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097845
그로부터 우리는 둘이서 온천 여관 타나카야를 필두로 그 근처에 있던 다른 온천을 돌아다녔다.
어느 온천도 입욕뿐인 손님이라도 환영해 주었다.
입욕비를 지불하고 몸을 씻은 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온천 사람들을 붙잡고 토카노 소문을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무난한 대답만 하던 종업원도 끈질기게 물어보자 썩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점점 입을 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목소리를 낮추고 토카노 관련 소문을 흘리기 시작했다.
역시 여관끼리 사이가 상당히 나쁜 모양이다.
개중에는 그 유령 소동 얘기도 있었다.
"저주받았대요."
2번째 '마츠노키 온천 여관'에서는 여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귀뜸을 해주었다.
듣자하니 토카노 초대 경영자가 그 땅을 살 때에 거기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사당을 부수었기에 그런 재앙을 당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왜 신주가?"
"그야... 뭐 여기서 나가라는 뜻이겠지요."
그건 생각도 안 해봤는지 적당히 얼버무리듯이 결론을 내려 버린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건물을 세우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가 별로 조사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거기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스승은 그런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얼굴로 듣고 있다.
온천에 너무 들어가서 몸이 퉁퉁 불기 시작할 무렵 3번째 여관을 나오면서 스승이 말했다.
"좋아. 이제 돌아가자."
"괜찮나요? 이 너머에 하나 더 있는데."
"나는 이제 됐어. 아직도 들어가고 싶다면 나 먼저 간다."
"아뇨, 저도 돌아갈래요."
어느 온천 여관도 토카노를 좋게 여기지 않는 건 틀림없었다.
유령 소동도 소문에 편승에서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는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소동의 핵심을 꿰뚫는 증언은 얻지 못했다.
스승은 그걸 아쉽게 여기지도 않고 살짝 상기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면서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있다.
우리가 여관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뺨에 툭 물방울이 떨어졌다.
어느샌가 하늘이 흐려져 있었다.
"비가 내릴 것 같군. 서두르자."
스승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손바닥으로 비를 받는 시늉을 했다.
둘이서 왔던 길을 전력으로 달려왔지만 점점 빗줄기가 굵어져서 토카노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가랑비가 줄줄 내리게 되었다.
"아, 진짜."
자전거를 주차장에 돌려놓고 스승이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투덜거렸다.
모처럼 온천에 들어가서 몸을 데우고 았는데 찬 겨울비 세례를 받아 버렸다.
그래도 소매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둘이서 나란히 걷고 있으니 그건 그거대로 왠지 즐겁다.
"지금 몇 시야? 4시 무렵인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네."
스승은 그렇게 말하면서 현관 로비로 간다.
"시간이라니 무슨 시간이요?"
"뻔하지. 쿠레무츠 말야."
기대하던 대결 시간이다.
스승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쿠레무츠인가.
나는 오늘 아침 아케무츠 때 일어난 무시무시한 사건이 자연스레 떠올라 다리가 떨려왔다.
로비 프런트에는 히로코 씨가 서서 장부에 뭔가 적고 있었다.
"아 어서 와. 비 내려?"
"보시다시피."
스승은 웃으면서 양팔을 벌리고 젖은 옷을 보여 주었다.
"여주인은?"
"대욕탕 쪽에 있을 거야. 미장이가 와 있으니까."
"그렇구나. 오 고마워."
히로코 씨가 건네준 수건을 받았다.
그 히로코 씨는 과장된 몸짓으로 스승에게 귀엣말을 하는 시늉을 했다.
"얘 우리 아빠 상당히 화났어. 너희가 다른 온천에 간다고 들었더니 분화 직전이야."
들었다니 그걸 일러바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잖아.
"무셔. 필요한 정보 수집 활동인데."
스승은 그렇게 태연자약하게 말했지만 나는 목을 움츠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칸스케 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그래. 그 정보 수집으로 얻은 건데 이 여관이 세워지기 전에 이 땅에 사당이 있었다며?"
히로코 씨는 그걸 듣고 어리둥절하다가 마침내 "아~" 하고 생각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당 말이지? 낡아빠진 거. 주차장 뒤편에 있었는데 그게 아마 여관 세울 때 장소를 옮겼을 거야."
