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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민자영에대한 진실.real

작성자잇힝~★| 작성시간14.05.25| 조회수15783|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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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불면증걸린고양이 작성시간14.05.25 저때는 국사교과서에 명성황후가 아니라 민비라고 되어 있었는데 제 국사 선생님은 그래도 나라의 황후를 낮춰부르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명성황후가 맞는 표현이라고 해 주셨어요...그리고 얼마후에 교과서 개정으로 명성황후로 표기되었죠...저도 나중에야 진실을 알고..허거덕 했죠..
  • 답댓글 작성자 교수님. 작성시간14.05.25 광무개혁 후 황후로 추존되었으니 명칭은 명성황후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불면증걸린고양이 작성시간14.05.25 알 파치노 밑에분이 잘 써주심....'비' 가아니라 ~ 명성황후 민씨....다른 예로도..인현황후를 중전 여흥 민씨 라고 하지 않아요??(동이에서^^;;;;;ㅋ) 기타등등....뭐... 제 국사 선생님은 비하표현이라고 싫어라 하셨지만요...
    뭐..... 어떻든 너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것 같아서 쫌....거시기 하더라고요...ㅜㅜ(그건 쫌 많이....) 행실이 어떻튼.....
  • 작성자 해결완료 작성시간14.05.25 드라마와 영화가 역사 망쳐놓은 대표적인 케이스죠;;
  • 답댓글 작성자 씽크빅갈기고픈여자 작성시간14.05.25 설송꽃(210세) 33.....
  • 답댓글 작성자 쁘띠빈잔 작성시간14.05.26 44444444444444반성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캐서린입니다 작성시간14.05.25 제목을 '진실' 로 넣어야 할까요? 유머글에 진지해서 죄송하지만..ㅠㅠ이것도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의 일부이고 다른 평가도 존재하는데 이것만 참트루라는건...
  • 작성자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다 죠죠! 작성시간14.05.26 저기 사진 명성황후가 아니라 이승만이 저서에 명성황후의 사진이다라고 올려놓은 사진이지 정말 명성황후의 사진이라고 확정난 것은 없고 다만 유력한 것들중 하나일 뿐이라고 배웠던듯한.. 한국사 배운지가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나네요ㅜㅜ틀린점은 지적해주세요
  • 답댓글 작성자 잇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5.25 오오 엄청 디테일하게 아시네요...수정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다 죠죠! 작성시간14.05.25 잇힝~★ 앗..잠시만요 지금 찾아보니까 정식 명칭은 명성황후 민씨가 맞다고 해요
    1983년 이후, 공식명칭인 '명성왕후 민씨'나 '명성황후 민씨'가 올바른 호칭으로, '성+비'로 된 '민비'는 공식명칭이 아니니 호칭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학계와 대한민국 정부에서 결론을 내렸다.

    엔하미러내용이라서 쪼끔 그렇긴하지만..
  • 작성자 콜미르 작성시간14.05.25 중학교때 사회선생님이 "그런 민씨 따위가 드라마니 뭐니 덕에 국모의 이미지를 가져간거나, 초대 대통령이란 이름때문에 국부라 불리는 이승만이나 대한민국의 국민이 얼마나 우매한지 잘 알아야 한다. 그러니 배워라. 좋은 대학과 대기업 입사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배워야 한다. 개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고 싶으면..." 그 말씀이 저의 가치관을 바꿨드랬죠. 덕분에 최소한 개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것 같습니다ㅋㅋ
  • 작성자 긷성규 작성시간14.05.25 딱히 편드는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그렇게 가신건 진짜...... 일본놈들 다 쓸어버리고싶네
  • 작성자 이종욱 하앍 작성시간14.05.25 저도 고등학생 때 열정적이셨던 국사 선생님 덕분에 국사에 흥미 가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였네요. 폭정을 한 명성황후가 죽은것 보다는 어떻게 죽었느냐가 참 뼈져리는 것 같아요.
  • 작성자 사가라 긴토끼 작성시간14.05.25 누구더라 애드워드??선교사였나 공사관이었나 그런사람 결혼 지참금도 어마어마하게 줬다고 그러던디요....그때 나라는 안좋은 상황이었었고요
  • 작성자 달봉베어 작성시간14.05.25 드라마를 잘만들어야 하는 이유죠....십여년후쯤 기황후의 진실 막 이러면서 드라마랑 다르게.사실은 나쁜여자였다고 이런글 올라올거 같네요...왕유는 사실 강아지아이 였다네요 대박.. 막이럼서....씁쓸 ㅡㅡ
  • 작성자 교수님. 작성시간14.05.25 제가 알기로 황현은 1890년부터 구례 만수산에 칩거해서 1905년까지 한양을 방문한 적이 없거든요. 따라서 을미사변 당시 한양 사람들의 반응을 상세하게 기록하기는 힘들었을 거 같네요.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내용이기 때문에 상세하다거나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겠죠. 내탕금도 마찬가지로 명성황후가 내탕금 다 까먹고 호조에서 쓰는 세금까지 까먹었으면 을미사변 후 고종이 활용했던 내탕금과 왕실자금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몇가지는 사실확인이 더 필요할것 같네요.
  • 답댓글 작성자 잇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5.25 오오 지적 감사합니다...사실 저도 1차사료를 해석할만큼 대단한 정도는 아니라서 직접적인 확인은 어렵고 역주본에서 봤던 내용입니다. 내탕금은 제가알기로 조선말기 및 대한제국시절 회계년도에 개념이 명확히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라 내탕금은 저량이 아니라 매년 징세에 귀속되는 유량이라는 개념으로 보시면 될듯합니다. 원하시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 작성자 리 페이스 작성시간14.05.25 죽어도 국민들 손에 죽었어야 했는데...
  • 작성자 사랑방 손님과 달걀*-_-* 작성시간14.05.27 흥선대원군이 일부러 명성황후 민자영을 들였어요. 친지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큰 세력을 만들지 못할거란 생각을 한거죠. 하지만 명성황후 민자영은 영리한 여인이었어요. 고종은 명석한 민자영을 신뢰하고, 나라에 닥친 큰 일과 외교적인 문제들을 아내와 의논할 정도가 되면서 흥선대원군을 쫓아내다시피 궁에서 몰아내죠...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들어진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실제와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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