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100005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다.
대학교 2학년 여름.
어느 무더운 밤에 동아리 부실에서 동료들이 모여서 잡담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술도 마셨기 때문일까.
대리출석을 부탁해대는 싫은 부원 얘기나 연애 얘기가 주로 나왔으나 동년배인 여자애가 갑자기 흐름을 끊고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이상한 걸 봤어."
"이상하다니 뭐가?"
"뭐라고 해야 하나. 소인?"
자기도 말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며칠 전 그녀가 저녁 무렵에 거리를 걷고 있으니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었던 그녀는 황급히 비를 피할 수 있는 뒷골목으로 뛰어들었다.
비가 언제 그칠지 하늘을 신경 쓰며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발밑에서 기척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쥐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쓰레기통 뒤에 있었던 건 자그만 인간이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면서 앉아 있다.
크기는 손바닥 정도였으려나.
하얀 셔츠에 파란 바지.
바가지 머리에 나이는 젊어 보였다.
주변이 어두워서 확실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인형은 아닌 것 같았다.
중얼중얼 입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몸이 얼어붙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옆에 있는 소인 같은 것을 눈만 움직여 보고 있으니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지쳐서 아파온다.
자신이 보고 있다는 걸 소인이 알아차리면 대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너무나도 겁이 나서 비가 계속 내리는 도로를 향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갔다.
"진짜로 무서웠어."
그녀가 창백해진 얼굴로 이야기를 끝냈다.
"버려진 인형이었겠지."
"그건 인형이 아니었어."
이유는 직감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더는 추궁하지 않고 왠지 모르지만 기분 나쁘다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고 보니 나도 봤어."
다른 여자애가 입을 열었다.
"자정 무렵이었는데 알바 마치고 늘 돌아가는 길을 지나고 있었더니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 거야."
그러면서 손짓발짓으로 설명한 걸 요약하니 다음과 같았다.
일주일 정도 전 알바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자전거로 주택지를 지나고 있으니 갑자기 전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자그만 목소리였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아 묘하게 신경 쓰였다.
두리번거리면서 자전거 속도를 늦추니 "병", "병." 하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병?
들려오는 방향을 보았지만 민가 현관만 보이고 사람은 안 보였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멀리 떨어진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등 불빛에 어슴푸레 비친 블록담 옆에 서서 그 너머를 살폈다.
안뜰을 사이에 둔 부지 안에는 불이 켜진 방 창문이 몇 개 보이는데 현관 문 근처에는 전혀 사람이 안 보인다.
몸을 내밀고 담 안쪽을 엿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숨어 있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며 떠나려고 하니 "병." "병." 하는 자그만 목소리가 또 들려온다.
중얼거리는 그 대화 속에서 "커피." 라는 단어도 섞여 있다.
기분이 나빠서 돌아가려고 자전거에 발을 걸쳤을 때 담 위에 올려놓은 나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앞에는 음료회사 마크가 붙어 있다.
우유 배달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병이라는 건 이걸 가리키는 건가 싶어서 다가가니 "병." "커피." 라는 목소리가 그 상자 근처에서 들려온다.
오싹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뻗으니 상자 뚜껑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열리고 그 순간 목소리가 딱 멈추었다.
상자 안에는 우유병이 2개 밀봉된 채로 남아 있고 그 병과 상자 사이에 자그만 얼굴이 2개 있었다.
그 두 얼굴은 멍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그녀는 도망쳤다.
"진짜야 진짜. 상자 속에 소인이 있었다니까."
그녀가 이야기를 끝냈다.
우유병 말고 다른 게 들어 있어서 그게 얼굴로 보인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그녀는 절대로 잘못 본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집주인이 받는 걸 잊은 우유병을 두고 밤중에 소인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건가.
기묘하다.
"게다가 얼굴 보기 전에 목소리도 들었어. '병병' 하고."