주차장 뒤쪽에 있는 사당이라면 어제 돌아다닐 때 본 것 같다.
안에 돌이 모셔져 있었을 것이다.
"한 번 더 보고 올게."
스승이 그렇게 말했기에 나도 따라갔다.
빌린 우산을 쓰고 가랑비가 내리는 여관 밖으로 나가서 주차장 쪽으로 향한다.
그 부지 구석에 허름한 목조 사당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들여다보니 자그만 시데가 달린 격자문 너머로 돌이 안치되어 있었다.
(시데 : 금줄 등에 다는 종이.)
무얼 하나 지켜보고 있으니 스승이 느닷없이 그 격자문에 손을 뻗어서 열었다.
그리고 멋대로 돌을 집어꺼낸다.
시데가 달린 격자문은 신역과 외계를 나누는 경계다.
그 의미를 알면서도 태연히 그걸 깨다니 이 사람답다.
언젠가 이 사람이 죽어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악령이 된다면 막을 수단은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자가 적혀 있군."
들여다보니 돌 표면에 자그만 글자가 몇 행에 걸쳐 새겨져 있다.
이끼가 끼고 오래된 글자체라 거의 읽을 수 없었지만 간신히 토카노라는 히라가나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흠흠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승은 돌을 돌려놓았다.
스승은 읽을 수 있었던 걸까.
"뭐라고 적혀 있나요?"
"신을 대신해서 이 땅을 지킨대. 신체로서 별로 드문 건 아니야."
별로 시간이 없구나.
스승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현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프런트 근처에서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던 히로코 씨에게 전화를 빌리겠다고 말한다.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친구 집마냥 프런트 안쪽에 있는 사무소로 들어간다.
스승은 가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그걸 보면서 다이얼을 돌렸다.
"오, 교수? 난데. 어제 부탁한 거 알아냈어? 어?"
목소리가 잘 안 들린 건지 전화기 음량을 올리면서 스승이 계속 말한다.
"응응. 아 신사명세장이나 신사 취조 같은 건 이제 됐어. 따로 알아냈으니까. 그래서 오래된 쪽은 어때? 응응.... 있었어? 진짜로? 연희식에 있었어? 엇 지지(地誌)? 응응... 연희식 팔십오좌는 기나이뿐이던가. 그렇구나. 역시 시키나이사잖아. 그치만 역시나. 그런 귀찮은 곳에 숨어서 어떻게든 되다니."
(연희식 : 헤이안 시대 중기에 편찬된 법전.)
(기나이 : 옛날 수도권 주변 부근.)
(시키나이사 : 연희식 신명장에 기록된 신사.)
목소리가 커질 즈음에 가까이 다가온 나를 깨닫고 스승은 쉿쉿 손을 저어 쫓는 시늉을 하더니 전화기를 가리듯이 등을 돌렸다.
어쩔 수 없이 좀 떨어졌다.
스승이 목소리를 낮추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마도 상대방은 우리 대학 나가노(長野) 교수라는 건 추측할 수 있었다.
신도나 신사에서 일가견을 가진 대가였다.
지도 교관도 아닌데 스승은 그 나가노 교수랑 평소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배움을 청하고 있고 나쁘게 말하면 좋을 대로 이용해 먹고 있었다.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모르지만 거의 반말로 일관하고 있다.
보는 내가 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마음에 걸려서 귀를 기울이니 몇 가지 단어가 들어왔다.
여주인.
신사.
나머지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고마워. 답례는 언젠가 정신적으로 갚아줄 테니까."
스승은 머리를 가볍게 숙이고 수화기를 두었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기지개를 폈다.
"순조롭구만."
뭐가 순조로운지 모르는 나는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여주인이 어쨌는데요?"
유난히 대화에서 여주인이 많이 나온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고 자시고..."
범인이야.
그렇게 속삭인 뒤 스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자, 준비 준비."
그리고 나를 재촉한다.
영문도 모른 채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항의할 때 아까 막 끊은 전화가 울린다.
틈을 두지 않고 스승이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난데 뭔가 잊었어? ...아차. 죄송해요. 잘못 봤습니다. 맞습니다. 여관 토카노입니다."
여관에 걸려온 전화 같다.
