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qordb6712/120174103507
"자, 가자."
그 말에 재촉 받으며 출발했다.
대학병원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대학병원 주륜장에 도착해서 튕기듯이 뒤에서 내린 스승에게 눈으로 호소했다.
이번에는 꼭 동석하고 싶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도 알고 싶었으니까.
"뭐 좋지. 따라와."
네 라고 대답하고 바로 자전거에 자물쇠를 걸고 스승 뒤를 따라갔다.
정면 현관으로 들어가니 병원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역시 대학병원은 크다.
인플루엔자에 걸렸을 때 갔던 내가 소속된 캠퍼스에 붙어 있던 의무실하고는 천지 차이다.
스승은 제 집마냥 인파를 슥슥 헤치고 안쪽으로 간다.
안배판을 보니 입구에서 제일 안쪽에 입원 병동이 있는 것 같다.
통로를 빠져나와 드디어 그 입원 병동 대기실에 도착했다.
거기에 낯익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홍색 간호복을 입고 있는 50대 전후 여성.
화내는 것 같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너였구나."
노무라 씨였던가.
스승이 예전에 입원했을 때 신세를 졌던 간호사라고 한다.
그 후에도 오랫동안 얼굴을 보아와서 전쟁 중에 찍혔다는 사진 한 장에 관련된 사건에도 휘말렸다.
더 심하게 휘말린 건 나였지만.
노무라 씨는 예전에 보았던 환자랑 간호사라는 입장을 넘어서 마치 자기 딸처럼 스승을 무척이나 신경 써 주어서 스승은 그걸 교활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선생 눈치가 빠르네. 전화해 줬구나. 그럼 용건은 알고 있지?"
노무라 씨는 뭔가 말하려고 숨을 들이켰다가 이윽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숨을 푹 쉬더니 "따라오렴." 이라고만 말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 모습에서 보인 건 오랜 경험이 쌓여서 생긴 것 같은 달관이었다.
기력이 빠진 것처럼 보였지만 역시 직업병인지 발걸음은 당당했다.
근처에 있는 승강기 쪽으로 걸어가는 걸 둘이서 쫓아갔다.
위로 가는 버튼을 누르고 카가 내려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저번에는 감사했습니다." 라고 내가 인사했는데 노무라 씨는 그저 찌릿 노려볼 뿐이었다.
3명이 올라타니 승강기가 조용히 올라가서 7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니 제일 먼저 순환기과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노무라 씨는 바로 근처에 있던 간호사 대기실로 가서 간호사들과 짧게 말한 후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이쪽으로 오렴."
그리고 척척 걷기 시작한다.
분명 수간호사라고 들었는데 역시 병원에서 그런 모습을 보니 풍격이라고 해야 하나 위엄 같은 게 느껴진다.
병동 복도를 걸으면서 "이 입원 병동 수간호사인가요?" 라고 물어보았지만 "위에서 밑까지 침대가 몇 개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라고 코웃음을 친다.
설명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각 층마다 소아과나 비뇨기과 등으로 나뉘어 있어서 각자 전속 직원과 수간호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럼 그 묘한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는 우연히 노무라 씨가 관리하는 층에 있었다는 건가.
내가 품은 의문을 꿰뚫어 본 것처럼 스승이 귀엣말을 했다.
"선생이 진찰한 정신 이외 입원 병동 환자는 전부 10명. 그 중 3명이 여기에 있을 거야."
"만나게 해주는 건 2명뿐이야."
들렸는지 노무라 씨가 화난 듯이 말했다.
"여러모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으니까. 너는 애초에..."
그 입에서 울분이 나오려다가 말고 또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괜찮아 괜찮아. 만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스승은 짐짓 비굴한 척 굽신대고 노무라 씨의 한숨은 더더욱 커져갔다.
"여기야."
복도를 지나서 멈춰 선 건 4인실 병동 앞이었다.
앞에 있는 침대 2개는 비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으렴."
먼저 노무라 씨가 방에 들어가서 안쪽 침대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칸막이 때문에 잘 안 보인다.
이윽고 돌아와서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한다.
"알겠니? 쓸데없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 뭐가 쓸데없는 말인지는 판단할 수 있겠지?"
"괜찮아. 믿어줘. 그치만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설정이야?"
"의학부 학생이 실습 일환으로 입원한 환자 한 명 한 명과 이야기하러 왔다는 걸로 말해두었어."
"고마워."