"그치만 그거 배달용 상자가 먼저 눈에 들어와서 들린 환청 아냐?"
"병이 아니라 커피라고도 말했는걸. 그래서 뚜껑을 열어 보니 우유병이 2개 있고 한쪽이 색깔이 달랐어."
"어?"
동료들이 기분 나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니까 한쪽은 커피우유였다구."
그렇군.
상자를 열기 전까지 몰랐던 정보를 먼저 들은 셈이다.
환청이라고 말했던 사람도 기분 나쁜 듯 침묵했다.
"실은 나도 저번에..."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남자애가 손을 드는가 싶더니 조심스레 말을 했다.
며칠 전 한밤중에 방에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누가 보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누구냐." 라고 말했지만 곧 누가 있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직후 또 시선이 느껴진다.
찌르는 것 같은 시선.
설마 싶어서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가니 책장 뒤에 여자 옆얼굴이 보였다.
얼굴 왼쪽 절반만 벽과 책장 틈새에서 내밀어서 눈만 움직여 이쪽을 보고 있다.
그 틈새는 고작해야 1,2센티밖에 안 될 것이다.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 근처에 있던 잡지를 얼굴에 던졌다.
벽에 맞아 주르륵 미끄러지는 잡지 너머로 묘하게 칙칙한 살색이 아직 보인 것 같아서 아우성을 치며 잡히는 걸 전부 던졌다.
던질 것이 없어질 무렵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쪽을 보니 더 이상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책장에 체중을 실어서 틈새가 생기지 않도록 벽을 향해 힘을 주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배운 불경을 외면서.
"그래서 그 얼굴 나왔어?"
"아니 그때뿐이야. 그치만 그런 거 보면 잘 수 없잖아. 이사할까."
"그러고 보니 나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최근에..."
그 후에도 소인이나 좁은 곳에서 사람을 보았다는 괴담이 줄줄이 이어졌다.
본인이 체험했다는 이야기는 첫 3명뿐이지만 이토록 비슷한 체험담이 넘쳐흐르면 기분이 나쁘다.
나는 잠자코 맞장구를 쳤지만 전부 다 최근 이야기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구태여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실은 나도 사흘 전에 자그만 사람을 보았다.
저녁 후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을 때였다.
처음에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도로에 쓰러져서 다리를 파닥거리는데도 아무도 그걸 보려고 하지 않는 것과 아이 치고는 너무 작다는 것으로 이건 인간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소인은 괴로운 듯 버둥거렸지만 이윽고 스르륵 잠기듯이 아스팔트 속으로 머리부터 사라졌다.
내 경험상 여름에는 특히 영감이 높아지는 계절이기에 이것저것 기묘한 것을 보게 되는데 소인 같은 영을 본 적은 별로 없기에 크게 인상에 남았다.
'스승에게 이야기해 볼까.'
체험담에서 점점 누구한테 들었는지 모를 애매한 소문으로 랭크가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더더욱 달아오르는 괴담 대회를 뒷전으로 하며 나는 오컬트 스승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다음날이었다.
정오를 지난 무렵 나는 자전거를 몰고 어떤 집을 방문했다.
어제 동아리 부실에서 들은 괴담을 가지고 이런 사건에 조예가 깊은 스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기 위해 온 것이다.
허름한 연립주택 앞에 서서 노크를 했지만 반응이 없다. 만일을 위해서 잠시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옆집 문이 열리고 주민이 나와서 알려주었다.
"외출 중인 것 같아요."
감사 인사를 하고 한 번 더 자전거를 탔다.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걸 떠올리고 이 시간대에 그녀가 있을 법한 곳으로 갔다.
속도를 올리니 아스팔트로 달아오른 공기가 뺨에 달라붙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기분이 좋다.
이윽고 목적지인 공원이 보였다.
공원이라고 해도 그냥 간단한 공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허리를 낮추라고 짜샤."
그 목소리랑 함께 아이도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다.