스승이 황급히 정정한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집으로 걸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아서. 저기 카에데 있나요?]
젊은 여성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온다.
"아, 카에데 말이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말하면서 스승이 아까 올린 전화기 음량을 조절하니 상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히로코 씨. 카에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
스승은 프런트를 향해서 큰 소리로 확인했다.
"놀러가서 지금 없어요. 죄송합니다. 응응... 아, 그럼 말을 전해 드릴게요."
스승은 메모를 적는다.
"네? 저요? 새로운 종업원이에요. 유카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적당히 둘러댄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여쭈어 봐도 될까요."
스승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볼펜으로 적다가 갑자기 딱 움직임을 멈춘다.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할게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고 스승은 전화를 끊었으나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숙인 채 입꼬리를 씩 올리는 그 모습을 보고 타닥타닥 주변 공기가 새파랗게 타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 일이 너무 잘 풀리는데. 전부 맞추어졌어."
마지막 한 조각까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개비 같은 가느다란 빗줄기가 여관 지붕을 소리도 없이 때린다.
밖은 어둡다.
아직 6시도 안 되었지만 비구름이 하늘을 가려서 저녁노을 잔재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진 뒤에 더더욱 추위가 심해졌다.
요 일주일 중에서 제일 춥다.
나는 벌벌 떨면서 양팔을 끌어안고서 산책하던 안뜰에서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여관 안도 어제보다 더 쌀쌀하게 느껴졌다.
손님이 없기에 난방 설정 온도를 낮춘 모양이다.
손님에 해당하는 나랑 스승은 있었지만 칸스케 씨가 저 놈들은 손님이 아니라며 억지로 온도를 내린 건지도 모른다.
1층 안쪽으로 가니 연회장으로 쓰는 큰 방 앞에서 모두가 모여 있었다.
여주인인 치요코 씨, 지배인인 칸스케 씨랑 종업원인 히로코 씨 부녀.
여주인 딸인 카에데.
그리고 아까 카에데를 오토바이에 태워 데리고 온 와카미야 신사 차남 카즈오.
이 5명에다 나랑 스승을 포함해서 총 7명이 지금 이 여관에 있는 모든 사람이었다.
"뭐가 시작되는 건가요?"
카즈오가 내게 물어본다.
데이트는 제법 잘 된 모양인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카에데 쪽도 카즈오의 책략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럭저럭 즐거웠던 모양이다.
표정이 부드럽다.
"수수께끼를 풀겠다고 본인은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대답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닫힌 장지문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스승이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거들어서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지만 뭘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괜찮을까요."
여주인은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칸스케 씨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묵묵히 팔짱을 끼고 있다.
히로코 씨랑 카에데는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6시까지 앞으로 코앞이다.
쿠레무츠가 지나면 거기서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세상 이치가 조금 바뀐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간 세상 경계 밖이다.
특히 시종이 들리는 이 토지에서는.
나는 사무소에서 스승과 한 대화를 떠올렸다.
스승은 분명히 여주인이 범인이라고 말했다.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
유령은 진짜다.
조우한 나는 알 수 있다.
인간이 장난 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여주인이 이 유령 소동 범인이라는 걸까.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혹은 뭔가 유령이 나오게 된 원인이 있고 그 열쇠를 여주인이 쥐고 있다는 걸까.
슬쩍 옆에 있는 여주인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딸인 카에데랑 꼭 닮은 사람이다.
남편과 사별했지만 독신이 되고서 접근하는 남자가 몇 명은 있었으리라.
그 유혹을 거절하고 혼자서 여관을 경영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거기에 얼마나 굳은 각오가 담겨 있을까.
각오라.
갑자기 미장이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랑 스승이 온천을 둘러보고 돌아왔을 때 여주인은 미장이랑 대욕탕 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욕탕 벽을 고쳤다고 한다.
벽.
벽에 시체를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불길한 상상이 든다.
나는 고개를 젓고 냉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러고 있으니 우리 눈앞에서 닫힌 장지문이 천천히 열렸다.
"기다리셨습니다. 들어오세요."
스승이 신묘한 얼굴을 하고 왼손을 들어 안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모두가 들어오니 스승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큰 방 한가운데에는 금줄이 쳐져 있다.