스승이 눈으로 신호를 보내기에 나도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약품 냄새가 섞인 달짝지근한 복도 냄새랑은 조금 다른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노무라 씨는 밖에서 기다리는 것 같았다.
칸막이 너머에는 침대가 2개 있었다.
한쪽은 이불이 젖혀 있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았으나 다른 쪽에는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생으로 보이는 까까머리 남자애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침대 위에서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안녕."
스승이 붙임성 있게 인사를 하자 자그만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이 들려왔다.
순환기과라는 건 심장이라도 안 좋은 걸까.
야위었지만 혈색은 좋아 보이고 심각한 병에 걸린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침대 옆에 있던 둥근 의자에 걸터앉으니 스승은 남자애에게 "언제부터 입원했니? 지루해?" 라고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남자애는 "지루해." 라고 말하며 수줍어했다.
그 후로 잠시 입원중에 있었던 일이나 좋아하는 만화 얘기 등을 하다가 마침내 스승이 "여기 밤에 요괴 같은 게 나오지 않아?" 라고 슬쩍 말을 던졌다.
옆 의자에 앉아서 그저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도 스승이 본론을 꺼낸 걸 알고 긴장했다.
남자애는 뭔가 중대한 비밀을 고백하는 것 같은 몸짓으로 스승의 귓가에 입을 갖다대었다.
"나와."
"어? 정말로?"
스승은 일부러 놀란 척을 한다.
남자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원한 뒤로 여태까지 본 유령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부 다 묘하게 현장감이 느껴져서 밤에 들으면 상당히 무서웠을 내용이었지만 내가 기대한 단어는 전혀 없었다.
소인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스승도 딱히 추궁하는 기색 없이 그저 남자애 이야기를 무서워하는 척할 뿐이었다.
대체 무슨 속셈인가 답답해하면서 끼어들지도 못하고 있으니 스승은 갑자기 가지고 온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 산 캔 주스를 꺼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안 마셨구나.
이미 미지근해지지 않았을까.
스승은 침대에 있는 남자애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캔 주스를 쥔 채로 "퀴즈를 낼 텐데 맞춰 볼래?" 라고 물었다.
남자애는 "응, 좋아." 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눈을 감고 지금 건넨 물건이 뭔지 맞춰 보렴."
"알았어."
순순히 눈을 감는다.
스승은 남자애 오른손을 잡고 캔 주스를 쥐어 준다.
자그만 손에 350밀리 캔은 유난히 커 보였다.
"어라~ 이거 뭐지."
남자애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캔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하고 신음하며 생각에 잠긴 남자애에게 스승은 한 마디 중얼거렸다.
"힌트는 캔(かん)으로 시작해."
그걸 들은 순간 남자애의 얼굴이 펴졌다.
"알았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저도 모르게 "어?" 라고 말하려다가 황급히 입을 막는다.
하지만 스승은 "정답~" 이라고 말하며 웃더니 남자애 손에서 캔 주스를 재빨리 빼고는 뒤로 감추었다.
남자애는 눈을 뜨고 "어라?" 하고 두리번 거린다.
스승의 제스처를 눈치챈 나는 몰래 그 손에서 캔 주스를 받아서 짐 안에 숨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남자애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것은 그 애가 퀴즈 답을 틀린 거랑 상관없지는 않으리라.
"상으로 이걸 줄게. 얍."
스승은 얼버무리려는 듯이 재빨리 남자애 뺨에 키스를 했다.
"그럼 우리는 가 볼게."
눈을 끔뻑이는 남자애를 놔두고 우리는 황급히 병실을 나갔다.
복도에서는 노무라 씨가 팔짱을 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짓은 안 했겠지?"
"안 했어 안 했어. 안 했지 그치?"
"네 뭐."
"아무튼 정말로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노무라 씨는 몇 번이나 주의를 주더니 복도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아까 그 이상한 대화를 생각했다.
그 옆에서 스승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야."
병실 앞에 도착해서 또 노무라 씨가 혼자 들어간다.
바로 나와서 "아까처럼 의학부 학생이라는 걸로 해두었지만 정말로..." 라고 말하는 걸 "쓸데없는 말 안 해요." 라고 스승이 가로막았다.
그리고 못 기다리겠다는 듯이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바로 뒤를 따라갔다.
이번에도 4인실 병실이었지만 앞에 있는 침대 2개는 노인들이 각자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그 안쪽에는 역시 칸막이가 있고 그 안에는 여자애가 막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참이었다.