공원 펜스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다가가 보니 역시 스승이었다.
펜스 너머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글러브를 끼고 운동장 위를 달리고 있었다.
"2루 뭐 하냐. 수비가 늦다고."
또 큰 소리를 내면서 금속 배트로 땅을 콱 찧는 여성이 있다.
스승이다.
차례로 날아간 하얀 공에 아이들이 뛰어든다.
그 눈동자에는 의욕으로 불탄 예리한 빛이... 없다.
짜증이 역력한 어두운 얼굴로 자기 몸에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화를 내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분위기다.
"몇 번을 말하냐. 손으로 집으러 가지 마. 허리를 낮추고 몸으로 받으라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는데도 불구하고 자비없이 불호령이 날아든다.
스승은 옛날에 소년야구에서 활약한 적이 있었기에 매주 토요일 여기서 야구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어설픈 플레이를 보다 못해 금속 배트를 손에 들고 코치 행세를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이상한 누나가 빨리 돌아가 주지 않으려나 내심 생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애들은 유니폼도 입고 있지 않았다.
정말로 그냥 야구 놀이를 하러 왔을 뿐이며 소년야구팀과 연습 경기를 할 계획도 없다.
그런 그들에게 스승은 번트 시프트나 히트 앤드 런 등 의미가 없는 연습을 시키고 있다.
저번에는 순간적으로 글러브를 놀려 직구를 보기좋게 캐치한 유격수에게 "떨어뜨리고 병살 노려야 할 타이밍이잖아!" 라고 화냈다.
진짜 불쌍하다.
그렇게 쓸데없이 높은 수준을 요구할 거라면 코치로서 팀을 정비한 뒤 보호자들한테서 돈을 모아 유니폼을 만들고 근처 소년야구팀에게 부탁해서 연습 경기 한두 번 치르게 하는 게 도리일 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는다.
한바탕 애들이 움직이면 그걸로 만족하고는 "잠시 휴식." 이 아니라 "나머지는 알아서들 해." 라고 말하며 돌아가는 것이다.
완전히 자기중심적이다.
아이들도 조금만 참으면 이 이상한 누나가 돌아가는 걸 알고 있기에 말대꾸를 하지 않고 싫어도 따르는 것 같다.
나는 왠지 미안한 기분으로 운동장으로 다가갔다.
그때 스승의 자전거 바구니에 노트 한 권이 들어 있는 걸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노트?
다가가서 집어드니 그건 어디서나 볼 법한 대학 노트로 표지에는 '거인 연구' 라고 검은 매직으로 적어놓았다.
얼마나 과몰입하는 거야.
(거인 : 일본프로야구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별명)
프로야구팀 전술이나 기술을 초등학생들에게 주입시킬 생각이야?
어이가 없어졌다.
"좋았어. 상당히 움직임이 좋아졌어. 난 이만 돌아갈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들 해."
쾌활하게 그렇게 말하더니 스승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슴다." 라고 공허한 합창이 그 등을 따라온다.
돌아보지도 않고 오른손을 흔들며 응답한 스승은 앞에 내가 서 있는 걸 겨우 깨달은 모양이다.
"왜 그래? 너도 하고 싶냐?"
"사양할게요."
스승은 내 옆까지 오더니 저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배가 고프다고 중얼거렸다.
"점심 아직 안 먹었어요?"
"응. 같이 먹을래? 집에 받아둔 소면이 있어."
가볍게 먹고 왔지만 모처럼 권해 주었기에 같이 먹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자이언츠 연구하는 건 상관없지만 애들을 실험체로 쓰지 말아 주세요. 애초에 거인 팬이었어요?"
"무슨 말이야? 나는 어렸을 적부터 한신 팬인데... 아 이거 말이구나."
(한신 : 일본프로야구 구단 중 하나인 한신 타이거즈.)
