가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스승이 어느샌가 숨을 헐떡이면서 뒤에 서 있었다.
"나왔냐?"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은 혀를 차더니 주위를 경계하듯이 둘러보았다.
스승은 그 기척을 느끼고 이불 속에서 뛰쳐나와 그대로 달려온 걸까.
"신주냐."
"아마도요."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에 진짜 아케무츠가 시작하자마자 사라지는 그 순간.
신주가 입는 것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게 보인 것 같았다.
그걸 더듬더듬 설명했다.
"그렇군.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줘. 일단 넌 방에서 쉬어."
휭휭 가슴 한가운데에서 몸 안에 있는 공기가 빠져나가는 착각이 들었다.
"괜찮아. 통과한 것뿐이지? 습격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말하면서 스승은 바지 주머니에서 금속으로 만든 얇은 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접은 종이를 집어든다.
"이거 먹고 자."
열어 보니 안에는 가루약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이게 뭔가요?"
한방약인가?
"말하면 플라시보가 안 되잖아."
자기가 말해 버렸잖아...
위약이라고.
아무튼 나는 그 약을 받고 스승이 컵에 따라준 물과 같이 마셨다.
쓰지만 왠지 한기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한결 나아져서 간신히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현관 불이 켜지며 여주인이 인사랑 함께 안쪽 방에서 얼굴을 내민다.
나는 모기소리처럼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을 한 뒤 스승이 여주인에게 뭐라 말을 거는 걸 뒷전으로 계단을 올라가 자기 위해서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