"아 누워있어도 돼."
스승이 황급히 손을 흔드니 "괜찮아요." 라고 조용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건너편 침대는 비어 있었다.
이번에는 주인이 있는 낌새는 없다.
내 시선을 깨달은 건지 여자애는 "옆사람은 어제 퇴원했어." 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까 남자애보다는 좀 연상이려나.
역시 야위어 보였고 얼굴이나 소매에서 나온 손이 유난히 희었다.
"어떤 사람이었어?"
의자를 끌어당기며 스승이 물었다.
"음~ 엄마 나이 정도 되는 사람."
"그렇구나."
그런 대화부터 시작해서 또 잡담이 당분간 이어졌다.
나는 전부 스승에게 맡기고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맞장구만 쳤다.
"병원에서 요괴가 나온다는 사람이 있던데 정말이니?"
"아 나 봤어."
아까 대화를 재현하듯이 여자애가 체험담을 말한다.
하지만 아까 남자애가 했던 이야기랑 똑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나는 스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퀴즈를 낼 텐데 맞춰 볼래?"
"상관없긴 한데."
"지금부터 쥐어주는 게 뭔지 눈을 감고 맞춰 보렴."
그걸 들은 여자애는 조금 긴장한 얼굴을 했다.
일종의 검사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도 "응." 하고 눈을 감기에 스승은 짐에서 또 캔 주스를 꺼냈다.
"어때? 뭔지 알겠니?"
캔 주스를 오른손으로 쥔 채 여자애는 생각에 잠긴다.
알기 쉬워 보이는데 왜 그러는 걸까.
"힌트는 캔(かん)으로 시작해."
스승이 속삭인다.
아까랑 같은 말.
답이나 다름없다.
답이나 다름없을 텐데.
여자애는 조심스럽게 눈을 감은 채 툭 내뱉었다.
"건전지(かんでんち)."
그걸 들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사태를 이해하기 전에 직감이 고했다.
건전지.
아까 남자애랑 똑같은 대답.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알았다. 알아 버렸다.
대체 무엇을 안 건지 그 머릿속 폭풍이 형태가 되기 전에 스승이 말했다.
"정답이야. 그럼 이번에는 눈을 감은 채로 귀를 막아 보렴."
슬쩍 캔 주스를 오른손에서 빼냈다.
그리고 양손으로 귀를 막은 여자애한테서 눈을 떼고 스승은 내 얼굴을 본다.
그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이건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정신과를 찾은 사람들이 호소한 기묘한 증세야. 촉각 이상을 겪어서 물질 크기를 오인하게 되는 사례.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느끼지 않아. 즉 시각으로 보정될 때나 사전에 그게 뭔지 인지하고 있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들이 차단되면 즉시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현상. 작아. 작아. 작아. 이것도 저것도 죄다 실제 크기보다 작게 느껴져. 캔 주스를 쥐고 있는데 그게 건전지로 생각될 정도로."
내 눈을 바라본 채로 스승이 속삭인다.
"나는 거인을 6개로 분류했지? 전설상 거인, 거인증 환자, UMA 거인, 멸종된 거인, 요괴 거인, 픽션상 거인..."
말을 끊고 스승은 손바닥으로 정중히 여자애를 가리킨다.
"이 애들이야말로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7번째 거인."
나는 스승의 말하는 그 희미한 틈 속에서 숨을 집어삼켰다.
"Gaint sensory syndrome. 거인 감각 증후군 발병자야."
여자애는 눈을 감은 채 귀를 막고 있다.
스승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나를 시험하듯이 보고 있다.
거인 감각 증후군...
자이언트 센서리 신드롬이라고?
"참고로 내가 명명한 거야. 왜곡이 없는 점이 마음에 들어."
스승이 만족스럽게 그렇게 말했을 때 발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노무라 씨가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뭘 하고 있니?"
불만스러운 어조였다.
여자애에게 귀를 막게 한 건 옆에서 보면 지나친 짓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제 끝났어."
스승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여자애가 눈을 떴다.
"미안해. 급한 용무가 생겨서. 이게 가봐야 해."
스승이 손을 흔들더니 침대에서 돌아섰다.
나도 서둘러 뒤를 따른다.
"기다리렴."
쫓아오는 노무라 씨에게 복도에서 잡혔다.
"그토록 말했는데 너는 대체 뭘 하는 거니."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
"아무것도 안 했어.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치?"