스승은 뿜을 뻔하면서 자전거 바구니에서 노트를 꺼냈다.
"이 거인은 자이언츠가 아냐."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그럼 뭔데요?"
"너 그 얘기 하러 온 거 아니었냐?"
"네?"
"자그만 사람을 보았다는 얘기 말야."
오싹해졌다.
아까까지 웃고 있던 스승의 눈이 한순간 이쪽 눈 안쪽을 투시하는 것처럼 예리하게 빛났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렇게 둔감한 녀석은 아닐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스승은 자전거에 올라탔다.
"언제 올지 기다리고 있었어. 퉁퉁이가 공터로 끌고나간 노진구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도라에몽 같은 심정으로."
뭐 집에서 얘기하자. 배고프다.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나는 충격을 받은 채 뒤를 쫓아갔다.
이 사람은 대체 뭐야.
만난 후로 몇십 번 몇백 번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둘이서 큰 그릇에 담긴 소면을 먹어치웠다.
겨우 한시름 놓았다며 양반다리를 하는 스승에게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소면 다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다 뭔가요?"
"소방단에 선물이 들어왔거든."
이 사람은 학생인데 지역 소방단에 소속되어 있다.
그것도 부반장이라고 한다.
"자, 그쪽 얘기부터 들어볼까."
스승이 보리차를 2잔 따른다.
나는 어제 부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부 말했다.
그리고 내 체험담도.
잠자코 듣고 있던 스승이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게 어제라고?"
그리고는 "이 쓰레기가." 라고 말할 것 같은 얼굴을 한다.
"이 쓰레기가."
말했다.
깨달은 게 어제라니 너무 느리다고 타박하고 싶은 모양이다.
"너 모친을 죽이는 꿈 때도 전과가 있잖아."
그때 일은 나중에 들었다.
올해 여름 초에 이 마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부모를 죽이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 무렵 몇 번이고 그런 꿈을 꾼 것 같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기에 진짜로 위기감을 느끼고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분주했다던 스승에게 신나게 혼이 났다.
그건 그렇고 그 일과 소인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알겠냐. 자그만 사람을 보았다던 괴담은 자주 있지만 괴담 자체 비율로 따지자면 적어. 그건 유령이라기보다 요괴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이 나라 사람들이 같은 이미지 속에선 영이 나타나는 방식으로서 소인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지.
소인을 보았다는 괴담에는 사연이 엮이기 어려워. 유령을 보았다는 이야기에는 그게 환각이든 뭐든 간에 전제로서 죽은 자를 두려워하는 원인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소인을 보았다는 괴담에는 봐 버렸다는 결과밖에 없어. 소인 모습으로 사람 같은 게 나타날 필연성 같은 건 보통 없으니까. 그게 환각이든 뭐든 간에."
스승은 보리차를 단숨에 마시더니 탁 소리를 내며 컵을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말이다. 사연이라는 원인이 있다면 괴담은 자연스레 발생하는 법이라는 거야. 그게 없는 소인 목격담은 자연스레 수가 적을 수밖에 없어. 물론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요괴 혹은 요정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정체인 소인 전설은 있어. 토호쿠 자시키와라시나 아이누 코로폿쿠루, 토쿠시마 코나키지지, 잇슨보시나 모모타로 같은 동자도 소인이지.
외국 사례를 보자면 드워프나 레프러콘, 체인질링하는 픽시, 그렘린 효과로 알려진 그렘린 같은 것도 소인이지. 물론 그 전에 요정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물론 이것들은 현대 빈번하게 목격되는 부류들이 아니야."
"그야 그렇죠. 자시키와라시라면 지금도 나온다고 소문이 퍼진 여관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러고 보니 여관에 있는 자시키와라시 그림이 눈을 깜빡인다는 공포 영상이 있었던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말이지. 자그만 인간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최근 늘어났다는 게 얼마나 심각한 사태냐는 거야."