사방 약 5제곱미터를 둘러싼 밧줄이 천장에 매단 실에 묶여 가슴 높이 부근에 떠 있다.
아까 둘이서 종이로 만든 시데도 같은 간격으로 붙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금줄은 결계 역할을 한다.
신역을 뜻하고 나쁜 것이 침입하는 걸 거부하는 경계.
일부러 와카미야 신사에서 빌려와서 그걸 지금 여기서 준비하는 의미가 뭘까.
"뭘 하려고 하는 건가요."
여주인이 스승에게 다가갔다.
"액막이라면 여태까지 전혀 효과가 없었는데."
"잠자코 보고 있으니 아주 기어오르는군."
칸스케 씨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팔짱을 풀었다.
드디어 폭발시킬 것 같았다.
의뢰를 한 여주인 앞에서 억눌러 왔던 불만을.
저도 모르게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좀, 아빠."
히로코 씨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상당히 위험한 분위기였다.
"조용히."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스승은 짧게 그렇게 내뱉더니 머리를 숙이고 금줄을 지났다.
"쿠레무츠가 시작될 때까지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 얼른 이 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한다.
"자자, 일단 말하는 대로 해요."
카에데가 스승처럼 금줄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따라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나도.
마지막으로 남은 칸스케 씨가 콧김을 뿜으며 그 자리에서 떡 버티고 서 있는다.
"빌어먹을 애송이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만."
그걸 본 카즈오가 농담 삼아 말했다.
"칸스케 씨. 금줄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아마도 위험할 거예요."
히로코 씨도 맞장구를 치며 손짓을 한다.
"위험하다고?"
스승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위험한 건 이 안쪽이에요."
그리고 바닥을 가리켰다.
모두 숨을 집어삼킨다.
바늘이다.
바닥 위에 바늘이 박혀 있다.
엄청난 양이다.
여주인이 준비한 바늘을 이런 식으로 쓸 줄이야.
나도 지금 알고 놀랐다.
"이 바늘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가 주세요. 넘어가도 상관없어요."
자세히 보니 바늘은 원을 그리듯이 박혀 있다.
사람 하나가 앉을 수 있는 크기다.
세어 보니 그 원이 금줄 안에 7개 있었다.
인원수만큼 만든 건가.
"이구치 씨는 그대로 밖에 있어도 괜찮아요. 다만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 금줄 안으로 들어오지 마세요."
스승은 바늘을 지나 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 긴장한 음색에 이끌리듯이 다른 사람들도 각각 바늘로 만든 원 안으로 들어간다.
칸스케 씨만은 흥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6명이 금줄 안.
1명은 밖.
방 안은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군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분위기로 가득 찼다.
"자, 슬슬 시작되려나요."
스승이 시계를 보면서 그렇게 말한다.
곧이어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맑은 겨울 공기를 진동시키며 와카미야 신사에서 들려오는 시종이.
10초 정도 사이를 두고 종소리는 계속된다.
2번째.
3번째.
첫 3번은 스테가네.
그리고 다음부터가 쿠레무츠다.
4번째.
5번째.
6번째...
실내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저 희미하게 들리는 시종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삼키고 있었다.
7번째.
8번째.
9번째...
마지막 종이 그치고 그 여운이 귓속에 남아 환상처럼 반사된다.
"자, 그럼."
스승이 입을 열었다.
제일 안쪽 원 안에서 홀로 이쪽을 향해 우리랑 마주보고 있다.
"쿠레무츠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저승의 시간입니다. 거기서 인간은 무척이나 약한 존재이지요. 이승의 주인이 아닌 것들이 슬쩍 만지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꺼져 버리는 약한 존재... 부디 조심해 주세요.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결코 당황하지 말고 이 바늘 결계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알겠지요?
스승은 속삭이듯이 그렇게 말했다.
모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왠지 나도 오싹해졌다.
스승이 감질을 내는 건 늘상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저는 이 온천 여관에 나온다는 신주 유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불렸습니다. 의뢰를 받은 시점에서는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여기에 와서 유령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으며 현지를 돌아본 뒤에 인상이 바뀌었지요. 여기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사람이 아닌 존재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나오지 않을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이틀 동안 노력했습니다.