"네 뭐."
변명은 별로 통하지 않고 그 후 둘이서 혼났다.
이윽고 다른 간호사들의 시선이 마음에 걸린 건지 노무라 씨는 왔을 때 탔던 승강기에 우리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자기도 타고 1층 버튼을 누른다.
"애초에 늘 너는..."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설교를 듣고 이 사람은 대체 평소에 얼마나 노무라 씨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거냐고 아연해졌다.
스승이 시무룩해진 걸 보자 노무라 씨는 목소리 톤을 좀 낮추었다.
"그러고 보니 너 최근 또 검사 빼먹고 있지? 마시타 선생도 걱정하니까 제대로 받으렴."
노무라 씨가 그렇게 말한 순간 도착을 알리는 소리랑 함께 승강기 문이 열렸다.
1층에 도착한 것이다.
스승이 튕기듯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승강기에서 재빨리 나오더니 빙글 돌더니 혀를 쭉 내밀었다.
"싫다 뭐~ 메롱~"
그리고 도망쳤다.
달려서.
"잠깐만요."
나도 같이 도망쳤다.
노무라 씨가 뒤에서 큰 목소리로 화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병원 안에서 달리지 말라는 걸까?
병원 직원이나 환자들과 몇 번이고 부딪칠 뻔하면서도 우리는 무사히 정면 현관을 빠져나왔다.
조금 가슴이 괴롭다.
숨을 몰아쉬며 흘끗 옆을 보니 스승도 이쪽을 보며 웃었다.
나도 따라서 웃는다.
그 후로 추격자가 오기 전에 바로 자전거를 타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여름이기에 아직 해가 높이 떠 있지만 마을에는 저녁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의 색으로 알 수 있다.
5분 정도 달린 뒤에 마을 안에서 스승은 내렸다.
나도 자전거에서 내려서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거인 감각 증후군.
마치 자신이 커져 버린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는 남들은 결코 볼 수 없는 거인들.
"그 애들은 눈을 뜨고 있으면 평범한가요?"
"응. 시각이나 지식 등 원래 그래야 할 크기를 보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 감각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늘 입고 있는 속옷 같은 것도 보이지 않으니 크게 느껴질 것 같지만 그건 자신이 입고 있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으니 괜찮대. 아 그런가. 애용하던 컵이라고 적으면 안 되었던 건가."
설문 마지막 문항 얘기인 듯하다.
그걸로 거인 감각 증후군이 있는지 조사할 생각이었던 건가.
잡고 있을 때 컵이 이상하게 작게 느껴진다고?
어느 쪽이든 짐작이 가는 사람은 무슨 의도인지 이해할 테니까 오늘 설문에 대답해준 사람들 중에서는 없었던 게 틀림없다.
"그치만 시각이나 지식으로 보정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병세 초기 단계에 불과한 건지도 몰라."
오싹해졌다.
다리가 멈춘다.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비좁은 듯이 걷고 있다.
역앞 큰길이었다.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걸 집중적으로 생각했어.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 다음이 문제가 아닐까 하고. 아까 선생에게 확인했어. 정신병동 입원 환자 중에는 실제로 모든 게 작게 보인다고 호소한 사람이 적게나마 있다고 해."
설마.
그게 소인 목격담과 상관이 있는 걸까.
"처음에 거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 건 이걸 말했던 건가요?"
농담이라고 말했던 게 바로 진실에 도달했다는 건가.
설마 정말로 그들은 증세가 심해지면서 촉각이나 시각뿐만 아니라 실제로 거인화되어 간다는 걸까.
스승은 웃었다.
"야 야 그거야말로 픽션이라고. 그런 황당무계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뭐 2미터 반 정도까지라면 성장 호르몬 과다 분비로 거인증이 일어나니까 아주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치만 그렇게 시각까지 증세가 진행되고 있는 사람 자체도 아직 극소수고 그들이 그 눈으로 다른 인간을 보고 작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게 지금 마을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인 목격담 오리지널이 될 수 있을까."
그 말을 들으니 확실히 이상하다.
거기까지 증세가 진행된 사람이 소문을 퍼뜨리는 환경에 놓여 있는 걸까.
정신병동에 입원중이라면 물론 그런 일은 없을 테고 입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건 인간이 작게 보이고 자시고로 끝날 얘기가 아니다.
모든 게 작게 보인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얘기를 과연 주변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줄까?