스승은 오른손으로 수화기를 드는 시늉을 했다.
"실화라고 선전하며 시시한 괴담 비디오를 만드는 감독을 아는데 전화로 물어봐도 딱히 최근 그런 경향은 보이지 않았어. 적어도 칸토 부근에서는. 예상은 했지만 아마도 이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모양이야."
고작 소인을 본 괴담을 가지고 쓸데없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여서 웃고 말았다.
그러자 스승이 날 째려본다.
"너는 어제 겨우 서너 개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 2,3주 간 적어도 백이 넘는 이야기를 모았어. 물론 이 마을에서. 그것도 최근에 생긴 이야기뿐이야."
백을 넘어?
뜻밖의 숫자에 놀랐다.
강조할 것도 없이 확실히 심상치 않은 수였다.
잇슨보시니 드워프니 구체적인 공포심이 들지도 않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침투한 도중에 갑자기 현실로 끌려나온 느낌이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대체 뭔가요?"
"뭘까."
시험해 보는 것 같은 눈초리다.
소인을 보았다던 사람이 늘어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다.
입 찢어진 여자나 인면견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퍼진 도시전설은 있지만 이 소인 이야기는 자그만 인간을 보았다는 공통 사항만 있을 뿐 출현 방식에 일관성이 없다.
도시전설 부류로 보기엔 위화감이 든다.
"어째서예요?"
순순히 물어보았다.
답이 있다면 알고 싶었다.
스승은 야구 연습 때 들고 온 그 노트를 치켜들더니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었다.
"허심탄회 상대적으로 본다면 어떠한 가설이 자연스레 도출되지."
그렇게 말하며 노트에 매직으로 써놓은 '거인 연구' 라는 글자를 천천히 가리켰다.
"소인을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건 거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야!"
바보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바보다.
이 사람 가끔씩 엉뚱한 소리를 한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
"크고 작다는 건 항상 상대적인 거야. 코로폿쿠루가 보기엔 인간은 거인일지도 모르지만 오뉴도가 보면 인간은 소인이지. 그리고 그 오뉴도도 다이다라봇치가 보면 소인에 불과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거인이 늘어난다니 말도 안 된다.
거인 연구를 그런 단락적인 이유로 시작한 건가.
"일단 들어봐."
"아니, 잠깐만요. 이상하잖아요. 이야기 출처가 거인들이 낸 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것 자체가 어엿한 괴담 아니 오컬트라고요."
"어차피 친구의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잖아? 이 이야기 출처는 정체를 알 수 없어."
"저는 체험한 본인한테서 들었어요. 물론 평범한 학생이고요."
"내 입장에선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 지."
"그럼 데리고 올게요. 직접 물어보지 그래요?"
분개해서 그렇게 말하니 스승은 진정하라고 손짓한다.
"미안. 지금 그건 농담이야."
어디까지가 농담인 건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썹을 내리면서 오른손으로 진정시키는 시늉을 하는 스승을 앞에 두고 나는 피로가 몰려왔다.
"모처럼 조사한 거니까 거인 이야기도 들어줘."
이제 그냥 멋대로 하라는 심정이었다.
스승은 노트를 펼쳐서 펄럭펄럭 넘긴다.
"좋았어. 거인이라고 하면 먼저 뭐가 떠올라?"
"다이다라봇치."
"그거 아까 내가 말했잖아."
"그럼 기간테스. 타이탄. 아틀라스. 그리고 사이클롭스."
"이 나라에서도 RPG 같은 곳에서 나오는 친숙한 이름이로군. 전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거인들이지. 기가스, 티탄, 아트라스 그리고 퀴클롭스. 전부 다 대지의 신 가이아를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삼는 신이자 거인 즉 거신이야. 다만 후세로 갈수록 괴물이라는 측면이 전승상에 남아 왜소해지는 경향은 있지. 북유럽 신화에서는 뭐가 있는지 알아?"