먼저 1번째 힌트는 신주 차림.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지요. 하지만 이 지역에 유일한 신사인 와카미야 신사에서는 그런 유령과 전혀 무관했습니다. 궁사가 나서서 액막이를 해도 유령이 나타나는 걸 막을 수 없었지요. 절에 부탁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지간히 강한 원한을 품은 영일까요. 아뇨 뭔가 다른 것 같았습니다. 그 신주 유령은 여태까지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뭔가 하소연할 게 있는 걸로도 보이지 않았지요. 굳이 따지자면 흔히 볼 법한 약한 부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같은 건물에서 빈번하게 목격이 된다는 것은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집념이 느껴졌습니다. 알쏭달쏭했습니다. 실로 알쏭달쏭했지요."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도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얘기가 길어질 거라는 뜻이리라.
각자 편한 자세로 원 안에 앉았다.
"저는 신직이나 승려처럼 영을 쫓고 마를 퇴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에는 인과라는 게 있지요. 그 보이지 않는 인과의 실을 풀어내면 절로 해결로 향하는 길이 보이는 법입니다. 자 여러분."
스승은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여러분 중에 이 토카노에서 나타난 신주 유령을 보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조우하신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 주세요."
나는 손을 들면서 주변을 보니 모두 손을 들었다.
스승을 빼고서.
웃긴 건 금줄 밖에 있는 칸스케 씨마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뚱한 얼굴로 오른손을 슬쩍 든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뿜을 것 같다.
"좋습니다. 히로코 씨랑 칸스케 씨는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히 여쭈어보지 않았네요. 여기서 말씀해 주시겠나요."
그러고 보니 어제 모두 이야기를 듣고 다닐 때 히로코 씨는 보지 않았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건 거짓말이고 실은 목격했던 걸까.
"아니 나는 아마도 착각이라고 해야 하나 취사장에서 홀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스윽 뒤에서 누가 지나가는 기척이 느껴졌어. 어라 싶어서 돌아보니 입구에서 한순간만 뒷모습이 보였지."
그게 신주가 입을 법한 복장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여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취사장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기분 나빠 당분간 겁에 질려서 일을 한 모양이다.
무서워서 스스로도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려고 한 것 같다.
칸스케 씨는 기분이 나쁜 걸 숨기려고 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는데 아무래도 몇 번 목격한 것 같았다.
홀로 있을 때 눈앞을 반투명한 인간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른 종업원과 같이 정리를 할 때에 둘이서 동시에 목격한 사례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기둥 그늘에서 소리도 없이 인영이 나타나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럿이서 목격한 사례는 조사할 때도 들었지만 실제로 체험한 본인이 말하니 느낌이 다르다.
여주인도 몇 번이나 보았다고 말했으나 모든 체험담을 들은 건 아니었기에 이어서 말하게 했다.
"제가 처음에 본 건 봄철이었을 거예요. 밤중에 사무소에서 홀로 글을 쓰고 있으니 기척이 느껴지기에 고개를 들어 보니 벽 안에서 그 사람을 보았어요. 네. 벽 안에 있었어요."
그건 신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책상 가장자리를 잡고 몸을 일으키니 어느샌가 그 영은 사라진 모양이다.
그 후에도 여주인은 몇 번이고 신주 유령을 목격했다.
나타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뭔가 호소하는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한다.
카에데랑 카즈오 체험담은 어제 들었던 대로다.
카에데는 객실에서 그릇을 치울 때 복도 밖에서 신주 유령이 있는 걸 보았다.
카즈오는 노천탕에 들어갔을 때 조우했다.
그리고 나도 오늘 아침 무서운 꼴을 당했다.
그때가 떠올라 몸이 떨린다.
"그렇군요. 여러분 각자 체험을 하셨네요. 하지만 여주인과 칸스케 씨는 여러 번 목격했으나 다른 분은 모두 1번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자각하는 한에서는 말이죠. 1년 정도 전부터 나타난 유령을 여기서 계속 일하던 히로코 씨는 1번밖에 보지 못했다 이건 상당히 낮은 빈도입니다. 나타나게 된 건 1년 정도 전이라고 들었으나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아시나요. 이건 추측인데 여주인이 처음 보았다던 봄철이 아닌지요?"