게다가 나 자신이 그 가설을 부정하고 있다.
소인 이야기를 평범한 학생 친구한테서 들었으니까.
그들에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특히 2번째 여자애 이야기는 소인이 우유 배달 상자 속에 있었다는 얘기다.
상자는 평범한데 사람만 작게 보이고 있다.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럼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거인 감각 증후군과 소인 목격담.
맞춰질 것 같으면서도 맞춰지지 않는 퍼즐 조각이다.
"오늘 설문에서 소인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알아차렸어?"
"공통점인가요?"
잠시 생각했지만 아직 집계하지 않아서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소인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전부 지금까지 체험한 심령 현상 항목에 소인 말고 다른 것에도 체크했어."
"엇, 그랬나요?"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소인 이야기만 자세히 물었기에 다른 얘기는 추궁하지 않았지만.
"모두 유령을 보고 있었어."
그런가. 나도 그렇다.
발밑에 있는 돌멩이를 가볍게 차며 스승은 자기 페이스로 걷기 시작한다.
나는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인파를 피해갔다.
"오늘 만나본 거인 감각 증후군 발병자 2명도 유령을 보고 있었어. 이 공통점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겠어?"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막연한 답만 떠오른다.
"나는 거인 감각 증후군 발생 원인에는 영감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느 지역에 한정해서 일어난다는 부분에서 그 원인이 어느 정도 좁혀질 테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비말 감염이나 공해, 그리고 특정 다층건축물을 매개로 한 고주파가 뇌에 끼치는 영향 등 전부 다 와닿지 않았어. 그건 나 자신이 느끼고 있는 어떤 감각 때문이야."
"어떤 감각?"
앵무새처럼 되물었다.
"충동. 외침. 그래 포효 같은 거. 설명하기 어렵지만 귀에는 들리지 않고 환청조차 아닌 무언가가 머릿속을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지금도."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지만 웅성거리는 소음밖에 안 들린다.
"영감이 강한 인간은 이런 것에 영향을 받기 쉬워. 그리고 그 중에서도 평소부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입원중에 심신이 약해진 사람은 그게 여실히 나타나는 게 아닐까."
"그것이 거인 감각 증후군이라는 거예요?"
애매하게 끝낸 말과는 정반대로 스승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알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아. 왜 자신이 거인이라고 느껴버리는 걸까. 그것이 진행될 때 뭐가 일어나는가. 그 충동, 포효의 주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치만 현 시점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요?"
두근거린다.
스승과 만난 후로 몇 번 맛보았는지 모를 고양감.
"그건 말이지."
스승은 내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 충동, 포효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 그런 약한 인간뿐만이 아니라는 거야. 부유하는 영체. 지박된 혼. 인간 사후에 나타나는 그러한 존재도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 유령에게 그 자가 생전 믿고 있던 종교 경문이나 축사를 외우면 괴로워하거나 싫어하잖아. 이건 물론 유령은 그런 것에 약하다는 생전 기억이 그렇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인간이 두려워하는 걸 똑같이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아. 개가 그 대표적인 예시겠지. 그런 유령에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발하는 포효는 어떻게 영향을 줄까."
"똑같나요?"
"그래. 인간과 똑같이 이 마을에 존재하는 유령도 그 일부가 이 거인 감각 증후군과 똑같은 증세를 앓고 있어."
해는 아직 높게 떠 있고 저녁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있다.
아스팔트는 낮에 받은 열을 품고 숨막히는 공기를 발밑에서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한기가 슬금슬금 뻗어오는 것 같았다.
"영체들이 거인화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스승은 "아냐." 라고 고개를 저었다.
"너는 알 거야. 영은 취해야 할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젊고 아름다운 시절 모습으로 나타나는 여성 유령. 그 후에 살해당했을 때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타나는 경우. 생명 활동이 정지해서 부패한 상태로 나타나는 경우. 부패가 진행되어 해골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 어떤 경우도 다 가능해. 고르는 건 영 자신이야. 자신이 취해야 할 모습을. 살아 있는 인간처럼 이 물질적 세계에 속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개중에는 생전에는 취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어. 사지의 증감이나 오체의 변형. 동식물과의 융합. 괴물화. 다양한 사례가 있지. 그런 영이 거인 감각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봐.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작아. 작아. 작아.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아.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닌데. 그때 취해야 할 모습은 뭐야?"
한기가 의지를 가진 듯이 몸속을 기어다닌다.