북유럽 신화인가.
아마 주신인 오딘의 부하나 자손 중에 유명한 놈이 있었을 것이다.
"로키였나요."
"오, 좋네. 로키는 오딘이 이끄는 아스 신족과 대립했던 거인족의 피를 이었다고 하고 있어. 그 거인족 조상이 이미르라고 불리던 거인이야. 물론 아스 신족도 일반적으로 보면 거인 같은 존재임은 틀림없지만.
참고로 이 이미르나 중국 반고 그리고 고대 바빌로니아 티아마트 등은 원초 거인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즉 그 몸 혹은 시체에서 대지나 바다 기타 자연이나 자연현상이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거지. 수많은 신화 속에서 각자 세계 기원이 다루어지는데 거인에서 모든 게 태어났다는 패턴은 세계거인형이라고 불려."
"일본에서라면 다이라다봇치가 그건가요?"
"아니, 다이다라봇치는 산이나 늪을 만들었다는 전승이 각지에 남아 있지만 그건 흙을 쌓은 게 산이 되거나 발자국이 늪이 된 것뿐이고 자신은 대지가 되지 않았어. 크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민화야. 일본에서는 세계거인형 신화는 없었던 것 같아."
노트에 이것저것 조사한 걸 적어놓은 모양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다른 거인은 뭐가 있을까?"
시험 같다.
거인, 거인, 머릿속에서 되뇌다가 문득 하나가 떠올랐다.
"자이언트 바바"
(자이언트 바바 : 일본 프로레슬링 선수.)
진지하게 대답하라고 화낼 줄 알았는데 스승은 기쁜 듯이 "그거야." 라고 말했다.
"아까까지 나온 거인들과 방향성은 다르지만 그 사례 역시 엄연한 거인이지."
나는 지뢰를 밟은가 싶어서 조금 후회했다.
스승은 프로레슬링 애호가로 지역에 흥행이 왔을 때 억지로 나를 데리고 몇 번이나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당분간 프로레슬링 이야기를 들을 것을 각오했지만 의외로 이야기는 새지 않았다.
"어째서 바바가 큰지 알아? 그건 뇌하수체 종양이라고 해서 뇌하수체 호르몬 분비 이상이 원인이야. 뇌하수체 종양 중에서도 성장 호르몬 생성 뇌하수체 종양이라고 불리는 질병은 말단비대증이나 거인증이라고 불리지. 병 때문에 몸이 커지는 거야.
스모에서도 에도 시대에는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역사가 있는데 아주 말이 안 되는 과장은 아닐지도 몰라. 전후에도 2미터 10센티급 역사는 몇 명이나 되니까. 그리고 최근 안 보이는 걸 보니 은퇴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일본 대표 농구 선수 중에 2미터 30센티 정도 되는 사람이 있었지. 그 사람도 아마 이 병에 걸렸을 거라고 생각해.
해외라면 더 굉장한 사람이 많아. 로버트 워들로라는 미국인은 20세기 전반 사람인데 2미터 72센티래. 아버지랑 같이 서 있는 사진을 봤는데 아버지 머리가 로버트 허리 근처까지밖에 안 왔어. 22살에 죽었다던데 계속 신장이 자랐다고 했으니 혹시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커졌을지 상상도 안 가지."
실존하는 거인인가.
거인이 늘어난다고 스승이 아까 했던 망언이 미묘하게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이 갑자기 늘어나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걸까.
"자, 거인도 이것저것 나왔는데 크게 분류하면 현 시점에서는 2패턴으로 분류할 수 있겠네. 먼저 1번째 거인이 다이다라봇치나 기간테스 등이 속한 '전설상 거인'. 그리고 2번째 거인이 바바나 로버트가 속한 '거인증 환자'."
스승이 오른손을 펼쳐서 엄지랑 검지를 접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중지를 접는다.