여주인은 괴이쩍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치만 그 무렵일지도.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거."
히로코 씨가 말했다.
"그렇다는 건 하나둘셋... 9개월이나 10개월인가요. 뭐 약 1년이라고 표현해도 되겠지요. 이 기간을 기억해 주세요. 자 그 개인 단위로 생각하면 조우 빈도가 낮은 유령이지만 오늘 지금부터 이 자리에 나타납니다."
뭐?
그런 목소리가 나왔다.
나도 조금 놀랐다.
그렇게 단언하다니.
하지만 스승은 태연히 말한다.
"다양한 원인이 겹쳐서 그 확률은 지극히 높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여러분을 모은 의미도 없지요. 그 출현 요인은 몇 가지 있는데 예를 들어 먼저 쿠레무츠를 지난 시간대라는 것. 이건 중요합니다. 그것보다 빨리 나타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건 동시에 유령이 쿠레무츠가 가진 의미를 이해한 존재라는 걸 시사하고 있지요.
다음으로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도 있듯이 제 경험상 영체는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고 그 존재를 긍정하는 자 앞에 나타나기 쉬운 경향이 있어요. 그 소문을 사람에 따라서 두려워하거나 농으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저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그 출현을 유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자리에 제가 있다는 것. 또한 이 자리에 저 다음으로 영감이 강한 조수인 이 녀석이 있다는 것도 요인 중 하나입니다."
스승이 펼친 손으로 나를 소개하듯이 가리켰기에 나는 저도 모르게 겸연쩍은 듯이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스승이 은연 중에 자기가 영감이 강하다는 걸 자부하는 말투를 썼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말해놓고 아무것도 안 나오면 무척이나 부끄러울 텐데 그걸 각오하고서 자신을 일부러 몰아넣고 있는 걸까.
"그 수많은 요인 가운데 매우 중요도가 높은 게 2가지 있어요. 그건 지금 이 자리에 갖추어진 어떤 특별한 조건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틀림없이 신주 유령이 나올 겁니다. 그러니 약속해 주세요. 혹시 나타나도 결코 움직이지 않겠다고. 그 바늘 결계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나는 새삼 바늘을 바라보았다.
전부 상당히 길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꽂힌 건 바늘 구멍이 있는 쪽이다.
뾰족한 쪽이 위를 향하고 있다.
균형을 잃고 바늘 위로 넘어지는 걸 상상하고 소름이 돋았다.
"다음으로 이걸 봐 주세요."
스승이 바지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펼치니 거기에는 한자가 하나 크게 적혀 있다.
비우머리. 그 밑에 口가 3개 늘어서 있고 그 밑에 龍이 있다.
"이건 어제 뒷산 골짜기에서 발견한 돌에 새겨진 글자입니다. 뒷산에는 와카미야 신사 분사 같은 건 없다고 모두 말씀하셨습니다만 이건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하는 소리가 났다.
카즈오다.
뭔가 깨달은 모양이다.
"제사 역할은 없어도 산길 도로 옆에 이런 글자를 새긴 돌을 놓기는 해요. 이정표 같은 도표가 그렇지요. 하지만 이 낯선 글자는 어떤가요. 대체 뭘 나타내는 걸까..."
스승은 원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 종이를 펄럭거린다.
그때 한순간 뭔가가 들린 것 같았다.
뭐지. 착각인가?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카메가부치라는 저수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전국시대 무장인 타카하시 나가오키가 이 땅을 침공했을 때 영토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자원으로 만든 겁니다. 원래 그 장소에는 늪지가 있고 그 지명이 저수지 이름이 되었지요.
그러나 실은 다른 이름이 더 있어요. 쇼가부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지역 주민들조차 모르는 문헌에서만 나타나는 오래된 읽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불리지 않게 되었는지는 추측할 수 있지요. 물론 저수지를 완성했던 때부터예요. 새로운 용수로. 새로운 농법. 이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변해 버렸을 때 오래된 것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건 타카하시 나가오키가 가져온 또 다른 것에도 해당되지요."
딸랑.
갑자기 귀에 그런 소리가 들렸다.
지금 그 소리는 뭐지?
나에게만 들린 걸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상한 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이 술렁거린다.
스승은 태연히 설명을 계속하고 모두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