스승이 나를 시험하듯이 바라보고 있다.
"취해야 할 모습은... 그 자그만 세계에 적합한 신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승이 그 말의 다음을 잇는다.
"그래. 그 때문에 모두 작아져. 그들도 모두 거인이기에 소인인 거야."
스승과 나 사이에 있는 좁은 공간을 낯선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 순간을 눈에 새긴다.
맞은편에 있던 스승이 똑바로 이쪽을 바라본다.
소인을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건 거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야.
스스로 농담이라고 쓴웃음을 짓던 스승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농담이라고?
그냥 핑계다.
스승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설문으로 소인을 보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전부 유령을 본 적이 있었다는 것도 이걸로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그리고 나도 그저 유령을 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거인이 된 것 같은 감각을 얻어 버렸기에 소인이 되어 버린 영체를.
그래서 목격 사례가 패턴화되지 않았다.
유령이 나타나는 방식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니까.
스승은 강의가 끝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고 있다.
그 주변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는다.
정장을 입은 스승이 자전거 뒤에 서서 타고 있을 때는 그토록 모였던 시선이 지금은 더는 없다.
여자가 혼자 걷고 있는 것만으로는 큰길 안에서 시선을 돌리기엔 부족한 풍경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인파 속에서 멈춰 서서 자전거 핸들을 쥔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어째서 모두 나처럼 보지 않는 걸까.
믿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을 모르고서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세계가.
(끝)
.
.
.
(막이 끝난 후에)
──나는 알고 있어
퍼뜩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승의 등을 바라본 채로 멍하니 있다가 현실로 잡혀 돌아온다.
지금 그 목소리는 뭐지?
어디선가 들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로 목소리였을까.
귀에 음색이 남아 있지 않다.
백일몽 아니 환청인가.
주변 소음이 커진 것 같다.
옆을 걷는 영업사원의 어깨가 부딪친다.
비틀거리면서 내 눈은 어느 존재를 깨달았다.
역시 환청이었겠지.
그걸 보는 걸로 머릿속에서 그 말이 연상된 것에 불과하다.
큰길을 걷는 사람들 속에서 오직 홀로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이 있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인도에 그것은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빤히 스승을 향하고 있다.
하얀 가면.
밋밋하고 눈과 코 형태로 표면에 굴곡이 있다.
눈 부분이 뚫려 있는지도 잘 알 수 없다.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옷차림도 잘 알 수 없다.
그저 오고가는 보행자들 뒤에서 하얀 그 얼굴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승도 어느샌가 멈춰 섰다.
그 존재를 깨닫고 노려보듯이 그쪽을 보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나는 천천히 스승 곁으로 다가갔다.
"저건 뭔가요?"
"저 가면 본 적 있어."
스승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극단 포스터에 있었어."
극단?
듣고 보니 기억나는 것 같다.
아마 별로 유명하지 않은 소극단이었을 것이다.
마을 여기저기서 포스터가 보였는데 어느 극장에서 공연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모두가 하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무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전위적인 극인 걸까 그게 아니면 그러한 수법이 장르로서 있는 걸까.
"계속 느껴졌던 시선은 저 녀석인가."
고양이가 털을 곤두세우듯이 스승의 몸 주변에 바늘처럼 뾰족한 공기가 발산하는 것 같았다.
오늘 출발했을 때부터 스승이 말했던 건 이거였나.
왜 이 타이밍에?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미 답은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련의 거인 혹은 소인 관련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하얀 가면을 쓴 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큭큭 작게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웃고 있다.
틈을 두고 3차선 도로를 수많은 차가 지나간다.
앞이 막히고 대형 버스가 천천히 우리 시선을 가렸다.
10초. 15초...
이윽고 움직이는 버스가 떠난 후에는 더 이상 하얀 가면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는 스승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마음에 안 드는 상대에겐 화를 내고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설령 상대가 누구더라도.
몇 번이고 그걸 보아 왔다.
도로에 차가 지나가든 말든 그걸 피하면서 최단 거리로 달려가는 게 스승일 것이다.
그 스승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굳어 버렸다.
안색이 창백했다.
입술에서 핏기가 사라진다.
나도 저 가면한테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지만 스승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그보다 심하게 반응했다.
나는 뭐라 말을 걸려다가 막혔다.
인파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리를 모두 귀찮은 듯이 피해 간다.
이윽고 스승이 이쪽을 돌아보며 창백한 얼굴로 입가만 올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