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목자로 다녀가셨다.
목자에게는 '양' 이 있다. 양은 모두가 양이 아니다. 양은 목자의 것이다. 양만이 목자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양은 목자의 음성' 을 듣기 마련이다.(요10:3).
이제 제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신기하게 여기지 말라' 만일 네가 그렇다면 네가 양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목자는 자신의 음성을 알아 듣는 양을 찾으러 오신 것이다. 이게 은혜이다.
1.
예수님은 이 땅에 다녀가셨다. 사람의 아들로 다녀가셨다. 영체로 다녀가신 것이 아니라 인생이 느끼는 다양한 입장과 감정을 친히 느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큐티, 혹은 말씀 묵상은 사유만으로만 하는 게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을 실제적으로 나의 삶에 적용이 안된다면 공염불이다(죄송).
기독교는 생명이다. '종교' 라는 말을, 단어를 쓰기 싫어라 한다. 내 삶에 적용이 되고, 작동이 될 때에 실로 생명이 되고, 내가 변화가 있어 왔다. 그러므로 변화의 기원은 내가 아니다. 말씀이다. 하나님이다. 성령님이다.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아를 초월한다.
(저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보라. 그는 우리의 노력이 심히 대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모른다. 그가 독일인이었고, 기독교 문화권에서 성장했으나, 그가 최소한 사도 바울을 조금만 알았어도.... 바울이 그토록 배설물로 여기는 자기 열심을 내려 놓았으리라...)
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나타나고 있다(요6:35).
요6:35절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아멘.
여기 '내가' 는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내' 가가 되어야 한다. '당신' 이 되어야 맞다.
누군가 "왜 태어났니?" 물어오거든 35절과 같이 응대하라. 그리고 그렇게 살아버리도록 노력하라. 이제 말씀과 말씀이 주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알았으니...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셨다. '내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참으로 진실하다. 뭔가 위선이 하나도 없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 경배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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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10: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대상히 분명히 제시되고 있다. 누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는가? 그것은 바로 '양으로' 이다. 그렇다면 그 양은 누구인가?
(1) 목자가 찾는 자이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신다. 참목자의 특징이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라도 찾아간다.
(바울을 보라. 동족의 위협, 강의 위험, 물의 위험을 돌파하여 찾아간 것이다. 성구삽입)
적용해 보자. 당신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셨나? 혹은 그의 영이신 성령이 당신을 찾아오셨나? 생각도 안 해보셨나?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철학자일 뿐이다.
아니 '사유자' 라고 해두자.
(2) 성령의 시대이다. 예수님이 사람과 같이 계실 때에는 매우 광범위한 물리적 제한 속에서 살아내셨다. 하지만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다.
예수님의 몸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이 운행하시는 시대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움직이는 시대이다.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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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심판, 아직은 아니다. 이제 심판장으로 오싣나(47절).
요12:47절,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허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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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7:10절,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아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를 치유8강에서 찾을 때에
(1) 예수님의 행하심을 약속을 믿는 것이다.
(치유8강에 '약속' 을 추가해야 함.)
(2)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3:7)
(3) 예수님은 우리의 가난을 위하셨다(고후8:9).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가난한 자가 되신 것이다. 그것은 나같은 가난한 자가 부요하게 하기 위함이시다.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자. 믿음으로.
믿음은 위대하다. 믿음은 그냥 기분 내키는대로의 선포가 아니다. 믿어지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을 받아야 우리는 소위 '은혜' 라고 지정하고는 한다.