"아직 안 나왔지만 3번째가 빅풋이나 설인이 속한 'UMA 거인'이야."
아, 그렇구나. UMA인가.
Unidentified Mysterious Animal.
미확인생물이다.
"전설상 거인처렁 황당무계하지는 않지만 거인증 환자처럼 확실히 있다고 단정하지 못해서 항상 존재가 논쟁이 되는 거인들. UMA는 재플리시니까 정확히는 크립티드라고 하나 본데 히말라야 예티나 일본 히바곤, 중국 야인 같은 게 여기에 속하지."
갑자기 이야기가 수상쩍어진다.
스승은 즐거운 듯이 계속 말했다.
"UMA 중에서도 거인은 많지만 그렇게 크지는 않아. 기껏해야 2,3미터 정도려나. 네시 같은 괴수형 UMA라면 상당히 크지만. UMA 거인은 거의 현생인류 아종이라는 전제로 상상해낸 존재들이니 10미터니 100미터니 그렇게 터무니없는 크기로 설정하지는 않겠지. 실제로는 고릴라나 오랑우탄 같은 대형 유인원을 잘못 본 게 아닐까.
그치만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어. 중국 UMA로 毛人이라고 적고 마오렌이라고 읽는 놈이 있는데 글자 그대로 털북숭이인 아인이야. 이 녀석이 붙잡힌 후 연구소 한 방에 틀어박혀서 매일 실험동물 취급받았는데 어느 날 연구원이 방에 들어가 보니 이미 죽어 있었대. 어떤 식으로 죽어 있었을 것 같아?"
"죽을 것 같은 실험은 하지 않았지요? 병 아닐까요? 인간과 비슷해서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다거나."
"아깝네. 인간과 비슷하다는 건 좋은 발상이었어. 실은 목을 매어서 죽었다가 정답. 절망이 사인이 되는 게 인간답지 않을까. 대체 그들은 뭘 포획한 걸까."
어디서 들은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척 봐도 스승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다.
"이 3번째 거인이 현대에 살아 있는 걸로 추정되면서도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부류라면 4번째 거인은 현대에 살아 있지는 않지만 과거에 분명히 존재했던 거인, '멸종된 거인'이야. 기간토피테쿠스라는 걸 들어봤어? 백만 년 전부터 3천만 년 전에 걸쳐 중국이나 인도에 서식했던 대형 유인원이야. 신장은 약 3미터. 시대상 베이징 원인과 자와 원인과 서식 시기가 겹쳐.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는 설도 있었던 것 같지만 일찌감치 부정되었지.
그밖에도 추정 신장 10미터를 넘을 것 같은 초거대 인골이 발견되거나 보통 인간의 몇 배는 되는 발자국 화석이 출토되었다는 헛소문이 오컬트 세계에서는 진실인양 퍼져 있는데 그거라면 'UMA 거인' 분류에 포함시켜야 하겠지. 그리고..."
이제 슬슬 말하다 지친 건지 스승은 또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컵을 기울이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말했다.
"1번째 전설상 거인과 3번째 UMA 거인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5번째 거인, '요괴 거인' 이야. 일본이라면 오뉴도, 미코시뉴도, 노데라보 같은 뉴도와 보즈 부류라면 슈텐도지, 혹부리 영감 이야기에 나오는 아카오니, 아오오니 등 오니들도 거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 해외에도 외눈괴물 등 괴물담이 많이 있어. 육체가 없어서 유령처럼 출현하는 거인도 있는데 그것도 여기에 분류해도 되겠지.
그리고 마지막이 완전히 가공인 존재로 디자인된 6번째 거인, '픽션상 거인'이야. 뭐, 굳이 설명할 것도 없겠지. 만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놈들이야. 수사어로 쓰는 음악계 거인 같은 표현은 무시해도 상관없겠지. 이걸로 거인은 대충 1번째부터 6번째까지 분류 중 하나에 포함될 거야. 실제로는 경계가 애매한 경우도 많겠지만."
왠지 복잡해졌다.
종이에 적어서 정리해 보았다.
1번째가 전설상 거인.
2번째가 거인증 환자.
3번째가 UMA 거인.
4번째가 멸종된 거인.
5번째가 요괴 거인.
6번째가 픽션상 거인...
이 6가지를 바라보면서 뭐 이런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거냐고 한숨을 쉬었다.
"어느 게 이번에 늘어난 거인인데요?"
물론 빈정대는 거였다.
스승은 후후후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거인을 조사해놓고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소인 이야기도 잔뜩 모은 것 같던데 그쪽은 어때요?"
"소인인가. 소인은 아직 다 조사하지 못했지만 일단 모아둔 목격 사례를 보건대 다양한 패턴이 있더군. 자그만 아저씨가 제일 많았지만 여자나 아이 모습을 한 것도 있었어. 나오는 상황도 각양각색으로 집 안, 학교, 병원 같은 실내도 있는가 하면 길가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았지. 심령 스팟에서 보았다는 사례도 있었어. 가족이나 친구랑 같이 동시에 보았다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서, 그리고 밤에 보았다는 패턴이 대부분이었지."
나는 들으면서 마치 유령 같다고 생각했다.
"아까 애들한테 들은 얘기 중에서는 소인을 잡았다는 얘기도 있었어."
"애들이라니 그 야구 소년들이요?"
그래서 노트를 들고 간 건가.
"집 근처 도랑 안에서 부들부들 떠는 자그만 아저씨가 있었기에 잡아서 텅 빈 물통에 우겨넣고 뚜껑을 닫았대. 엄청난 짓을 했지? 그치만 무게가 넣기 전과 다를 바 없이 가벼웠고 집에 돌아가서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대."
"처음에는 손으로 만질 수 있었나요?"
스승은 씩 웃었다.
"현대 소인 조우담이라는 건 거의 대부분 그저 보았다는 것뿐이고 그걸 만져서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는 적어. 그래서 그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인지 아직 애매하지. 이번 경우는 일단 만질 수는 있었는데 어느샌가 탈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사라졌어. 심야 택시를 타고 와서 어느샌가 사라졌다는 유령 이야기랑 비슷해 보이는데 과연 진실은 어떨까."
소인이 실체를 가진 존재인지 아닌지인가.
저번에 아스팔트에 빨려들어가는 소인을 보았을 때 다리를 잡고 끄집어내 볼 걸 그랬다.
"내가 무섭다고 생각한 건 말야."
스승은 신중한 어조로 얼굴을 이쪽으로 내밀었다.
"어느 이야기도 공통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게 왜 무서운데요?"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면 최근 목격담이 많은 것도 설명이 돼. 예를 들어 애들에게 영향력이 큰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자그만 아저씨 이야기가 나왔다거나."
"그거 친구들 화제를 따라가고 싶은 아이가 지어냈다는 뜻인가요?"
"지어낸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 착각이 원인이 되어서 결과적으로 보게 될 수도 있어."
그렇군. 그럴 수도 있겠다.
"그거라면 그 텔레비전 방송과 똑같은 상황으로 자그만 아저씨를 보았다는 이야기만 늘어나는 게 자연스러울 거야.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최근 목격 사례는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서 아무래도 기분 나빠. 각각 개인적 체험 분포가 합쳐서 보면 어느 정도 밀도를 가지게 돼. 마치 의미가 있는 것 같은 우연의 집합체는 내 경험상..."
스승은 말을 끊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서워."
진지했다.
듣는 나마저 안일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좀 더 정보가 필요해. 오늘은 이제부터 볼일이 있지만 내일 아니 내일도 안 되겠네. 그럼 모레다. 좀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어."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기랑 함께 왠지 기분 좋은 고양감을 느꼈다.
뭘 할지 알 수 없는 이 사람이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